소설리스트

〈 79화 〉079 백은기사(6) (79/116)



〈 79화 〉079 백은기사(6)

도시 각지에 흩어져있던 이단심문관들은 각 거인마다 일정 수를 갖추어 모였다. 각 거인마다 모인 인원은 8명. 4인 1개 분대로서 2개 분대가 모였다. 그 중 가장 선임이 리더를 맡았다.


“크군.”

“작은 녀석 조차도 자료로 밖에 본  없는 크기인데.”


“인간 형태를 한 것은 금시초문이고.”

“그보다 막을 수는 있나?”


“해봐야지.”

“우선 아공간 봉인부터 간다.”

8명의 이단심문관들은 즉시 작은 거인을 사방에서 둘러쌌다.  만들어진 기괴한 얼굴은 무표정하게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봉인진 기동.”


리더의 지시와 함께 이단심문관들은 일제히 성물을 사용해 봉인술식을 펼쳤다. 바닥에서부터 빛이 통하지 않는 짙은 어둠이 거인을 감싸기 시작했다. 거인은 주변을 멀뚱멀뚱 바라보며 천천히 어둠속에 잠겼다. 이윽고 허공에는 작은 검은 점과 함께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500년에 걸쳐 끊임없이 개량되고 다듬어진 술식은 적은 힘으로도 손쉽게 거인을 아공간에 가둔 것이다.


“……”

봉인은 성공했다. 이제 이단심문관 두어 명이 남아서 이 봉인을 유지하기만 하면 시간을 벌 수 있다. 하지만 리더는 뭔가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상한데.”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다들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탓, 탁, 탁!


리더는 근처 건물의 벽을 타고 옥상으로 올라가 주변을 살펴보았다. 다들 대응은 비슷했는지 거인들이 내리꽂힌 자리에 남아있는 녀석은 없었다. 딱 하나 가장 거대한 녀석을 제외하고. 거인들의 리더로 보이는 그녀석은 어느 순간 걸음을 멈춘 채 그저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이대로 저 거인 주변으로 모여서  녀석을 상대해야 하는가..? 이자벨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지?’

리더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쿠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가만히 서있던 커다란 녀석이 고함을 질렀다.

“리더!”

-부우웅


건물 아래에서 찢어지는 외침과 함께 묵직한 바람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즉시 성물의 힘으로 공간이동을 펼쳤다.

-콰드득!

그녀가 사라지자마자 거대한 팔이 건물의 상층부를 통째로 날려버렸다.

“이게 무슨..!”


이렇게 쉽게 당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이토록 허무하게 봉인이 뚫릴 것이라고도 생각지 못했다. 허공에  자그마한 검은 점에서 거대한 팔이 튀어나와 있었다.

“입구를 닫아!”


그녀의 지시를 들은 심문관이 즉시 공간을 격리했다. 공간 자체가 분리됨에 따라 튀어나온 팔이 잘려나갔다. 거인의 팔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널부러졌다. 리더는 제발 여기서 더는 녀석이 날뛰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 바람은 그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이가 없었다.

-쩌저적

공간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항상 성물을 통해 공간의 힘을 다루는 이단심문관들은 누구보다도 그 소리의 의미를 잘 알았다. 공간을 왜곡시키고 붙들어두는 것은 성물의 힘. 마왕의 파편인 거인은  힘에 정면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지닌 성물은  저항을 이기지 못하고 망가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리더! 제 성물이 깨질 것 같습니다!”

“풀어!”

가두지도 못할 녀석을 붙들려다 성물을 잃어서는 안될 노릇. 리더는 즉시 봉인을  것을 명했다. 다시 허공에 검은 균열이 생기더니 외팔이 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쿠이이이이

거인은 뭔가 이죽거리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팔을 주워 어깨에 가져다 대었다.


-쭈우웁

거인의 팔은 그것으로 간단히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끊임없이 불타는 거인은 리더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몸이 불타오른다는 것은 수도의 신성결계가 아직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리더가 알고 있는 결계의 출력이라면 저만한 크기의 녀석도 조금만 버티면 태워 없앨 수 있을 것이었다. 리더는 나지막히 한 숨을 내쉬고는 방침을 바꾸었다.

