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0화 〉모험가가 되는 법(3) (20/249)



〈 20화 〉모험가가 되는 법(3)

모든 평가가 끝나고 우리는 등급 산정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했다. 체감상 1시간쯤 지났을 때, 접수원이 우리를 불러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등급 산정이 끝났으니 이야기해드릴게요. 먼저 카라 씨부터.”

카라는 잔뜩 기대하는 얼굴로 귀를 쫑긋거렸다.

“카라 씨는 바위 등급이세요. 인성 평가는 괜찮았는데 배경지식과 전투수행능력이 걸렸네요.”

쫑긋거리던 귀가 축 처졌다.

“다음은 세리스 씨죠? 세리스 씨도 마찬가지로 바위 등급이시네요. 사유는 카라 씨와 비슷해요.”

“네...”

카라와는 달리 세리스는 조금 아쉬워하긴 했지만 납득하는 기색이었다. 분명 벨리타에게 혼난 탓이겠지.

“마지막으로 한유성 씨는...”

‘등급을 받고나면 뭘 해야 하려나.’

바위  3명이서 함께  수 있는 의뢰가 있으려나? 다른 파티에서도 3명은 안 받아줄 같은데...

“축하드려요!  등급이세요!”

일단 가장 간단한 의뢰부터 하면서 차근차근 카르마를... 음?

“네? 방금 뭐라고...”

“에이, 왜 딴 생각을 하고 그러세요. 한 번만 다시 말해드릴게요.”

접수원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아까 했던 말을 다시 했다.

“축하드려요! 한유성 씨는 철 등급이세요!”

“...철이요? 제가?”

“별로 안 기뻐 보이시네요? 신입인데 철부터 시작하는 거면 흔하지 않은 스타트라고요?”

“아뇨... 그냥 조금 얼떨떨해서...”

틀림없이 바위 등급일줄 알았는데 말이다.

“후후, 그럴 만하죠. 여기 모험증입니다.”

그녀가 건네준  나무로 된 패였다. 거기에는 내 이름과 철광석이 그려져 있었다.

“잊어버리시면 안돼요. 누군가 멋대로 사용할 수도 있으니까요. 만약 잊어버리시게 되면 최대한 빨리 길드로 오셔서 알려주세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길드에서 나왔다. 카라는 나오자마자 내 등을 마구 두드렸다.

“오빠, 오빠. 나 오빠 꺼 모험증 볼래.”

“그래.”

“우와~...응? 생각보다 크게 다르진 않네? 그림도 바위에서 조금 뾰족해보이게 그린게 다고.”

카라는 조금 더 살펴보다가 흥미가 떨어졌는지 내게 모험증을 다시 건넸다.

“어쨌든 오빠 축하해! 접수원 언니 말이 맞다면 대단한 거잖아?”

“그러게요. 축하해요 유성 씨.”

카라가 히히, 세리스는 후후 웃으며 말했다. 나는 마주 미소지어주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가자.”

“어딜?”

“장비 맞추러.”

* * *

“42실버.”

“...이거 하나에 말입니까?”

“그거 하나 만드는데 드는 정성이 얼만데. 합당한 가격이지.”

“음...”

나는 체인메일을 바라봤다. 저거 하나만 입으면 웬만한 공격은 걱정 없을 텐데. 다만 가격이 너무 비쌌다.

내친김에 다른 장비들의 가격도 물어보았다.

-가죽갑옷 4실버
-가죽 팔목, 발목 보호대 2실버
-누비갑옷 6실버
-질 좋은 한손검 2실버 25쿠퍼
-질 좋은 양손검 3실버 10쿠퍼

하나같이 부담되는 가격들이었다. 이 아저씨가 바가지를 씌운  아닐까 싶어 광장을 돌아다니며 다른 대장간도 들러보았다.

“42실버.”

“...”

대장간 주인끼리 담합이라도  모양이었다. 대장간 주인들끼리 만든 길드가 있다던데 그곳의 소행이겠지.

“흐에...”

세리스는 장비들의 가격을 들은 뒤로 혼이 나가버렸다.

그럴 만한 게 그녀의 전 재산은 원래 10실버였지만, 도시에서의 생활비와 방금 전에  토끼 가면으로 인해 8실버가량이 되어버렸다.

그 돈으로는 가죽방어구와 검을 맞추면 다 떨어진다. 방패 하나 못사는 것이다.

‘내가 지금 가진 돈이 24실버야.’

카라에게 기본적인 장비만 챙겨준다고 쳤을 때 드는 비용은 9실버 10쿠퍼.

나는 단검을 쓰니까 카라보단 적게 들 것이고, 세리스에게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게드릭의 검을 주면 된다.

