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화 〉 대책회의
* * *
다음 날 아침, 내 여자들이 잠에서 깨어나고 어느 정도 잠기운이 달아났을 때 필립스에게 전해 들은 정보를 공유했다.
이야기를 들은 게르미가 얼굴을 굳혔다.
“요하네스 삼촌이, 배신을?”
“게르미, 괜찮아?”
“응…. 그냥, 기분이 조금…. 그렇네.”
요하네스는 게르미에게 있어서 어릴 적부터 봐온 사람이다. 삼촌이라고 부를 정도니, 비록 깡패 새끼이긴 하지만 신뢰도가 상당히 높았겠지.
무엇보다 웨스트웨이에 왔을 때 요하네스라면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면서 가장 먼저 찾지 않았던가.
게르미가 느끼는 배신감이 상당하겠지.
침울해져서는 귀까지 축 쳐진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요하네스! 시커먼 피부만큼이나 속이 시꺼먼 깜둥이 새끼!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관상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난 녀석이 기회만 생기면 게르미를 배신할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게르미의 양손을 꼭 마주 잡아줬다. 게르미가 날 올려다봤다.
“게르미, 너에게는 내가 있어. 나만 믿어.”
“읏…. 가끔은, 믿음직하네…….”
부끄러운 듯 게르미가 고개를 팍 숙여버렸다.
필립스가 물어온 이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다.
“상납금을 받아내려고 만들어낸 이야기였는데 진짜로 배신자가 생겨버릴 줄 몰랐는걸.”
당연히 내 생각대로 찬찬히 진행될 줄 알았는데 요하네스가 헤렌달과 손을 잡고 배신할 줄은 정말로 예상도 못 했다.
어찌 보면 진작에 씨앗을 뿌려놓길 잘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쯤 요하네스의 배신은 눈치도 채지 못한 채 무방비하게 지내고 있었겠지.
그야말로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이다. 누구는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데, 나는 넘어지고도 돈을 주운 거나 다름없다. 참고로 뒤로 넘어져서 코가 깨진 놈은 요하네스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테르미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간부들에게 요하네스씨가 배신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협동해서 붙잡는 건 어떤가요?”
“배신자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은 곤란해요. 배신자를 잡아버리면 상납금을 받을 명분이 사라져 버리잖아요.”
간부들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 배신자를 심어 넣은 것은 서로 간의 의심을 심고 협동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배신자를 잡았다는 사실을 다른 간부들에게 알리는 것은 곤란하다.
“뭣보다 다른 간부들이 필립스의 말을 믿을지도 의문이고요.”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필립스를 전면에 내세운 뒤에 ‘얘가 배신하는 걸 들었다던데요?’라고 한다고 다른 간부들이 믿어줄 리 없다.
결국, 확실한 증거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살인 모의에 대한 증거를 어떻게 잡아야 할까.
“공격하는 녀석을 잡아야 하려나?”
“응.”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요하네스가 노리는 것은 헤르겔과 게르미다. 그리고 아마 게르미와 한패인 우리도 겸사겸사 같이 노릴 것이다.
하지만 게르미를 공격하는 건 엘레나에게서 거미 여왕을 받아 온 뒤에 한다고 했으니 거미 여왕을 데려오지 않는 한 우리를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면, 요하네스가 선제적으로 노릴 대상은 헤르겔이라는 결론이 자연스레 나온다.
“헤르겔을 언제 공격하느냐를 알아내는 것이 관건인데. 너희들 생각은 어때?”
“으음….”
각자 턱을 괴거나, 팔짱을 끼거나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생각에 몰두한다. 로인이 감은 눈을 뜨면서 말했다.
“공격해오는 목적을 일단 생각을 해보자.”
“목적? 목적이라…. 필립스에게 들은 바로는 헤르겔과 게르미에게 복수를 원하는 헤렌달이 사주했다고 했지. 게르미와 헤르겔이 죽으면 혈육인 자신이 물려받게 될 모든 사업체를 넘겨주겠다고 했고.”
헤렌달은 요하네스에게 헤르겔과 게르미의 살해를 사주했다. 동기는 복수심. 헤렌달에게는 세력도 뭣도 없다. 그러니 녀석의 중요도는 높지 않다. 중요한 건 사주를 받은 요하네스다.
그가 원하는 것은 게르미와 헤르겔이 가진 모든 사업권이다.
“헤르겔은 게르미에게 조직과 사업체를 물려주고 나면 수도로 올라간다고 했지.”
게르미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고 나면 헤르겔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사실상 그를 죽이는 행위는 요하네스에게 있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데도 위험을 무릅쓰고 헤르겔을 죽여야 하는 이유는 헤렌달과의 약속 때문이다.
그러니 요하네스는 최대한 조용히, 은밀하게, 헤르겔을 죽이고 싶을 것이다.
“게르미에게 모든 권한을 이양하고 난 뒤 수도로 올라가기 전이나 올라가는 와중을 노리지 않을까? 그때가 되면 사실상 은퇴한 거나 다름없으니까 다른 간부들의 관심도 적어질 테고 호위들도 데리고 다니지 않을 거 아니야.”
“아니면 차라리 헤르겔씨한테 요하네스의 배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어떤가요?”
