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6화 〉 나쁜 사람
* * *
숨이 거칠다.
허파는 찢어질 듯이 아프고 옆구리는 칼로 찌르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남자는 멈추지 않고 달렸다.
‘시발시발시발시발.’
마음속에서는 욕설밖에 나오지 않았다.
평정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방금까지 웃고 떠들었던 친구가 고깃덩어리가 되는 모습을 눈앞에서 직접 보게 된다면 누구든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남자는 슬며시 고개를 뒤로 돌렸다.
타다다닥.
달려오고 있다.
그의 친구를 고깃덩어리로 만들어버린 여자가 그를 쫓아오고 있었다.
“씨이발!”
이렇게나 달렸는데 떨쳐내지 못했다고?
그냥 달린 것도 아니고 빈민가 골목을 최대한 꼬아가며 달렸는데도?
‘잘못 건드렸어 시발...’
친구 놈이 도둑 길드의 정식 길드원이 되었다며 술을 사주겠다고 했을 때는 놀랐다.
도둑 길드라니.
우리 같은 거렁뱅이들에게는 전설적인 곳 아닌가?
적당히 축하해주며 술을 얻어 마셨다. 친구 놈은 도둑길드의 보스를 직접 뵈었다, 제대로 된 무술을 배우고 있다와 같은 단순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렇게 코가 삐뚤어지게 마시고 돌아가는 길.
거지 같은 빈민가에 웬 예쁜 여자가 방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허세를 부리고 싶었던 건지, 친구 놈은 그 여자를 건드리자고 했고 그도 동의했다. 어차피 빈민가 쓰레기 인생이었던 남자 또한 마찬가지였으니.
그리고 그 결과가 이거다.
친구 놈은 잘게 썰려서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렸고 자신은 쫓기는 신세.
그 도망치는 것도 얼마 안 가면 못 하게 될 것 같았다. 예상은 딱 맞아떨어졌다. 지친 채로 달리다 보니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만 것이다.
“끄아악!”
넘어져서 바닥을 구르던 남자는 한동안 신음을 흘렸다.
세게 넘어져서 그런가, 전신이 아팠다.
잠시 후, 그는 정신을 차리고 얼른 일어나 자신을 쫓는 추적자를 바라봤다.
여자는 더 이상 달려오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대검을 바닥에 질질 끌면서 남자에게로 걸어왔다.
카카각!
검이 바닥을 긁는 소리.
그것이 남자에겐 무척이나 무섭게 들려왔다.
“자, 잠깐만!”
남자가 팔을 뻗으며 외쳤다. 그러자 여자가 걸음을 멈췄다. 남자는 순간 의아했지만, 대화로 풀 여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하면... 살아나갈 수 있겠다.
“잠깐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봐. 나는 널 건드릴 생각이 없었어. 전부 그 멍청한 내 친구 녀석이 한 행동이었단 말이야.”
남자의 말에 여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에 남자는 조급해졌다.
“그, 그 친구 놈의 행동은 내가 대신 사과할게. 워, 원한다면 돈도 줄 테니까...”
남자는 품에서 자신의 지갑을꺼냈다. 그것을 바닥에 털자 동전 몇 개가 바닥을 굴렀다. 여자는 그걸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게 다야?”
“어... 어?! 아, 아니 원한다면 더 줄 수 있...”
“할 말은 그게 다냐고. 멈추라기에 난 또 뭐 유언이라도 내뱉는 줄 알았네.”
여인은 실망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남자를 향해 다시 움직였다.
“오, 오지 마!”
“재미없어.”
여인이 대검을 치켜들었다. 남자는 본능적으로 팔로 얼굴을 가렸고, 그게 그가 본 마지막 광경이었다.
* * *
“록시 님은 아실지 모르겠지만 요즘 빈민가가 매우 어수선해요.”
“빈민가가 어수선한 거야 매일 있던 일이잖아? 새삼스럽게.”
“그렇긴 하지만 이번은 느낌이 다릅니다. 록시 님이 제국으로 향하셨던 지난 한 달간 유독 빈민가에 굴러다니는 시체가 늘어났습니다.”
“누가 말썽이라도 부리나 보네. 아니면 복수라도 하는 중이던가. 내버려 둬. 저러다 질리면 그만두겠지.”
록시의 말에 미셸이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이번 피해자 중에 저희 도둑 길드원이 끼어있습니다.”
“...우리 길드원이 끼어있다고?”
심드렁했던 록시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미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평범한 길드원이 아닌 전투 조입니다.”
“전투 조가 당했어? 평범한 놈은 아니란 이야기잖아.”
저번 백골단 사건 이후 도둑길드는 어중간한 다수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체감했다.
그래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길드원과 전투 담당 길드원을 따로 분리해서 뽑았다.
전투 조가 하는 일은 단순하다.
훈련과 당직을 서는 것.
그것 두 개뿐이다.
거기에 제대로 된 창술을 쓸 줄 아는 마리아가 그들의 훈련을 맡았으니, 도둑길드의 전투 조는 이미 이전의 길드원들보다 훨씬 강해진 상태였다.
그런 전투 조원이 당했다는 건 어중간한 놈이 칼 들고 설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뜻했다.
록시는 고민에 빠졌다.
이걸 한유성에게 부탁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런 것까지 일일이 부탁할 수는 없지.’
도둑길드도 이제 정상으로 돌아온 만큼 그에게 의존하기만 할 수는 없다.
“전투 조를 풀어. 밥값 할 시간이야.”
* * *
상태창을 살펴보던 때였다.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카라의 카르마가 왜 이렇게 많지?’
