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6화 〉 경비대장이 한숨쉬는 이유는?
* * *
트리시안의 질문에 별생각 없이 적당히 대답하고는 뭔가 이상함을 느껴 잠시 입을 다물었다.
검은 달이 웨스트웨이 근방에서 납치를 자행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검은 달은 납치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선언 후에도 실종사건이 벌어졌다.
실종사건의 정체는 드레이크다.
드레이크는 최근에 이 근처에 온 것이다.
그러므로 검은 달이 사람을 납치할 때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사실의 나열이 무엇을 증명하는가.
이번 실종사건은 과거부터 벌어져 온 일이 아니다.
즉, 과거에 있었던 모든 실종사건은 검은 달의 소행이다…?
트리시안의 의문대로 웨스트웨이 근방에서 벌어진 모든 실종사건은 검은 달의 소행이라는 결과로 귀결되는 것인가?
그것은 너무 억측이 아닌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까마귀의 역설이나 마찬가지다. 비약이 너무 심하다.
“음…. 아닌가…?”
“왜 아니라고 생각하지?”
“‘과거의 검은 달’은 규모가 상당히 큰 범죄 조직이었습니다. 사람도 많이 납치했고요. 그렇다고 해서 도시 근방에서 벌어지던 실종사건이 전부 검은 달의 소행이냐 묻는다면 그건 아무래도 억측이겠죠….”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트리시안이 내 대답을 묘하게 끈덕지게 물고 늘어졌다. 평소 같으면 짜증을 냈겠지만, 트리시안의 질문이니 성심껏 고민하며 답변했다.
“숲속에서 사람이 사라진다고 해서, 그게 전부 검은 달의 소행이 된다는 거는 억측이죠. 그 사람이 어딘가의 구덩이에 빠져서 돌아오지 못한 것일 수도 있는 거고, 늑대나 다른 짐승에게 공격받아서 죽었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예전에 검은 달의 배신자인 요하네스를 내게 건네줄 때 장부를 같이 건네줬었지. 기억하나?”
“아, 물론이죠.”
기억하고 있다.
검은 달이 몰래 유통한 마약과 납치한 사람들을 어디에, 얼마에 팔았는지, 그렇게 해서 얼마나 되는 검은돈을 벌어들였는지를 기록했다.
그리고 검은돈을 뇌물로 써서 경비대의 어떤 간부들에게 언제부터 얼마를 넘겼는지까지, 전부 기록해둔 범죄 장부였다.
그 장부의 내용은 나탈리야와 게르미가 조작해서 검은 달이 벌인 모든 범죄행위를 요하네스와 그 일가에게 뒤집어씌웠다. 그렇게 함으로써, 검은 달이라는 거대한 조직을 세탁하는 데 성공했다.
트리시안은 내게 건네받은 장부로 경비대 내부의 배신자들을 처단하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경비대장의 자리에 앉는 것이 가능했다.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맡은 물건이었다. 그러니 잊을 수가 없다.
“실제로 실종된 사람들의 명단과 검은 달이 벌여온 납치 행각에 당한 희생자들의 명단이 맞지 않더군.”
“맞지 않다……?”
“검은 달이 납치한 사람보다 실제로 실종된 사람이 더 많았다.”
“그렇다면 방금 말한 게 확실하겠네요. ‘숲속에서 길을 잃었다.’ 혹은 ‘몬스터나 들짐승에게 공격받았다.’ 이 숲속에 사람을 죽을만한 괴물은 얼마든지 있잖아요.”
“혹, 너희가 건넨 장부가 모자란 것일 가능성은?”
“그럴 일은 없어요. 그 장부에 적힌 것은 가감 없는 진실들입니다. 내용에 모순이 없다는 건 직접 읽어 보셨을 테니 알 수 있잖아요?”
장부의 내용을 요하네스가 벌인 것으로 약간의 조작을 하기는 했으나, 숫자를 바꾸지는 않았다.
트리시안도 그것에 대해 인정하는 지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렇다면 너희 이외의, 다른 조직이 있을 가능성은?”
“불가능합니다. 검은 달은 웨스트웨이 뿐만이 아닌, 왕국의 서부를 주름잡는 조직이에요. 검은 달이 있는 곳에 다른 범죄조직을 내버려 뒀을거라 생각합니까?”
안 그래도 불법적인 사업은 확장성이 작다. 다른 조직이 있으면 밥그릇이 너무 작아진다는 것이다. 기를 쓰고 다른 조직을 제압하고 매음굴과 마약, 인신매매를 독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즉, 검은 달 외에는 납치를 벌일 만한 집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음….”
트리시안은 뭔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듯, 내 말에 꼬리를 잡고 싶어 하는 듯한 기색을 보이며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녀의 태도가 묘하게 끈덕지다.
“대체 뭐가 문제에요? 실종사건은 해결됐잖아요. 이번에 벌어진 실종사건은 드레이크의 소행이고, 과거에 있었던 실종사건은 검은 달의 소행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불행한 사고일 거예요.”
“음…….”
