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0화 〉7. 해피 뉴 이어 - (1) (60/163)



〈 60화 〉7. 해피 뉴 이어 - (1)

신발장에서 신발을 신은 뒤, 나는 지혜를 바라보며 인사했다.


“나 진짜 간다?”

“응….”

“이번엔 옷 잡지 마.”

“히힛…. 알았어, 나도 참을게.”


“일루와.”


내가 팔을 벌리자 지혜가 내게 푹 안겼다.

“하아…, 다음 주까지 어떻게 참아야하냐….”

“… 그러게.”

신발장에서 벌써 10분 째 이러고 있다.

가겠다고 신발을 신었다가, 물만 마시겠다고 신발을 벗고는 다시 들어갔다.

가겠다고 다시 신발을 신었다가, 화장실만 들리고 가겠다고 다시 들어갔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 진짜 갈게.”

“알았어. 빨리 가. 안 그러면 나 또 옷 붙잡는다?”


“알았어.”

이젠 진짜 가야한다.


기차 시간이 아슬아슬할 거 같아서 결국 포기하고 돌아서 문고리를 잡았다가


“지혜야.”


“응? 흐읍...”


뒤돌아서 지혜에게 키스했다.


입을 떼는 순간에도 아쉬워 끝까지 지혜의 아랫 입술을 빨았다.

“쮸웁…. 하아…, 진짜 갈게.”


“응…. 잘 가. 가는 길에 연락하고.”

“어. 연락할게.”

쿵.

“…”

문이 닫힌 지혜의 자취방을 바라보다가, 다시 계단을 내려가던 차.


“… 자기.”


“어?”

“… 요 앞까지만 같이 가줄게. 정류장까지만.”

“괜찮아?”

“응응. 다 나았어, 진짜로. 열도 없어 이젠.”

“… 일루와 봐.”

지혜가 계단을 내려오자 나는 그녀의 목에 손을 대봤다.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이제 열은 거의 없었다.


“… 혼자 돌아올  있어?”

“야. 여기 내가 사는 동네거든.”

“… 알았어. 정류장까지만.”

“응, 정류장까지만. 히힛.”

내가 손을 뻗자 지혜가 내 팔에 안겼다.


“… 이러면 늦어.”


“늦으면 택시 타고 가면 되지.”


“그럴까?”

“히힛. 그래, 자기 늦을 거 같으면 내가 택시타고 같이 가줄게.”

“대구까지 같이 내려가지 그래?”

“그럴까? 좀 고민되는데….”

“…야. 고민하지 마. 진짜 오게?”

“못  것도 없지.”


“… 그래. 대신 오늘은 말고.”


“알았어. 다 나으면.”

“그래.”


밖으로 나오자 살짝은 추웠다.

문득 지혜가 걱정이 되었다.

“괜찮겠어?”


“응, 잠깐이잖아.”

“옷 더 두껍게 입고 오지.”


“나 이거도 충분히 두껍거든.”


지혜는 털 잠옷에 패딩, 그리고 맨발에 슬리퍼로 나왔다.

“… 발 안 시려?”

“괜찮아.”


“내 신발이라도 신을래?”

“자기는 맨발로 걷게?”

“그게 나을 거 같은데.”

“히힛, 마음만 받을게.”

마음이 심란했다.

정류장까지 향하는 길이 조금이라도 더 길면 좋겠다는 생각과 짧으면 좋겠다라는 정반대의 감정이 공존하는 복잡한 마음이었다.


“아, 맞다. 자기, 어쩌다 온 거야?”


“응?”

“무슨 일 있었어?”


“아….”

“무슨 일 있었구나!”


“…”


그제서야 나는 왜 지혜 집까지 오게 되었는지 떠올랐다.

“… 어떻게 알았어?”


“자기가 그렇게 충동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라서?”


“내가?’


“응. 날 보고 싶어하면서도 참을 때는 참을  아는 자기잖아.”


