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3화 〉 영지전(11) (153/249)

〈 153화 〉 영지전(11)

* * *

팅!

쏘아진 화살을 유성이 단검으로 막아냈다. 손목이 저려왔다.

“저건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놈들처럼 땅바닥을 뚫고 나온 게 아닌가 싶긴 한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유성은 눈동자를 굴리며 갑자기 나타난 스켈레톤들을 살펴보았다. 놈들은 공통적으로 뼈다귀 말을 타고 있었으나, 형태는 제각각이었다.

아까 활을 쏜 놈처럼 등에 화살대를 맨 녀석도 있고, 기사 흉내를 내는지 흉갑을 입은 녀석도 있었다.

‘생긴 것보단 숫자가 문제야.’

활을 든 녀석이 다섯 마리에 기사 흉내를 내는 놈이 열 마리.

땅에 발을 붙인 상태라면 모를까 지금 그들은 마차에 올라탄 상태.

활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니 요격할 방법이 없었다.

유성은 혹시나 하여 단검을 던져봤지만, 단검은 공기 저항에 의해 뒤로 밀려났다.

서행했을 때와 속도를 냈을 때의 공기저항은 차이가 심했다.

스켈레톤의 화살이 다시금 쏘아진다.

“숙여라!”

카렌이 마을 주민들의 목을 꾹 눌렀다. 파바박. 화살 다섯 발 중 세 발이 마차에 박히고 남은 두 발은 주민들의 머리 위를 지나갔다.

“히이익...!”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에 마을주민들이 겁을 집어먹었다. 5살짜리 아이는 어미 품에 안겨 크게 울어댔다.

“괜찮아... 괜찮아...”

어미는 덜덜 떨면서도 아이의 등을 토닥였다. 그 모습을 유성이 묘한 눈으로 바라봤다.

“호랄드! 저 죽다 만 것들을 처리해라!”

“예!”

기사는 주군의 명령에 따랐다. 스켈레톤이 차근차근 다가왔다. 호랄드는 허리춤의 검을 뽑았다. 깔끔한 발도. 스켈레톤 기사의 머리가 날아갔다. 그는 검을 휘둘러 해골마의 목까지 갈라버렸다.

스켈레톤 궁수가 딸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호랄드는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다음 스켈레톤의 몸을 반으로 잘랐다.

핑! 날카로운 뼈화살이 호랄드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풀 플레이트 갑옷에 힘없이 튕겨나갔다.

평범한 화살 따위론 풀 플레이트 갑옷을 뚫을 수 없었다.

“성불해라!”

호랄드의 검이 기세를 탔다. 한 호흡에 세 스켈레톤의 몸이 분쇄되었다. 이어진 호흡에선 해골마들의 허리가 끊어졌다.

기사 흉내를 내는 스켈레톤은 진짜 기사 앞에선 잡졸에 불과하였다.

* * *

“음, 역시 기사에겐 안 되나.”

스켈레톤의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마법사가 수염을 만졌다.

“그나저나 클레네르 후작가의 여식이라... 뛰어난 기사라고 들었는데, 데스나이트로 만들면 재밌겠어.”

마법사가 손가락을 튕겼다.

* * *

호랄드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스켈레톤의 몸이 박살났다. 그 경쾌한 검술을 보며 유성은 감탄했다.

“실력이 대단하시군요.”

“호랄드는 성실하지. 가문의 기사들 중에서도 실력이 뛰어난 편이다.”

카렌이 자부심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후작가의 기사들은 그녀의 자존심이나 마찬가지였다.

“...다 잡았나 했더니 새로운 놈들이 오는군.”

카렌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먼 곳에서 새로운 스켈레톤이 나타난 탓이다.

스켈레톤 자체야 문제없다. 그러나 마음이 걸리는 건 쫓아오는 언데드들의 끝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호랄드! 저놈들이 마차에 다가오기 전에 처리해라!”

“예, 아가씨.”

호랄드는 곧장 말머리를 돌렸다. 스켈레톤들에게로 향하던 그의 발아래에서 언데드들이 땅바닥을 뚫고 튀어나왔다.

“뭐라?!”

갑작스러운 기습.

호랄드는 침착하게 그에게 달려든 언데드를 베어버렸다. 훈련받은 기사는 이정도로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탄 말은 달랐다. 말은 기본적으로 겁이 많은 동물이다. 훈련과 사수와의 유대감으로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하지만, 이렇게 발밑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경우에는 답이 없었다.

