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모험대의 번개 마법사(5)
“수고했어. 여기 오늘 일당.”
오르카가 작은 주머니를 내 손에 쥐어주었다. 손가락을 넣어 살짝 펼치자 안쪽에 은색 동전 하나가 들어있는 게 보였다.
하루 종일 일하고 받은 돈, 단 1실버.
적은 돈은 아니다.
여관 시종이 하루 종일 일하고 버는 돈이 5쿠퍼 내외다.
노예는 그마저도 받지 못하고.
거기에 이 돈은 목숨을 걸고 일해서 번 돈이 아니다. 사무실에서 서류를 읽고 보고서를 작성해서 받은 일당이다.
이 세계의 사무직 일당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오르카 성격에 떼먹거나 하진 않겠지.
적절한 일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냥 안 하고 안 받으면 안 되나?’
아침부터 새벽까지 서류더미에 파묻혀있는 것보단 코카트리스 모가지를 따는 게 더 편할 것 같다.
그러나 차마 이런 이야기를 오르카에게 할 수는 없었기에 한숨을 참았다.
“...일이 항상 이렇게 많습니까?”
언제까지 이래야 하냐는 말을 돌려서 말했다.
“아니, 원래 이 정도까진 아니야. 운 안 좋게 여러 시기가 겹쳐서 그래. 한 일주일 정도면 어느 정도는 정리될 거야.”
오르카가 서류정리를 하며 대답했다.
일주일 정도만 더 하면 되는 건가.
‘그래, 안면을 틀려고 한 달을 지랄했는데 일주일 정도야...’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돌아가보겠습니다.”
“내일 아침에도 늦지 말고.”
“...예.”
오르카에게 인사를 하고 모험대 건물에서 나왔다. 분명 올 때는 해가 뜨고 있었는데 이젠 달이 중천이다.
‘나오기 전에 봤던 시계가 분명 3을 가리켰었지?’
새벽 3시라는 소리다.
이런 시간에 집에 보내놓고 내일 아침은 늦지말라니.
양심 없는 년.
한국이었다면 노동청에 익명으로 찔렀을 텐데, 노동착취가 당연한 세계라서 아쉽다.
속으로 오르카를 씹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자 은은한 호롱불이 집안을 비추고 있는 게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바로 앞에 호롱불을 켜놓은 세리스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식탁에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그녀의 어깨를 흔들었다.
“세리스, 세리스.”
“으음... 응..? 아, 유성 씨 오셨어요...?”
잠에서 덜 깨 흐리멍덩한 얼굴로 세리스가 날 반겼다. 날 보며 뭐가 그리 좋은지 배시시 웃었다.
반면 내 기분은 착잡했다.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라니까...”
“유성 씨가 일하시는데 어떻게 저 혼자 자요...”
그녀는 하품을 하곤 의자에서 일어서 내 방어구를 벗겨주기 시작했다. 괜찮다고, 내가 하겠다고 해도 기어코 자기가 벗겨주겠단다.
별 수 없이 그녀에게 맡겼다. 왜인지 가슴이 간질간질 거렸다.
“다 됐다... 이제 세수하러 가요...”
“아냐, 세수정도는 내가 할게. 그동안 이불좀 깔아줘.”
씻는 것까지 도우려고 드는그녀를 두고 대야로 향했다. 물을 퍼서 세수와 양치를 끝내고 오자 그녀는 이미 이불을 다 깔아놓은 상태였다.
“피곤하죠? 내일도 일찍 가야할 텐데 어서 자요.”
세리스가 내 손을 잡고 이불로 이끌었다. 우리는 한 이불에 서로를 마주보는 자세로 누웠다. 나는 비단 같은 그녀의 머릿결을 살살 쓰다듬었다.
“바닥에서 자는 거 안 불편해? 불편하면 침대에서 자도 돼.”
“유성 씨도 같이 잘 거예요?”
“난 안 되지. 침대에 네 명은 힘들잖아.”
“그럼 저도 안 갈래요. 그리고 전...”
세리스가 내 품에 꼭 안겼다. 고개만 살짝 들어 날 바라봤다.
“여기가 가장 편한걸요.”
쪽. 짧게 입을 맞추고 다시 내 품에 얼굴을 묻었다. 고개를 저으며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자연스레 안기느라 짓눌린 그녀의 가슴도 내 배를 문질렀다.
하반신에 피가 쏠리기 시작했다.
“어?”
딱딱해진 자지가 허벅지를 찌르자 세리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내 눈웃음을 지으며 내 뺨을 쓰다듬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바빠서 못했었죠? 피곤하실 테니까 제가 한 발 빠르게 뽑아드릴게요.”
짧은 뽀뽀를 하고 그녀는 이불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이불에 가려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자 촉각에 신경이 집중됐다.
