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01화 〉 가 족같은 회사 (301/314)

〈 301화 〉 가 족같은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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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검은 달의 간부들은 자존심이 강하다.

간부들의 막내인 데니안도 내가 알기로는 마흔은 넘을 것이다. 평균 연령이 중년은 넘었을 이 늙은 무리는 하나같이 자신의 주먹으로 웨스트웨이의 뒷골목에서 자신의 조직을 만들어 한 자리씩은 차지했던 사내들이다.

그런 그들을 병합할 수 있었던 것은 헤르겔이 가진 무력이 상당했다는 증거다.

비록 노숙자 무리에게 불시의 습격을 당해 죽기 직전까지 갔다고는 하지만, 그 늙은 몸으로 수십 명의 습격자 중 열 명 정도를 길동무로 삼을 수 있었던 것만 봐도 젊었을 적에 어땠을지는 짐작이 간다.

이야기가 조금 다른 곳으로 샜지만, 아무튼 이런 사람들은 자존심이 강한 것은 당연지사. 무시당하는 것도 참지 못하고 허영심도 상당하다.

즉,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서 자존심을 조금만 긁어주면 원하는 대로 조종하기 수월하다.

그렇기에 간부회의를 소집했다.

“간부님들도 아시다시피 이번에 새로 뽑은 원단들은 매음굴의 창관에 우선하여 배치를 해뒀습니다.”

“음, 봤네. 품질이 상당히 좋더군. 그런데 창관에 배치한 이유는 뭔가?”

“홍보를 위해서입니다.”

물론 내가 직접 팔기 위한 거래처를 얻기 위한 홍보다. 이놈들이랑은 관련 없다. 관심을 돌리자.

“아무튼, 여러분도 판매하실 거래처는 미리미리 준비해놓으셨겠죠? 여유 기간이 제법 길었는데, 설마 지금까지 거래처도 준비 못 하신 무능한 분이 존재하지는 않겠죠?”

“어, 어?”

“당근이지! 이미 거래처는 준비해 뒀어!”

“흐흠….”

반응은 각양각색. 아직 거래처를 준비 못 했다는 듯 당황하는 간부도 있고, 이미 준비는 끝내놨고 현물만 오면 된다는 듯이 반응하는 사람. 아직은 확실하지 않은지 팔짱을 낀 채 말을 아끼는 사람 등….

간부들에게 원단을 판매해야 하지만, 조금이라도 값을 올려서 받아야 한다. 그래야 이놈들을 말려 죽이기가 쉬워진다.

하지만 사전에 약속해놨던 게 있다. 간부들에게는 싼값에 판매하겠다고 이야기했으니 무턱대고 비싼 값을 받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자기들끼리 경쟁을 부추겨서 가격을 올리게 만들어야 한다.

“공장은 가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단은 이미 만들고 있죠.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

“그게 무슨 소리인가?”

“문제라니, 무슨 문제가 있는 거지?”

오랜만에 하는 간부회의지만, 여전히 반응들이 활어처럼 좋다. 이러면 사기 칠 맛이 난다.

“거래처도 열어놓으신 간부님들이 설마하니 쩨쩨하게 적은 양만 사실 리도 없을 테고…. 당연히 대량으로 사들이실 텐데, 간부님들의 요청을 따라서 공평하게 동시에 공급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선별해서 먼저 공급받으실 간부님을 정해야 하는데….”

곤란하다는 듯이 말꼬리를 흐린다. 나는 순서를 정할 수 없으니 너희들이 알아서 정하라고 넌지시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렇게 던진 떡밥을 반응 좋은 호구 하나가 물었다.

헤르겔의 의형제이자 조직의 이인자였던 요하네스 다음으로 발언권이 있었던 간부다.

“그런 거면 당연히 짬 순으로 해야지! 내가 이 짬에 나중에 받아야 하나?!”

짬 순이니 뭐니 말해도, 하나같이 10년이 넘게 본 사이들이다. 보스인 게르미가 아니라면 권위 같은 것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짬 순으로 받자고 하면 서열이 밀리는 뒤 순서들이 당연히 반발한다. 반으로 나누어져서 서로 다투게 된다.

“형님! 그건 불공평해요! 저도 집에 토끼 같은 마누라와 여우 같은 자식들이 기다리고 있다고요! 돈줄을 양보할 수는 없습니다!”

“맞아요. 맞아!”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40살이면 좆대가리에 있던 피도 다 말랐어요!”

좋아. 예상했던 대로 다투기 시작했다. 물론 반발해서 분열을 일으키는 것은 간부 중 막내인 데니안이다.

막내인 그로서는 짬 순으로 받자고 하면 당연히 꼴찌 순위가 돼버린다. 이 제안에 대해 반대할 명분은 충분하다.

그리고 그는 공장을 설립할 때 대부분의 자본금을 지원해줬다. 그 대가로 받기로 한 것은 원단을 판매해서 나오는 순수익의 10%였다.

당연히 그로서도 원단을 비싼 값에 팔아야 자신이 받을 돈이 늘어난다. 그래서 그와는 사전에 이야기를 맞추어놨다. 지금 그는 바람잡이 역할이다.

짬 순으로 원단을 공급받자는 제안에 목에 핏대를 세우며 거세게 반발한다. 그러다가 내 쪽으로 홱! 고개를 돌렸다.

“짬 순이라니, 그런 거 저는 인정 못 합니다! 한성님! 10%! 원단 구매가에 10%를 더 얹어드리죠. 어때요. 제게 먼저 파시죠?”

“뭣. 이 자식이! 그럼 난 11%! 11%를 더 얹겠네!”

“그런 식이라면 나는 12%를 더 얹겠소!”

