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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4화 〉 배신자의 최후 (214/314)

〈 214화 〉 배신자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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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머릿속에는 헤르겔이 죽기 전 했던 말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욱여넣으며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해봤다.

후회, 후회로 점철된 말들이었다. 자신의 잘못된 삶을 후회했다.

그 후회는, 피해자들에 대한 죄책감에서 비롯된 걸까? 아니면 자식을 잃었다는 허망함에서였을까?

헤르겔이 범죄를 저지르고, 조직을 키워온 이유는 가족이 부족함 없이 살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수많은 암투를 치르고 조직을 성공적으로 불려 나갔다. 적은 늘어만 갔고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의미인 가족을 지키기가 버거워졌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가족에게 사랑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모순되는 행동을 해야만 했다.

결과적으로, 인과관계가 역전되어버린 것이다.

가족을 편히 살게 해주기 위해 만들고 덩치를 키운 조직의 존재가 가족을 위협하게 된 것이다.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자식들은 당연히 부모를 사랑할 줄 모르고 가족은 피만 이어졌을 뿐인 무미건조한 관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나하나 이유를 따지자면 결과적으로 가족을 지키기 힘들었다는 것이 모든 일의 원흉이 된다.

가족을 지킬 힘이 있었다면 조직을 운영하면서도 화목한 가정을 꾸릴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 애당초 돈이 많았다면 조직 같은 걸 꾸릴 필요도 없었을 테지. 조직을 꾸리지 않았다면 어제와 같은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금 정리가 되는 기분이다.

인생에는 답이 없다지만 결국 우중충한 생각, 철학적인 고민은 대부분이 돈만 있으면 해결된다.

누군가는 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고 이야기한다는데. 그야말로 좆까는 소리다. 그딴 소릴 하는 놈은 이미 배가 부른 새끼가 틀림없다. 당장 죽 끓여 먹을 쌀도 없어서 주린 배를 움켜잡고 있으면 헐리우드의 대 배우가 기르는 호화생활을 누리는 개새끼가 부러워질 것이다.

공원 벤치에 앉아서 모기에게 뜯겨가며 우는 것보다는 자동차 벤츠 운전석에 앉아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우는 게 훨씬 낫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그딴 복잡한 개똥철학을 생각하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니다. 인생이 뭔지 생각하기 이전에 오늘 하루가 행복해야 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편안한 침대에 누워서 예쁜 미녀들과 몸을 섞으며 불만 없이 살면 그딴 쓸데없는 고민 따위는 하지 않겠지.

인생의 의미 같은 걸 고민하기에는 24시간이 모자라다. 궁상맞게 있을 생각은 없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요하네스의 상태도 확인해야 하고 트리시안에게 정보도 넘겨줘야 한다. 그러고 나면 아르파곤으로 돌아가 엘레나를 만나야 하고 엘리나와 릴리아나도 자빠뜨려야 한다.

눈앞에 산적한 현실적인 문제들에 집중하도록 하자.

“으음, 잘 먹었다.”

밥을 다 먹고 나니 배부르다. 역시, 배부른 돼지 새끼가 더 낫다. 인생의 의미고 뭐고 그런 철학적인 고민은 나랑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건 거북하기만 하다. 부담스럽다.

“일어나셨습니까. 아가씨.”

“응…….”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게르미가 눈가를 비비며 식당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게르미, 더 안 자도 되겠어?”

“응…. 이런 상황에도 배는 고프네….”

“그…. 두 사람은 나탈리야가 뒤쪽 정원에 묻어드렸대.”

“……고마워.”

“…….”

게르미의 인사에 나탈리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좀 쉴래? 급한 불은 다 껐으니까.”

“아냐…. 어차피 수도로 올라갔어도 앞으로 볼일 없었을 사이인걸. 그냥…. 다를 거 없어….”

식탁에 앉은 게르미의 앞으로 메이드들이 음식을 내왔다. 게르미는 애써 자신에게 타이르듯이 말했다.

수프를 숟가락으로 휘젓던 게르미가 한숨을 푹 쉬었다.

“하아…. 진짜 기분 이상하네…. 처음에는 죽일 생각까지도 하고 있었는데. 그 며칠 잘 대해줬다고 정이라도 쌓인 건가….”

확실히, 게르미와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헤르겔을 죽이겠다고 말했었다. 게르미가 수프를 휘젓던 숟가락을 멈추며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필립스랑 한 약속은 지켜주질 못했네.”

“헤렌달을 직접 죽이게 해달라 했던 거?”

“응.”

“상황이 상황이었는데, 일개 조직원이 뭐라 하겠어?”

해봐야 요하네스 뒤치다꺼리나 하던 놈인데 그런 놈이 불만을 품어봐야 아무짝에도 소용없다.