“그런가?”

“성욕이 그렇게 세면서도 2주씩이나 참아오는 거 보면 딱 알지.”


“…”

“그래서 무슨  있었어? 누나가 위로해줄까?”


지혜는 조금 으스대며 말했다.

“… 다ㅅ… 권다솔한테 고백받았어.”


“뭐?! 진짜?!!”


골목길에 지혜의 높아진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생각보다 큰 목소리가 튀어나와서 지혜도 놀랐는지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와…, 대박. 걔도 너 여자친구 있는 거 알잖아?”

“… 둘이 만나기도 했지.”

“그러니깐.  진짜 용감하다….”

“… 화 안 나?”

“응? 내가?”


“… 어.”

솔직히 조금 걱정했지만, 막상  예상과 다르게 지혜는 기분이 나빠보이지 않았다.


놀란 표정이 커서 그렇지, 오히려 조금은 좋아보였다.

“전에 내가 걔 봤잖아. 다솜이 맞나?”


“다솔.”


“어, 그래. 다솔이. 걔 제법 이쁘더라.”


“… 그래?”

“응. 어린애라서 풋풋한 게 보기도 좋았고.”

“… 그런가?”

“자기랑 조별과제하면서 지낸 시간도 제법 길었겠네?”


“… 그치.”

“근데 그런 거 다 상관없이 나 고른거 아니야.”


“어.”


“그러니깐 내가 기분 나쁠 게 뭐가 있어? 어리고, 예쁘고, 학교도 같아서 자주 볼 수 있는 애가 고백한 거 거절하고 나한테 와줬는데?”

“…”


그 말을 듣자 발걸음이 멈췄다.


“윤지혜.”

“말해도 돼.”

“뭐라고 할지 알아?”


“또 나한테 반했다, 그런 거 하려고 했지?”

“… 어떻게 알았어?”

“봐봐, 우리 성준이. 감동 받은  아주 그냥 눈에 보여. 음~ 쪽.”

지혜가  볼을 감싸고는 소리나게 입을 맞췄다.


“그래서 확실하게 걷어 찼어?”

“… 어. 아마?”


“뭐라고 했는데?”

“… 고백해준 거 진짜 고마운데, 나는 지금 사귀는 여자친구가 너무 좋다고. 결혼까지 하고 싶다고….”

“오~, 조금 감동인데?”

말하는 나는 조금 민망했지만, 지혜는 기분좋아 보였다.

“그래서  보러 왔어?”

“… 어. 갑자기 엄청 보고 싶더라. 근데 그 때 네가 문자도 보냈길래….”


“히힛.”


지혜가 내 품에 안겼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었다.


“예전의 내가 부끄러워.”

“… 뭐가?”

“내가 자기한테 한 번 그러지 않았나? 나는 자기랑 지나가는 인연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거.”

“… 그랬었지. 그랬나?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  취소. 난 이제 자기 없이 못 살 거 같아.”


“… 나도 그래.”

“히힛, 그럼 더 좋고.”

지혜를 껴안고 잠시 멈춰서서 그녀의 체온을 즐기던 차, 골목길의 끝에서 버스가 지나가는 게 보였다.

“… 버스 정류장 다 왔나보다.”

“벌써?”


“… 그러게.”


문득 우리가 온 골목길을 돌아봤다.


그렇게 어둡지는 않지만, 조금은 걱정됐다.

핸드폰을 꺼내 시계를 보니 아직 10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 다시 돌아가자.”

“응?”


“골목길 어둡잖아. 너 바래다주고 나는 다시 오면 되지.”


“안 돼. 자기 진짜 늦어.”

“… 그래?”

“응. 그러니깐 딱 여기서 헤어지자.”

“…”


지혜가 내 품에서 떨어지자 차가운 바람이 가슴을 시리게 했다.

“…  갔다간 내가 진짜 자기따라 대구 갈 거 같아.”

