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7화 〉 도망쳐
* * *
“너무 늦는군요.”
다섯에서 여섯 명을 한 조로 묶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열 개의 조.
그 열 개의 조가 빈민가를 샅샅이 뒤지고 있다. 지금쯤이면 말썽을 부린다는 놈의 실루엣이라도 찾았어야 했다.
그러나 마리아에게는 단 한 건의 보고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쯤 되면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봐야 한다.
놈과 마주친 조가 전멸했거나, 놈이 오늘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거나.
마리아의 생각은 후자로 기울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한 달간 성심성의껏 가르친 조원들이다. 몇 명이 당할 수는 있어도 전멸당할 리는 없다.
만약 전멸했다면 그건 상대가 만만치 않은 놈임을 의미한다.
마리아가 조용히 창을 쥔 손에 힘을 줄 때였다.
교관님... 살려...
그녀의 귓가로 어렴풋이 들려온 목소리.
아는 목소리였다.
마리아는 그 즉시 자리를 박찼다.
달리면 달릴수록 아까의 그 목소리가 커졌다.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그곳에는 그 목소리의 주인만 있던 것이 아니었다. 그와 다른 조원들이 무언가에 쫓기듯 급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교, 교관님!”
마리아를 발견한 조원들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이제 살았다며 털썩 주저앉기까지 했다.
“대체 무슨 일이...”
조원에게 상황을 물으려던 마리아는 주저앉아있던 조원을 걷어찼다. 걷어차인 조원은 날아가 벽에 등을 부딪쳤다. 그에 다른 조원들이 당황해할 때였다.
쾅!
방금까지 조원이 있었던 바닥을 대검이 내리찍었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며 한 기습이었다. 바닥에는 금이 갔고 흙 파편은 사방으로 튀었다.
“히이익..! 왔어..! 그 미친년이 왔다고!”
“교관님, 저년입니다! 요즘 빈민가를 휩쓸고 다니는 미친년이 저년이라고요!”
갑자기 나타난 여인을 보며 조원들은 하나같이 거품을 물었다.
마리아는 여인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머리는 피로 떡이 되어있고 몸도 딱히 다를 바는 없었다.
아무리 봐도 광인인 것 같은데.
‘무언가 익숙해.’
그녀가 의아해할 때였다. 여인이 움직였다. 카가각! 대검으로 바닥을 긁어 흙을 흩뿌렸다. 마리아는 옆으로 한 발짝 움직여 날아온 흙을 피했다.
그 직후 사선으로 베어오는 대검을 창대로 막았다. 그러자 대검을 휘두른 여인과 눈을 맞출 수 있었다.
“...카라 님?”
비록 온몸이 피로 젖어서 겉모습으로는 알아채지 못했다지만,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고 나서도 알아채지 못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목소리는... 마리아?”
창대를 압박하던 힘이 사라졌다.
상대가 마리아인 것을 확인한 카라가 대검을 회수한 것이다.
“네가 왜 여기 있어?”
“저는 도둑길드의 전투조원을 살해한 범인을 찾기 위해 도둑길드와 협력하는 중입니다.”
카라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도둑길드? 그거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주인님께서 록시 님을 집으로 데려오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분이 운영하시는 조직이 도둑길드입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내가 쫓던 녀석들이 도둑길드에 속한 녀석들이라고?”
“예.”
“거기. 오빠가 후원한다던 곳이지?”
“그렇습니다.”
“아...”
단단히 꼬였다는 표정을 지으며 카라는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어쩐지 운수가 좋더라니...”
운수가 좋아?
그게 무슨 소리지?
마리아가 의아해할 때였다.
“마리아. 미안한데 오빠한테는 이 일을 비밀로 해줄래? 부탁할게.”
카라가 두 손을 모으고 미소를 지으며 부탁해왔다. 핏물로 얼룩진 얼굴로 지은 미소는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그에 마리아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카라 님께서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거짓말이다.
돌아가는 순간 유성에게 털어놓을 생각이었다. 카라는 마리아의 주인의 연인. 지금의 이상한 상태를 방치해서는 안 됐다.
거짓말을 했다는 죄책감 따위는 없었다.
마리아의 주인은 한유성이다.
카라나 세리스는 어디까지나 주인의 연인이기에 부차적으로 섬겼던 것에 불과하다.
마리아의 대답을 들은 카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다. 고마워, 마리아. 이 빚은 꼭 갚을게.”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냐, 내가 고마워서 그래.”
카라는 미소를 지은 얼굴 그대로 대검을 들었다. 그녀는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는 조원들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이유 모를 불안감을 느낀 마리아가 그 앞길을 막았다.
“마리아? 잠깐 비켜줄래?”
“무엇을 하시려는 겁니까?”
“당연히 아까 하던 걸 마저 하려는 거지.”
“...아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들은 주인님이 후원하시는 도둑길드의 조직원입니다.”
“알아. 하지만 내 얼굴을 봤잖아?”
“제가 입단속을 시키겠습니다.”
“못 믿어. 쟤네 나쁜 사람들이잖아? 입이 엄청 가벼울 거야. 그런데 마리아? 아까부터 저놈들을 왜 그렇게 감싸는 거야?”
“주인님은 제게 도둑길드의 조직원을 훈련시키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리고 저들은 언젠가 주인님의 도둑길드 내부 영향력을 높여줄 자들입니다.”
“내가 부탁해도 안 되는 거야?”
“주인님의 명령이 제겐 그 무엇보다 우선입니다.”
“흐응... 그렇구나...”
대화하는 동안 카라는 마리아가 아닌 조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명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그런 그녀가 처음으로 눈동자를 마리아에게 돌렸다.
