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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화 〉불안(5) (25/249)



〈 25화 〉불안(5)

“코볼트라면개머리의 마물 아닙니까?”

게임에서 몇 번 본 적있다. 인간 체형을 한 개들로 무장상태는 그리 나쁘지 않지만 약해서 잡몹 취급이었다.

“맞네. 덩치는 고블린보다 크면서 지능도 조금 나은 녀석들이지. 이번에 코볼트 토벌의뢰가 하나 나와서 말이야. 같이 해볼 생각 없나?”

패트릭이 에일 잔을 내려놓고서 말했다.

‘코볼트 토벌 의뢰라...’

고블린들을 잡으면서 이제 모험가로서의 발걸음을 뗀 우리에겐 안성맞춤이다. 토벌 의뢰이기에 카르마를 벌기에도 알맞고.

하지만 조금 걸리는 점이 있었다.

“저야 좋습니다만, 저희는 초짜만 셋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정말 좋은 제안이다.

정말 우리에게만 좋은.

패트릭은 10년 경력인 베테랑인데 비해 우리는 초짜 삼인방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그가 우리를 의뢰에 데려갈 이유가 없었다.

‘해코지 하거나 어딘가에 이용하려고 하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어디에?

생각해봤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패트릭은 가정이 있고, 모험가라는 번듯한 수입원이 있다. 푼돈벌이를 위해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만약 위험을 감수한다한들 의뢰라는 형태로 다가오는 것도 이상하다. 의뢰를 받고나서 우리가 사라진다면 그는 제일 먼저 의심받을 것이고, 그의 커리어 또한 망가지기 때문이다.

 목소리에서 우려를 엿봤는지 패트릭이 호탕하게 웃었다.

“뭘 그리 걱정하고 그러나? 그냥 선배가 요즘 잘나가시는 후배님 실력 좀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

“잘나간다고 할 것까지야...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수준인데요.”

“허허, 그거 아나? 자네들이 폐성에 간다고 했을 때 우리끼리 내기를 했었다네. 며칠가고 고꾸라질지에 대한 거였지.”

패트릭이 의자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그런 것도 하고 놉니까?”

“돈이 걸리면 뭐든 재밌으니까 말이야. 어쨌든, 다른 녀석들은 이틀이나 삼일에 걸었다네. 나는 어디에 걸었을  같나?”

“어디에 거셨는데요.”

패트릭이 씨익 웃었다.

“난 안 고꾸라진다에 걸었지! 다른 녀석들은 돈 잃어줘서 고맙다고 비웃더군. 오늘은 내가 비웃어주고 오는 길이지만 말이야.”

“축하드립니다. 얼마를 버셨습니까?”

패트릭이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3실버나 벌었다네. 녀석들이 돈 낼 때의 썩어 들어가는 표정이 아직도 떠오르는구만.”

패트릭이 통쾌한 웃음을 지으며 에일을 들이켰다.

나는 그를 향해 살며시 말했다,

“그럼 제 덕분에 3실버나 버셨으니 오늘은 패트릭씨가 쏘는 걸로...”

“그거랑 이거랑 다르지.”

패트릭은 스프를 떠먹으며 딴청을 피웠다.

선배라는 인간이 쪼잔하게.

* * *

패트릭과 헤어지고 길드 밖으로 나오자 어느새 해가 졌는지 하늘이 어둑어둑했다. 여관으로 돌아왔더니 세리스와 카라가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오빠, 왜 이제와!”

카라가 허리에 손을 얹고 볼을 부풀리며 말했다.

“미안 갑자기 일이 생겨서.”

“오빠 기다리느라 배고파 죽는 줄 알았잖아. 일단 뭐  시키자. 화는  다음에 낼래.”

카라가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았고 세리스가 그녀의 옆에 앉았다.

‘먹고 왔다고 하면 화내겠지?’

나도 얌전히 세리스의 맞은편에 앉았다.

“오빠 거기 말고 여기 앉아. 여기.”

카라가 자신의 맞은편을 툭툭 치며 말했다.

뭔 차이인가 싶었지만 그녀가 원하는 대로 앉아주었다. 카라는 만족스러운지 히- 하고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래, 좋아하면 됐지.’

음식을 주문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오빠, 우리가 사람 구해줬잖아. 그거 보상금 나온다고 하지 않았어?”

“300쿠퍼.  사람이 맞는지 확인이 끝나면 준다고 하네.”

“300쿠퍼씩이나요?!”

세리스와 카라 둘 모두 깜짝 놀랐다. 우리 평소 하루 수입이 5~7쿠퍼였으니, 그럴 만하다.

“와! 대박! 삼등분하면  명당 100쿠퍼네? 아싸!  받으면 훈제구이 시켜 먹어야지!”