“아깐 그러자메?”

“잠옷 입고 가긴  그렇잖아.”


지혜가 난처한  웃으며 자신의 잠옷 바지를 당겼다.

“… 그렇네.”


“그러니깐 여기까지만.”


“알았어, 여기까지만.”


“히힛.”

지혜가 내 손을 붙잡고 꼼지락거리다가, 이내 손을 놓았다.


“오늘 얘기해줘서 고마워.”


“고백 받은 거?”


“어. 그리고 날 선택해준 것도 고마워.”

“… 뭐래. 너 외에 다른 선택지 한 번도 생각해본  없어.”

“고민도 안 해봤어?”

“어.”

“단 한 순간도?”

“단 한 순간도.”

“… 후회 안 하겠어?”


“응?”


지혜는 고개를 숙이고는 맨 땅을 발바닥으로 차기 시작했다.

“자긴 젊잖아…. 나는 나이도 많은데?”


“… 바보야. 이상한 걸로 고민할래?”


손을 뻗어 지혜의 볼을 잡아당겼다.


그녀의 볼은 말랑말랑하고 잘 늘어나서 진짜 떡을 만지는 거 같은 좋은 감촉이었다.


“너 말고 아무도 없어. 나는 평생 너만 있으면 돼.”

“… 진짜?”

“어. 후회를 왜 해, 너가 최고인데.”

“… 키스해줘.”


“여기서?”

“응, 여기서.”

내가 입술을 대자, 지혜의 혀가  입 안으로 파고들었다.


문득 다른 사람이 지나가면서  지도 모르겠단 걱정이 들었지만, 그보다 지혜의 혀가  기분 좋았다.


그렇게 잠시 혀를 섞고, 입을 뗴자 지혜가 나를 바라보며 입 맛을 다셨다.


“다음 주, 기대해.”

“… 그런 말 들으면 진짜 기대하게 되는데.”

“응, 기대해.”


지혜가 웃으며 말했다.

“나 고른  후회  하게 노력할게.”

“…”

문득 나는 지혜에게 왜 그런 말을 하냐고 되물으려다가, 그것보다 더 좋은 말을 떠올렸다.

“… 나도 노력할게. 네가 나 고른 거 후회 안 하게.”

“히힛, 그래. 진짜 잘 가.”

“어, 발 시렵겠다. 빨리 들어가.”

“응. 자기도 조심히 들어가. 연락하고.”


“어. 너도.”

점점 멀어지는 지혜를 보며 나는 조금씩 뒤로 걸었다.


도중도중 지혜가 뒤돌아보며 열심히 손을 흔들다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나도 등을 돌려 버스정류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

막상 집에 도착한 후, 부모님은 아무 말도 안 하셨다.

“잘 놀다 왔냐?”


“어. 아버지는?”

“주무셔. 피곤하겠다. 씻고 자, 어여.”


“… 안 물어봐?”

“뭘?”

“갑자기 막… 서울 올라가고 그랬잖아.”


“으이구, 느그 아버지보단 나으니깐 됐어. 누가 자식 아니랄까봐 하는 짓이  다 똑같아.”

“어?”

“느그 아버지가 한밤 중에 갑자기 나 보고 싶다고 눈오는 날 찾아왔어. 눈 보니깐 내 생각 난다더라. 거기에 낚여서 엄마가 니네 아빠랑 결혼했어.”

“… 그래?”

무뚝뚝한 아버지도 젊으셨을 때는 로맨티스트셨구나.


“그냥 덜컥 애나 만들어오지 말어. 그것만 아니면 엄마는 신경 안 쓴다.”

“… 어.”

방으로 돌아와 침대를 보는 순간, 바로 그 위로 뛰어들고 싶었다.

‘… 피곤하네.’

하지만 이대로 자기엔 찝찝했다.

속옷을 챙기고는 핸드폰을 들어 메신저 앱을 켰다.

