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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화 〉10.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 (1) (93/163)



〈 93화 〉10.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 (1)

제사를 마치고, 다시 대구로 돌아가는 차 안.


어머니는 피곤하신지 뒷 자리에서 주무시고 계셨고, 나와 아버지 둘 만이  안에서 깨어있었다.


한창을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운전만 하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입을 여셨다.

“성준아.”

“어, 아버지.”


“안 피곤하냐?”

“어, 내가 피곤할 게 어딨어. 그냥 앉아서 밥만 먹고 오는 건데.”


“… 그래?”

“어….”

“잡채 맛있더라.”

“… 입맛에 맞았어?”

“그래.  엄마는 간이 좀 밍밍한데, 네가 들고온 건 간이 딱 맞드라.”

“… 그럼 다행이고.”


아버지가 저렇게 평가해주시니 괜히 나도 기분이 살짝 좋아졌다.


“… 성준아.”

“어.”


“걔랑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니?”

“…”

“경주 갈 때, 니 엄마랑 여자친구랑 통화하는 거 같던데.”

“… 어.”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나?”


“…”

아버지의 질문에 쉽게 답을 할  없었다.


결혼하겠다고 입 밖으로 말을 내뱉는 것은 쉬운 일이었지만, 그 말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래서 쉽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 취직하고…,   보고….”

“어렵지?”


“응?”

“결혼 생각하니깐 숨이 턱 막히지 않냐?”

“… 좀 힘드네.”

“그치.”

아버지가 나지막히 웃으셨다.

“결혼하려고 하면 집도 문제고, 돈도 문제고, 주변 사람도 문제다.”


“사람이?”

“니네 어머니는 평생 너만 짝사랑했는데 이제 와서 다른 여자가 니 낚아챈다고 하면 좋아하겠냐?”

“…”

“그리고 저 쪽도 마찬가지지. 나야 아들 하나만 키워서 모르지만, 딸이면 금이야옥이야하고 키웠을건데 다른 남자놈이 찾아와서 자기한테 딸 달라고하면 잘도 좋아하겠다.”

“… 그치.”


“또 돈은 어떻게 하냐. 결혼하려고 하면 집도 있어야하고,  들어가려고 하면 가구도 있어야하고, 하다못해 냉장고부터 시작해서 기본적인   준비해야겠지.”


“…”

“괜히 결혼이 인륜지대사라고 하는  아니란다. 그만큼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중요한 문제지.”


“어….”

잠시 대화가 끊겼다.


아버지의 말은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숨이 턱턱 막혀왔다.

“그래서 아버지가 해줄 수 있는  딱 니 걱정 덜어주는 정도다.”


“…어?”

“옛날부터 니 적금 들어둔 거 있다. 전세비 부담 정도는 덜 수 있겠지.”


“…”


“그러니깐 정말 결혼하고 싶거든, 마음에 결심이 서거든. 말해라.”

“… 여자친구 얼굴도  보고?”


“잡채를 먹었잖냐.”


“…”


아버지의 말을 듣고 괜히 울컥했다.

“아버지는 어지간하면  편이다. “

“어….”


그 때, 휴게소가 보이자 아버지가 휴게소로 들어가셨다.

“뭐 마실래?”


“아니. 아버지는?”


“나도 괜찮은데.”


“… 그럼 왜 들어왔어, 휴게소?”

아버지가 안전벨트를 푸셨다.

“자식 새끼가 운전할 줄 아는데 내가 운전을 왜 하냐. 아버지도 좀 졸게.”


“…어.”


오랜만에 감동받았는데….

*


 연휴가 끝나고, 다시 평일이 돌아왔다.


 입장에서 평일이든, 아니면 휴일이든 어차피 시험이나 준비해야하는  똑같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달랐다.


“출근했어?”

“지금 하는 중. 자기는?”


“나도 출근 중.”

“히힛, 독서실로?”

“어. 한국사 마저 준비해야지.”

“응응. 내가 준 노트 잘 보고. 자기라면 한 번에 합격할거야.”

“그래. 알았어. 이따 집에 갈  또 연락할게.”


“어…? 아, 응.”

지혜의 목소리에 살짝 당혹감이 섞였다.

“아, 맞다…. 자기 시험 끝날 때까지는 전화 줄이기로 했지….”


“… 그냥 시간  때마다 연락할까?”

“… 아냐. 자기 공부에 방해 안 되는 선에서.”

“그래, 알았어.”


“응…. 공부하다 힘들면 꼭 전화하고.”

“응.”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고.”


“어.”


“… 보고 싶으면 전화하고.”

“1분에  번씩 할건데?”