내가 없는 동안 의뢰를 했다고 가정하더라도 많은 양이었다. 당장 세리스의 상승폭과 비교해도 1.5배는 차이가 났으니까.
‘의아한 건 직접 물어보면 되지.’
밖에서 수련 중일 카라에게 가려고 할 때였다. 마리아가 무장한 채로 방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 시간에 어디 가?”
“아, 주인님. 도둑길드의 일이 있어서 잠시 외출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굳이 이 시간에? 훈련 때문이라면 가지 마. 내가 내일 록시에게 말해놓을 테니까.”
만약 내 식솔의 노동을 착취하려고 한 거였다면 한소리 제대로 할 생각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 때문이 아닙니다.”
“그럼?”
“빈민가에서 말썽을 부리는 놈이 나타났는데, 도둑길드의 전투 조원 하나가 거기에 휘말렸습니다. 그래서 도둑길드는 전투 조를 풀어 보복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렇군. 그런데 거길 네가 왜 가? 설마 록시가 너한테 명령이랍시고 시킨 거야?”
“아닙니다. 제가 자원한 겁니다.”
“자원했다고?”
왜?
의아한 눈초리로 쳐다보자 마리아가 대답했다.
“제가 가르친 전투 조원들은 모두 도둑길드 내에서 주인님의 영향력을 키워줄 자들입니다. 그들의 헛된 죽음은 주인님의 영향력을 낮추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제겐 그것을 막을 의무가 있습니다.”
도둑길드 내의 영향력?
나는 그것을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도둑길드에 투자한 돈이 문서로 남아있기도 하고, 마음만 먹는다면 당장이라도 부술 수 있을 만큼 도둑길드는 나약하니까.
그리고 아직 뭐 하나 확실하게 정해진 것은 없지만 록시와 혼인동맹을 맺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전투 조 같은 걸로 영향력 신경 안 써도 이미 도둑길드의 절반 이상이 내 것이었다.
그러나 이걸 말해주기엔 마리아의 눈빛이 너무 진지했다.
“그래. 조심히 다녀와.”
그래서 그냥 평범하게 배웅했다.
마리아 실력이면 다칠 일은 없겠지.
그녀를 보내준 후, 나는 카라에게로 가서 카르마에 관해 물었다. 카라는 의뢰에서 세리스보다 마물을 많이 죽였다고만 대답할 뿐이었다.
* * *
밤늦은 시간.
자는 척하던 카라는 눈을 떴다.
슬쩍 고개를 돌리면 유성과 그를 끌어안은 채로 잠든 세리스가 보인다.
카라는 두 사람을.
특히 유성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방에서 나와 대검을 챙겨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자연스레 빈민가로 향했다.
‘피... 피가 필요해.’
무언가를 베고 찢어서 흘러나오는 피를 보고 싶다.
느끼고 싶다.
맛보고 싶다.
평범한 사람과는 동떨어진 욕망이 그녀 안에서 부글부글 끓었다.
이러한 욕망은 예전부터 꽤 느껴왔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크기를 불려갔다.
카라가 밤마다 빈민가에 들르는 빈도가 늘어난 것도 바로 그 탓이다.
빈민가에 도착한 그녀는 어두운 길을 홀로 걸어 다니며 고개를 휙휙 휘저었다.
빨리. 최대한 빨리 이 욕망을 해소하고 싶었다.
그러나 눈에 띄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사람은 있었지만,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쁜 사람이.
‘오빠가 나쁜 사람은 죽여도 된댔어.’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을 때, 묘한 불쾌함을 느끼고 있던 그녀에게 유성이 말했었다.
당시 유성으로서는 카라를 달래주려고 했던 말이지만, 그것은 그녀의 안에서 하나의 기준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준이 아슬아슬하게 카라의 욕망을 통제했다.
‘나쁜 사람이 아닌 사람을 죽이면 오빠가 싫어할 거야.’
아주 단순한 이유로.
카라는 죽여도 될 나쁜 사람을 찾기 위해 빈민가를 걸어 다녔다. 그런데 이상하다. 보통 이쯤 되면 나쁜 사람이 나타나야 하는데 나타나질 않았다.
설마 오늘은 아무도 안 나타나는 건 아니겠지?
카라가 조급해할 때였다.
“아가씨. 이 밤에 왜 그런 커다란 칼을 끌고 다녀? 마치 누구 하나 죽여버릴 듯한 살벌한 눈을 하면서 말이야.”
창을 든 남자가 그녀 앞의 골목에서 나타났다. 남자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뒤에는 똑같이 창을 맨 다섯 명의 남녀가 더 있었다.
카라는 뒤로 고개를 돌렸다.
창을 든 다섯 명의 남자들이 그녀의 뒤를 막고 있었다.
아까 말을 걸었던 남자가 말했다.
“아가씨가 그거지? 요새 빈민가에서 사고치고 다닌다는 인간.”
“저기 오빠들. 내가 궁금한 게 하나 있어서 묻는데. 오빠들은 나쁜 사람들이야?”
그에 엉뚱한 소리를 들었다는 것처럼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쁜 사람이냐고? 음... 그야... 엄청 나쁜 사람이지!”
남자가 기습적으로 창을 찔러왔다.
카라는 허리를 틀어 아슬아슬하게 피한 후 대검을 크게 휘둘렀다.
서걱
절단음과 함께 남자의 몸이 사선으로 갈라졌다.
푸슛
갈라진 몸에서 피 분수가 터져 나와 카라의 몸을 적셨다. 옷이 피에 젖었음에도 카라는 불쾌해하기는커녕 환하게 웃었다.
“나쁜 사람 찾았다.”
아주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