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2화 〉 쪽쪽 빨아 먹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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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의 승리 공식은 단순하다.
좋은 ‘품질’의 물건을 ‘싼값’에 ‘대량’으로 공급한다면 시장에서의 전쟁은 반드시 승리한다.
말이야 쉽지만, 보통의 경우 이 삼 원칙은 여러 가지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너무나도 지키기 어려운 일이 된다. 하지만 그것은 역으로 이야기하면 삼 원칙만 준수한다면 절대로 질 수가 없는, 너무나도 단순하고 명쾌한 진리가 된다는 이야기다.
저렴한 가격은 인건비의 감소와 돈이 많이 들지 않는 원자재의 수급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애당초 공장에서 원단을 만드는 노동력은 전부 노예들이다. 노예들에게는 월급이 필요 없으니까 녀석들이 먹을 음식만 제공하면서 팍팍 굴리면 되고 원자재인 실은 거미들에게서 뽑아낸다.
거미들은 거미 여왕이 얼마든지 낳아주니까 노예들과 마찬가지로 먹이만 공급한다면 문제도 없다.
대량 공급?
노예들을 잔뜩 들여왔으니까 그것도 문제없다. 돈이 늘어나면 그 돈으로 방직 기계를 더 사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수요를 공급이 감당할 수 있다.
삼 원칙 중 두 가지는 ‘노예’라는 존재들로 너무나도 간단하게 달성할 수 있다.
이렇게만 놓고 본다면, 노예란 이 얼마나 경제 시장의 기반을 떠받쳐주는 믿음직스러운 존재들이란 말인가! 링컨! 당신이 틀렸어!
그렇다면 남은 것은 품질이다.
하지만 그것 또한 걱정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품질에는 자신이 있었다.
테르미아가 만든 원단은 내가 살던 현대 지구의 물건과 비교해도 절대로 뒤떨어지지 않는 훌륭한 품질을 가진 천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테르미아의 뛰어난 실력도 영향이 있겠지만, 원자재의 품질이 나쁘다면 결코 그런 결과물은 나올 수가 없다.
거미의 실은 좋은 원자재다. 그것을 이용한다면 좋은 품질의 물건을 만들 수 있다.
난 그렇게 판단했다.
하지만 지금 공장에서 가져온 원단은 테르미아가 만드는 원단에 비해 훨씬 품질이 떨어진다. 면을 이루는 실의 구성이 촘촘하지 못하다. 아니, 정확히는 어디는 촘촘하고 어디는 엉성하다. 일정하지 못하다.
기껏 좋은 재료를 썼는데 이런 결과물이어서야 곤란하다.
그렇다면 이런 결과물이 나온 원인은? 좋은 품질의 원자재를 썼는데 결과가 이렇게 나온다면, 그 원인은 도대체 무엇인가?
“노예들의 숙련도 문제인가요?”
“음…. 가르치기는 충분히 가르쳐놨다고 생각해요. 제가 가르쳐준 대로만 한다면 이렇게 형편없는 물건이 나올 리는 없을 텐데….”
테르미아가 이유를 모르겠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애당초 천을 짜는 일에 있어서 테르미아는 20년 경력의 프로다. 문제가 있었다면 이런 결과물이 나오기 전에 그녀가 진작 알아챘겠지.
여기서 그녀들에게 물어봐야 원인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아침이 되자마자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다른 여자들과 함께 공장으로 향했다.
“오셨습니까!”
“응, 수고가 많아.”
공장을 지키고 있던 조직원들이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들에게 적당히 대답해주고는 테르미아를 뒤따라 공장으로 들어갔다.
한쪽 구석에 하루 동안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원단들이 빼곡히 쌓여있다. 어제 테르미아가 들고 왔던 일부분과 마찬가지로 엉성하고, 일정하지 않은 형편없는 원단들이다.
모처럼의 좋은 원자재를 이렇게 낭비하다니. 아깝다.
“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방직 기계에 앉아 퀭한 눈으로 천을 짜고 있는 노예들이었다.
하나같이 썩은 동태 같은 눈깔을 하고는 똑같은 반복 작업만을 하고 있다.
그리고 조직원들 몇몇이 방직 기계 사이사이를 돌아다니고 있다.
노동 중인 노예들과 그들을 감시하는 간수들.
이것만 놓고 본다면, 이 공장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인다.
노예들이 덜커덩 소리를 내며 작업 중인 나무로 만들어진 방직 기계도, 똑같은 동작만 반복하면 되는 그야말로 단순 노동의 반복일 뿐이다.
내 우려와 달리 노예들의 숙련도 문제는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원단의 품질이 그 모양이란 말인가??
“이 새끼가!”
“아악!”
조직원 한 명이 고함을 치며 노예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 무슨 일이지?”
“아, 예. 여기 노예가 졸고 있어서 정신 차리라고 때렸습니다.”
“…….”
애당초 노예는 동급의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으니까 이렇게 대하는 조직원의 태도는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노예들의 분위기가 묘하게 거슬린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죽기 직전의 화초와 같다.