바지와 팬티가 동시에 내려갔다. 해방감을 느끼며 치솟은 자지를 그녀의 두 손이 붙잡았다. 굳은살 하나 없어 부드러운 감촉이었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더 커진 것 같네요.”
두 손으로도 다 잡지 못한 자지 꼬투리에 오밀조밀한 살덩어리가 닿았다.
쪽.
짧은 뽀뽀소리와함께 입술이 열리며 자지 끄트머리를 집어삼켰다.
이빨은 꽁꽁 숨겨놓고 혀를 이용해 귀두를 감쌌다. 혀끝이 귀두 끝자락을 쓰다듬을 때마다 오싹오싹한 느낌이 올라왔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대로 세리스의 정성어린 봉사를 느끼다보니 조금씩 졸음이 쏟아졌다. 저항 없이 받아들였고 의식은 조금씩 멀어져갔다.
기분 탓인지 세리스의 혀놀림도 조금씩 느려지더니 이내 멎어버렸다.
나는, 세리스는 잠들어버렸다.
...
“으음... 아침인가..?”
아리엘은 눈을 비비며 주변을 살폈다. 창문 틈을 뚫고 연약한 햇빛들이 방안을 비췄다. 새벽까진 아니고 이른 아침인 듯 싶다.
‘목말라...’
일어나려는데 그녀의 목 위로 카라의 팔이 올려져있었다.
잠버릇 고약한 인간 같으니.
집어던지듯 치워버리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방에서 나오자 그녀의 원수, 한유성이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는 모습이 보였다.
요즘 그는 일 때문이라며 매일 아침에 떠나 밤늦게 들어왔다. 덕분에 아리엘은 그의 불합리한 갈굼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바빴으면 좋겠는데.’
카라와 세리스는 나름 그녀에게 친절하니 한유성만 없으면 살만할 것 같았다.
...밥도 숲속에서보단 맛있고.
아리엘은 땅바닥에서 처량하게 자는 한유성을 보며 꼴좋다며 혓바닥을 내밀었다. 그에게 들키면 또다시 굴욕적인 갈굼을 당할게 뻔했지만, 그녀는 원래 오늘만 살았다.
메롱에서멈추지 않고 수위를 높이기로 했다.
“바보! 멍청이! 얼간이! 쓰... 쓰...”
이건 조금 심한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는 그녀의 불구대천의 원수! 망설일 이유는 없다.
“쓰, 쓰레기! 말종!”
해냈다!
말했다!
아리엘은 넘치는 성취감에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것도 잠시, 혹시나 저 인간이 들었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두려움이 몰려왔다. 떨리는 눈동자로 다시 한유성을 쳐다봤다.
“...응?”
자고있는 한유성에게 집중하느라 차마 못봤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래쪽 이불에 커다란 엉덩이가... 아니 골반이 삐져나와있다.
‘뭐지?’
아리엘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불을 슬쩍 들춰보았다.
“어...?!”
한유성의 생식기를 물고 있는 세리스의 모습이 보였다.
“으음... 유성 씨...”
심지어 그녀는 자면서도 맛있다는 듯 우물우물 빨고 있었다.
아리엘은 크나큰 충격을 받고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벼, 변태 인간..! 변태 인간들!”
생식활동을 자주하는 건 알고 있었다만, 이렇게 대놓고 할 줄이야!
경멸이 담긴 아리엘의 눈동자가 옆으로 돌아갔다.
한유성의 생식기가 눈에 들어왔다.
“히, 히익?!”
식겁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괴, 괴물...”
공포에 질려 와들와들 떨었다.
* * *
“오르카 님.”
“왜?”
“죽을 것 같습니다.”
“안 죽어.”
“농담이 아니라 진짜 뒤질 것 같습니다.”
“...”
서류를 작성하던 오르카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가에 핀 다크서클은 이전보다 짙고 크기도 컸다.
오르카는 눈가를 좁히며 나를 쳐다봤다. 닥치고 계속하라는 의미지만 나는 내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뒤질 것 같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었으니까.
오늘 같은 경우만 해도 새벽 5시에 들어가서 아침 8시에 출근했다.
그 전에는 3시에 들어가서 아침 8시, 2시에 들어가서 아침 8시...
최근 들어 6시간이상 푹 잠들어본 기억이 없다. 이러다간 야근 일주일을 끝마치기도 전에 내가 죽을 판이다.
오르카는 내 굳건한 의지 표명에 한숨을 쉬더니 기지개를 펴며 몸을 일으켰다. 그대로 책상 반대쪽에 있는 서랍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여기쯤에 있었던 것 같은데... 아, 여기 있네.”
그녀가 서랍에서 꺼낸 건 내 주먹만 한 유리구슬이다.
“야, 여기 손 올려봐.”
“...예? 설마 오르카 님 점도 보실 줄 아십니까? 전점 싫어합니다.”
