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10.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 (3)
평소에 아버지와 자주 가서 몇 번 먹은 갈비탕 집이었지만, 오늘은 유독 맛이 없었다.
“맛있게 먹어요.”
“… 네.”
“…”
지혜와 나는 둘 다 식탁에 앉아서 서로를 마주보고 갈비탕을 먹기 시작했지만, 서로 오고 가는 대화는 없었다.
안 그래도 한적한 곳에 있는 식당인데다가 밥 시간을 살짝 지났기에 식당 안에는 나와 지혜 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 침묵이 버티기 힘들었다.
거북한 시간 속에서 위로 들어간 음식들은 체할 것만 같았고, 결국 나는 갈비탕을 채 반도 다 못 먹고 숟가락을 놓았다.
“… 다 먹었어?”
“… 응.”
“… 그래.”
지혜의 목소리는 무미건조했다.
평소의 새가 지저귀는 듯한 높은 목소리보다 살짝 낮은, 우울한 목소리.
지혜가 입을 열 때마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 맛있다.”
“… 그래?”
“… 응.”
오고 가는 대화 하나하나에 숨이 막혀왔다.
결국, 나는 참지 못 하고 지혜에게 말했다.
“내가…”
“다 먹고 얘기하자. 난 아직 먹는 중이야.”
“… 어.”
그로부터 10분.
그리 길지 않은 시간동안 가시방석에 앉은 듯한 불편함을 느끼며 나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지혜가 갈비탕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 하아. 배부르다.”
“…”
“갈까? 계산은 내가 할게.”
“… 내가 낼게.”
“아냐, 밥은 내가 살게.”
“…”
“이모! 여기 계산해주세요.”
“가요~.”
밥을 다 먹고 나오자 가슴이 옥죄였다.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이 물씬 올라오며, 어쩌면 오늘.
지혜를 마지막으로 보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가워진 지혜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가슴이 저려왔다.
그 때, 계산을 마치고 나온 지혜가 내 등을 탁 쳤다.
“가자.”
“… 미안해.”
“그냥 가.”
“… 내가 잘못했어.”
“… 너 울어?”
“…”
지혜의 말을 듣자,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져 눈가가 촉촉하게 젖은 걸 알아차렸다.
“… 성준아.”
“미안….”
“… 차에 타자. 응?”
“… 응.”
탕!
내가 자연스레 앞 좌석에 타려고 하자, 지혜가 차의 윗 부분을 내려쳤다.
“앞에 말고, 뒤에 타.”
“… 어.”
뒷좌석에 타자 지혜 또한 차문을 열고 뒤에 앉았다.
그리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
“…”
우리 둘은 서로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조용한 침묵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숨이 가빠왔다.
결국 참지 못 하고 내가 입을 열려던 순간, 지혜가 먼저 말했다.
“… 뭘 잘못한지 알겠어?”
“… 미안.”
“미안하다는 말 듣고 싶은 거 아니야.”
“…”
“… 울고 싶은 건 난데.”
지혜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 왜 울어, 속상하게.”
“… 내가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 그만 하라니깐.”
“… 어.”
“… 일루와.”
지혜가 내게 손짓하자, 나는 잠시 망설였다.
왠지 모르게 몸이 굳어서 쉽게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 안 올거야?”
“…”
내가 엉덩이를 들어 살짝 옆으로 가자, 지혜가 나를 잡아당겨 안아주었다.
“… 그러게 왜 미안한 짓을 했어.”
“… 잘못했어.”
“… 아니야. 나 그렇게 안 놀랐어.”
“… 소리 질러서 미안.”
“소리 질렀다고 생각 안 했어. 그냥… 다른 거 때문에 조금 속상했어.”
지혜가 내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 내가 괜히 자기한테 부담을 줬구나. 괜히 자기가 힘든데 몰라줬구나. 그래서 속상한거야.”
“…”
“근데 더 속상한 건 있지? 자기가 그런 걸 나한테 안 얘기해준 거야.”
지혜가 내 정수리에 자신의 뺨을 기댔다.
머리를 기대고 말해서 그런지, 지혜의 목소리가 내 머릿 속에 울려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 자기, 왜 결혼식에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 할 것을 맹세한다고 하는 줄 알아?”
“… 아니.”
“결혼하고 나면 정말 좋은 일만 있을까?”
“…”
“운이 나쁘면 내가 크게 다칠 수도 있고, 자기가 빚더미에 오를 수도 있고, 또 언젠간 우리 부모님도, 자기 부모님도 돌아가시겠지.”
“… 응.”
“그런 힘든 날에 나는 자기를 가장 먼저 떠올릴 거야. 자기한테 안겨서 지금 우리 성준이가 우는 것보다 더 크게, 펑펑 울 거야.”
