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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화 〉불안(2) (22/249)



〈 22화 〉불안(2)

폐성은 말 그대로 못 쓰게 된 성을 의미했다.

성벽은 2M정도로 낮았고, 군데군데 금이 갔거나 허물어진 곳이 많아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성의 바깥은   하나와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우리는 숲속을 맴돌았다.

“폐성이라길래  안에서 싸우는 줄 알았는데...”

카라가 성을 바라보며 아쉽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너무 위험해. 안에 고블린이 얼마나 있을지 알고?”

패트릭의 조언에 따르면 폐성 안에는 각기 다른 고블린 부족들이 셋이나 있다고 한다. 각 부족은 수십이 넘는 고블린들로 이루어져있다고.

그것만 들으면 굉장히 위험한 장소처럼 보이지만 막상 그렇지는 않았다.

이 세 부족이 서로를 적대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본진에서 잘 나오지를 않는다. 나오는 녀석들이라 해봐야 심부름을 하거나, 사냥을 하러 나오는 놈들 정도.

 몇 마리가 사라지더라도 상대 부족이 한 짓으로 여긴다고 한다.

“우리는 기다리다가 밖으로 나온 고블린들만 잡으면 되는 거야. 알겠지?”

“알았어. 아쉽지만 그걸로 참지 뭐.”

우리는 패트릭이 알려줬던 좋은 자리를 향해 걸었다. 그곳이 고블린이 잘 지나다니는 길이라나.

기다리는 건 인내심싸움이었기에 셋이 돌아가며 망을 보기로 했다.

“오빠, 왔다 왔어!”

카라의 차례일 때 세 마리의 고블린들이 나타났다. 놈들은 머리에 하얀 두건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저게 무리를 구분하려고 쓰는 거랬지 아마?’

하얀 두건과 흉터, 그냥 머리 이렇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고 한다.

“오빠, 어떡해? 바로 나가서 조질까?”

“조질까란 말은 또 어디서... 아니다,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일단 따라가자. 내가 앞장설 테니까 조용히 따라와.”



은밀한 행동은 내가 가장 나았기에 선두에서 고블린들의 뒤를 따라갔다.

고블린들은 숲속을 헤집으며 돌아다니더니 강물 앞에서 멈춰 섰다. 조잡한 창을 거꾸로 쥐고선 강물에 들어갔다.


-끼이익!!! 죽어랏!!

강물에 창을 내리꽂기 시작했다. 마구 내리꽂았지만 창날에 걸리는 건 하나도 없었다.

-끼익 끽끽끽! 그렇게 하면 물고기가 잡히나?  봐라!

다른 고블린이 집중하며 강물을 훑더니 빠르게 창을 찍어 내렸다. 들어 올린 그의 창에는 손바닥만 생선이 꽂혀있었다.

-끼릭끼릭! 이 거대한 생선이 보이나? 너와는 수준이 다르다 이 말이야!

-끽? 그게 어딜 봐서 크나? 하긴 좆도 좆만한 놈이 보기엔 크게 보이겠군. 끼릭 끼릭!

-끽?!   어딜 봐서 작나! 내가 박아주면 암컷들이 좋아서 질질 싼다고!

-끼익끼익!!! 좋은 척 해주는 거겠지. 저번에 암컷이 내게 말했다. 니놈 좆은 좆만 해서 아무것도 안 느껴진다고!

-끼이익!?!? 그럴 리 없다. 없다!!!

“...”

나는 고블린들이 물고기를 잡는 동안 주변을 둘러봤다.

저놈들 외에 다른 고블린은 없었다.

뒤에서 기다리는 카라와 세리스에게 돌아갔다.

“사냥을 하러 나온 모양이야. 주변에 다른 고블린들도 없으니 나가서 잡으면 될 것 같아. 각자 역할은기억하지?”

“응, 언니가 가장 앞에서 주의를 끌고 그동안 나랑 오빠가 죽이는 거지?”

탱커가 앞에 서고 딜러가 뒤에 포진하는 기본적인 포메이션이었다.

일단 알려주긴 했지만 그녀들이 처음인 만큼 잘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도 모르는 것과 알면서 의식하는 것과는 천지차이였다. 계속 의식하다보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되겠지.

“맞아. 잘 기억하네.그럼 가보자.”

둘을 데리고 고블린들이 낚시중인 강으로 향했다. 고블린들과 지근거리에 도달했을  그녀들을 향해 돌아봤다.

“...꿀꺽.”

카라도 그렇지만 세리스가 심하게 긴장하고 있었다.

“세리스 너무 긴장할거없어. 고작 고블린 세 마리야. 위험하면 내가 도와줄 테니까 진정해.”

“네, 네...”

“심호흡하고.”

세리스는 내 말에 따라 심호흡을 했다. 그녀의 흔들리던 눈동자가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갔다.

“카라 너도 너무 흥분하지 말고. 천천히 하자.”

“응!”

“그럼 가자.”

우리들은 숲에서 나와 한창 낚시중인 고블린들에게 다가갔다.