“뭐? 헛소리 하지 말고 빨리 올리기나 해.”
오르카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는 뭐지 갸우뚱하다가도 그녀의 말대로 구슬 위에 손을 얹었다.
유리구슬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매우 환하게.
“아악! 시발, 내 눈!”
“꺄악! 뭐, 뭐야?!”
“오르카 님 이거 뭡니까?! 갑자기 왜 이래요? 빨리 꺼 봐요!”
“니가 손을 떼!”
“아.”
그러면 되는구나.
요즘 잠을 통 못자서 그런지 머리가 잘 안 돌아간다.
나는 유리구슬에서 손을 떼어냈다. 유리구슬의 빛을 점차 잃어가더니 평범한 유리구슬로 돌아갔다. 우리는 눈을 가리던 손을 치웠다.
“이거 대체 뭡니까? 뭔데 빛이 이렇게 납니까?”
“원래 이렇게 빛나는 물건이아니야. 봐.”
이번에는 오르카가 유리구슬에 손을 얹었다. 나는 눈뽕을 각오하고 눈을 가릴 준비를 했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와는 달리 그녀가 손을 올리자 유리구슬은 은은하게 빛났으니까.
“뭐야, 왜 저랑 다릅니까?”
“그건 내가 묻고 싶거든? 이건 상대방의 생명의 기운을 빛으로 나타내는 도구야. 나 정도면 꽤 건강한 편이고.”
“예? 오르카 님이 건강하다고요? 아니, 그보다 빛으로 건강을 나타내는 거면...”
“그래. 넌 적어도 나보단 훨씬 건강해. 죽을 걱정은 없겠다. 그렇지?”
오르카가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흡사 건강한 노예를 주운 주인의 표정 같았다.
그 미소에 나는...
“예...”
눈을 감고 마도구에 손을 얹었다. 유리구슬이 번쩍였다.
“꺄아악! 너 미쳤어?”
좆같은 년.
* * *
오르카가 말했던 일주일이 끝났다. 오늘이 마지막 야근이었고 새벽 3시경, 나는 업무를 끝마쳤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상쾌하다. 양팔을 벌리며 기운차게 기지개를 폈다.
‘내일은 오랜만에 세리스, 카라랑 데이트나 해야겠네.’
요 근래 바빠서 같이 있지를 못했으니까. 두 사람 다 좋아하겠지.
‘아리엘은 뭐... 집이나 지키게 시키고.’
툴툴대긴 하겠지만 그게 다다.
자리에서 일어서 퇴근인사를 하려는데 오르카는 아직까지 서류를 보고 있었다.
아직 덜 끝낸 게 있었던가?
옆으로 다가가서 슬쩍 쳐다봤다. 이제 보니 꽤나 낡은 양피지다.
“아리튼의 권위가 아엘에게 권위에 막히고 돌코니스의 권역이지만 돌코니스만의 권역이 아니니...?”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
일단 보고서는 아닌 것 같은데...
이게 뭐냐고 물어보려 오르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오히려 그녀가 날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야... 너 이거 읽을 줄 알아?”
음. 아무래도 읽어서는 안 되는 글이었나 보다.
시치미를 떼기로 했다.
“예? 이게 뭡니까? 그보다 저 일 다 했는데 그만 돌아가보겠습니다. 그리고 내일은 쉬겠습니다. 그럼...”
“야, 야 잠깐 멈춰!”
그녀가 내 목덜미를 붙잡았다.
아, 젠장.
결국 도망치지 못하고 잡혀버렸다.
“너 이거 읽을 수 있다고? 어떻게?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이, 이거 다 번역해봐. 빨리!”
오르카가 드물게도 평정심을 잃었다.
‘대체 이게 뭐길래 저래?’
궁금해 하면서도 그녀가 원하는 대로 문서의 내용을 옆의 양피지에 옮겨 적었다. 그리 길지는 않았기에 30분 정도면 충분했다.
오르카는 내가 펜을 떼자마자 변역판을 낚아채갔다. 눈빛으로양피지를 뚫어버릴 것 같을 정도로 살벌하게 내용을 읽었다.
그 모습에 난 저 글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이 눈 녹듯 사라졌다. 불길함이 등골을 스쳤고 빠르게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리를 지배했다.
“그럼 전 이제 정말 가보겠습니다.”
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이제 세 발자국만 걸어가면 문고리를 잡을 수 있...
“흐흐흣, 아하하하핫! 됐어! 됐다고! 이제 그 망할 알렌 자식의 코를 납작 누를 수 있어!”
돌연 오르카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좆됐다.
나는 세 발걸음이 갈 거리를 한 발자국 만에 움직였다, 서둘러 손을 뻗어문고리를 잡았다. 이제 돌려서 나가기만 하면...
“한유성! 당장 준비해!”
젠장.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