“…”
“성준아.”
“… 응.”
“알아. 힘들겠지. 나는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취직 걱정은 커녕 ‘한동안은 놀아야지’ 하고 생각했었어. 실제로도 알바 좀 하면서 구직도 그렇게 열심히 안 했고.”
“…”
“근데 우리 성준이는 괜히 나 때문에 혼자 힘든 길을 걷는 거 같아서 내가 많이 미안해.”
“… 네가 왜 미안해.”
“그럼 왜 그렇게 힘들어 해?”
“…”
“나랑 있을 때 항상 웃어주고, 따뜻한 목소리로 불러주던 성준이가 아니라 오늘은 인상도 잔뜩 찌푸리고, 언성도 높아졌잖아.”
“… 미안.”
“꾸짖는 게 아니야. 아직도 모르겠어?”
지혜의 목소리가 조금은 촉촉해졌다.
“…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지 그랬어….”
“…”
“그렇게 울 정도로 힘들면서….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응?”
“… 미안해.”
“… 바보야.”
머리 위로 축축한 무언가가 떨어졌다.
그 무언가가 머리카락에 닿는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결국 내가 지혜를 울렸구나.
내가 정말 큰 잘못을 했구나. 하고 후회하게 되는 순간이였다.
“나는 힘든 일 있으면 네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 왜 너는 안 그러냐고.”
“… 미안해.”
“그냥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지 그랬어….”
고개를 들자, 지혜의 우는 얼굴이 보였다.
내가 팔을 올려 그녀의 머리를 잡아당기자, 지혜가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흑….”
“… 내가 미안해.”
“… 몰라.”
그렇게 한동안, 우리 둘은 뒷좌석에서 한참을 울었다.
*
“크응!!”
휴지를 꺼내 막힌 코를 풀자, 조금은 숨 쉬기 편해졌다.
나는 내 품에 안긴 지혜에게 휴지를 건네며 물었다.
“… 줄까?”
“… 응.”
지혜도 힘껏 코를 풀고는 휴지를 몇 장 더 뽑아 자신의 눈가를 닦았다.
“씨이…, 화장 다 망가졌어.”
“… 미안해.”
“몰라, 바보야. 아, 우니깐 좀 속이 후련하네.”
“…”
지혜의 말대로 한바탕 울어 재낀 뒤에 머리가 개운해졌다.
그 동안 가슴을 짓누르던 알 수 없는 체증이 싹 내려간 것만 같았다.
“… 너도 눈 좀 닦아. 엄청 부었다.”
“… 그래?”
“응. 나 진짜 너무 울어서 머리가 다 아파….”
“…”
“… 씻고 가자.”
“응?”
“… 세수라도 좀 해야할 거 아니야. 자기 얼굴 이상해.”
지혜가 내 눈가를 어루만졌다.
“… 눈 안 아파?”
“… 조금 아파.”
“세수만 하고 가자.”
“… 어.”
차에서 내리고 지혜는 부끄러운듯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다시 갈비탕 집 안으로 들어가자 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아주머니한테 말했다.
“… 죄송한데 화장실 좀 써도 될까요?”
“그러세요.”
“… 감사합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후다닥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세면대 앞에 서서 찬물을 얼굴에 끼얹자, 정신이 확 들었다.
‘… 박성준 병신.’
내가 멍청했다.
그냥 지혜한테 솔직히 터놓고 얘기할 걸.
좀 더 조바심 내지 말고, 천천히 할 걸.
혼자서 쓸 데없이 걱정만 많아지다보니 괜히 신경만 날카로워져서 지혜를 상처입혔다.
“하아….”
다시 한 번 찬물에 얼굴을 담궜다.
아직은 조금 쌀쌀한 날씨라 얼굴이 아플 정도였다.
“후우….”
찬물로 세수를 하고 휴지를 몇 장 뽑아 얼굴을 닦자, 다른 고민이 생겼다.
‘… 지혜를 무슨 얼굴로 보지?’
방금까지야 감정이 격양된 상태에서 일단 눈물이 나온 데다가 지혜가 다 받아주던 차라 일단 울어재꼈는데 막상 뒤돌아보니 부끄러웠다.
“…”
그래도 지혜가 다 얘기하라고 했으니깐, 일단 나가야지.
마음을 먹고 화장실에서 나왔지만, 지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
살짝 여자화장실 쪽을 바라봤지만,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식당 이모님의 눈치를 보는 찰나, 이모님이 나를 보고 웃으셨다.
“총각.”
“… 예.”
“와서 갈비탕 먹어요.”
“… 예?”