“나하고 4,5번이 번갈아가며 공격. 2,3번은 놈의 오른쪽을 방해. 6,7번은 놈의 왼쪽을 방해. 8번은 신성결계를 덧씌워라.”

눈을 뚫고 팔다리를 자르고 저것이 다 타서 없어질 때까지 신성력을 퍼붓는다. 마왕의 파편을 없애려면  방법이 제일이었다. 다른 꼼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만한 녀석을 상대로 그 방법을 쓰려면  성자가 함께 해야 하는데..


-휘익


“산개!”


거인이 움직였다. 내리치는 팔. 바닥이 깨져나가 파편이 튀었다. 물론 그런 것에 당할 이단심문관은 아무도 없다.


-파앗


신성결계가 펼쳐졌다. 거인의 몸에서 일어나는 불길이 더욱 거세어졌다. 리더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주먹을 피했다. 불과 1미터 전방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리더는 간단하게 거인의 어깨에 올라설  있었다. 여전히 거인은 주먹을 내지르는 도중. 리더는 허리춤에 찬 칼날에 신성력을 두르고 거인의 어깨에 꽂아넣었다.

-쿠와아아아아악!


거인이 날뛰었다. 거인은 자신의 어깨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리더는 얼른 자리를 피했다. 거인의 몸이 돌아간 틈을 타 거인의 시야에 벗어난 다른 심문관이 칼을 들고 덤볐다.

푸욱


이번에는 거인의 골반을 밟고 올라가 겨드랑이에 칼을 꽂아넣었다.

-콰웅!


이번에는 먼젓번 만큼 충분히 신성력을 주입할 수 없었다. 거인의 몸에서 가까웠던 만큼 거인이 팔꿈치로  심문관을 찍어버리려 했기 때문이다. 거인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뒤통수가 비었다. 결계 내부에서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있던 5번 심문관이 거인의 뒤통수에 칼을 꽂았다.

‘이대로는 끝이 없겠군.’

거인이 뒤통수에 손을 가져가려 하자 다른 심문관들이 공간의 힘으로 사슬을 만들어 거인을 방해했다. 거인의 손목과 발목을 연결하는 것 만으로도 간단하게 거인의 동작을 방해할 수 있었다.


-쿠당탕!

요란한 소리를 내며 거인이 무너졌다. 심문관들은  싸우고 있었다. 거인의 몸에는 쉴새없이 상처가 새겨졌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리더는 냉철한 눈으로 상황을 분석하고 있었다. 거인이 끊임없이 불타오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인의 체적이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탄화하는 부분도 생기지 않았다. 그런 부분이 생기기 전에 끊임없이 재생에 재생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신이시여..’


*


이단심문청은 청장과 부청장 밑에 두개의 팀이 존재한다. 각 팀은 10개의 분대로 나뉜다. 수도에는 현재 이자벨이 지휘하는 팀이 파견된 상황. 이자벨의 성물에는 각 대원들의 상황을 알  있는 추가적인 가공이 되어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있는 르네는 이자벨에게 물었다.

“이자벨님. 전황은 어떻습니까?”

“좋지 않습니다. 잘 싸우고 있지만, 화력이 부족하군요.”

“버티는 것은?”

“문제 없습니다.”

르네는 조금 마음이 놓였다. 이 녀석만 자신이 어떻게든 하면 나머지 것들도 다 처리할 수 있을테니까.

“발판을 만들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도 가세하겠습니다. 5번부터 8번까지는 결계. 1,2번은 나, 3,4번은 텔라경을 지원. 레이첼은 성자님의 지시에 따른다.”


-예!

거인은 가만히 서서 르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거인을 둘러싸고 거대한 결계가 전개되었다. 거인을 둘러싼 더욱 강해진 신성력은 거인의 살을 더 강하게 불태웠다.

-쿵, 쿵, 쿵, 


거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텔라! 절대 거인의 시야에 들어가지 마라!”

“예!”

-부우웅


르네에게 거인의 주먹이 날아왔다. 르네는 다리에 흐르는 마력을 격발시켰다.


-파바밧!

