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스톤 이터 사냥
“끄으응!”
쪼그려 앉은 자세를풀고 허리를 펴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청명한 하늘에 눈이 시리다. 피를 보느라 칙칙해진 시선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느낌이다.
“끄으윽⋯⋯.”
“끈질기네. 아직도 살아있어?”
“살, 려줘⋯⋯.”
“살려는 줬잖아. 손발이 작살나긴 했지만 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더라. 살려는 줄 테니까 알아서 잘살아 봐. 죽더라도 네가못 버텨서 죽는 거니까 자연사야? 나는 살려줬다? 화이팅!”
피를 하도 많이 흘려 얼굴이 파랗게 바뀐 채 바닥을 기어 다니는 놈을벌레 보듯이 내려보다가 나탈리야와 로인의 곁으로 돌아갔다.
“얻은 내용을 말해보자면 여기로 올 때 웨스트웨이의 본부로 연락책몇 놈을 보냈고 그 외에 아르파곤에 있던놈들은 전부 다 끌고 왔다는 모양이야. 우리의 외견적특징은 공유해놨다는데?”
“곤란하네요⋯.”
“귀찮아지겠는걸.”
나탈리야와 로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부러져 굴러다니는 석궁을 발로 툭 건드렸다.
로인이 사전에 기척을 눈치채서 잡아 와줘서 다행이지, 만약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습격을 당했으면 큰일 날뻔했다.
놈들에게 잡혔다면⋯? 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일단 상황을 정리해보면 아르파곤에 있던 검은 달조직은 궤멸. 몇 놈은 웨스트웨이의 지부로 보냈고 우리의 외견적 특징에 대해 공유해 놓은 상태. 혹여나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놈들은 우리가 누군지 알 수 있다는 이야기지. 우리는 놈들을 모르고. 그나마 다행인 건 아르파곤의 아지트 위치를 알아냈다는 거?”
그래도 여전히 불리하다. 우리는 길거리에서 적을 먼저 발견할 수 없지만, 적들은 우리를 먼저 발견할 수 있다.
지나가는 남자들이 한 번쯤 고개를 돌려 바라볼 금발미녀, 청발미녀와 검은 머리에 실눈인 잘생긴 미남. 우리의 외견은 눈에 띈다.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숨어서 기회를 엿보는 놈들을 상대로 어떻게 먼저 공격하지?
놈들에게 발각된 줄도 모르고 생각 없이 돌아다니다가 인기척 없는 골목에서 포위라도당하면?
놈들이 석궁이라도 들이민 채로 포위하면 답도 없다.
어쩌면 이세계에 와서 첫 위기일지도⋯?
머릿속이 복잡하다.
나탈리야의 푹신푹신한 가슴에 고개를 박고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스으읍, 후우⋯.”
“흐엣? 한성님?”
“잠깐만, 머릿속이 복잡해. 생각 좀 정리 해야겠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머리를 쓰다듬는 나탈리야의 손길을 느끼며 생각에 잠겼다.
시티가드에게 신고한다? 아니, 좋은 생각은 아니다.
뇌물이나 받아 처먹는부패한 사병집단을 어떻게 믿나. 불법 노예상 새끼들이 뇌물이라도 쓱 찔러주면 놈들은 모른 척 눈을 감아 줄지도 모른다.
옆에 서 있던 로인이 희고 고운손가락으로 입술을 스윽 쓸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차라리 우리가 먼저 놈들을 공격할 수 있다면좋을 텐데⋯.”
으음, 나탈리야의 말랑말랑한 엉덩이를 주무르고 있으니 머리가 잘 돌아간다.
“일단 아지트의 주소는 알아냈으니까 이 의뢰가 끝나면 거기로 한번 가보는 걸로 할까?”
“그게 좋겠네요.”
“그거 말고는 방법이 없겠다. 가만히 있다가 놈들에게 기회를 주면 당할 수밖에 없어.”
“복잡해지는구만⋯⋯.”
“한성이 괜찮아? 내 가슴도 만질래?”
“응, 만질래.”
옆에 다가온 로인의 가슴까지 해서 두 가슴에 샌드위치가 된 채로 가슴 사이에 얼굴을 박고는 두 사람의 살 내음을 맡으며 생각한다. 생각한다. 생각한다.
과연 상황이 우리에게 형편 좋게돌아갈까?
항상 최악의 경우를 가정해야 한다.
생각해보자. 실제로 일어날 법한 최악의 상황은 뭐가 있지?
첫 번째로는 녀석이 말한 아지트의 위치가 엉뚱한 장소로, 거짓으로 이야기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산채로 손가락을 다지면서 고통으로 정신없게 만들고 몇 번씩이나 다시 물어봤는데 같은 대답이 나왔으니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고통으로 정신이 흐려지는 와중에도 우리에게 엿을 먹이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그런 훌륭한 정신력을 지닌 사람이 이딴 불법 노예상이나 하고 있지는 않겠지.
두 번째로는 함정일 가능성은⋯⋯. 아니, 그건 말이 안 된다.
열 명씩이나 몰려왔는데 고작 세명에게 자기들이 죽을 걸 예상하고 아지트에 함정을 판 채로 우리가 오기를 기다린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좀 말이 안 되지. 억측이다.
그러니 아르파곤에 있는 놈들의 아지트가 비어 있다는 건 진실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그곳을 점거하고 웨스트웨이에서 돌아온 검은 달 조직원들을 전부 죽이는 게 좋을까?