나탈리야의 말에 골똘히 생각해봤다. 요하네스가 자신을 죽이려는 걸 알게 된다면 헤르겔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사전에 정보를 얻어낸 게르미의 유능함에 감탄할까? 아니, 모르겠다. 어떤 행동을 취할지 예상을 할 수가 없다.
헤르겔에게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얻는 이득은 뭐가 있지?
헤르겔의 호감?
이미 게르미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기로 약속이 돼 있다. 굳이 그의 호의를 더 받아봐야 이득이 없다.
오히려 정보를 알게 된 헤르겔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 모르니 돌발적인 변수에 반응할 수 없다.
그리고 헤르겔의 변화에 요하네스가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필립스에게 얻은 정보들이 무용지물이 돼버린다.
요하네스는 자신의 정보가 새어 나갔는지 의심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내부에 집어넣은 정보원인 필립스가 위험해진다.
녀석이 죽은 말든 상관은 없지만, 정보원이니까 아깝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득이 없다. 아니, 오히려 손해다.
“으음…….”
그렇다면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원래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다.
이번 주가 끝나는 날 헤르겔은 게르미에게 모든 권한을 이양하고 은퇴를 할 것이고 요하네스는 헤르겔이 도시 밖으로 빠져나가자마자 죽이려 들것이다.
그때를 노려 등장해서 요하네스의 계획을 저지할 수 있다.
무엇보다 확실한 배신의 정황을 현장에서 잡을 수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보를 공유해서 얻는 이득보다 공유하지 않고 얻는 이득이 더 많다.
나탈리야의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되면 헤르겔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 알 수가 없어. 헤르겔에게는 비밀로 하자. 내 예상으로는 헤르겔이 도시를 벗어나고 난 뒤를 노릴 것 같아.”
“이동한다면 마차로 이동할 테고 수도로 가는 길은 동쪽 성문을 나가는 길뿐이니까. 도시를 나간 뒤 헤르겔을 공격하는 녀석을 잡자는 거지?”
게르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어떤 행동을 할지는 예상이 되네.”
호구 새끼들 행동이야 손바닥 꿰뚫듯 훤하다. 요하네스를 잡는 천사백만 개 이상의 미래가 보인다.
“이미 이긴 싸움이야. 이제 고민할 건 배신의 증거를 잡고 난 뒤인데….”
무엇보다 확실한 배신의 증거를 잡고 나면 그것을 어떻게 이용해야 좋을까.
요하네스를 요리해 먹을 생각에 벌써부터 군침이 살살 돌기 시작한다.
“배신자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 안 되니까 요하네스의 배신을 간부들에게 알리지는 않을 거죠?”
“네. 그래야죠.”
“아니면 아예 녀석이 헤르겔을 공격하기 전에 녀석을 암살해버리는 건 어때?”
“암살?”
내 질문에 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전에 한번 녀석의 집에 들어가 본 적이 있으니까 숨어드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게다가 간부 중 한 명이 죽는다면 다른 간부들도 배신자의 존재를 좀 더 위험하게 느낄 거 아니야. 그러면 한성이 네가 원했던 대로 간부들이 더 겁을 먹지 않을까?”
로인의 제안에 턱을 쓰다듬었다.
나는 간부들이 모든 것을 의심하기를 바란다.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도 겁먹길 바란다. 껍질에 몸을 숨긴 거북이처럼 움츠러들고, 위축될수록 더더욱 내 말을 믿고 따를 것이다. 그러기에 놈들을 위협할 정체를 알 수 없는 배신자가 필요한 것이다.
“아니, 암살은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아.”
“왜? 나 못 믿어?”
로인이 칭얼대듯 안겨 왔다. 압도적으로 부드러운 가슴이 하반신에 맞닿아 뭉개지자 옆에서 바라보던 게르미가 꼬리를 빳빳하게 세웠다.
“떠, 떨어져! 회의 중이잖아!”
“헤으응…. 로인, 그렇게 가슴을 문지르면 지능이 낮아져 버려.”
“앗, 그러면 안 되지….”
위험했다. 손으로 만질 때는 머리가 잘 돌아가지만 자지에 닿으면 이야기가 다르다. 섹스만 생각하게 돼버리니까.
급하게 고개를 도리질 쳐 잡념을 떨쳐냈다.
“로인이라면 충분히 숨어들어서 녀석을 죽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그건 너무 과해.”
“과하다니?”
“눈에 띄지 않는 배신자의 존재는 간부들에게 충분한 위협이 돼. 녀석들이 서로 의심하고 보스인 게르미에게 의존하기 쉬워져. 하지만 간부 중 누군가가 죽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녀석들은 다음엔 자기가 죽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 테고 그 두려움은 배신자를 잡지 못하는 보스, 게르미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그러면 요하네스가 헤르겔을 공격할 때까지 죽일 수 없다는 이야기야?”
“그렇지. 잡고 나서도 정체를 밝히면 상납금을 거둘 수가 없으니까 손해가 심해. 그러니까 최대한 이득을 보려면 헤르겔을 공격한 걸 약점으로 잡아서 이용해야지.”
녀석의 약점을 틀어쥐고 골수까지 뽑아먹겠다.
어떻게 이용할지는 천천히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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