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 115
* * *
여신은 모든 것이 속박당했다.
문자 그대로 ‘모든’ 것.
멜로디라고 불리는 몸에 갇힌 여신은 이제 그 어디로도 가지 못했다.
육신의 지배권은 용사에게 강탈당해 여신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인형 그 자체였다.
식욕, 수면욕, 성욕 뿐만 아니라 눈을 깜빡이거나 발가락을 움찔거리는 것 조차도 용사의 허락이 없으면 할 수 없었다.
용사는 멜로디의 이름으로 교단에 서신을 보내 정식으로 용사의 아내가 되고자 하니 성녀직을 내려놓겠다는 편지를 보냈다.
부리나케 달려온 교단 관계자 앞에서 멜로디는 평소대로의 성녀를 연기하며 손수 다음 대 성녀 후보를 지명하는 한편, 성녀로서의 힘을 부여했다.
용사가 북쪽에 계속해서 머무는 한 마물과의 전투는 걱정 없고, 멜로디의 행동은 오히려 그 사명에 더욱 집중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으므로 교단은 이내 멜로디에 대한 관심을 거두었다.
그렇게 멜로디는 용사의 침실을 장식하는 장식품이 되었다.
때로는 샌드백.
때로는 옷걸이.
때로는 신성력을 행사하는 살아있는 성유물.
용사는 이따금 멜로디를 상대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나 멜로디가 가버리기 직전에 멈추고는 곁을 지키고있던 레나나 마르샤를 보내버리곤 했다.
멜로디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극이 없는 삶과 욕구불만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멜로디는 그리 오래 버티지 못했다.
수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탐욕스럽게 쾌락을 쫓아온 정신성은 그 영혼 깊숙한 곳에 새겨진 행위를 금지당하자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망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따금 용사가 변덕을 부려 말하는 것을 허락해주면 멜로디는 눈물콧물을 몽땅 흘리며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말로 용사에게 부디 자신을 범해주기를 간청했다.
발 닦는 걸레처럼 써도 좋으니 부디 그녀 자신에게 쾌락을 하사해주시기를 빌고 또 빌었던 것이다.
이미 여신 본연의 위엄이나 정체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그저 자지에 미친 한마리 암캐만 남았다.
용사는 진심으로 괴로움을 호소하며 울부짖는 여신을 보며 마음 속 깊은곳에서부터 차오르는 유열을 느꼈다.
용사는 스스로도 자신이 망가져버렸음을 자각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래도 이 정도면 양반이 아니겠느냐는 취지였다.
이듬해 몸이 회복된 레나는 또 다시 아이를 임신했다.
그리고 약 10개월 뒤 예쁜 딸아이를 낳았다.
멜로디의 위협이 사라진 이래 레나는 매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한편, 마르샤는 사정이 조금 복잡했다.
용사가 여신을 멸할 단서를 찾기 위해 밖으로 나돌던 시간.
그 시간동안 여신은 유독 마르샤에게 관심을 쏟았었다.
그것은 다분히 마르샤가 용사와 상의하에 의도한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순둥이에 겁이 많고 수가 얕은 레나는 여신의 주의를 끄는 줄타기를 하지 못한다.
마르샤가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마르샤는 훌륭히 자신의 임무를 완수해냈다.
하지만 그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녀의 정신에도 새겨진 상흔은 깊었다.
침실에 혼자 있는 사실에 트라우마를 느끼게 된 마르샤는 반드시 용사가 함께 있을 때라야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지 않을때는 항상 거실에서 밤을 지새웠다.
용사는 그런 마르샤를 위해 거의 매일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마르샤는 해가 넘어가도록 회임하는 일이 없었다.
용사는 차분히 마르샤의 몸을 진찰해보았다.
그리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제 아무리 여신이 말끔하게 치유를 해주었다고는 해도 꽤 긴 시간 반복적으로 학대를 당한 마르샤의 하복부에는 무시할 수 없는 데미지가 쌓여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일생에 한번 받을까 말까 한 대수술에 준하는 가혹행위를 마치 가볍게 운동이라도 하는 페이스로 당했던 마르샤의 몸은 이미 뭔가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으면 회복이 되지 않을 상황이었던 것이다.
