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5. 고백 - (7)
살면서 여자가 화장실이 아닌 곳에서 오줌을 지린 것을 마지막으로 본 건 초등학생 시절이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고, 성인이 된 지금.
나는 또 다시 눈 앞에서 여자가 실금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것도 내 여자친구가.
“흑! 읏! 으읏…! 하으읏…!!!”
지혜가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지혜의 보지가 울렁거리며 내 손을 불규칙하게 쪼기 시작하여, 나는 그녀가 절정에 다다랐음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손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 응?’
줄줄줄.
…
지혜가 오줌을 지리고 있었다.
“지…, 지혜야?”
“…하아…, 흐읏….”
지혜는 완전히 탈진한 상태로 축 늘어져서 내게 몸을 맡기고 여운을 즐기고 있었다.
그 때, 그녀의 방광에 남았을 마지막 한 줄기의 오줌이 마저 새어나왔다.
주륵.
“…”
바닥을 타고 퍼져나가는 투명한 액체를 보자 일단 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 조졌다.”
지혜를 내려두고 일어나 방금 내 몸을 닦은 수건을 바닥에 펼쳐두었다.
“… 세상에나.”
…
시오후키?
이걸 뭐라고 해야할 지 도저히 모르겠다.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여자 중에서 정말 기분이 좋으면 실금을 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고 들었는데 지혜가 그 중 하나일 지는 상상도 못 했다.
사람이 정말 당황스러운 상황이 찾아오면 오히려 냉정해지는 법이다.
아니, 다른 생각을 하며 현실에서 도피를 하는 법이다.
내가 지금 그 상황인듯 했다.
나는 일단 바닥을 퍼져나가는 지혜의 오줌으로 보이는 액체를 닦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아, 그래도 생각보다 안 노랗네.
아, 냄새는 안 난다. 다행이다.
아, 장판이 울지는 않겠다.
와 같은 한가로운 생각들이었다.
다른 수건을 하나 더 챙겨와 바닥에 내려놓는 순간, 지혜와 눈이 마주쳤다.
“…”
“…”
방금까지의 풀려있는 눈이 아닌, 조금은 정신이 돌아온 듯한 눈이었다.
마치 막 잠에서 깬 듯 여전히 몽롱한 눈이였지만, 지혜의 눈빛이 빠르게 평소의 상태로 돌아왔다.
“… 난 괜찮아, 지혜야. 진짜 신경 안 써도….”
“… 씻고 올게.”
“… 어.”
지혜는 일어나 바로 샤워실로 들어갔다.
쾅!
“…”
어떤 말로 위로해야할지 모르겠다.
‘… 진짜 조졌네.’
쏴아아.
지혜가 문을 닫고, 샤워기를 틀자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오기 전에 다 치워놔야겠다.’
민망한 상황이였다.
아마 나만큼 지혜도 그럴 것이다.
아무 일 없다는듯이, 그냥 아무 일 없었다는듯이 넘기고 싶었다.
바닥에 흐른 지혜의 오줌을 다 닦은 뒤 수건을 어디다 둬야하나 고민하고 있을 무렵, 화장실 문이 열렸다.
“… 성준아.”
“어?”
“… 수건 줘…. 지금 바로 빨아버리게.”
“… 어.”
문틈 사이로 손만 살짝 내민 지혜에게 수건을 건넸다.
…
어색함 때문에 미칠 것만 같았다.
그 때, 지혜가 먼저 말을 꺼냈다.
“… 괜찮아?”
“어?”
“… 미안해…, 이런 일이 생겨서….”
“아냐, 괜찮아. 크게 신경 안 써….”
지혜의 목소리는 조금 이상했다.
살짝 울먹거리는 목소리였다.
“… 울어?”
“… 아냐, 나 씻을게.”
지혜가 다시 문을 닫으려는 순간, 문틈으로 손을 뻗었다.
“악!”
팔뚝이 문 사이에 끼어서 아팠지만, 다행히도 지혜가 문을 완전히 닫지는 않았다.
“… 야! 괜찮아?! 거기에 손을 왜 넣어….”
당황한 지혜가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져있었다.
“… 맞네, 우는 거.”
“… 몰라.”
지혜가 뒤돌아서서 훌쩍였다.
“… 왜 울고 그래, 속상하게.”
“…”
이럴 때에 말 재주가 없는 게 너무 답답했다.
“… 같이 씻을까?”
“좁아…, 바보야.”
지혜의 목소리는 여전히 살짝 울음에 젖어있었다.
말재주가 없었기에 나는 그냥 몸이 이끄는 데로 움직였다.
내가 지혜를 뒤에서 껴안자 그녀가 내 손을 잡았다.
“… 놔. 씻어야 해.”
“좀 이따가.”
“… 감기 걸려.”
“자기 울음 그치면 나갈게.”
“… 씨이, 흑…. 히이잉….”
그 말이 트리거가 된 듯, 지혜가 시원스레 울기 시작했다.
