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축제와 고백과 던전(3)
다행히 당장 데스매치가 벌어지진 않았다. 이들에게도 나름 경우라는 게 있는 모양이다. 우리는 유물이 나온 방을 조사했다.
“아무것도 안 나오는데... 아무래도 이게 다였던 것 같군.”
로버트가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일단 여기서 나가지. 계속 있어봐야 좋을 것도 없으니.”
로버트가 유물을 제 가방에 집어넣었다. 에드가와 던컨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걸 왜 네 가방에 집어넣는 거지?”
“뭐? 내가 들고 있으니까 가방에 집어넣은거지. 그게 그렇게 문제인가? 내가 물건 들고 도망이라도 칠 것 같아?”
“혹시 모르는 일이잖나.”
“하! 그럼 누가 이걸 들고 있지? 니들 말대로라면 여기 믿을 놈이 누가 있어?”
세 사람의 말다툼이 시작되었다. 몇 백 골드라고 착각한 유물 때문에 다들 예민해졌다. 칼이 도중에 ‘그럼 내가 들고 있을게요!’라고 말했다가 세 사람에게 뭇매를 맞았다.
‘저러다 칼부림 나는 거 아니야?’
데스매치에 대한 걱정을 놓은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이러는지 원. 언성이 높아지자 로버트가 타협안을 내놨다.
“내가 중간에서 걸으면 되잖아. 너희 둘이 항상 내 옆에 붙어있고.”
“음...”
그 타협안에도 두 사람은 불만이 있는 것 같았다. 이대로 가면 끝이 없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목소리를 냈다.
“계속 거기서 말싸움 할 거면 두고 갈 겁니다.”
그제야 두 사람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한 건 아니겠지만, 내 도움이 없으면 돌아갈 수 없으니.
우리는 들어올 때와 똑같은 방법으로 던전에서 나왔다. 함정의 위치는 대충 파악해뒀기에 그리 어렵진 않았다.
던전에서 나온 바닥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분위기는 던전 안에서와는 달리 화기애애하다.
“너희들은 돈을 받으면 뭐부터 할생각이냐?”
로버트가 육포를 뜯으며 물었다. 모험가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칼이 먼저 이야기했다.
“난 최고급 무기를 살 거야. 언젠가 급 등급 모험가가 될 나의 초석이 되는 거지!”
에드가가 칼을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금 등급이라... 꿈이 크네. 나는 이 빌어먹을 모험가를 그만둘 생각인데 말이야.”
“그만두면 뭘 할 생각인가?”
“고향으로 돌아가 목장이나 지어야지. 마을 녀석들은 놀라겠지. 놈팽이라고 놀려먹던 놈이 성공해서 돌아왔으니까 말이야.”
상상만 해도 통쾌한지 에드가의 얼굴이 밝았다. 던컨이 이어서 말했다.
“나는 제국으로 넘어갈 생각일세. 거긴 이곳보다 살만하다고 들은 데다 처음 보는 진귀한 물건도 많다고 하니.”
끌끌 웃던 던컨이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자네는?”
“저는 뭐, 그냥 살던 대로 살겠죠. 돈은 저축하고.”
“에잉, 낭만이 없구만.”
“맞아, 나처럼 꿈을 크게 가져야지!”
“자넨 너무 과하고.”
“뭐?!”
“하하하!”
농담을 나누며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로버트가 배낭에서 고급진 유리병과 나무 컵들을 꺼냈다.
“그건 뭔가?”
“이런 좋은 날을 위해 꽁쳐 둔 포도주지. 자자, 한 잔씩 들자고.”
“좋죠!”
칼이 넙죽 나무 컵을 받아들었다. 로버트가 컵에 포두주를 따랐다.
“자네들도 들자고.”
로버트가 우리에게 포도주가 담긴 나무컵을 건넸다. 자신의 컵에도 포도주를 따르더니 건배사를 외쳤다.