“그건 그렇지….”

“여기 메이드들은 어떻게 할 거야?”

힐끔, 뒤에 있던 메이드 두 명을 바라봤다. 고참으로 보이는 무뚝뚝해 보이는 메이드와 그 후임으로 보이는 앳된 느낌의 메이드였다. 둘 다 얼굴이 제법 예쁘장하다.

“두 사람은 헤르겔이 고용했던 사람들인데…. 건물을 관리할 사람은 필요하니까. 두 사람 다 계속해줄 수 있어요?”

“네.”

“문제없습니다! 오히려 여기만큼 돈을 많이 주는 곳이 없어서요…. 이왕이면 계속하고 싶달까~”

고참으로 보이는 메이드는 여전히 무뚝뚝하게 대답했고 후임으로 보이는 메이드는 다소 밝게 대답했다.

고참 메이드가 후임에게 눈치를 줬다.

“베리.”

“앗, 죄송합니다. 비비앙 선배님. 괴롭히는 사람이 사라지니까 기뻐서 저도 모르게.”

“…….”

“흡….”

비비앙이 계속 눈치를 주자 베리가 입을 다물었다.

*****

검은 달로 출근하자마자 간부들과 다른 조직원들을 모았다. 필립스의 간부 임명식을 진행하기 위해서다.

중앙 홀에서 조직원들을 둘러보던 게르미는 옆에 필립스를 세워놓고는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필립스는 이번 요하네스 배신 사건에서 내부 고발자로서 큰 공을 세워….”

게르미의 옆에 빳빳하게 선 필립스는 긴장이 가득한 눈으로 정면만을 바라보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요하네스가 고문받고 있을 지하로 내려갔다.

둥근 형태의 지하 계단을 밟고 내려갔다.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철문이 굳게 서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지린내에 숨이 막혔다.

“흐읍….”

“아, 한성님! 이 누추한 곳에는 무슨 용무로…!”

간수 한 명이 반겨줬다.

“고생이 많군. 요하네스의 고문이 잘 되고 있는지 확인하러 왔다.”

“안내하겠습니다!”

간수를 따라 물이 질퍽하게 흐르는 복도를 걸어가자 양옆의 감옥에 갇혀있는 거지새끼들의 얼굴이 보였다. 하나같이 물에 젖은 생쥐 꼴인데다가 눈가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이 새끼들 왜 이리 젖어있어?”

“밤중에 주기적으로 물을 뿌렸습니다.”

“물?”

“잠을 못 자게 하려고요. 냄새가 나는 것도 있고.”

“흐음….”

그러고 보면 사람을 고문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이 잠을 못 자게 하는 거라고 했던가.

“이 안쪽에 있습니다. 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그래.”

간수가 복도 안쪽의 철문을 두드려 노크를 한 뒤 문을 열어줬다.

문이 열리며 비릿한 혈 향이 감돌았다.

“이번엔 피 냄새군….”

문이 열리며 고문 기술자의 뒤통수가 보였다. 그의 어깨너머로 의자에 묶여있는 요하네스의 모습이 보였다.

“어흐흑…. 제, 제발 그마안….”

“키히힛, 간부씩이나 됐던 양반이 고환 좀 터뜨렸다고 여자애처럼 울어서야 쓰겠어~? 피가 너무 많이 흐르면 안 되니까 특별히 헝겊을 붙여줄 게~ 내 손은 약손~”

“용서해주세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렇게 어린 양처럼 울면서 빌면 또 꼴리잖앗~!”

“와우….”

요하네스의 몰골은 처참했다. 완전히 발가벗겨진 채로 철제 의자에 팔다리가 묶여있는 상태였는데 풍성하던 머리카락은 죄다 잡아 뽑았는지 머리카락 대신 피딱지가 머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고 손발톱은 전부 들려있었다. 얼굴과 가슴팍에는 뭔지 모를, 굳이 정체를 알고 싶지 않은 하얀 액체들이 묻어있다.

거기에다가 다리 사이로 뜨끈한 피가 줄줄 흐른 자국이 있다. 고문 기술자가 터뜨린 고환에서 흐르는 피를 막기 위해 지혈 중이었다. 터져버린 불알 안쪽으로 천 쪼가리를 쑤셔 넣고 있다.

“고문 기술자. 수고가 많군.”

“아, 한성님이십니까. 집중하느라 오신 줄도 모르고 있었군요.”

“…….”

뻐드렁니에 심각한 들창코인 고문 기술자가 나를 보자마자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알몸의 등짝이 보였다.