“그냥 와서 먹어요. 아까 반도 못 먹었더구만.”
“…”
“얼른!”
“… 네.”
식당 이모님의 성화를 못 이겨 자리에 앉자, 미리 준비라도 해놓으셨는지 금새 갈비탕이 나왔다.
“먹어요.”
“… 저 더 안 먹어도 되는데….”
“아이고, 돈 안 받을테니깐 그냥 먹어요.”
“… 잘 먹겠습니다.”
국물을 몇 번 떠먹자, 아주머니가 다른 식탁들을 닦으시면서 입을 여셨다.
“맨날 아빠랑 둘이 와서 그릇까지 싹 다 비우던 총각이 오늘은 여자친구랑 왔길래 내가 기분이 좋았는데 둘이 싸웠어?”
“컥…!”
“아이고, 물 먹어. 물….”
“… 예. 크흡….”
듣고 보니 이모님 얼굴이 익숙했다.
‘아…, 조졌네.’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새로운 흑역사를 하나 써내려갔다는 생각에 쪽팔려서 고개를 푹 숙이고 갈비탕을 먹기 시작하자 이모님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총각이 잘못했어?”
“… 예?”
“딱 보니깐 총각은 죄 지은 얼굴 하고 있던데.”
“… 예.”
“으이구, 그래서 화해는 잘 했어?”
“… 네. 아마도요.”
“싹싹 빌어. 무조건. 보니깐 여자친구가 참하든데 그런 처자를 울리면 쓰나.”
“… 그러게요.”
“그리고 다음에 또 같이 와.”
“…”
“원래 연인끼리 사귀다보면 투닥거리고 그런 날도 있는 법이여. 그러다가 헤어지면 끝이지만, 사과하고 나면 또 며칠 지나서 금새 잊어버리는겨.”
“… 네.”
이모님이 씨익 웃었다.
“내가 괜히 오지랖 부려서 미안혀~.”
“아니예요.”
“맛있게 먹고 가. 나는 저 안에 드가있을테니깐.”
“… 예, 잘 먹겠습니다.”
“그려.”
이모님이 주방으로 돌아가려던 순간, 내가 급히 말을 걸었다.
“저… 아주머니.”
“응?”
“그… 아버지한테는 그….”
“알어~. 내가 그 정도 눈치는 있지.”
“… 감사합니다.”
“대신 다음에 오면 갈비찜도 시켜. 알았지? 쪽팔리다고 안 오지 말고.”
“… 예.”
이모님이 주방으로 사라지셨다.
“…”
혼자 남아 숟가락 한 번 뜨고, 지혜가 언제 나오나 여자화장실을 한 번 보며 갈비탕을 먹었다.
…
아까와 달리 맛있었다.
… 같이 먹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 후우.”
어느새 갈비탕을 다 비우자, 지혜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 성준아, 그새 새로 시켰어?”
“… 아니. 이모님이 주셨어.”
“응?”
“… 내가 아버지랑 자주 와서 그런지 얼굴을 기억하시드라.”
“아~. 하긴, 자기 아까 반도 못 먹더라.”
“…”
“자기 현금 있어?”
“어. 있어.”
“그럼 현금 놓고 가자. 그래도 공짜는 좀 그렇잖아.”
“안 그래도 그럴려고.”
내가 의자에서 일어나자 지혜가 내게 손을 뻗었다.
“…”
잠시 멍하니 그 손을 바라보았다.
다시 잡아도 되나, 하고 망설이고 있자 지혜가 먼저 내 손을 붙잡았다.
“뭐 해? 안 잡고.”
“아…, 어.”
“… 바보야.”
“… 미안.”
“가자.”
“응.”
지혜의 손을 다시 한 번 힘주어 잡고, 식당 밖으로 나섰다.
갈비탕 그릇 밑에 만 원 한장을 끼워뒀으니 아마 이모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식당 밖으로 나오자 지혜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하아~. 날씨가 별로다.”
“… 응?”
쾌청한 하늘에 아직은 한기가 남아있지만 햇볓 아래에선 기분이 좋은 겨울이 끝나가는 날씨였다.
하지만 지혜는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했다.
“하아~. 날씨가 별로다. 오늘은 어디 가기 싫다~.”
“… 그럼 어디로 갈까?”
“기사님이 알아서하면 좋겠네.”
“…”
“그냥~ 어디 앉아서 쉴만한 곳. 좀 씻을 수도 있고, 침대도 있는 데 가면 좋겠다~.”
“…”
나는 눈치껏 지혜의 말을 알아듣고, 시동을 걸었다.
아무튼 지혜가 날씨가 나쁘다고 하니, 하늘도 우중충해보였다.
아무튼 지혜 말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