“오늘 우리는 그 위험하다는 던전을 무사히 공략했다. 거기에 비싼 유물도 챙겼지. 이제 남은 건 이걸 팔아 부자가 되는 일뿐이야! 외쳐, 우린 부자다!!”
-우린 부자다!!
잔을 부딪치고 각자 제 포도주를 마셨다. 칼의 나무 컵이 바닥에 떨어졌다.
“어...?”
칼의 눈은 초점이 풀리고, 그의 몸이 조금씩 떨렸다.
“몸이, 몸이 이상해... 힘이 안 들어가...”
칼이 힘없이 쓰러졌다. 나머지 인원은 포도주를 바닥에 버렸다. 양을 보니 다들 입도 안 댔다. 로버트가 멋쩍게 웃었다.
“이런, 역시너무 티났나?”
로버트가 검을 뽑아 횡으로 베었다. 예상하고 있었기에 뒤로 구르며 피했다. 나머지도 알아서 빠져나갔다. 로버트가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염병, 설마 성공할 줄은 몰랐는데.”
“어어... 몸이 이상해... 살려줘...”
“시끄러.”
로버트가 칼의 등에 검을 찔러 넣었다. 칼의 눈이 크게 떠졌다가 힘없이 늘어졌다. 로버트가 검을 거칠게 뽑았다. 주변에 피가 튀었다.
“애새끼가 얼마나 시끄럽던지.”
로버트는 칼의 시신에 가래침을 뱉었다. 누리끼리한 가래침이 칼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양손에 단검을 뽑아들었다. 하나는 얼마 전에 대장간에서 새로 산 물건이다. 요즘은 ‘당가의 단도술’을 왼손으로도 연습했기에 무리는 아니었다.
에드가와 던컨도 각자의 무기를 뽑아들었다. 나는 로버트에게 물었다.
“우린 몇 번째야?”
“뭐?”
로버트가 미간을 좁혔다.
“우리 이전에 몇 번 더 여길 왔었냐고.”
“아, 그것도 눈치 챘나.”
그가 쯧하고 혀를 차더니 대답했다.
“니들이 세 번째야.”
역시나.
로버트는 이곳에 다른 파티와 두 번을 더 왔었다. 파티원들을 미끼로 써 앞으로 나아갔고, 그들의 희생으로 함정을 외웠겠지. 그 덕에 초반 함정을 완벽하게 헤쳐나간 거고.
“다 너 때문이야. 그런 능력이 있었으면 처음부터 이야기했어야지. 덕분에 더럽게 꼬였잖아.”
로버트가 검으로 나를 가리켰다. 눈으로는 에드가와 던컨을 쳐다봤다.
“그만 포기하는 건 어떤가? 우리는 셋이고 자네는 혼자라네. 아무리 동 등급이어도 우리 셋을 상대하긴 힘들게야.”
“영감님은 나를 너무 무시하네. 동 등급도 다 같은 동 등급이 아니라고. 그리고 셋이라니? 설마 그쪽들이 전부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는 겐가? 우리는 자네를 죽이고 유물 값을 똑같이 셋으로 나눠 가질 걸세.”
그 말에 로버트가 배를 잡고 웃었다. 그러면서 방패로 몸을 보호하는 건 게을리 하지 않았다.
“셋으로 나누긴 뭘 나눠? 어떻게 뒤통수를 칠지 고민 중이면서.”
“우리를 자네라고 생각하지 말게.”
“그럼, 아까 전에 포도주를 건넸을 때, 왜 아무 말도 안 했지? 그쪽이 말렸다면 이 애새끼는 살았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로버트가 검으로 칼을 쿡쿡 찔렀다. 던컨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스쳤다. 내가 말했다.
“뭘 저런 말에 휘둘리고 그럽니까? 우리끼리싸우면 저 새끼한테 다 죽습니다. 똑같이 삼등분하기로 하고 빨리 죽입시다.”