이 새끼 왜 알몸에 검은색 가죽 앞치마만 입고 있는 거야? 왜 여자처럼 콧소리를 내는 거지? 게다가 남자면서 손톱은 검게 칠했다.

선 넘네…….

그나마 이 세계에서 알몸 에이프런으로 내 눈을 처음으로 호강시켜준 게 테르미아여서 다행이다.

하마터면 소중한 알몸 에이프런 첫 경험이 이 새끼에게 빼앗길뻔했다.

“목표 달성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나?”

“내일 아침까지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내일 아침? 어제부터 하고 있던 거 아닌가? 잠도 안 자고 하는 건가?”

“예! 이 새끼 옛날부터 저한테 구박을 많이 했던 새끼거든요. 이날을 얼마나 기다려왔던지♥”

“이 씨발, 하트 쓰지 마!”

“앗, 죄송합니다.”

내 호통에 고문 기술자가 중후한 목소리로 사과했다. 콧소리와의 대비가 극명하다.

못생긴 남자 새끼가 말끝에 하트가 묻어날 것 같은 꿀 떨어지는 말투를 하니 토가 쏠린다. 심지어 이 새끼는 그냥 못생긴 게 아니다.

놀랍도록 못생겼다. 생기다 말았다. 틀리게 생겼다. 그 어떤 수식어를 가져다 붙여도 모자랄 얼굴이다.

취산렬이라는 전설적인 오르크는 얼굴만으로 웃겼다던데 이 새끼는 얼굴만으로 구토를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하는 행동까지 끔찍하다. 내 부하가 아니었다면 바로 죽여버렸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알고 있겠지? 죽이는 건 안 돼. 백치로 만들어야 한다.”

“예~, 물론입죠!”

다시금 콧소리를 낸다. 진짜 듣기 싫은 목소리다. 이런 새끼랑 같은 방에서 이틀? 오우 씨발, 정신 나갈 것 같아. 정신 나갈 것 같아!

“손톱도 다 뜯어버렸고, 고환까지 터뜨렸군. 이제 어떻게 고문할 생각이지? 과다 출혈로 죽으면 안 되니 상처를 너무 늘려도 안 될 텐데?”

“이제 이걸 쓸 생각입니다.”

고문 기술자가 날카로운 못을 꺼냈다.

“그걸 어디다 쓰려고?”

“이렇게요~”

“끄아아아아아악!!!!”

날카로운 못이 손톱이 들려 드러난 쭈글쭈글한 피부에 맞닿았다. 요하네스가 온몸을 비틀며 비명을 질렀다.

예전에, 장난을 치다가 손톱이 깨져본 적이 있어서 안다. 손톱 밑 사람의 피부는 정신이 나가버릴 정도로 예민하다.

고문 기술자는 요하네스의 손톱을 들어버린 뒤 그 빨갛고 쭈글쭈글한 피부에 날카로운 쇠못을 대고는 손가락으로 꾸욱 누르고 있다.

“끄아아아아!! 아아악!!!”

“오호호호호!!! 좀 더! 좀 더 비명을 질러!”

“아아아아아악!!!!”

“더 높게!”

무슨 소프라노 가수 교육이라도 하는 건지 고문 기술자는 요하네스가 비명을 지를수록 더 크게 웃으며 쇠못을 강하게 눌렀다.

쇠못으로 인해 쭈글쭈글한 피부가 팽팽해졌다. 피부를 뚫고 들어가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한계까지 누르고 있다.

“더! 더! 더 높게 질러!”

“끄아아아!!”

푸욱. 쇠못이 가죽을 뚫고 들어갔다. 한계까지 팽창됐던 피부가 다시 쭈글쭈글해졌다.

핏방울이 못과 피부 사이로 스멀스멀 맺혀 나왔다. 요하네스가 지르는 비명에 비해 핏방울은 개미 오줌만큼 묻어나왔다.

요하네스의 손가락 끝에 쇠못을 박아넣은 고문 기술자는 요하네스의 입가에 귀를 가져다 대고는 데스 메탈 록 가수처럼 고개를 위아래로 미친 듯이 흔들었다.

“으음~ 듣기 좋아. 아아, 좀 더 비명을 질러줘! 날 위한 그 비명을 더 들려줘! 아아, 쌀 것 같아! 몸에다 뿌려도 되지? 그렇지?!”

고문 기술자는 몸을 가리고 있던 앞치마를 옆으로 치우고는 한껏 발…. 어우, 씨발 못 보겠다. 너무 더럽다.

미친놈과 미쳐가는 놈의 합주를 등진 채로 고문실을 빠져나왔다. 우리 안에 갇혀있는 노예들은 고문실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두렵다는 표정으로 내 등 뒤의 철문을 바라봤다.

“아무 일도….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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