“어? 뭐야.  1분에 한 번 밖에 안 보고 싶어?”

“… 아니, 그건 아닌데.”


“히힛, 농담이야. 여튼 자기 시험 준비 잘 해.  이제 진짜 들어간다~.”


“어. 오늘 하루도  보내.”


“응, 자기도~.”

독서실로 들어가고 잠시 후, 지혜에게 사진이 한 장 왔다.


“하아….”


정장을 입은 채, 거울 앞에서 사진을 찍은 지혜의 전신 샷이었다.


[윤지혜 : 야해?]

[… 엄청.]


[윤지혜 : 히힛, 공부 열심히 해.]



빨리 시험 끝내고 싶다.


*



그로부터 일주일, 한국사 시험 당일이 되었다.


“준비  했어?”


“어. 다 했어.”

“그래, 알았어. 자기, 너무 부담 가지지는 말고 알았지?”

‘어.”


“… 평소라면 놀려줄텐데 오늘 자기 시험이라 놀리지도  하겠네.”


“크큭, 끝나고  줘.”

“히힛, 알았어. 30분 뒤랬나?”

“어. 30분 뒤에.”


“그럼 시험 끝나고 핸드폰 아무도 없는 데서 몰래 확인해 봐. 알았지?”


“크큭, 그래. 기대할게.  들어간다?”

“응.”

나는 지혜가 이번에는 무슨 사진을 보낼까 궁금해하며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지혜는 참 야하면서, 똑똑한 여자친구라 일주일 내내 야한 사진을 보내왔다.

주로 노브라 상태로 젖꼭지만 포스트 잇으로 가린 뒤, 포스트 위에 글자를 써두는 방식이였다.


정답을 맞추면 지혜가 자신의 사진을 핸드폰으로 보내주는 방식.


별 거 아니였지만, 매우 효과적인 공부법이었다.


“후우….”

지혜의 도움이 컸다.

그러니깐 나도 한 번에 깔끔하게 합격해야지.








시험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핸드폰을 켜보자 지혜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

혹시 주변에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 주변을 한   둘러보고, 최대한 조용한 곳으로 가서 사진을 열어봤다.


“… 응?”

야한 사진을 기대 안 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솔직히 얼마나 야한 사진을 보냈을까 기대하고 있었다.


막상 핸드폰을 열어 사진을 확인해보자, 흔들린 사진이 찍혀있었다.

“… 뭐야, 이거.”

핸드폰을 들어 지혜에게 연락했는데도 그녀는 받지 않았다.

익숙한 초록색의 영수증에 뭐가 적혀있는 거 같은데 뭔지 모르겠다.


메신저 앱을 켜서 지혜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혜야? 이거 사진 뭐야?]

“… 답이 없네. 자나.”

나는 핸드폰을 끄고 집으로 향했다.

시험도 끝났으니 오늘은 좀 놀아야겠다 생각하며 집으로 향하려던 찰나, 지혜가 보내준 사진을 다시 봤다.


“… 쓰읍. 이거 익숙한데….”


흔들린 사진의 정체를 알아내기 집중하여 화면을 들여다 보던 찰나, 전화가 왔다.

“어, 어머니.”

“시험 끝났어? 어땠어?”


“그냥 그랬어. 자기 채점 해봐야지 이따가.”

“그래? 집에는 바로 들어올거니?”

“아마? 약속도 없는데?”

“없어? 여자친구 안 온다니?”


“온다는 얘기가 없었는데…?”

그 때, 어머니의 말을 듣고 사진을 다시 쳐다봤다.


‘… 이거 기차표 아니야?’

어딘가 익숙하더라니 기차표라고 생각하고 쳐다보면 확실히 기차표 같았다.

“… 아니, 밖에 좀 있다가 들어올  같은데.”

“여자친구랑?”

“… 어.”

“그래, 잘 놀다오고. 만나면 잡채 맛있었다고 얘기해주고, 집 청소 고맙다고 해주고.”


“어, 알았어.”

“집에서 좀 멀리서 떨어져놀고.  근처에서 놀면 엄마한테 연락온다.”

“… 그럴거야.”

“그래, 아.  들고 갈래?”


“들고 가도 돼?”


“주말인데 차  일이 어딨니. 집에 와서 가져가, 그럼.”

“어, 고마워.”

전화를 끊고 다시 메신저 앱을 보자 지혜가 사진을 다시 보낸 상태였다.

[윤지혜 : … 이게  흔들렸지? 나 40분 뒤에 도착.]

예상대로 기차표가 맞았다.

[괜찮아? 무리 하는 거 아니야?]