내 대답에 트리시안이 앓는 소리는 냈다.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왜? 실종사건의 진상을 알게 됐고 적당한 형태로라도 해결됐으니 기뻐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왜 이렇게나 트리시안은 개운치 못한 표정을 짓고 있지? 무언가 불편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애당초, 나는 트리시안을 꼬시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그녀에 대해서 아는 것이 너무 없다.
정보가 없다면, 그녀에게 호감을 쌓기란 어렵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 자신의 정보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생각한다. 그녀에 대한 정보를 되새겨 본다.
처음, 그녀는 검은 달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그리고 검은 달의 수장인 헤르겔의 사위였던 나에 대해서도 당연히 적대적이었다.
적대적이었던 인상을 이제야 호감은 느낄 정도로는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녀가 검은 달에 대해 적대적인 이유가 뭐였을까?
인과율.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 그녀가 검은 달을 적대하게 된 계기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첫 번째로 떠오르는 것은 직업에 따른 사명감이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가 경비대에 속한 사람이고 검은 달이 범죄 조직이니까 적대적이라는 것은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사람의 행동에는 전부 계기가 있다.
사람들이 직업을 가지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다.
그래, 경비대원이라는 직업 따위, 결국에는 돈을 벌기 위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 이전의 경비대장이나, 그 외 다른 간부들은 검은 달에게 뇌물을 받아먹었다.
직업의식 같은 뜬구름 잡는 도덕적 개념을 돈보다 중요시하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 리 없다.
하지만 트리시안은 검은 달에게 뇌물을 받지 않았다.
그녀의 혈통을 생각하면 돈 때문에 곤란해하는 일은 좀처럼 없겠지.
그러니 뇌물을 받지 않은 게 틀림없다.
사명감이 아니라면 두 번째로 떠오르는 것은 정의로운 성격이다.
그녀가 다른 간부들과 이전 경비대장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검은 달을 적대시한 이유가 정의감 때문이라면?
트리시안은 타협하지 않는 성격이고, 영지민들이 사라지는 일에 대해서 예민하게 반응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영지민들이 영주의 사유재산 같은 개념이기 때문이지, 그들의 죽음에 연민을 느껴서는 아닐 것이다.
그저 무뚝뚝하게 맡은 일을 처리하는 기계 같은 여자니까.
애당초 트리시안은 정말로 정의로운 사람인가?
정의롭다는 건 무슨 개념이야? 정의? 올바른 마음? 올바르다는 게 뭔데?
옳고 바르다? 옳고 그름을 누가 정하는데?
눈이 하나뿐인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서는 눈이 두 개인 쪽이 비정상이잖아.
정의 같은 허울만 좋은, 빛 좋은 개살구 같은 개념 때문에 트리시안이 검은 달을 적대했다?
나라면 그런 짓은 절대로 하지 않을 분더러 정의라는 것의 구분도 모호하다. 이 가설은 폐지다.
세 번째. 개인적인 원한.
이건 그럴듯하다.
아니, 그럴듯한 수준이 아니라 지금까지 생각한 것 중 가장 설득력이 있다.
원한이라는 것만큼이나 확실히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은 이 세상에 없다.
그렇다면 원한을 이유로 생각해보자. 그녀가 검은 달에 원한을 가지고 있는 이유?
검은 달은 범죄 조직이다. 여기저기서 원한 살 일쯤은 얼마든지 했겠지.
가령, 트리시안과 친분이 있던 사람을 납치했다던가.
…….
스스로 말해 놓고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래, 친분 있던 사람이 실종됐다면, 트리시안이 검은 달에 대해 가지고 있던 적대감이 설명된다.
좋아. 트리시안이 검은 달에 대해 가지고 있던 적대감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대충 알 것 같다.
그렇다면 그녀가 어째서 ‘실종사건’이란 것에 집착하고 매달리는지다.
트리시안이 했던 말들을 되뇐다.
일치하지 않는 실종된 사람들에 대한 명단과 장부에 적힌 납치한 사람들의 명단.
예전부터 벌어져 온 실종사건인가에 대한 과도할 정도의 집착.
아아, 대충 알 것 같다. 퍼즐 조각이 너무나도 깔끔하게 맞춰진다.
남은 것은 내 추측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오답 체크만 하면 끝날 일이다.
“트리시안씨. 혹시 옛날에 친분 있는 사람이 실종된 겁니까?”
“……음, 어디에서 들었나?”
내 질문에 트리시안이 팔짱을 낀 채 무뚝뚝하게 반응했다.
“생각을 조금 해봤어요. 트리시안씨는 과거, 검은 달에 대해 상당히 적대적이셨고 지금은 경비대장이라는 직책에 있음에도 실종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직접 움직이고 있잖아요. 게다가 실종사건에 대해서도 과거에 일어난 일인지 아닌지 과도하게 집착하고 있으시니까요.”
“……흠. 그런 정보들만으로 거기까지 추측한 건가?”
“네. 저 한성은 이 정도의 정보만으로도 이 정도의 추리가 가능하답니다. 어떠신지요?”
자신만만하게 미소를 지었다.
자, 내게 진실을 말씀하시지. 너의 그 철벽같은 태도를 무너뜨리고 벗겨내 속살을 맛보고 음미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