그렇게 되면  합쳐서 24실버 정도의 지출로 장비를 맞출  있다.

24실버.

내가 1년 반을미친 듯이 모아야 모이는 돈이다. 당연히 가볍게 쓸 돈은 아니었고.

“...일단 돌아가자.”

여관으로 돌아가는 길.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졌다.

장비값은 비싸지만 안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잘 만들어진 갑옷 하나가 목숨을 살린 사례는  없이 들었으니까.

근심이 깊어져 갈 때, 세리스 때와 마찬가지로 눈앞에 파란창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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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 퀘스트>
(대장장이의 눈물)

대륙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대장장이들은 모두 대장 길드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대장 길드에서는주로 서로의 대장기술을 공유하거나, 견습들을 키우고, 그들의 기술을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이곳 칼리타에서는 유독 대장 길드의 힘이 강합니다. 때문에 그들을 따르지 않는 대장장이는 피해를 보기 마련입니다.
지금도 길드에 의해 피해를 보고 있는 대장장이가 있습니다.
그를 도우십시오.

보상
-재능 감별기 x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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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창과 함께그 옆에 내비게이션이 표기됐다.

‘뭔 일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다짜고짜 도우라니.’

조금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보상을 보고 일단 하기로 했다.

재능 감별기의 유용성은 저번에 확인했고, 상태창이 생긴 세리스에게도 필요하던 참이었으니까.

‘여기로 가면 되는 건가?’

나는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 세리스 자매와 이동했다. 그녀들은 갑자기 들를 곳이 있다는 내 말에 조금 의아해했지만 별 말 없이 따라와 주었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 도착한 곳은 광장의 제일  구석이었다.

외진 길이라 사람도 잘 안 지나다니는 곳이었는데, 그곳에 건장한 남자 둘이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그쪽으로 다가가려 하자 세리스가 내 팔을 붙잡았다. 그녀는 불안한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알비스 때의 트라우마 때문인가? 세리스는 예전보다 겁이 많아진  같았다.

“너희는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꼭가야해요?”

“중요한 볼일이 있어서 그래. 기다리고 있어.”

세리스 자매를 두고 말다툼하고 있는 남자 둘에게 다가갔다.

“손님이 없는 걸 어쩌란 말인가?!”

“그거랑 나랑 무슨 상관인데? 됐고, 내일까지 밀린 월세 안 갚으면  빼야할 거야.  빼기 싫으면내가 말한 제안을 잘 생각해보던가.”

“닥쳐! 생각할 가치도 없는 이야기. 당장 꺼져!”

“그래, 그러지.”

남자 하나가 등을 돌려 떠났다. 다른 한명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허름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저 남자가 퀘스트에서 언급한 대장장이인가?’

 남자를 도우라는데 어떻게 도우면 되는 걸까.

‘그 밀린 월세라는 걸 내주면 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허름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외관과 크게 다를  없었다.

관리가 안 되는지 이곳저곳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곰팡이.

항상 불이 붙어있던 다른 가게와는 다르게 꺼져있는 화로.

체계적이지 못하게 마구잡이로 널려있는 무기와 방어구들.

대장간이라기 보단 어질러진 친구의 집을 방문한 느낌이다. 내가안을 둘러보고 있을  아까 그 대장장이가 계단에서 내려왔다.

“젠장할, 빅터! 또 뭔 개소리를... 응? 자넨 뭔가?”

“가게를 둘러보려 왔는데요.”

“아, 손님이었구만! 이게 얼마만인지... 어서 들어오게!”

대장장이는 나를 데리고 대장간 안의 상품들을 성심성의껏 설명해주었다.

“이건 누비 갑옷이라고 하는 건데,  천 안에는 솜하고, 양털, 아마포 같은  엄청 들어가 있지. 덕분에 꽤 튼튼하다고.”



“가격은 어떻게 됩니까?”

“3실버정도 되겠군.”

싸다.

다른 가게에서는 6실버였던 것에 비하면 엄청 싸다.

‘당장 돈이 급해서 싸게 파는 건가? 아니면 이게 담합 이전의 가격?’

나는 후자의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대장 길드에 의해 피해를 입을 정도면 그들의 입김이 닿지않는다는 소리니까.

장비들을 둘러보던 나는 무심코 사슬갑옷에 눈길이 갔다. 순간 머리가 팽팽하게 돌아가며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이게 되려나?’

실패하면 나가린데.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질러보기로 했다.

실패할 가능성도 있지만, 성공했을 때의 이득이  많으니.

“그럼, 어떤 걸로 하겠나?”

장비들을 설명해주던 대장장이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고민하는 척 턱을 매만졌다.

“저... 일단 다른 가게들 좀 더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아, 아니 왜? 우리 무기들이 성에  차나?”

