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화 〉그녀는 일류 마피아보스예요.
포헤드의 아지트에서 가까운 빈 건물에 기존 간부들을 모았다. 야밤에 소집령이 떨어진 간부들은불쾌한 기색을 내비치며 착석했다.
“이 야밤에 무슨 일로 부르신 거요?”
“피곤해 죽겠어⋯.”
노인네들답게 밤잠이 많은 것 같다. 나는 기존 간부들의 앞에 서서 마석 하나를 꺼내 보여줬다.
“이건 소리를 엿듣는 마석이오. 포헤드의 비밀 회의실에 몰래 설치해뒀지.”
“비밀 회의실에⋯?”
“혹시 우리 집에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신 간부들의 움직임이 수상해 내 부하가 숨어들어서 마석을 설치한 거니까. 간부님들의 집에는 설치돼 있지 않습니다. 하여튼, 신 간부들이 이 야밤에 자기들끼리 모였더군요. 수상하기 그지없으니 기존 간부님들께도 공유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모았습니다. 우리는 이제 한 ‘식구’니까요.”
-씨발 좆같은 년!! 이대로 그 계집년이 헤렌달을 밀쳐내고 자리에 앉으면 우리는 길거리에 나앉은 노숙자만도 못한 꼴이 될 거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타이밍 좋게 마석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격정에 가득 찬 그 소리는 간부들을 잠식하고 있던 잠기운을 쫓아내기에 좋은 자극적인 내용이었다.
“지, 지금 그 목소리는⋯.”
“헤렌달을 지지하는 간부의 목소리가 확실해⋯!”
마석에서 들려오는 불손한 내용에 기존 간부들의 표정이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싸가지 없는 놈들⋯!”
“말본새 좀 봐! 요즘 젊은것들은!”
-안 되겠소⋯. 죽입시다⋯⋯.
마석을 통해 포헤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듣던 기존 간부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오히려 잘됐는지도 모르오. 산 송장이 된 헤렌달이 보스 자리에 앉으면 우리 마음대로 주무를 수가 있소. 이 기회에 기존 간부들도 쫓아내고 우리가 독식합시다.
혀를 차던 기존 간부들의 표정이 완전히 일그러지더니 곧 터질 것같이 얼굴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끄르륵⋯! 이건 반란이야! 이놈들은 그냥 두면 안 돼!!”
“이놈들을 계속 간부 자리에 앉혀뒀다가는 조직을 말아먹겠어!!”
“나 때는 보스의 그림자도 못 밟았는데⋯!”
선동이 잘 통한다. 그리고, 전후 사정을 모르는 기존 간부들은 마석을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에 게거품을 물어가며 분개하고 있다.
“다들 들으셨지요? 헤렌달을 따르던 신 간부들은 전부 반역자새끼들입니다! 이놈들에게 정의의 철퇴를 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옳소 옳소!”
“죽여버려야 해!”
당장이라도 포헤드의 아지트에 쳐들어갈 기세로 간부들이 들고 일어서기 시작했다.
“녀석들이 반역 모의를 하는 걸 다들 들으셨지요?! 갑시다! 놈들이 모여 있는 지금이 기회입니다! 도망가기 전에 혼쭐을 내줍시다!!”
“자― 드가자!”
“배신자들에게 죽음을!”
“내 솜씨를 제대로 보여줄 시간이군!!”
내 선동에 간부들이 소매를 걷으며 뒤따르기 시작했다. 간부들과 스켈레톤들을 이끌고 포헤드의 아지트를 덮쳤다.
입구를 지키던 포헤드의 부하들과 간부들이 씨름을 하는 사이 옆에 있던 로인을 붙잡았다.
“로인. 들어가면 바로 포헤드를 죽여버리고 마석을 챙겨.”
“알겠어.”
내 지시에 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뒤에 있던 게르미가 끼어들었다.
“죽여버려? 그래도 돼?”
“그 녀석이 입을 열기 전에 죽여버리는 게 여러모로 편해.”
간부들은 신 간부들 전원이 반역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당연히 배신에 대한 대가는 죽음뿐이다. 그런데 포헤드만 살려주면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포헤드가 내 뒷공작에 의해서 간부들을 선동한거라는게 들키면 여론이 좋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놈이 입을 열기 전에 명분이 있는 지금 죽여버리는 게 가장 편하다.
요하네스가 조금 거슬리기는 하지만 굳이 신경 쓸 필요 없다.
결국 기존 간부들의 관심사는 자기들 밥그릇이다. 신 간부들에게빼앗겼던 밥그릇만 되찾아준다면 그걸로 만족하겠지.
신 간부들의 반역 모의가 공작에 의한 거였다던가 하는 이야기는 그 누구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주제니까 흐지부지될 것이다.
신 간부들이 죽는 시점에서 기존 간부들의 마음은 게르미에게 완전히 넘어올 것이다.
“이 계단으로 내려가면 배신자들이 있습니다!!”
콰앙! 쾅! 우당탕 쿵탕!
강철 스켈레톤들이 비밀 회의실의 문을 박살 냈다. 어우, 먼지.
“FBI OPEN UP!!! 이 씹새끼들, 싹 다 구속시켜!!”
문을 박살 내고 들어서니 신 간부들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우리를 바라봤다. 내 바로 뒤에 있던 로인이 재빠르게 단검을 투척했다. 아름다운 곡선을 가르며 날아간 단검이 포헤드의 목덜미에 팍 꽂혔다.
“꺼헉⋯!”