그녀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지혜를 껴안고 조금씩 몸을 좌, 우로 움직였다.
“왜 울고 그래….”
“그치만…, 흐윽….”
지혜가 계속 코를 훌쩍이며 제대로 말도 못 했다.
“… 자, 코 풀어. 흥 해.”
“흥!”
코에 손을 올리자 지혜가 코를 풀었다.
음.
왠지 어린애 보는 느낌이었다.
샤워기를 틀어 손을 씻고는 몇 번 그런 일을 반복하자 지혜는 차츰 진정했다.
“… 괜찮아?”
“… 어. 너무 울어서 눈 아파….”
“… 코는?”
“응. 코도 막혀서 숨 쉬기 힘들어.”
“풉, 그래.”
지혜의 코가 살짝은 빨개져 있었다.
나는 샤워기를 틀어 물 온도를 확인하고 지혜의 얼굴에 물을 뿌렸다.
“… 씻어. 눈 붓겠다.”
“응….”
지혜가 물로 얼굴을 열심히 닦아낸 뒤에야 샤워기의 물을 껐다.
“… 좀 진정됐어?”
“… 응.”
“그러게 왜 울고 그래…, 놀랬잖아.”
“…”
지혜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 나 이제 못 살아. 죽을래.”
“…야.”
“하, 못 살아. 진짜….”
지혜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거지, 뭐.”
“… 괜찮아?”
“뭐가?”
“… 니 앞에서 그… 그런 거.”
“내가 그거 치우기까지 했는데?”
“아악!! 말하지 마.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마.”
“… 그래.”
“… 나가. 씻고 나갈게.”
“어.”
“아니다, 자기가 먼저 씻어. 자기 또 젖었잖아. 그리고…”
지혜는 문득 내 손을 바라봤다.
“… 찝찝할 거 아냐.”
“… 금방 씻을게.”
“어….”
이미 한 번 씻었기에 몸만 대충 씻고 빨리 나왔다.
밖에 나오니 지혜는 이불보와 배게피를 갈고 있었다.
“걔네는 왜?”
“… 얘네도 젖었어.”
“오줌에?”
“야! 그 말 하지 마. 진짜….”
“미안. 근데 지혜야, 그렇게 신경 안 써도 되는데….”
“아악!! 조용. 더 말하지 마.”
“… 네.”
“얌전히 누워있어.”
“… 어.”
지혜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샤워를 하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나는 지혜의 말을 따라 얌전히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보다가 문득 지혜가 왜 베개피와 이불보를 갈았는지 알아차렸다.
‘아…, 아까 그거구나.’
지혜를 묶어두고 침대 위에서 할 때, 그녀가 베개에 머리를 쳐박고 있었다.
침이나 땀 같은게 신경 쓰였을 거다.
이불보도 지혜가 워낙 젖었던거나 내가 땀을 흘린 것도 있을테니 갈았다고 생각하니 이해가 갔다.
“… 어렵네.”
원래라면 내일 바다를 보러 가기로 했는데 이렇게 되니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나야 뭐 상관은 없지만, 지혜가 크게 신경을 쓰는 모양이다.
도대체 어떻게 달래줘야하나 걱정하고 있을 무렵, 화장실 문이 열렸다.
“… 자기.”
“어?”
“… 나 좀 도와줘.”
“뭐?”
“… 나 속옷 안 가져왔어.”
“나와서 입어도 되잖아.”
“… 싫어.”
오늘은 가능한 지혜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순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딨는데?”
“… 저기. 주방 가는 길에 서랍장 있지? 제일 아래에.”
“제일 아래….”
지혜의 말대로 가장 아래 서랍장을 열자, 그 안에는 가지런히 정리된 속옷들이 있었다.
“오…, 지혜 너 되게 꼼꼼하다.”
브래지어는 브래지어끼리, 팬티는 팬티끼리.
거의 각이라도 잡아둔 것처럼 깔끔하게 정리된 속옷 서랍을 보며 나는 감탄했다.
그리고 한편으론 좀 놀랬다.
지혜가 평소 나랑 만날 때 입는 속옷들은 하나같이 좀 야시시한, 레이스 재질의 속옷들이었으나 여기 있는 것들은 조금 밋밋한 것들이 다수였다.
“아무거나 주면 돼?”
“… 아니. 제일 오른쪽에 검은색 팬티랑 베이지 색 브라 줘.”
“어.”
지혜가 말한 두 속옷을 건네주자 그녀는 또 속옷만 받고 다시 화장실 문을 닫았다.
아니, 닫으려고 했다.
“… 손 넣지 마?”
“안 넣어. 얌전히 누워있을게.”
“… 응.”
내 대답을 들은 뒤에야 지혜는 천천히 화장실 문을 닫았다.
그리고 또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지혜가 나왔다.
내가 몸을 돌이키려던 차에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뒤돌아보지 마.”
“… 어.”