마르샤의 몸이 여신과 같은 특수한 세포로 구성되어있었다면 그 기능까지 완전하게 회복이 되었겠지만 마르샤의 몸은 평범한 인간이었다.
“괜찮아, 당신. 그래도 딸아이 하나는 낳았고, 당신이 내 곁에 있으니까. 나는 지금 행복해. 아픈건 아픈거고 행복한건 행복한거야. 괜찮아.”
마르샤는 용사의 손을 이끌어 일부러 과거의 기억을 덮어씌우듯 자신의 아랫배를 꾹꾹 누르게 했다.
외부의 자극에도 민감해진 그녀의 자궁은 하복부에 충격을 주는 것으로도 강한 성감을 느꼈다.
용사는 자신의 손길에 자지러지는 그녀를 더욱 강하게 어루만지며 어떤 결의를 다졌다.
**
용사가 창고에 넣어두었던 여신을 다시 꺼낸 것은 완전히 여신을 제압하는데 성공하고 약 5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처음 1~2년 정도는 그야말로 신나게 여신에게 온갖 종류의 복수를 행했고, 그 이후로는 침실에 눈을 부릅 뜨게 한 채 방치해두었다.
그러다가 재작년부터는 창고 한켠에 세워두고는 천으로 덮어두었었다.
용사는 이제 더 이상 여신을 머릿속에 남겨두기 싫었다.
여신을 어떤 형식으로든 정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용사로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 중대사였다.
글러먹어도 여신은 여신.
여신의 정신은 멜로디의 육신에 갇혀있지만, 어디 있는지 모를 여신의 본체는 여전히 살아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비록 지금은 컴퓨터 운영체제에 가까운 신세지만.
그것을 용사가 취하느냐 혹은 이대로 유지하느냐 하는 것은 스스로 결정하기 어려웠다.
만일 용사가 여신의 모든 것을 취한다고 하면 그것은 용사가 스스로 이 세계의 신이 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용사는 그 책임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이 글러먹은 여신도 어쩌면 처음에는 그럭저럭 괜찮은 신이었을지도 모른다.
작정하고 인간을 탄압하지는 않고 철저히 자신의 즐거우만을 좇았으니 적어도 악신으로 분류되지는 않을 지도 모른다.
교단은 용사가 보기에도 지극히 이상적으로 운영되는 단체였다.
교단의 사람들은 정말로 교육을 잘 받은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들이었다.
교단은 부유했고, 사제들은 항상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고 좋은 장비를 사용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자신들의 부를 창고에 쌓아두지 않았다.
교단은 창출하는 부를 전부 인간을 이롭게 하는 일에 사용했다.
사제들은 배불리 먹는 만큼 열심히 일했다.
그들이 사용하는 장비는 항상 적재적소에서 성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했다.
그들은 여신의 신성을 진정으로 믿으며 인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었다.
용사는 자신이 여신을 대신할 수 있으리라 생각지 않았다.
용사는 자신이 여신처럼 망가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장고 끝에, 용사는 여신의 봉인을 강화하기로 했다.
마물이 많기는 하나, 인류가 힘을 회복하면 이 협곡을 방패로 어떻게든 버텨나갈 수 있다.
마물이 널리 퍼져있기는 하나, 인류가 힘을 좀 더 기르면 협곡 바깥으로도 조금씩 영토를 늘려나갈 수 있다.
지금은 용사의 기적같은 힘에 의해 단숨에 여기까지 왔지만, 앞으로는 용사같은 특별한 요소가 없더라도 전체적인 역량을 기르면 세대를 거듭해가며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었다.
용사는 여신을 봉인한 시스템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여신의 심장에 꽂힌 단검은 마물의 뼈를 용사가 설정을 개변하여 여신의 몸과 같이 만든 것이라 시간의 흐름에 의해 풍화되지 않는다.
용사는 다시는 못 볼 여신에 대해 작별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레나와 마르샤는 따로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용사는 여신과 단 둘이서만 저택의 심처에 위치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있나?”
“주인으로 섬기게 해줘..”
“뭐?”