-끼릭! 이 거대한 물고기를 반드시 잡... 끼릭..?!

갑자기 나타난 우리를 본 고블린들은 깜짝 놀라며 창을 겨눴다. 창은 조잡했지만 창날은 날카로웠다.

뾰족한 창끝을 본 세리스는 굳어버렸다. 그녀의 등을 살며시 두드려주자 정신을 차렸는지 방패를 앞으로 내밀었다.

세리스 다음은 카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고블린들을 향해 혀를 날름거리는 걸 보니 괜찮은 듯하다.

-이, 인간..! 대체 어디서...

-끽..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암컷, 암컷이  마리나 있다!

-끼릭?! 진짜다! 지금 여기서 사로잡으면 우리가 먼저 먹을 수 있다!

고블린들의 눈이 추잡한 음욕으로 반짝였다. 그 시선에 세리스가 조금이지만 움츠러들었다.



나는 고블린 세 마리 중에 가장 바깥에 있는 녀석에게 다가갔다.

-수컷? 죽어라!

고블린이 조잡한 창을 내질렀다. 상체를 비틀자 창이 내 가죽 방어구를 스쳤다. 나는 놈의 얼굴을 걷어찼다.

-끼엑

첨벙

고블린이 창을 놓치며 강물에 넘어졌다. 일어서려는 녀석의 목을 발로 꾹 눌렀다.

-꾸르륵?!

당연하게도 고블린은 물속에서 숨을 쉬지 못했다. 놈은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쳤지만 어림없었다. 나는 발에 힘을 더 강하게 주고 놈이 떨어뜨린 창을 주웠다.

발버둥치는 고블린을 찔렀다. 녀석은 고통에 몸부림쳤고, 그 과정에서 핏물이 이곳저곳에 튀었다.

“에이씨, 입에 들어갔네.”

강물에 침을 뱉고 난동부리는 고블린을 한 번 더 찔렀다. 두 번 찔린 건 못 견뎠는지 녀석은 축 늘어졌다.

[1카르마를 획득했습니다.]

발을 떼자 고블린 시체가 둥둥 떠 강물을 따라 내려갔다.

나는 세리스와 카라를 향해 돌아봤다. 동그랗게 뜬  쌍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뒷머리를 긁다가 한마디 했다.

“뭐, 대충 이렇게 하면 돼.”


* * *


세리스는 두 눈을 의심했다.

‘내가 지금 뭘 본걸까...’

앗 하는 사이에 유성이 고블린  마리를 죽여 버렸다. 순간 알비스를 죽일 때의 유성의 모습이 떠올랐지만, 그녀는 고개를 휘저으며 잊어버렸다.

“와, 오빠 대단하다... 좋아 나도!”

카라가 양손검을 쥔 채로 조금씩 고블린에게 다가갔다. 세리스는 멍하니 그 모습을 쳐다봤다.

‘내가 이상한 건가?’

너무나 쉽게 고블린을 죽이려 드는 카라의 모습에 세리스는 혼란이 왔다. 그때 유성이 소리쳤다.

“세리스 앞의 고블린에게 집중해!”

“아, 네!”

세리스는 허둥지둥 앞의 고블린을 노려봤다. 고블린은 음욕에 차있던 아까전과는 달리 긴장한 채로 창을 겨누고 있었다.

둘은서로 무기를 겨눈 채로 노려보기만 할뿐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유성은 한숨을 쉬며 시선을 카라에게로 돌렸다.

-끼릭!

고블린이 카라를 향해 창을 찔렀다. 그녀는 가까스로 피하고 검을 세로로 내려베었다. 고블린이 깜짝 놀라며 뒤로 뛰어 피했다.

“이야아압!!”



카라가 고블린에게 강한 태클을 날렸다. 유아 체형인 고블린이 카라와 부딪혀 버틸  있을 리가 없었고, 그대로 뒤로 밀려났다.

“으랴!”

이번에는 가로 베기였다. 고블린은 창대로 막으려했지만 애초에 조잡한 창이었다. 한 번의 검격에 부서졌고 고블린은 무기를 잃었다.

-끼, 끼익!!

전의를잃은 고블린이도망치려했다. 그러나 이미 유성이 고블린의 뒤를 차지하고 있었다.

유성을 본 고블린은 그대로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아까 전, 유성이고블린을 죽이던 모습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오빠 그 놈은 내꺼야!”

“알았어. 안 뺏어가.”

“히히, 이걸로 나도 모험가 아다 땐다!”

“아다 또 어디서...”

롱소드가 푹 하고 고블린의 가슴에 박혔다. 고블린은 가슴에 박힌 검을 뽑으려고 노력했지만 더욱 깊숙이만 들어갔다.


“음... 딱히 상쾌한 기분이 들지는 않네...”

“처음부터 상쾌한 기분이 들면 그게 이상한거야. 아니, 애당초 상쾌한 기분이 들면 안 돼지.”

“그런 거야? 하지만 노래 속에서는... 아, 죽었다.”