카라가 환한 얼굴로 말했다. 저번에 훈제구이가 먹고 싶다는  비싸다는 이유로 못시켜줬는데, 많이 아쉬웠던 모양이다.

“카라, 유성 씨한테 갚을 돈은 남기고 써야지.”


“앗... 그, 그건 나중에 성공해서 갚아도 되잖아...”

빌린 돈은 생각 못 했는지 카라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그러자 세리스가 엄한 언니가 되어 카라를 훈계했다.


“카라 빌린 돈을 한 번에 다 갚지는 못하더라도 갚겠다는 성의는 보여 줘야하는 거야. 네가 여기서  성의를 안 보여주면 앞으로 유성 씨가  어떻게 생각...”


“아악!  들려~ 안 들려~”

카라가 귀를 막았다. 세리스는 힘으로 카라의 팔을 풀어버리고 훈계를 계속했다.

“아! 알았어! 알았다고!!”

카라가 알겠다고발버둥 쳐도 훈계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한동안 못했던 걸 지금 몰아서 하겠다는 듯 끝도 없이 이어졌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작게 웃었다.

‘그래도 고블린을 죽였더니 풀이 죽거나 하진 않네.’

세리스가 예전 모습으로 돌아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만큼 낮의 그 표정이 눈앞을 어른거렸다.

‘그래도 대화는 해봐야겠지.’

작은 떡밥을 방치해뒀다가 크게 자라버리면 곤란하니까.

“오빠지금 웃는 거야? 내가 혼나는  웃겨?!”

“응. 엄청.”

“이익!”

“카라  돌리지 말고. 너는 대체...”

“끼아악!!”

* * *

“코볼트?”

“응, 개머리를  마물이야. 그것들이 어떤 마을의 광산에 자리 잡았다고 하네. 그래서 토벌 의뢰가 들어온 모양이야. 그걸 패트릭 씨네 파티와 함께하기로 했어.”

“오옷! 우리도 이제야 뭔가 모험가 같은 일을 하는구나!”

카라가 스프를 퍼먹으며 말했다.

“먹든지 말하든지 하나만 해.”

“그럼 먹을래.”

카라는 다시 스프에 집중했다. 나는 피식 웃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패트릭 씨와 일하기로 한  모레 아침이야. 내일은 좀 쉬면서 정비하기로 하자. 그리고 세리스.”

“네?”

“나중에  방에 잠깐 들를래? 이야기할  조금 있어서.”

“언니랑? 무슨 이야기인데?”

스프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던 카라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먹는데 집중하겠다며?”

“무슨 얘기인데? 나는 들으면  되는 거야?”

“들으면 안 되는 건 아닌데...”

나는 슬쩍 세리스를 쳐다봤다.

여기서 내가 그녀를 부르는 이유를 말했다간 그녀는 온갖 변명을 준비해서 올 수도 있었다.

“나중에 이야기 해줄게.”

“오빠!”

카라가 뾰로통한 얼굴로 노려봤다.



“식사 맛있게 해.”

무시하고 방으로 올라갔다.

* * *

세리스가 오기 전, 가벼운 운동을 마치고 상점창을 둘러봤다.

‘일단 스킬들은 대부분 사천당문의 것들로 배우기로 했고.’

솔직히 처음 천마신공을 발견했을 때 혹했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만 마교도의 정점이 사용하는 무공이 아닌가?

재능이고 나발이고 이것만 배워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주의사항을 발견하기 전까진.

-주의, 패왕의 자질이 없는 자가 천마신공의 극성에 오를 경우 주화입마와 함께 기혈이 뒤틀려 사망할 수 있음.

패왕의 자질이 없다면 한계가 분명하다는 이야기였다.

 내게 패왕의 자질이 있을까를 고민해봤는데, 그런 게 있었다면 재능 감별기가 말해줬겠지.

아쉬운 마음에 다른 무공들을 찾는 과정에서  다른 걸 발견했다.

-천마군황보(天魔君皇步) 4000카르마
-천마회룡격(天魔回龍擊) 5000카르마
-천마대멸겁(天魔大滅劫) 10000카르마

이걸 본 순간 내 머릿속에서 천마신공은 사라졌다.

‘천마신공이라기에 초식도 같이 들어있는 줄 알았더니.’


화산파의 자하신공과 같은 심법개념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재능 감별기가 가르쳐 준대로 도적과 가장 관련 있는 무공들을 선별했다.

그리고 거기에 알맞다고 판단된 것이 바로 사천당문의 무공이다.


당가의 무공은 독과 암기를 사용하는 만큼, 치고 빠지는 도적 류와 가장 비슷했기 때문이다.

보통 무협지에서는 당가의 무공이 저평가되고 약하게 표현되긴 하지만, 그건 소설이니까 가능한 이야기다.


현실에서 만독불침이나 천독불침인 사람이 있어봐야 얼마나 되겠나?