말이 경기를 일으키며 앞발을 들어올렸다. 호랄드는 낙마했다. 그의 주위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언데드들이 땅을 파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호랄드는 언데드들에 뒤덮이고 말았다.

“호랄드!”

카렌이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며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호랄드를 감쌌던 언데드들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낙법을 펼쳤나? 다행이군.”

카렌의 표정에서 근심이 사라졌다.

“허나 저 숫자를 당장 뚫고나오기는 힘들겠지. 필립, 호랄드를 지원하러 다녀오도록.”

“알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면 마차는 누가 끕니까?”

필립의 물음에 카렌은 흠칫 굳어버렸다. 거기까진 생각을 안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필립이 생각 없는 주군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카렌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내가...”

“제가 말을 다룰 줄 압니다!”

마차 구석에 앉아있던 마을 주민이 손을 들었다.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 남성이다.

“그럼 그대에게 맡기도록 하지. 필립 다녀오도록.”

카렌은 처음부터 그럴 셈이었다는 듯이 부드럽게 넘겼다.

속으론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예,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아가씨.”

필립은 마차에서 뛰어내려 옆에서 달리는 제 말에 올랐다. 그대로 말머리를 돌려 호랄드를 향해 달려갔다.

카렌은 한숨 돌렸다고 생각하며 의자에 앉았다.

그동안 유성은 언데드와 호랄드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놈들이 왜 갑자기 튀어나온 건지 아십니까?”

카렌도 언데드들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

“근래 사교도들의 움직임이 수상하다는 보고가 있었다. 아마 영지전이 일어난다는 소식을 듣고 움직인 거겠지. 저 정도의 언데드들을 조종할 만한 놈들은 그놈들 밖에 없으니.”

“그렇군요.”

사교도의 움직임이 이상하다는 소식은 유성도 들은 바 있었다. 누구에게 들었던 건지는 기억에 없지만.

“대체 뭔 생각으로...”

“놈들이 생각한 바야 뻔하지. 나나 반리드를 사로잡아 가문으로부터 몸값을 요구할 생각이었을 거다.”

“허... 몸값이라는 게 어느 정도기에 저 정도 언데드들을...”

헛웃음을 흘리던 유성이 귀를 쫑긋거렸다. 눈을 치켜뜨곤 곧장 말을 이끄는 남자에게 소리쳤다.

“마차를 옆으로 틀어!”

“예? 갑자기 무슨...”

“당장!”

유성이 단검을 뽑아 남자의 목에 가져다댔다. 겁을 먹은 마부는 유성의 말대로 마차를 돌렸다. 급하게 한 방향전환이라 마차가 크게 흔들렸다.

“꺄악!”

마차 안은 사람들끼리 부딪히며 난리도 아니었다. 오직 카렌만이 창틀을 붙잡으며 중심을 유지했다.

“한유성! 지금 이게 뭐하는...”

콰과곽!

마차의 대각선 앞, 방향을 틀지 않았더라면 마차가 지나가고 있을 자리를 언데드들이 파고 나왔다.

카렌이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알았지?”

“귀가 좋습니다. 그보다 저건 뭡니까?”

유성이 방금 튀어나온 언데드들을 가리켰다. 놈들은 평범한 언데드가 아니었다. 몸에 상처가 심한 건 여타 언데드와 같지만 팔뚝과 다리가 유독 굵었다.

“구울이군.”

구울, 개와 인간을 합성해 만든 언데드다. 평범한 언데드보다 힘과 치악력이 강하며 지능 또한 더 뛰어나다.

언데드들은 상체를 숙이더니 사족보행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카렌은 눈살을 찌푸렸다.

“나 하나를 잡으려고 모든 걸 동원하진 않았을 테고... 젠장, 사교도가 생각보다 많은 힘을 비축한 모양이군. 돌아간다면 신전에 알려야겠어.”

“카렌 님, 저 구울들, 생각보다 빠른 것 같습니다.”

“빠른 게 맞다. 곧 있으면 따라잡히겠지.”

구울의 순간속도는 말보다 조금 뒤떨어지는 정도다. 반면 현재 마차를 끄는 말들은 마차의 무게 때문에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응전 준비를 하도록.”

카렌이 검을 뽑으며 말했다.

“예. 아리엘 처리해.”

“나한테 명령하지 마!”

아리엘은 반항하면서도 정령들을 시켜 구울을 공격하게 했다.

얼음송곳 십 수개가 구울들을 향해 날아갔다. 콰과광! 강렬한 타격음과 함께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잘했어.”

“훗, 이 정도는... 쓰, 쓰다듬지 마!”