“마리아 어떡하지? 나 이제 너도 못 믿겠어.”
“!”
마리아는 상체를 뒤로 젖혀 대검을 피했다. 그 상태로 뒤로 크게 뛰어 카라와 거리를 벌렸다.
“카라 님 이게 무슨...”
“오빠한테 말할 생각이지?”
“그러지 않겠다고 이미 대답한 걸로 압니다만.”
카라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내 간단한 부탁도 못 들어줄 만큼 오빠 명령이 우선이라며? 그런데 비밀을 지켜주겠다고? 우리 언니가 거짓말을 해도 그것보단 잘하겠다.”
다른 말로 카라를 설득하려던 마리아는 그녀의 눈빛을 보고 흠칫했다.
광기와 열망.
그리고 살의.
그것들이 그녀의 눈에 담겨있었다.
“당신들, 당장 일어나서 자리를 벗어나세요.”
멍청하게 상황을 지켜보던 조원들이 마리아의 호통에 정신을 차렸다. 그들은 다친 조원을 부축하며 급하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카라는 그들을 쫓아가지 않았다.
마리아를 바라보며 몸을 풀 뿐이었다.
“의외군요. 바로 쫓아가리라 생각했습니다.”
“괜찮아. 얼굴 다 외웠어. 그리고 쟤네 다 도둑길드 조직원이라며? 그럼 그 도둑길드라는 것도 같이 박살 내지 뭐.”
마리아는 저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카라의 말투에서 느낄 수 있었다.
“꼭 이렇게 해야겠습니까? 주인님이 슬퍼하실 겁니다.”
네 엉뚱한 짓으로 인해 그가 슬퍼할 수 있다.
그러니 그만둬라.
그 말에 카라는 엉뚱한 말로 대답했다.
“있잖아 마리아? 난 언니 취향이 참 이해가 안 돼. 처음에야 자극적이니까 같이 즐겼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불쾌하단 말이야.”
“...뭐가 말입니까?”
카라가 싱긋 웃었다.
“오빠 주변에 자꾸 여자가 늘어나는 것 말이야!”
말을 끝마치는 것과 동시에 카라가 도약했다.
몸을 낮춘 채 한 바퀴 회전하며 마리아의 중단을 노렸다.
‘막으면 창대와 함께 베인다.’
마리아는 위로 높게 뛰어 카라의 공격을 피했다. 카라와 대화하는 동안 인간의 형상을 벗어나지 않을 정도로 사도화를 해놨었다. 덕분에 카라의 속도에 반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어. 언니의 성벽 정도야 이해해줄 수 있었으니까.”
마리아는 공중에서 창을 쏘아냈다. 네 번의 찌르기가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것처럼 카라를 노렸다.
미허신보.
마리아의 회심의 찌르기를 카라는 발놀림 몇 번으로 전부 피해버렸다. 눈을 크게 뜬 마리아를 향해 대검이 움직였다.
“그런데 알아서 하겠지 하고 내버려 두니까 상황이 이상하게 변했더라? 오빠가 완전히 바람둥이가 되어버렸다고!”
회전을 거듭할수록 검에 실리는 힘이 강해진다. 도중에 끊으려고 하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검로를 비튼다.
화려하면서도 파괴적인 검의 향연.
마리아는 이를 악물었다.
차이가 있을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심할 줄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두 여인 사이엔 수련해온 절대적인 시간 차이가 있다. 거기에 카라에겐 마리아에게 부족한 실전경험까지 풍부하다.
마리아는 의미 있는 공격을 하기는커녕 카라의 검을 피하기 급급했다.
“오빠 주변에 여자가 늘어날수록 날 향한 사랑이 줄어들어. 난 그게 정말 마음에 안 들어. 내가 받아야 할 사랑을 뺏어가는 그년들이 진짜 싫다고.”
사도화를 끝까지 해야 하나?
하지만 완전히 사도가 되어버리면 어떻게 되는지 그녀 자신도 잘 몰랐다. 어쩌면 과거처럼 정신을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었다.
‘그래도 여기서 죽는 것보단 나을 것 같군요.’
결심한 마리아가 완전한 사도로 거듭나려던 순간이었다.
카라가 검을 멈췄다.
“그래도 마리아, 너는 그렇게 싫어하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비밀로 해주겠다고 말해. 그럼 그만할게.”
“약속하겠습니다.”
“오빠를 걸고?”
“...”
마리아는 말없이 사도화를 진행했다.
그녀의 흰자위가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과거 사교도 토벌에 참여한 적이 있었던 카라는 지금 마리아가 사도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게 네 대답이야?”
여전히 마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카라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내 표정을 차갑게 굳히곤 싸늘하게 말했다.
“그럼 죽자.”
카라는 대검을 몸쪽으로 당기고 오른발을 뒤로 뺐다. 마리아의 등에서 한 쌍의 검은 날개가 피어났다.
카라가 도약했다.
마리아의 등에서 두 번째 날개가 피어올랐다.
마리아가 카라의 대검 사정거리에 들어왔다. 마리아에게서 세 번째 날개가 돋았다. 완전한 사도로 거듭난 마리아는 그 즉시 창을 움직였다.
대검과 창이 섞이려던 순간이었다.
파바바박!
단검 여섯 개가 그녀들 사이 바닥에 꽂혔다.
죽일 듯이 달려들던 카라와 마리아가 움직임을 멈췄다.
이런 기예가 가능한 건 그녀들이 알기론 단 한 사람뿐이었으니까.
두 여인은 단검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담벼락에서 뛰어내린 유성이 그녀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카라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오빠가 거기서 왜 나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