물론 독에 내성이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당가의 무공만 배울 것도 아니고, 적당히 섞을 것이기에 큰 문제는 없을 거다.

스킬들은대강 정해졌기에 나는 상점에서 잡화창을 클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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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화>
-식재료
-포션
-옷
-영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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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화창 안에는 음식부터 영약까지 뭔가다양하게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영약 창을 눌러보았다.

“소환단 200카르마, 대환단 500카르마... 만년설삼 같은 건  없는 거지.”

하다못해 천년설삼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그렇게 상점창을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유성 씨, 저예요.


빗장을 열어주자 평상복 차림에 토끼 가면을  세리스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왜인지 조금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왜 그래?”

“아, 아니에요. 그보다 무슨 일로 부르신 거예요?”

“일단 앉아서 이야기하자.”

나와 세리스는 침대에 앉아서 마주봤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나는 그녀의 토끼 가면을 손수 벗겨주었다. 대화를 하는 동안 그녀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다.

가면을 벗기자 그녀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가면은 왜..?”

“불편하잖아.”

“그, 그러네요.”

그녀는 갑자기 긴장하며 허리를 꼿꼿이 폈다.

“갑자기 왜 긴장하고 그래? 내가 잡아먹는 것도 아니고.”

“잡아먹...?힉?!”

세리스가 얼굴을 붉히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 양팔로  몸을 감쌌는데, 나는 어이가 없었다.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하아, 그런 말은  어디서 배운 거야?”

“식사하다보니...”

옆자리나 다른 손님들이 떠드는 걸 들은 모양이다. 어쩐지 카라도 이상한 말을 자꾸 쓰더라니.

‘여관을 옮겨야하나...’

나중에 돈이 모이면 여기보다 질 좋은 곳으로 옮겨야겠다.

“세리스.”

나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분위기를 잡았다. 내 분위기가 진지해지자 세리스도 덩달아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오늘 낮의 일 말인데. 왜 그랬던거야?”

움찔.

그녀의 몸이 떨렸다. 눈동자는 정처 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나, 낮의 일이라니요?”

“네가 고블린을죽였을 때 말이야. 어째서 그렇게 급하게 달려들었던 거야?”

“그, 그건...”

세리스가 눈동자를 굴렸다. 분명 변명거리를 생각하는 거겠지. 나는 그럴 틈을 주지 않기 위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유성 씨..?”

“세리스, 힘든 일이 있다면 부탁이니 말해줬으면 좋겠어. 말해줘야 내가 도와줄 수 있으니까.”

“그, 그게...”

“그게 아니면 나한테는 말하기 싫은 거야?”

“그런 건 아니에요!”

내가 서운한 척 목소리를 깔자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내 손을 잡은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세리스는 내 손을 꽉 잡은 채 나를 보더니, 입을 달싹이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해요.  못하겠어요.”

그녀가 작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모습을 보며 나는  묻는 걸 포기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캐물었다간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으니까.

언젠가 세리스가 먼저 말해주길 기다리는 수밖에.

그래도 최소한의 보험만큼은 들어놔야겠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내 가슴에 살포시 놓았다.

“아...”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알겠어. 네가 말하기 힘들다니까 더 묻지는 않을게. 대신 이거 하나만 알아줘.”

“뭘요..?”

세리스가  가슴에 기댄 채로 고개만 슬쩍 들었다.

조금만 움직이면 코가 맞닿을 거리.

그녀와 눈을 맞추며 미소 지었다.

“난 언제나 네 편이라는 걸.”


세리스의 얼굴이 조금, 많이 붉어졌다.

* *

“그,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아까 일이 부끄러웠는지 세리스는 급하게 방에서 나가려했다. 나는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만.”

“또 왜, 왜요..?”

“뭘 그리 급하게 가. 부탁할게 있으니까 잠시만 기다려봐.”

“네, 네..? 부탁이요?”

그녀를 다시 앉히고 나는 숨겨뒀던 재능 감별기를 꺼냈다.

저번에 서브 퀘스트 <대장장이의 눈물>을 클리어하고 받은 거였다. 쓸 타이밍이 안 나와서 묵혀두고 있었는데 지금 쓰는 게 좋겠다.

세리스도 상태창이 있는 만큼, 어떤 무공을 배우게 할지 정해야하니까.


나는 두루마리를 펼쳐 손바닥 모양 그림을 가리켰다.

“세리스, 여기에 손 좀 대볼래?”

“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군말 없이 손을 올렸다.

지잉

두루마리의 단면이 빛나며 글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 어어?! 이, 이거  이래요?!”

“가만히 있어봐.”

깜짝 놀라며 몸을 빼려는 세리스를 붙잡았다.

얼마 후, 눈부신 빛이 사그라지고 글자가 눈에 보였다. 나는 세리스의 재능 감별글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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