“삼등분? 니들 쟤 말을 들어? 혼자 40퍼센트를 먹겠다고 한...”
“제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에드가, 바로 따라와!”
로버트의 이간질을 끊고 내가 먼저 달려갔다. ‘늑대의 맹약’은 당연히 켰다. 머리를 노리고 단검을 찌른다.고개를 틀어 피했기에 그대로 방패에 몸을 부딪쳤다.
“끄윽..!”
로버트가 조금 뒤로 밀려났다. 그대로 놈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보호구 때문에 데미지가 들어가진 않았다. 다만 놈이 비틀거렸고 난 오른손의 단검을 찔렀다. 녀석의 이마를 스쳤다.
“이 새끼가!”
로버트가 검을 움직였다. 에드가가 끼어들어 방패로 밀어냈다.
다시 대치상태가 되었다.
나는 로버트를 바라보며 난처함을 느꼈다.
‘이 새끼 동 등급 맞아?’
방금 전의 짧은 충돌로 깨달았다.로버트는 벨리타는커녕 패트릭보다 훨씬 약하다.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나 혼자서도 싸워 이길 수 있을 정도다.
나는 슬쩍 뒤를 돌아봤다. 던컨의 활에 화살이 매겨져있다.
‘로버트가 쉽게 죽어버리면...’
저 화살이 내 머리를 노릴지도 모른다. 작전을 바꿨다. 이제 내 우선순위는 저 화살을 쏘게 만드는 거다.
나는 에드가에게 윽박질렀다.
“에드가, 뭐하고 있어! 빨리 붙어!”
“뭐? 같이 들어가야지!”
“병신아! 난 방패가 없잖아. 네가 앞을 맡으면 내가 옆을 칠게. 던컨 씨, 틈이 보이면 바로 쏘십쇼!”
“맡겨 두게!”
“에드가 뭐해! 빨리 들어가라고!”
“이런 젠장!”
에드가가 로버트와 방패를 부딪쳤다. 두 사람의 힘싸움이 시작됐고, 나는 천천히 둘의 옆을 돌았다.
‘활을 쏠 정도의 빈틈을 만들어야 돼.’
두 사람의 격돌이 계속됐다. 방패를 때리고 밀고, 걷어찼다. 로버트가 검을 기울여 에드가의 방패를 파고들려했다. 나는 곧바로 달렸다.
“어딜!”
로버트가 나를 향해 검을 가로로 베었다. 나는 상체를 숙여 그와 스쳐지나갔다. 그의 허벅지에는 단검이 꽂혀있었다.
로버트의 자세가 무너졌다.
“지금!”
슝, 바람소리가 들렸다. 나는 오른손의 단검으로 에드가의 옆구리를 찔렀다. 재빠르게 뽑아 던컨에게 던지려는데,
“...빠르시군요.”
“사냥꾼 출신이어서 말이지.”
이미 새로운 화살이 메겨져 있었다. 그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왜 그랬나? 로버트만 죽이고 우리끼리 나눴으면 깔끔한데 말이야.”
감각에 의식을 집중시켰다. 베르테르의 감각과 함께 화살이 겨눈 곳을 예상한다. 내 가슴이다.
“그럴 생각인 사람이 바로 새 화살을 메깁니까? 보통 당황하느라 시간이 걸릴 텐데.”
피할 수 있을까? 아니, 내 신체능력으로 그건 도박이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나을까. 답은 나왔다.
“하하... 나이가 들수록 말이야. 아리따운 아가씨보다는 동전하나가 더 좋더군.”
이제부턴 눈치 싸움이다. 나는 화살 깃을 잡은 손가락을 주시했다.
“늙으니까 안서서 그렇겠지.”
“뭐, 그 말이 맞.”
말하다 말고 손가락이 떼어졌다. 엇박자를 노린 거겠지만 안 통한다. 바람을 뚫고 날아온 화살이 내 왼 팔뚝을 꿰뚫었다.
“으윽..!”