“주인님, 내 주인님이 되어줘, 아니 되어주세요, 죽기전 나를 가져줘, 내 영혼, 내 존재, 내 모든것을 당신이 가져줘.. 내가 당신 얼굴만 바라봐도 행복하고, 당신의 음성만 들어도 귀가 쫑긋거리고, 내가 당신의 냄새만 맡아도 절정하는 당신을 핥는 개가 되게 해주세요.. 내가, 내가 술식을 알려줄테니까, 개변이고 뭐고 여지가 일절 없는 단순무식한 술식이니까, 그걸로 나를 봉인하기전에 잠시만이라도 지배해줘, 아니 주세요, 레나가, 레나가 알거야, 응? 용사님, 자기야, 사랑해, 제발, 마지막 부탁이야, 잠시만이라도 그렇게 되면 나는 영영 잠에서 깨지 못해도 좋아, 나를 영원히 어둠에 처박아도 좋아 한번만 당신을 보며 젖게해줘, 응?”
결단코 흔들리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용사는 흔들리고 말았다.
차라리 용사를 저주했더라면
혹은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변명했더라면
혹은 봉인당하고 싶지 않다고 애걸복걸했더라면
용사는 아무 미련없이 여신을 어둠속에 봉인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신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주 잠깐이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가져달라는 것.
혹시나 여신이 자신의 짐을 용사에게 떠넘기는 것은 아닐까, 혹은 뭔가 반전을 꾀하는 수작을 부린 것은 아닌가.
용사는 자신의 아내들과 머리를 모았으나 결론은 깨끗하다는 것이었다.
여신이 제시한 술식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일방적으로 시전자의 존재를 인지할 때마다 행복감을 느끼게 만드는, 소위 개과동물과 같은 정신상태로 만드는 주문이었다.
마음속 깊은곳에서부터 시전자를 위하게 되며 시전자의 말을 거스르기 어려워지고, 시전자의 말을 들을때마다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용사는 왠지 여신의 말을 들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딱히 연민에 휘둘려서가 아니라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용사는 여신의 말대로 여신의 영혼을 자신에게 예속시켰다.
여신은 예속계약이 성립하자마자 용사의 앞에서 지고의 절정을 느꼈다.
단지 자신 앞에 용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이 용사에게 예속되었다는 사실에,
용사의 모습, 음성, 향기, 존재감 그 모든것이 여신에게 행복감을 선사하는 요소였다.
그것은 단순히 성적 쾌락뿐만이 아닌, 보람, 성취감, 카타르시스 등등 사람이 기쁘고 즐겁고 후련하고 좋은 것이라 인식하는 모든 감정의 총체였다.
“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여신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듯 꺽꺽 거리며 신체의 모든 구멍에서 낼 수 있는 액체를 뿜어내며 절정을 표했다.
거진 10여분 가까이 이어지던 성대한 절정은 보다 못한 마르샤가 여신의 머리를 칼집으로 내리치며 끝났다.
“하아.. 하아.. 하아.. 저, 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여신의 얼굴은 그야말로 티없이 행복한 얼굴이었다.
그 어떤 미술가가 고뇌하고 고뇌한다 해도 표현할 수 없을 맑디 맑은 후련함이었다.
“하아… 죽기 전에 주인님께 한가지 말씀드려야 할 게 있어요.”
“그게 뭐지?”
“마물. 굳이 제가 손을 쓰지 않아도 계속 증식한답니다.”
“……”
“그리고 저는 지금 주인님께서 제 영혼을 취하셨기 때문에 그것들에게는 비상사태로 인식될거에요..”
“..그래서?”
“그것들은 이제 지체없이 이곳을 향해 몰려올거에요. 그것들에게도 저는 마치 어미나 마찬가지니까요.”
“…이거 지금 당장 물러!”
“이미 늦었어요. 주인님께서 멀리멀리서 마물을 사냥하셨을 때 이미 이곳의 존재를 눈치챘으니까요. 그것들은 모든 땅에 퍼져있으니 소거법으로 이곳을 특정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를 봉인하든 말든 언젠가는 그것들이 이곳을 찾아올 쿠엑♥!”
용사는 차마 여신의 말을 다 듣지 못하고 그 면상에 주먹을 꽂고야 말았다.
여신은 그것도 용사의 손길이라고 다시 행복감에 정신이 나가버렸다.
인류는 아직 지금의 영토를 지키는 것 조차 준비가 되지 않았다.
용사는 자신의 자식들을 포함, 인류의 미래를 위해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여신에 대한 사사로운 복수감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