포헤드와 눈이 마주쳤다. 녀석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도대체 왜 자신의 목에 칼이 꽂힌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는 경악의 눈빛.
“저, 적습이다아!!”
“배신자들을 죽여!!”
회의실 내부가 난장판이 됐다.
배신자들과 스켈레톤들이 싸우는 틈에 로인을 이끌고 포헤드에게 다가갔다. 바닥에 쓰러져 목에서 넘쳐흐르는 피를 손으로 억누르던 포헤드가 날 올려다보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꺼헉, 허억⋯! 어, 째서⋯?”
“왜 죽이느냐고?”
“끄륵⋯!”
목덜미에 꽂힌 칼을 강제로 뽑으니 목에서 피가 줄줄흐르기 시작한다. 녀석의 눈이 뒤집히기 시작할 때쯤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오인 이상 집합 금지인데 모여있으니까 죽는 거야. 다음 생에는사회적 거리를 꼭 두도록 해라.”
오늘도 나쁜 놈 하나를 착하게 만들어버렸다. 요즘 너무 좋은 일만하고 다니는 거 같은데?
칼에 묻은 피를 포헤드의 옷에 닦아내고는 로인에게 건네줬다.
“뒤쪽도 끝났어요. 한성님.”
“고생했어. 나탈리야.”
뒤를 돌아보니 배신자들이 피를 뚝뚝 흘리며 스켈레톤들에게 붙잡힌 모습이 보였다.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야?! 우리에게 이런 식으로 굴면 보스께서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이 새끼들은 자기들의 대화 내용이 도청된 것도 모르는지 오히려 큰소리를 쳐댄다.
“배신자 새끼들이 왜 이리 당당해?”
“뭣.”
“너희들 대화 내용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알아. 뭐? 내일 점심이 되기 전에 게르미 아가씨를 죽이자고?”
“그, 그건⋯. 아가씨! 오해입니다!”
낮에만 해도 계집년이라고 욕을 하더니만 신변이 위험해지니 표정을 싹 바꾸고는 게르미에게 애걸복걸하기 시작한다.
아! 이 뻔뻔한 새끼들!! 너무 뻔뻔하다!! 감히 오인이상 집합 금지를 어기고 모여있던 주제에 오해라니!!
단속! 단속해야 해!! 착하게 만들어줘야 해!! 철들게 해줘야 한다!!
배신자들이 사정사정하는 것을 듣던 게르미가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검은 달에 배신자들을 위한 자리는 없다. 여기 있는 간부들도 너희들의 대화 내용을 전부 들었다.”
“제, 제발 목숨만은⋯!”
“죽여.”
“끄어억!!”
“커헉⋯!”
게르미의 지시에 스켈레톤들이 일사불란하게 배신자들의 등에 칼을 꽂아 넣었다.
순식간에 착한 사람이 네 명 생겨났다.
“이 배신자들이 가지고 있던 지분은 간부들끼리 원래 형태로 나눠 가져. 내일 점심때 아버지를 만날 거야 다들 날 지지해줘.”
“물론입니다. 아가씨!”
“충성충성!”
“난 역시 헤렌달보다는아가씨가 더잘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니깐⋯!”
헤렌달의 세력은 이걸로 완전히 와해했다. 그리고 기존 간부들은 전부 게르미를 지지한다. 단 한 명. 요하네스만이 포헤드의 시체와 나를 번갈아 보며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
열 명이 넘는 사람이 모였는데도 넓은 홀 내부에는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침묵 속에서 식사를 마치고 헤르겔이 먼저 입을 열었다.
“⋯⋯. 오랜만에 보는구나. 딸아.”
“오랜만입니다. 아버지.”
잠시 침묵.
오랜만에 만난 부녀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헤르겔은 게르미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산 송장이 돼버린 채 홀 한쪽 구석에 짐짝처럼 누워있는 헤렌달을 바라봤다.
“손속에 자비가 없구나.”
“이정도도 많이 봐준겁니다.”
“야수의 심장이구나. 훌륭해. 헤렌달에 비해 힘이 부족하다 싶었는데. 내가 널 잘못 본 건가? 아니면, 조직을 떠나 있던 사이에 변한 거냐?”
“독립하고 많은 걸 배웠습니다.”
“내가 널 괴물로 만들어버렸구나. 게르미.”
“⋯⋯.”
“아르파곤으로 향하는 중간 지부의 괴멸은 네가 한 거겠군?”
헤르겔의시선이 내게로 돌아왔다.
단순히 날 바라보고 있을 뿐인데도 위압감에 숨이 막힌다⋯!
“네.”
“무슨 목적으로? 처음부터헤렌달을 꾀어내기 위한 목적이었나?”
이번에는 시선이 게르미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대답은 내가 했다.
“당연하죠. 처음부터,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계획돼있었습니다.”
“호오⋯. 지부가 괴멸될 정도면 꽤 큰 피해지. 실적이 부족해 간부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던 헤렌달에게 실적을 쌓아주기 위해서 아르파곤으로 보낸 거였는데. 아주 수완이 훌륭해.”
사실 우연의 산물이지만 이럴 때 입을 털어주는 게 얕보이지 않으니 좋다.
헤르겔은 조직에 피해가 생기고 아들이 심각하게 다쳤음에도 마치 패배한 바둑을 복기하는 기사처럼 무감정하게 일어났던 사건들에 대해서만 복기하고 있을 뿐이다.
“훌륭한 부하를 뒀구나. 게르미.”
“이제 좀 만족하십니까?”
“아주 훌륭해.”
도저히 정상적인 딸과 아버지의 대화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