나탈리야의 강철 스켈레톤과 트롤 스켈레톤이라면 적어도 열 명 정도는 상대가 가능할 것이다. 게다가 실력 좋은 적이 있다 해도 스켈레톤들의 협공이나 로인의 기습을 당해내기는 힘들겠지.
두 사람의 뜨끈한 가슴에서 얼굴을 떼며 말했다.
“이러나저러나 결국 이 의뢰를 해결하고 돌아가야 뭐든 한다는 이야기네.”
“그럼 슬슬 채석장으로 이동할까요?”
“아마 한 시간 내로 도착할 거야. 여기서 되게 가까워.”
팔을 잡고 이끄는 로인에게 이끌려 피바다가 된 공터를 뒤로 한 채로 걸었다. 팔을 껴안은 두 사람의 체온에 마음이 편해진다.
팔에 느껴지는압도적인 말랑함의 폭력을 느끼며 한참을 걷다 보니 또다시 검은 달 녀석들이 생각났다.
“웨스트웨이에서 놈들이 오기 전까지 시간적 여유가 좀 있는 편이려나?”
“한성이가 녀석에게서 캐낸 정보가 사실이라면 그럴 것 같은데.”
“만약 그 정보대로라면 최소로 잡으면 칠일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있어요.”
“생각보다 여유 있는데?”
“웨스트웨이로 떠난 연락책이 도착하려면 여기서 걸어서 사일 정도가 걸리고요. 도착해서하루 쓴다고 생각하고요? 웨스트웨이에서 마차를 타고 아르파곤으로 돌려오면 이틀이니까요. 다해서 칠일 정도이에요.”
나탈리야의 말대로라면 아르파곤으로 돌아갔을 때 엘리나에게 작업 좀 치고 테르미아랑도 몸을 섞을 여유가 생긴다. 이상한 범죄자 새끼들 때문에 미녀공략계획이 늦춰지는 건 사양이다.
으음, 테르미아의 유부녀 보지⋯. 물이 많아서 좋았지. 콘돔으로 가리지 못했던 자지 기둥에닿던 질 벽의 뜨끈하고축축한 감촉이 떠올랐다.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자지로 가르고 넓히는 보람이 있는 보지였지. 꼭 콘돔 없이 자궁에 귀두를 키스해대면서 박고 싶다.
나중에 앙드레가 보는 앞에서 암캐 선언하게 만들고 질내사정해주면서 ‘패배자 실좆 남편보다 한성씨가 좋아요~’ 라고 외치게 해줄 거다.
흐으, 발기된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허억! 뭐, 뭐가?”
“한성이의 여기, 빵빵해졌는데?”
옆에서 팔을 껴안고 걷던 로인이 씨익 웃더니 내 로브 위로 자지를 쓰다듬었다.
두 사람에게 둘러싸인 채로 테르미아를 생각하며 발기하고 있다 보니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깜짝 놀랐다.
반대편에 있던 나탈리야도 내 자지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앗, 정말이네요. 역시 어젯밤에 못 한 것 때문에 그런 걸까요?”
“그, 그러엄~? 하루씩이나 못했는데 두 사람의 가슴을 계속 만지작거리니까 참기가 힘들어!”
“저런~ 불쌍해라. 한시라도 빨리 내 안으로 들어오고 싶어서 이렇게 화난 거네? 후우.”
로인이 귀에 바람을 불며 은근히 유혹했다. 아니,대놓고 유혹했다!
크르르, 못 참겠다. 로인!
“내 안에 집어넣고 아가방 쿵쿵 두드리면서 씨앗을 뿌리고 싶어서 이렇게 뿔난 거지? 그래도 조금만 더 참자?”
“왜!”
“도착했거든.”
“엥?”
로인의 말에 신경도 쓰지 않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하늘을 가리던 나무들이 사라지고 평지가 보인다. 그리고 평지를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목책이 보인다.
전체적인 첫인상은 지난번에 봤던 산림 벌채 캠프의 모습과 유사하다.
“벌써 도착했네?”
“그렇게 멀지 않다고 했잖아.”
목책에 접근하니 경비병들의 모습이 보였다.
“여기는 아르파곤 백작님 휘하의 채석장 캠프다! 용무를 밝혀라!”
“스톤 이터의 퇴치의뢰 때문에 용병 길드에서 왔습니다!”
경비병들에게 용병 패를 보여주니 문이 열렸다.
“담당자는 어디 있습니까?”
“저쪽에 제일 큰 오두막으로 가봐라.”
천막이 빽빽이 들어찬 모양새는 벌목캠프의 광경을 떠올리게 하지만 담당자가 거주하는 곳은 오두막으로 되어있다. 과연 주요 사업지 중 하나라 이건가?
오두막의 문을 두드리니 근육질의 중년 남성이문을 빼꼼히 열고는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퉁명스레 대꾸했다.
“뭐야, 몬스터 때문에 한동안은 채석은 못 한다. 그러니 일당은 못 줘. 불만이면 다른 일 하러 가.”
“아, 저희는 여기 노동자가 아니라 몬스터 퇴치 때문에 온 용병들인데요.”
용병 패를 본 담당자의 짜증 가득하던 표정이 바뀌었다.
“음? 아, 이런, 미안하오. 요즘 나한테 와서 찡찡대는 놈들이 많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