카라는  늘어진 고블린을 보며 검을 뽑았다.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며 죽은 고블린을 보자 조금 불쌍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얼마 전, 마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자 그런 감정들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유성과 카라는 마지막으로 남은 세리스를 향해 돌아봤다. 그녀는 아직도 고블린과 눈싸움을 하는 중이었다.

“세리스 안 될  같으면 방패로 밀어. 너무 무리하진 말고.”

“아, 네!”

세리스는 방패를 내밀며 앞으로 걸어갔다. 눈싸움만 하던 상대가 갑자기 움직이자 고블린은 급하게 창을 찔렀다.

세리스의 방패에 창이 박혔다.

“읏...”

세리스가 깜짝 놀랐지만 곧 진정하고선 다시 다가갔다.

-끼, 끼릭!

고블린은 창을 뽑으려 했다. 하지만 그의 근력으로는 뽑기가 힘들었고 세리스에게 거리를 내주고 말았다.

빠악!

세리스가 방패로 고블린을 때렸다.

-끼, 끼익...

“후우...후우...”

강하게 얻어맞은 고블린은 해롱거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세리스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블린을 노려봤다. 검을 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할 수 있어. 나도  수 있어.’

찔러야했다. 저 고블린을 찔러서 죽여야 했다.

그러지 못했다간...

‘유성 씨가 실망해서 떠날지도 몰라.’

도시는, 세상은 세리스의 생각보다 훨씬 더 고된 곳이었다. 유성이 말했던 대로 툭하면 바가지를 씌우려 들고, 호구 잡혔다가 화를 내면 농담이라며 넘어가려했다.

그런 곳에서 그녀와 카라가 그나마 이렇게 편히 지내는 건 전부 유성의 도움 덕분이었다.

만약 유성이 그녀들을 떠난다면, 그 후에 알비스 때와 같은 일이 터진다면...

세리스는 억지로 검을 움직였다. 검이 고블린의 피부에 닿았고, 힘을 주자 조금씩 살가죽을 파고들었다. 끔찍한 감촉이 검 너머로 느껴졌다.

-끼익..? 끼이이이익!?!?!

살이 베이는 감각에 정신을 차린 고블린은 비명을 질렀다.

“꺅?!”

세리스가 깜짝 놀라며 검을 놓쳐버렸다. 고블린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돌을 주워들어 세리스에게 달려들었다.

“이 새끼가.”

유성이 고블린을 걷어찼다. 강바닥을 구르는 녀석을 짓밟았다.

“유, 유성 씨...”

“괜찮아?”

“저, 전 괜찮아요. 다시 할게요.”

세리스가 놓쳤던 검을 다시 잡았다. 그러나 팔에 힘이 들어가질 않고 자꾸만 벌벌 떨렸다.

“이, 이게 왜 이러지..? 자, 잠깐만요.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세리스...”

“할 수 있어요. 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유성이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 소리에 세리스가 흠칫 몸을 떨었다.

“너무 무리하지는 마.”

유성이 세리스의 머리위에 손을 얹었다. 그대로 약하게 쓰다듬었다.

“내가 천천히 하자고 말했잖아. 시간은 많으니 급하게  필요 없어.일단 조금 쉬자. 알았지?”

“...네.”

세리스는 고개를 푹 숙인채로 유성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조금 안정되는 느낌이었다.

* *

“하아...”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으신가요?”



모험가 길드 접수원, 오르가 물었다.

“그냥 요즘 걱정이 많아서 말이죠.”

처음으로 폐성을 간지 일주일이 흘렀다.

그 일주일 동안 나는 카라와 세리스가 전투에 익숙해지는 것을일순위로 삼았다.

다행히 둘 다 재능이 없던 건 아니었다. 일주일사이에 전보다 많이 능숙해졌다. 정신만 제대로 차린다면 다칠 일은 없으리라.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건 바로 세리스였다.

그녀는 이 일주일동안 단  마리의 고블린도 직접 죽이지 못했다. 카르마를 조금도 못 얻었다는 소리다.

그래도 거기까진 괜찮았다.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천천히 하면 되니까. 그러나 진짜 골치 아픈 건 요즘세리스가 내 눈치를 과하게 본다는 것이다.


‘민폐를 끼쳤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괜찮다고, 천천히 하자고 다독여도 어색한 웃음을 지을 뿐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

“그렇군요. 저라도 괜찮으시다면 들어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보다 정산 먼저 해주세요.”

“아, 넵.”

오르는 내가 건넨 주머니에서 고블린의 오른 송곳니를 꺼내 수를 헤아렸다.

“총 7개네요. 7쿠퍼 되겠습니다!”

고블린 토벌 보수였다. 의뢰가 아닌 단순 토벌도 마리당 보수는 주더라.

 마리에 1쿠퍼라 너무 짜서 그렇지.

“감사합니다.그럼  이만...”

“잠깐만요...!”

“왜 그러시죠?”

“한유성 씨께 부탁할게 있어서요.”

오르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부탁이요? 의뢰입니까?”

“아, 의뢰랑은 조금 달라요.”

“그럼 뭡니까?”

오르는 데스크 밑에서 몽타주가 그려진 종이들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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