“음…. 여기 노예들, 너무 기운이 없는 것 같은데?”
기운은 둘째치고 노예들이 하나같이 지금 당장이라도 죽을 듯한 기색이다.
“흐아아암…….”
근처에 있던 노예 하나가 입을 쩌억, 벌리며 크게 하품을 한다. 저쪽에는 조는 녀석도 있다고 했고, 하품하는 녀석도 있고, 하나같이 눈이 퀭한 것도 거슬린다.
“여기 노예들, 하루에 몇 시간씩 일해?”
내 질문에 게르미가 두 눈을 끔뻑거렸다.
“응? 18시간씩 시키고 있어.”
“18시간?!”
“뭘 그렇게 놀라? 노동력을 최대한 뽑아내려면 그 정도씩은 시켜야지.”
솔직하게 놀랐다. 하루 18시간 일을 시킨다면 밥도 제대로 안 먹이고 잠도 제대로 안 재운다는 이야기다.
이 세상은 화장실의 구조 같은 건 묘하게 현대적인 주제에 이런 노동법적인 것에서만 중세다운 세상이라는 걸 드러낸다.
노예들은 이렇게 험악하게 다루는 게 당연하다는 게르미의 태도에 새삼, 나와의 기본 인식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아무리 나쁜 놈인 척을 해도, 결국 나는 인권이라는 것이 보장된 사회를 살아온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진짜의 광기!
“그러면 노예들이 잠자는 나머지 6시간은 공장이 가동하지 않는다는 거지?”
“응, 맞아.”
비효율적이다. 이렇게 굴리는 건 너무나도 비효율적이다!
아무리 기계를 똑같이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단순 노동이라 해도, 숙련자와 비숙련자 간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
일에 익숙한 베테랑 노예들이 많아져야 생산량도, 품질도 더욱 늘어날 것이다.
지금처럼 노예들을 쥐어짜면 과로사로 뒤지는 녀석들이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다.
노예들을 혹사하는 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난 이 녀석들을 더욱 장기간 굴리며 뼛속의 골수마저 빨아먹어야 한다.
“운영 방식을 바꾸자.”
“운영 방식을? 어떻게?”
“노예들은 하루 12시간 2교대로 오전, 오후 나눠서 근무하게 하는 거야.”
“뭐? 하루 12시간씩 일하는 팀을 두 개로 나누라는 거야?”
게르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기가 알아들은 게 맞냐고 되묻는다.
“그렇게 하면 노예들이 하루에 12시간씩 쉬잖아. 거기에 숫자는 두 배가 되는데 이 녀석들 밥값만 더 드는 거 아니야?”
게르미가 내 의견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사장이란 직종들은, 부르주아라는 존재들은 언제나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에 생리적인 반발감을 느낀다.
처음으로 주 5일제를 시행한다고 했을 때도, 많은 기업이 망한다며 곡소리를 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생산성은 늘어났다.
쉬는 시간이 늘어난다고 생산량이 줄지는 않는다. 반대로 일하는 시간이 늘어난다고 해서 생산성이 늘어나지도 않는다.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 줄여서 워라밸. 그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다.
노예들을 아무리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다고 해도 근본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이다. 사람은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지만 일할 수 있다. 적절한 휴식, 적절한 식사. 그것이 노예들의 노동력을 늘리는 열쇠다.
“아니, 게르미 생각해봐.”
“어떤 걸?”
“12시간씩 2교대로 시키면 지금처럼 공장이 하루 6시간씩 쉬는 일이 발생하지 않겠지?”
“음…. 일단은 그렇지?”
“공장을 24시간 쉬지 않고 가동할 수 있어. 게다가 지금 일하는 녀석들을 봐, 졸음에 빠져서 일하니까 결과물로 나오는 원단의 질이 엉망진창이지. 우리는 일정한 품질의 물건을 뽑아내야 해.”
“응….”
“지금처럼 잠도 안 재우고 밥도 제대로 안 먹이면 금방 과로로 죽는 녀석들이 나올 거야. 그러면 일을 다시 가르쳐야 하잖아. 일에 숙달된 녀석들이 늘어야 해. 이 녀석들에게 적절한 휴식 시간과 적절한 음식을 제공해줘. 그러면 생산량도, 품질도 올라갈 거야.”
“그런가…?”
게르미가 아리송한 표정이다. 과연 그게 해결책이 되겠냐는 듯한 표정.
“언제 내 말 들어서 손해 본 적 있어?”
“그건…. 그렇네….”
마지못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게르미에게서 시선을 돌려 방직 기계를 다루는 노예들을 바라봤다.
지금은 퀭한 눈으로 하품을 쩍쩍해대며 일하고 있지만, 조만간 두 눈 똘망똘망한 상태로 최상의 품질을 가지 원단을 뱉어내게 해주겠다.
흐흐, 이 새끼들, 내가 아주 골수까지 쪽쪽 빨아 먹어주마. 과로로 죽는 것도, 졸음으로 품질을 저해하는 행위도 용납할 수 없다.
푹 자고, 배불리 먹으면서 늙어 죽을 때까지 일만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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