저마다 원단의 가격을 올려 치며 자기가 먼저 받겠다고 아우성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이 원단의 가격상승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앉았다. 데니안이라는 바람잡이를 심어두기는 했지만, 가격은 자기들이 올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나를 원망하는 사람은 없겠지.

간부들 사이의 경쟁에 불이 붙은 것을 확인하고는 데니안이 슬쩍 빠졌다. 그러며 힐끔 날 바라봤다.

좋아. 그는 바람잡이 역할을 훌륭히 해줬다. 이젠 내가 힘을 쓸 차례다.

“자, 15%, 15% 나왔습니다! 더 없으신가요? 원단의 품질과 가격을 생각하면 이 이상 내셔도 시장에서 상품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합니다!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보다 가장 먼저 판매할 수 있는 거예요! 독점, 독점이라고도 하죠? 시장에서 독점 판매의 이점을 가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굳이 설명해 드리지 않아도 이해하시겠죠?”

굳이 설명하지 않는 이유는 나도 잘 몰라서다. 이럴 때는 사람의 상상력을 적당히 자극해주면 알아서 편하게 생각하기 마련이다.

간부들은 주먹다짐으로 지금의 자리에 올라온 사람들이다. 게다가 그들의 돈줄은 매음굴과 마약 거래 같은 것뿐이다. 원단 판매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들은 전문적인 장사꾼이 아니라는 것이다. 양지에서의 장사에는 서투를 것이다.

장사에 서투르다는 이야기는 공장에서 나오는 원단이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가격에 팔아야 적절한 가치를 가지는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장사치로서의 감각이 부족한 그들은 지금 당장 자기 옆에 있는 다른 간부보다 먼저 현물을 손에 넣어 독점 판매한다는 권리에 눈이 돌아가 버렸다.

“이잇! 20% 20% 더 얹겠어! 어때! 이래도 나보다 먼저 살 거야?!”

“음, 20% 이상 더 얹으실 분 없나요?”

회의장 내부가 조용해졌다.

아무래도 그 이상은 부담스럽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뭐, 좋다.

“그럼 1순위는 정해진 것 같고…. 2순위는 누가 하실 겁니까?”

“뭐…?”

“2순위?”

간부들이 두 눈을 끔뻑거린다.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는 기색이다. 이 놈들, 눈치 없이 왜 모르는 척 할까?

“간부님들, 지금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인데…….”

몸을 벌떡 일으키며 책상에 손을 턱, 얹고는 몸을 살짝 숙여 앞에 앉아있던 간부들을 내려다봤다.

“지금 더 받은 20%는 원단의 가격이 아닙니다. 1순위로 받겠다는 권리를 사신 거예요. 1순위 간부님께 공급을 끝냈다고 해서 다른 간부님들께 동시에 공급하는 건 여전히 불가능하다는 거 아시잖아요? 2순위로 받겠다는 권리도 사셔야지요.”

“그, 그렇게 되는 건가….”

“그렇긴 하군…. 틀린 말은 아니야…….”

권리를 사고판다. 내 말에 간부들이 충격을 받은 듯한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도 값을 매겨 팔 수 있다니 참으로 마법 같은 일이다.

“돈을 더 안 내시면, 원단을 받는 날이 하루 이틀 늦어진다고. 손가락 빨면서 다른 간부님들이 원단 파는 모습을 보기만 할 겁니까? 늦어지면 원단을 팔 곳이 없어져 버릴지도 몰라요?”

팔 곳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이 말은 확실한 기폭제가 됐다. 초조해진 간부 몇몇이 서둘러 가격을 부르기 시작했다.

“휘유, 대단하네…. 팔기로 했던 물건은 똑같은데 가격이 잔뜩 올랐어.”

결과를 받은 게르미가 작게 휘파람을 불며 고개를 끄덕였다.

“간부들에게 원단을 싸게 팔겠다는 약속은 지키면서 가격은 더 올려받았어. 그 가격도 본인들이 더 내겠다고 한 거니까 문제 될 건 없어. 다음은 녀석들의 거래처가 어디인지 알아내는 거야.”

“아, 그건 문제없어. 한성이 네가 말해줬던 대로 예전에 심어뒀던 첩자들을 활용할 거야.”

간부들에게 심어둔 첩자. 필립스와 마찬가지의 처지에 있던 자들이다. 간부가 배신할지도 모른다고 말해주며 잘 감시하라고 일러뒀던 이들이다. 그들은 여전히 별것 없는 자신에게 관심을 두는 조직의 보스인 게르미에게 직접 충성하고 있다.

당연히 간부의 수족이 되기보다는 보스인 게르미의 수족이 되고 싶어 하고 있으니까 당연하다.

그들은 간부를 따라다니며 감시하고 있으니까 간부들이 어디의 상인과 거래할 것인지 알 것이다. 그들에게 정보를 받아내면 된다. 그때까지 물건은 풀지 않는다. 물건의 공급은 전부 우리 쪽에서 조절하고 있으니까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간부들의 거래처와 접촉하면, 우리는 간부들이 제시하는 금액보다 싼 값에 팔 것이다. 상인들도 당연히 원출처인 우리에게서 더욱 싼 값에 사들이고 싶어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서 물건을 구매한 간부들은 악성 재고를 붙들고 있는 꼴이 된다.

그걸 잘 활용해서 놈들의 돈의 원천인 매음굴을 하나씩 매입해 나가며 빈털터리로 만들 것이다.

목적은 헤르겔이 원하던 것과 똑같다. 간부들이 가지고 있는 사업체를 빼앗는 것. 하지만 과정은 전혀 다르다.

헤르겔처럼 억지로 빼앗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경제적인 압박을 가하며 빼앗는 거다. 돈이 얽혀있다면 명분도 충분하다.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느긋하게 진행하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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