“그런 게 아닙니다. 그냥 제가 조금 신중한 성격이라서요.다른 곳  둘러보고 여기가 가장 괜찮다 싶으면 올게요.”

“...얼마나 걸릴  싶나?”

“글쎄요... 아마 도시 내의 대장간을 다 둘러보려면 적어도 이틀은 걸리지 않을까요?”

“이틀? 끄응...”

대장장이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내일까지 밀린 월세를 내야하니까 그렇겠지.


“도시 전체를 돌아다녀도 우리 대장간만큼 싸고  좋은 곳이 없을 거야. 시간 낭비일 뿐이라네.”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저희도 몇 년씩이나 모은 돈으로 사야하는 건데, 확실하게 하는 게 좋죠.”

“‘저희?’ 자네 일행이 있나?”

“제가 말 안했나요? 저 말고도 두 명이 더 있어요. 걔네들 장비도 같이 사는 거거든요.”

“그, 그런가?”

대장장이가 심각한 얼굴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쯤이면 다 넘어왔다고 봐도 되겠지.나는 발길을 돌려 대장간을 나가려했다.

“자, 잠깐만 기다려보게!”

“네?”

“이런 건 어떤가? 자네들 셋이 여기서 장비를 산다면 더 싸게 해주겠네.”

좋아. 1단계는 통과했다. 이제 다음 밑밥을 깔 차례다.

“아, 그럼 저희야 감사하지만... 어째서 그렇게까지..?”

“...”

내 말에 대장장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월세가 밀렸다네. 내일까지 주지 않으면 방을 빼라더군. 잘못하면 땡전 한 푼 없이 길거리에 내몰리게 생겼어.”

“그렇군요. 그런데 왜 월세가 밀리신 건지? 보니까 가격도 괜찮고 질도 좋은 것 같은데요. 이정도면 손님이 없을 리가 없는데...”

“빌어먹을 대장 길드의 횡포 때문이지. 그놈들이 우리 가게 손님들에게 협박을 했어. 이곳을 들르면 다른 대장간을 이용하게 못하게 될 거라고.”

“...네? 그럼 저희들도 여기서 사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음..?!”

한탄을 하던 대장장이는 그제야 자신이 쓸데없는 소리를 내뱉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아, 아니지. 자네들이 몰래 사간다면 누가 알겠나?”

“그렇다 하더라도 조금 부담되는  사실이네요. 저희도 방금 모험가가 된 거라서요.”

“들키더라도 우리 대장간만 이용하면 되지 않나?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대장일만큼은 자신 있어. 실망하지 않을 걸세!”

“으음... 그래도...”

나는 일부러 시간을 끌어 그를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대장장이의 표정은 시간이 갈수록 안절부절 못하게 되어가고 있었다.

‘이쯤이면 됐겠지.’

“저, 그러면 이렇게 하시는  어떤가요?”

“어떻게 말인가?”

“저희가 오늘 25실버만큼 장비를 사갈게요. 대신 저걸 저희에게 선물로 주세요.”

대장장이는 25실버라는 말에 환해졌다가 내가 가리킨 물건을 보고 우중충해졌다.

내가 가리킨  상반신을 감싸는 사슬갑옷이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저건... 하나에 20실버짜린데...”

...20실버?

나는 다른 대장간이 얼마나 가격을 뻥튀기 시킨 건지 알게 되었다. 더욱이 이 대장간이 얼마나 양심적인지도.

“내일까지 밀린 월세 내셔야 한다면서요.  필요하신 거 아니었어요?”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저건...”

“저도 그냥 달라는 거 아니에요. 저걸 선물로 주시면 다음부터는 대장간만 이용할게요.”

“끙...”

“거기다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요? 저희가 유명한 모험가가 될 수도 있죠.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들도 이 대장간에 몰려들걸요?”

“퍽이나...”

음, 역시 마지막 말은 조금 과했나?

그래도 내가 한 말이 허투가 되진 않았는지 대장장이는 사슬갑옷을 바라보며 고민하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어느 것이 나은지 저울질 하고 있겠지.

솔직히 저울질 할 것도 없지만.

그는 월세를 내지 못하면 당장 내일 집에서 쫓겨나는 입장이다. 나는 그걸 막아줄 수 있는 손님이고.

나 아니더라도 장비들을 다른 대장간에 싼값에 팔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그는 대장 길드에게 찍힌 사람이다.

다른 대장간에서 사줄 리가 없지. 사더라도 엄청 후려쳐서 헐값에 사들일 것이다.

그럴 바엔 내게 파는 게 낫겠지.

대장장이도 셈을 끝냈는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30실버. 그 이하는 안 돼.”

“알겠습니다.”

“...자네 친구들 데려오게. 치수 측정을 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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