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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8화 〉11. 박성준이 윤지혜를 만났을 때 - (6) (108/163)



〈 108화 〉11. 박성준이 윤지혜를 만났을 때 - (6)

“나 퇴근~.”

“언니, 잘 가요.”

“응, 수고.”

핸드폰에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켜는 와중, 문자가 왔다.

[박성준 : 누나, 오늘은 컴퓨터 할 수 있네요 ㅎㅎ.]

성준이였다.

‘5대기로 바쁘다고 하지 않았나?’

바로 답장을 보냈다.

[5대기인가 그거 끝난거야?]

[박성준 : 그건 아니고요.]

아직 끝나진 않았지만, 대충 상관이 컴퓨터 시간을 허락해줬다는 거 같았다.

[되게 오랜만이네 ㅎㅎ.]

[박성준 : 그러게요. 그동안  일 없으셨어요?]

괜히 웃음이 피식 새어나왔다.

대화를 못 나누는 시간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핸드폰을 확인하고, SNS에도 들어가봤다.

언제 즈음 연락이 올까.

5대기라는 건 힘들지 않을까.

성준이도 연락을 못 해서 답답해하지는 않을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윤경이의 말이 신경쓰이기도 했다.

나는 성준이가 모니터 화면 너머에서 어떤 표정으로 내게 문자를 보내는 지 모른다.

성준이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게 썸은 맞나?

어쩌면 윤경이 말처럼 그냥 어장관리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아….”

한숨이 튀어나왔다.

연애는 왜 이리 어려운걸까.

그냥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바로 알면 참 편할텐데….

나는 다시 핸드폰을 들어 최대한 덤덤한 척, 성준이에게 답장했다.

[딱히? 그냥 뭐 출근하고, 퇴근하고.]

[박성준님이 대화를 입력 중입니다.]

언제쯤 답장이 올까, 화면을 쳐다보고 있는데도 아무런 대답이 안 돌아왔다.

‘… 뭐지?’

무슨 문제라도 있나 싶었다.

[성준아?]

그 때, 성준이에게 답변이 돌아왔다.

[박성준 : 아, 누나. 미안해요, 잠깐 누가 불러서,]

[그래?]

[박성준 : 그보다 누나, 혹시 이번 주 주말에 시간 괜찮아요?]

[시간? 주말은 딱히 할 일 없지.]

[박성준 : 그럼 만날래요?]

“… 대박.”

뭐지?

진짜  번 밀어놓고, 바로 당기는 건가?

갑자기 성준이가 적극적으로 나오자 나는 조금 당황했다.

뭐라고 답장을 보내야할지 고민하는 와중, 성준이가 말했다.

[박성준 : 누나가 싫으면 어쩔 수 없고요.]

[… 그래, 만나자. 근데 너 5대기인가 그거 때문에  나오는 거 아니였어?]

[박성준 : 갈 수 있어요. 주말에 그럼 어디서 볼까요?]

[너가 편한대로 정해.]

[박성준 : 네, 그럼 전에 만난 술집은 어때요? 소개팅했던 거기요.]

[너 술 잘 못 마시지 않아?]

[박성준 : 안 마시면 되죠, 뭐. 거기 근처에 맛집이 많아서요.]

“…”

왠지 조금 느낌이 달랐다.

내가 알던 성준이가 맞나 싶었다.

‘… 얘가 무슨 일이 있었나?’

조금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금새  생각을 지웠다.

갑자기 다른 사람이 연락을 할 리가 있나.

[그래, 그럼 주말에 거기서 보자.]

[박성준 : 네, 누나. 그럼 저 다시 가볼게요.]

[응, 수고~.]

성준이의 사진 옆에 들어와있는 초록색 불이 꺼졌다.

하지만 나는 몇 번이고 그 문자를 다시 봤다.

[박성준 : 그럼 만날래요?]

“… 대박. 어떻게 해!!”

괜히 가슴이 떨렸다.

전화로 윤경이에게 연락을 걸었다.

혼자서는  기분을 감당 못 할 것만 같아서.

*

“혜성아.”

“일병 윤혜성.”

“… 밖에 그만봐라, 가슴 아프게 시리.”

“… 죄송합니다.”

“아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혜성이는 주말인데도 5대기에 묶여 그저 창문 밖으로 축구하는 걸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내가 다 가슴이 아팠다.

“어휴…. 나갈까?”

“… 나가도 됩니까?”

“바람도 좀 쐴겸, 담배도 피울겸.”

“넵!”

혜성이는 신이 나서 나를 따라왔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중대 흡연장은 축구장 바로 옆이었기에 가까운데서 축구도 구경할  있었다.

흡연장에 도착하자 나는 혜성이에게 손짓했다.

“담배 안 피는 놈은 저기 가서 축구나 구경해.”

“예, 감사합니다!”

“이따 부르면 바로 달려와라. 혹시나 상황 울리면 얘기하고.”

“네!”