살이 찢어지는 통증을 견디고 단검을 던졌다. 새 화살을 메기려던 던컨의 어깨에 꽂혔다. 나는 주변에 있는 짱돌을 주워 달려갔다.
“이런!”
던컨이 활을 포기하고 곡도를 뽑아 휘둘렀다. 나는 곡도의 사정거리 밖에서 멈췄다. 그의 머리를 노려 돌을 던졌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던컨이 쓰러졌다.
나는 곧장 그의 위에 올라타 두 눈을 찔렀다. 던컨이 눈을 부여잡으며 비명을 지른다.
나는 로버트의 배낭이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갔다.
배낭을 열자 전에 눈여겨봤던 분홍색 액체가 보였다. 그걸 챙기는데 옆에서 에드가의 고통스런 신음이 들렸다.
“하아, 하아... 살려줘, 제발... 그거, 너, 가져도 되니까...”
로버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인중에 화살이 박힌 채 죽어있었다. 그의 허벅지에서 단검을 뽑아 에드가를 찔렀다.
[15 카르마를 획득했습니다.]
분홍색 액체와 유물을 챙겨 던컨의 옆에 주저앉았다. 던컨은 실성을 하는 중이었다.
“흐흐... 역시 사람은 주제에 맞게 살아야 돼. 그릇에 안 맞는 걸 탐하다간 나처럼 되는 게야. 자네도 명심하게...”
“...”
단검으로 그의 팔뚝을 얇게 베었다. 던컨이 작게 신음했다.
“끄윽... 자네 지금 고문하는 겐가? 고문해서 얻을 게 뭐가 있다고...”
얇은 상처위에 분홍색 액체를 약간 뿌렸다. 그러자 거품이 나기 시작하더니 피가 멎고 상처가 붙기 시작했다.
‘...포션 맞네.’
“죽일 거면 빨리 좀...”
그의 목을 찔렀다.
[12카르마를 획득했습니다.]
나는 ‘치유의 입마개’를 입에 물었다. 치유 효과를 증폭해준다고 하니까. 마침 물것도 필요했고.
오른손으로 팔뚝에 박힌 화살을 잡았다. 화끈거리는 걸 넘어 짜릿한 통증이 뇌를 찌른다. 참지 못하고 놓아버렸다.
다시 잡으려 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생각보다 심각한 통증이다.
‘차라리 이 상태로 신전에 가는 게 나을지도 몰라.’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하지만 팔이 꿰뚫린 것에 대한 공포와 뇌를 울리는 짜릿한 고통이 나를 부채질한다.
‘...그래. 여기서 어설프게 처치하는 것보단 그게 나을 거야.’
돌아가자.
팔이 화끈거리긴 하지만 몇 시간만참으면 된다. 경비병도 내 팔을 보면 신전까지는 데려다 주겠지.
몸을 일으키려는데 익숙한 두 사람의 목소리가 뇌를 스쳤다.
-유성 씨, 괜찮아요?! 다친 데 없죠?!
-엄마, 아빠, 유르미아 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씨발.
화살을 잡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대로 잡아당겼다. 화살촉이 내 살을헤집고 뼈를 건드린다. 눈이 뒤집어질 뻔한 걸 이를 악 물며 견뎠다.
“끄으읍...!!”
더 강하게 힘을주자 화살이 팔뚝에서 뽑혀 나왔다. 나는 화살을 집어던지고 포션을 집어 들었다.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상처에 포션을 부었다.
아까랑 크게 다를 바 없는 고통이 찾아온다.
“끄으윽...!!!”
3분이 지났을까, 피가 멎었다.
10분이 지났을까, 새살이 돋아났다.
20분이 지났을까, 상처가 새 살로 덮어졌다.
“후우...”
통증이 가라앉았다. 나는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오른손에 들린 포션 병을 보다가 강하게 집어던졌다.
“싸구려였네.”
거, 비싼 거 좀 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