[윤지혜 : 응~, 아니야~.]

지혜의 문자를 보고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서로 일주일 떨어져 있는 것도 못 참는구나 싶었다.

[어머니가 차 가지고 가래.]


[윤지혜 : 그래? 그럼 오늘은 어디  멀리 나가는거야?]

[그러자.]

[윤지혜 : 응, 히힛.]

나는 핸드폰을 덮고 시계를 확인했다.

지혜는 대구역에 내리니 30분이면 그냥 지혜와 합류하고 집으로 가서 차를 가져가는 게 더 나을 거 같다.

“예스…!”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시험도 끝났고, 지혜랑 1주일 만에 다시 보고, 부모님은 지혜를 은근히 마음에 들어하고.


모든 게 다 잘 풀려나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자기~.”


“지혜야~. 컥.”


지혜가 달려와 내게 안겼다.

체중을 실어 달려들었기에 조금 놀랐다.

“괜찮아? 내가 너무 흥분했나?”


“… 괜찮아.”

“히힛.”

지혜가 만나자마자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머리를 비비적거렸다.

“히힛, 자기다.”


“그렇게 좋아?”


“응응. 좋아.”

“나도 좋네. 바로 지하철 타러 가자. 차 가지러 가야 돼.”

“응. 혹시 부모님도 뵙고 갈까?”


“… 글쎄.”

나는 살짝 망설였다.


“… 보고.”

“부모님한테 얘기한  아니였어? 나 왔다고?”

“하긴 했는데 그냥  들고 나가라고만 하셔서.”


“하긴. 애매하네.”

“그냥 차만 들고 나가자. 너 잠시 아래에서 기다리면 내가 차 끌고 나갈게.”

“응응.”


내가 손을 뻗자, 지혜가 내 손을 꼬옥 붙잡았다.

“자기자기.”

“응?”


“일주일 내내 힘들었어?”


“엄청.”

“히힛, 그럼 바짝 달아올랐겠네?”

“그치. 이따 밤만 되봐. 절대 가만히 안 놔둔다.”

“꺄악, 무서워라. 오늘은 각방 잡아야겠네.”


“그럼 내가 너네 방으로 쳐들어가겠지.”

“문 잠궈둘건데.”

“그럼 못 잠그게 내내 붙잡아둬야겠다.”

“그래. 절대 놓으면  된다?”


“어.”

 손을 꼬옥 붙잡은 지혜의 손을 느끼며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근데 진짜 거짓말 아니야?”


“뭐가?”

“진짜 내 잡채가 제사상에 올라갔어?”

“사진도 보내줬잖아.”

“어떡해…, 좀만  시간 가지고 할 걸….”

“아버지는 맛있다드라. 어머니도 괜찮아하시던데.”

“… 그래?”


“진짜라니깐.”

“히힛, 그럼 자기도 먹었어?”


“어. 제사 끝내고 먹었지. 맛있드라.”


“자기도 잘 먹었으면 됐어.”

지혜는 기분이 좋아보였다.

어떻게 설명해야될지 모르겠지만, 지혜가 한 음식이 제사상에 올라갔을 때는 어머님의 암묵적 동의처럼 느껴졌기에 나 또한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일기는 썼어?”

“어, 자기 글씨 되게 깔끔하드라?”

“… 내가?”


“응. 보면서 되게 기분 좋았어.”

“너도 글씨체 동글동글한게 귀엽던데.”


“읽기 불편하진 않았어?”


“전혀. 아, 맞다. 이따가 나 잠깐 피씨방  가자.”

“응? 아~, 가채점?”


“어.  번 해보긴 해야지 시험 준비 또 해야하나 각이 서니깐.”

“그래. 시험은 잘 쳤어?”


“음…, 설레발은 안 치려고.”


“잘 쳤구나?”


“가채점 해보고.”


“히힛, 그래.”


지혜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금새 집에 도착했다.

“다 왔다.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  키만 들고 올게.”


“차 키만 들고오게?”


“… 갈아입을 옷도 들고 올게.”

“응, 다녀와.”

집에 올라가자 가방을 대충 던져두고 운동용 가방을 챙겨 거기에 옷가지들을 몇  골라담았다.


“어머니, 아들 나갔다 올게.”


“그래라. 운전 조심하고.”

“어.”

“… 여자친구한테 안부 전해주고.”

“… 뭐라고 전할까?”

“그냥  알아서 잘 얘기해. 까다롭게 보이긴 싫네.”


“알았어.”

“너무 늦게까지 밖에 돌아다니지 말고.”

“어.”

“피임 잘 하고.”

“… 아들 간다.”


어머니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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