[나 집 도착했어.]

[윤지혜 : 어서 씻고 자. 자기도 감기 걸릴까 걱정된다.]


[어. 다음 주에 봐.]

[윤지혜 : 응응. 답장 안 해줘도 되니깐 빨리 자. 나도 이제 잘게.]


[응. 굿 나잇.]

‘…’

뭔가 좀 부족한 거 같아서 음성 메세지 기능을 켜고는 핸드폰에 입을 가까이 댔다.

“… 잘 자. 윤지혜. 쪽.”

보내는 순간 부끄러움이  밀려와 지금이라도 삭제할까 싶었지만, 아마 지혜가 좋아할 것만 같아서 그냥 놔두고 씻으러 들어갔다.

샤워를 마치고 침대로 돌아오자 지혜에게도 음성메세지가 와있었다.


“성준아, 잘 자. 사랑해~. 쪽쪽쪽.”

“…”


 듣고 난 뒤에 ‘보낼만 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 자기 전에 매일 들어야지.’


괜히 웃음이 나와서 잠이 잘 안 왔다.








주말이 다 가고 월요일이 찾아오자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월요일이 원래 힘든 날이긴 했지만, 이번 주 월요일은 유독 더 힘들었다.

다솔이 때문이었다.

‘… 얼굴 어떻게 보냐….’


한 번 고백하고 난 뒤에 차이고 다시 얼굴을 보는 것은 고백한 쪽도, 받은 쪽도 괴로운 일이었다.


물론 내가 상대적으로 다솔이보다 조금 덜 괴롭겠다만, 불편한 마음을 지우긴 쉽지 않았다.


“하아….”


 때, 학교로 향하는 길목에서 김동수를 발견했다.


“야, 병신아.”


“뭐, 병신아.”

“지난 주에 고마웠다.”

“1원은 왜  보냈냐?”

“이자.”

“복리니깐 잔금은 나중에 붙여라.”

“십새끼.”

동수와 같이 학교로 향하는 길,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크리스마스 이브, 아니 크리스마스 날.

동수는 꽉 찬 담뱃갑을 들고 담배를 사러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곳에는 아마 울고있는 다솔이가 있었을 것이다.


‘… 물어봐도 되나, 이걸….’


아무리 친한 친구 사이지만, 이런 문제를 묻기는 좀 껄끄러웠다.

그 때,  시선을 느낀 동수가 나를 쳐다봤다.

“… 뭐, 병신아.   있으면 해.”

“아냐.”

“… 크리스마스?”

“어?”


“그  무슨  있었는지 궁금한  아냐?”

“… 됐다. 얘기하지 마라.”


“그래.”


“…”


동수가 알아서 얘기할 줄 알았는데 저런 반응을 보이니깐 되려 궁금증이 커졌다.

‘… 십새끼, 더럽게 궁금하게 만드네.’


이 새끼한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고민하던 와중.

내 월요일을 더욱 힘들게 한 장본인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오빠.”

“… 안녕.”

“… 동수 오빠도 안녕… 하세요.”


“어, 좋은 아침.”

다솔이는 어깨까지 내려오던 찰랑이는 머리를 자르고, 단발로 바꿨다.


‘… 너무 노골적이네.’

마치 ‘나 차였어요.’라고 홍보하는 것만 같아 속이 불편해졌다.


그리고 그거보다 더 궁금한 것은 동수에 대한 반응이었다.


‘… 둘이 뭔가 있긴 있었나보네.’


평소에 맨날 ‘선배’라고 선을 긋던 호칭이 ‘동수 오빠’로 바뀌어있었다.


‘아, 궁금해 미치겠네.’

“동수 오빠.”


“어?”

“성준 오빠 좀 빌려도 되요?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


“… 나랑?”

“네, 오빠.”


다솔이는 싱긋 웃으며 내게 말했다.


“잠깐 얘기  해요,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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