티격태격 거리는 유성과 아리엘을 보며 카렌은 머쓱한 표정으로 검을 집어넣었다.

“어떻습니까? 이놈 쓸 만하죠?”

유성이 발버둥치는 아리엘을 무시하고 머리를 계속 쓰다듬으며 말했다.

카렌은 피식 웃었다.

“그래. 제법...이군.”

말을 잇는 카렌의 시선이 흙먼지로 향해 있었다. 자욱한 흙먼지를 가르며 구울들이 달려왔다. 수는 아까전과 별 차이가 없었다.

“이게 뭔... 야, 아리엘. 너 대충했냐?”

“아, 아니거든? 그치 얘들아?”

두 정령들이 격하게 몸을 흔들었다. 유성은 의심쩍은 눈으로 쳐다보다가 단검을 뽑아 구울들에게 던졌다.

단검이 구울의 머리를 향해 휘리릭 날아갔다.

­캉!

구울이 날아온 단검을 입으로 낚아챘다.

“...반사 신경이 좋네.”

유성이 혀를 찼다. 저렇게 잡아버리면 만류귀종으로 가져오지도 못한다. 아까운 단검을 하나 버린 꼴이 되었다.

“...슬슬 여유가 없어질 것 같군.”

구울들이 마차에 가까워졌다. 구울 중에서도 선두를 달리던 한 마리가 뛰어난 각력으로 마차에 뛰어올랐다.

­캬아악!

구울이 마차 창문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피부는 썩어있고 흰자위에는 동공이 없었다. 하관은 굵직하며, 이빨은 날카로우나 고르지 않다.

놈이 마차 안의 먹이들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은빛이 호선을 그렸다. 구울의 머리와 몸이 분리되어 마차에서 떨어져나갔다.

카렌은 검에 묻은 피를 털었다. 처음으로 묻힌 피다. 그녀는 조금 흔들렸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전투에 자신 없는 자는 몸을 숙여라!”

크게 외치며 마을 주민들에게 경고했다.

그 외침을 시작으로 구울들이 본격적으로 마차에 달려들었다. 놈들은 마차의 창틀에, 지붕에 매달렸다.

“저리 꺼져.”

유성이 창틀에 매달린 구울에게로 단검을 내질렀다.

구울은 고개를 틀어 피했다.

­캬흐흐.

누런 이빨을 핥으면서 실실 쪼갠다. 유성이 눈을 가늘게 떴다.

숨을 내쉬면서 오른손을 잡아당겼다. 머릿속으로는 오크의 목을 짓이겼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 때 보였던 선을.

검로와 근육의 움직임을.

숨을 들이마시며 오른손을 뻗었다. 단검이 다시 한 번 내질러졌다.

­캬학!

구울은 뻔한 공격이라 비웃으며 이번에도 고개를 틀었다. 구울의 목이 단검의 궤도에서 벗어났다. 단검이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가려 할 때, 유성이 손목을 움직였다.

궤도가 틀어지며 검날이 구울의 목옆을 찔렀다.

­캬아악?!

예상치 못한 피해에 구울이 당황하며 목을 뺐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사련독무????

유성의 오른팔이 뱀처럼 휘어지며 구울의 목을 난도질했다. 걸레짝이 된 구울의 목은 뜯어지기 직전이었다.

유성은 단검을 역수로 쥐고 그대로 휘둘렀다. 구울의 목을 겨우 지탱하던 살덩어리가 찢어졌고, 주인 잃은 머리는 마차 뒤편으로 떨어져나갔다.

유성은 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성공했네. 그때보단 느리...’

­키아악!

구울 하나가 창문 밖으로 나온 유성의 손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며 뛰어들었다.

유성은 왼주먹으로 구울의 턱주가리를 때렸다. 구울은 별 소득도 없이 얻어맞기만 하고 마차에서 떨어졌다. 유성은 곧바로 단검을 들어올렸다.

팅! 화살이 검날과 부딪히며 튕겨나갔다.

화살이 날아온 곳에는 해골마를 탄 스켈레톤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산 넘어 산이네.”

유성은 마부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저씨, 더 빨리 못갑니까?”

“이게 최대한 빠르게 가는 겁니다. 더 이상은...”

­키헤엑!

고개를 돌려 대답하던 마부를 구울이 낚아채갔다.

“흐아아아아악!”

마부의 비명소리가 멀어졌다. 그가 사라진 마부석은 공허했다.

“진짜 가지가지하네 씨발...”

유성은 한숨이 나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