“이거 안 예쁜 속옷이라 안 보여주고 싶어.”
“그래.”
뒤돌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혜가 예민해진 상태니깐 궁금증을 참고 핸드폰만 바라봤다.
스륵스륵.
지혜가 옷을 입는 소리가 나더니 잠시 후 그녀가 말했다.
“이제 뒤돌아봐도 돼.”
“…”
돌아본 지혜는 머리엔 수건을 감싼 상태로 위에는 넉넉한 사이즈의 하얀 티를, 아래에는 털 재질의 수면 바지를 입고 있었다.
“… 아쉽네.”
“뭐가?”
“아니, 자기가 속옷 차림으로 집에서 돌아다니는 거 보고 싶었는데.”
“만날 때마다 보면서.”
“일상 생활이랑 따로 만난 거랑은 다르잖아.”
“… 나중에 봐. 곧 생리할 수도 있어서 안 예쁜 팬티 입었단 말야.”
“그런 것도 있어?”
“어. 생리 팬티.”
“… 뭐가 달라?”
“자기 팬티랑 비슷해. 그리고…”
지혜가 바지를 살짝 내려보였다.
“보이지?”
“… 특이하게 생겼네.”
지혜가 말한 생리팬티는 배꼽 아래까지 올라와있었다.
“…어. 별로 안 예쁜 건 보여주기 싫어. 자기, 나 머리 말리는 거 도와주라.”
“그래.”
지혜가 화장대에 앉자 나는 드라이기를 잡았다.
위이잉.
내가 드라이기를 들고 있으면 지혜는 수건으로 머리를 꾸욱꾸욱 누르며 천천히 머리를 말렸다.
“… 여자들은 그런 거 불편하겠다.”
“머리 긴 거?”
“어. 아침마다 오래 걸리겠네.”
“익숙해지면 괜찮아.”
“하긴 그렇겠다.”
다행히도 지혜는 이제 아까 일은 안중에도 없는듯이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혹시나 지혜가 계속 멘탈이 일그러진 상태면 어쩔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그렇진 않았다.
“이제 됐어. 자기 먼저 침대에 누워있어.”
“그냥 옆에 있을래.”
“… 화장품 좀만 바르면 돼.”
“알았어.”
지혜가 무언가를 하나씩 꺼내서 얼굴에 바르고, 바르고, 바르고, 또 발랐다.
“… 그렇게 많이 발라?”
“자기. 피부는 무조건 돈이야. 돈을 많이 들여야 좋은 피부가 나오는거야.”
“…”
새삼스레 여자들 참 힘들게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대에 가 있을게.”
“어.”
문득 피곤함이 몰려와 시계를 확인했다.
“… 벌써 12시 다 됐네.”
“… 그러게. 슬슬 잘꺼야?”
“그래야지.”
“어. 먼저 이불 덮고 있을게?”
“응, 금방 갈게.”
다시 침대에 들어가 이불을 덮었다.
문득 아까 지혜가 내 속옷을 들고 있던 게 떠올랐다.
‘… 지혜가 쓰던 이불이라…’
나는 티나지 않게 이불을 머리 위까지 끌어올리고, 숨을 들이쉬었다.
‘… 좋네.’
뭔가 푸근한 냄새였다.
지혜가 풍기는 살내음과는 또 조금 달랐다.
맡다보면 묘하게 진정되는 냄새라 계속 코를 박고 있는 와중.
“… 자기? 자?”
“어? 아니.”
“… 이불을 왜 머리까지 덮어 쓰고 있어?”
“저… 전등이 눈 부셔서.”
“… 그래?”
탁.
지혜가 스위치를 끄자 세상이 어두워졌다.
잠시 후, 그녀가 침대에 들어와 내 등을 껴안았다.
“… 이렇게 자게?”
“… 어.”
내가 지혜를 껴안고 잘려고 했는데 역으로 지혜가 나를 등에서 껴안고 있으니 묘하게 불편함이 느껴졌다.
“… 내가 껴안으면 안 돼?”
“… 안 돼.”
지혜가 내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 자기 냄새 좋다.”
“…”
“그래서. 이불 냄새 맡고 있었어?”
갑자기 지혜가 훅 들어왔다.
“… 알고 있었어?”
“숨을 그렇게 쉬면 누구나 알 지 않을까?”
“… 그냥. 우리 집이랑 다른 세재 쓰는구나 싶어서.”
“그래?”
지혜는 내 등에 코를 박은 채,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스읍~. 자기집 세재 냄새도 좋은데?”
“… 고마워.”
“풉, 뭐가 고마워.”
“… 그냥. 칭찬해줘서?”
“히힛.”
지혜가 내 등에 대고 웃자 등이 간질간질했다.
“… 오늘 실망했어?”
“뭐가?”
“… 그냥. 오늘 있었던 일들.”
지혜가 나를 껴안는 힘이 조금 더 강해졌다.
“… 난 무서워. 자기가 나한테 실망했을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