르네의 신형이 사라졌다. 바닥에 새겨진 깊은 발자국. 이단심문관 기타 다른 마력사용자들은 해내기 어려운 빠른 돌진이었다. 마력을 사용하고 훈련을 받은 시점에서 이미 초인이라 부를만한 힘을 갖게 되지만 기사들은 그들 중에서도 오로지 신체능력만으로도 하나의 특성을 성립시킬 수 있는 강인한 이들만 될 수 있다. 이자벨이었다면 공간도약으로 피했을 공격을 르네는 단지 속도를 조금  높이는 것 만으로 돌파해버렸다.

-우후흐흐흐흐

거인의 입이 길게 찢어졌다. 음산한 웃음소리. 르네는  거인이 단지 기괴한 살덩이가 아님을 확신했다. 명백하게 지성과 악의가 깃든 존재.

‘우선은..’


-슈왁!


‘그 재수없는 얼굴을 끌어내려주마!’

검광이 빛났다.

칼에서부터 3미터까지 솟아오른  정련된 신성력의 빛은 아름드리 나무만한 거인의 발목을 간단히 잘라내었다.

-쿠어어어어어어어


거인은 설마 단숨에 자신의 발목이 잘려나갈 줄은 몰랐던  놀라는 소리를 내며 자세를 무너뜨렸다.


-콰콰콰콰콰쾅

다행히도 거인과 르네가 싸우는 장소는 저택 주변의 광장이었다. 거인의 자세가 무너지자 텔라와 이자벨이 함께 달려들었다.

-부웅

이자벨의 건틀릿에서 새카만 칼날이 솟아올랐다. 성물의 힘을 이용해 공간 자체를 찢어발기는 칼을 만든 것이었다. 이자벨은 그것을 휘둘러 단숨에 거인의 한쪽 어깨를 몸통과 분리해버렸다.

“하아압!”

텔라도 활약을 했다. 텔라의 서포트를 맡은 이단심문관들이 텔라의 검에 신성력의 칼날을 만들어주었다. 텔라는  칼을 휘둘러 거인의 손목을 잘라내었다. 거인이 잘린 단면으로 텔라를 후려치려 하자 르네가 달려들어 거인의 남은 어깨를 마저 갈라버렸다.


-쿠워어어어어어어


“어딜!”


거인이 상체를 일으키려 하자 손이 남는 인원들이 성물의 힘으로 거인의 뒤통수를 잡아 끌어 땅에 박아버렸다. 훤하게 드러난 목덜미에대고 르네는 칼을 크게 휘둘렀다.

-서걱

거인의 목이 잘려나갔다.

“분리!”

르네는 황급히 외쳤다. 성물을 쓸 수 있는 이들이 각자 힘을 발휘해 거인의 사지가 다시 달라붙지 않도록 멀찌감치 떼어놓았다. 거인의 잘려나간 단면에서도 불길이 치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새하얀, 신성력의 불꽃. 인간에게는 그리 해롭지 않은 마물을 태우는 불꽃이었다.


‘젠장, 없어지지 않잖아.’

거인은 여전히 꿈틀대며 소멸에 저항하고 있었다. 아니, 소멸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지가 잘려나간 것이 화가 나 꿈틀댈 뿐이었다. 비록 해체된 상태에서도 거인은 건재했다.


‘사지를 잘랐는데.. 잘려나간 부위가 없어지지 않아.’

이제껏 상대했던 마왕파편의 촉수들은 그것이 잘려나갔을 경우 그리 긴 시간을 버티지 못했다.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파편의 핵으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는 말단 부속이니까. 하지만 지금 이것들은 그것이 없어지지 않았다.

‘큰일이군.’

-쿠에에에에에헤에..

거인의 머리가 기괴한 소리를 내었다. 르네는 즉시 달려들어 거인의 머리에 대고 칼을 꽂아넣었다. 그리고 신성력을 주입해 내부에서부터 태우기 시작했다.

-퀴이이이이이이이이이!

르네가 겨우겨우 그만한 크기의 파편이 소멸될 정도로 신성력을 부어넣는 틈에 다른 인원들 역시 해체된 부위를 완전히 소각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때 멀찌감치서 결계를 유지하던 인원 중 한 명이 비명을 질렀다.


“텔라 경! 엎드리시오!”

텔라의 사각에서 커다란 살점이 날아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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