혜성이가 신이 나서 축구장으로 달려가자, 그 뒷모습을 보고 나는 웃었다.

“아이고, 새끼…. 좋단다.”

군대에 들어와서 느낀건데 즐길 게 없으니 행복의 역치가 참 낮아진다.

사회에선 거들떠도 안 보던 책만 읽어도 재밌고,  그래도 재밌었던 축구는 더 재밌었고.

그래서 그런지 이런 무료한 시간이 더 괴롭기도 했다.

“하아…, 지혜 누나 보고 싶다.”

그냥 통화라도 걸어볼까 싶었다.

근데 말도 없이 바로 걸면  싫어하려나?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그런 고민을 하는 와중, 멀리서 광수 형이 보였다.

나는 일부로 왼손으로 경례하며 형을 불렀다.

“충!성!”

“새끼, 벌써 빠져가지고….”

“잘못 들었습니다?”

“지랄한다, 크큭.”

광수 형이 내 옆에 앉아 담배를 꺼내자, 나는 웃으면서 불을 붙여줬다.

“주말에 왠 일이십니까?”

“아, 충전기 놓고 가서.  휴가 간다.”

“또 가십니까?”

“새끼가…. 지도 존나 나가면서.”

광수 형이 웃으며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사복을 입은 형을 보며 나는 대화를 이어나갔다.

“오늘 옷에 힘 좀 주신 거 같습니다? 향수도 뿌리신 거 같고. 여자친구 보러 가십니까?”

“아니. 그냥 여자.”

“…”

광수 형은 담배를 길게 한 모금 빨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알 수 없는 묘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광수 형이 말했다.

“성준아.”

“예.”

“이 새끼, 이젠 관등성명도 안 하네?”

“상병 꺾였으면 이제 안 해도 되는 거 아닙니까? 크큭.”

“지랄한다.   물어보자.”

“예.”

“… 너 전에 소개팅 끝나고 애프터 없었냐?”

“…”

그 말을 듣고, 나는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사실을 말할지, 거짓을 말할지.

결국 나는 실없이 웃으며 거짓말을 했다.

그래도 광수 형이 찍었던 여자한테 내가 먼저 들이댔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사회에 나가면 다시 볼 지, 안 볼 지도 모르는데.

“없었습니다.”

“… 그래, 알았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니. 그냥.”

“…”

거짓말을 하자마자 후회했다.

광수 형의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찝찝했다.

주변을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나는, 결국 형에게 사실을 말하기로 결심했다.

형이 먼저 좋아했지만, 내가 대시했다고.

개새끼라 욕을 먹어도 그만큼 지혜 누나가 좋다고.

“… 형.”

“왜 새끼야. 사람 없다고 말  놓네.”

“진지해.”

“… 말해.”

“실은 있잖아….”

“아, 뜨거!”

그 때, 담뱃재가 광수 형의 손에 튀었다.

“아…, 쓰읍. 깜짝이야.”

“… 재 좀 털면서 피지.”

“그러게. 여튼 나 간다. 약속이 있어서.”

광수 형이 담배를 버리고는 일어서자 나도 따라 일어났다.

“잠깐만, 형.”

“… 왜.”

“실은….”

내가 지금이라도 사실을 말하려던 순간, 멀리서 혜성이가 뛰어나왔다.

“박성준 상병님! 상황 터졌습니다!!”

“… 시발.”

“빨리 올라가셔야 합니다!”

“하….”

이렇게 급하게 얘기하고 싶진 않았다.

일일히 무슨 상황인지 설명하고, 광수 형한테 이해를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혜성이가 재차 나를 불렀다.

“박성준 상병님!”

“… 나중에 다시 얘기하겠습니다, 손광수 하사님.”

“그래, 고생해라.”

“예. 가자, 혜성아.”

“네!”

개같은 5대기.

*

“… 왜 안 오지?”

성준이와 약속시간보다 30분 먼저 나와있었다.

물론 내가 일찍  건 맞는데, 그래도 안 오니깐 조금 답답했다.

‘… 전화라도 해봐야 하나?’

아마 핸드폰을 들고 나왔을테니깐, 연락이라도 하는 게 맞다 싶었는데  망설여졌다.

약속 시간은 아직  남았고, 내가 먼저 나온 거니깐 괜히 성준이한테 메달리는 느낌이 드는 거 같았다.

‘… 금방 오겠지.’

핸드폰을 가방에 집어넣고 언제쯤 올까 싶어서 두리번 거리는 와중, 누군가 내 등을 툭 쳤다.

“지혜 누나?”

“… 어?”

뒤를 돌아보자, 그 곳에 있는 것은 광수였다.

전에 소개팅을 주선했던 애였다.

“네가 왜 여기 있어? 광수…, 맞나?”

“네, 맞아요. 그… 성준이가 일이 생겨서 제가 대신 왔어요.”

“일? 무슨 일?”

“뭐 후임이 사고쳐서 성준이가 외박이 취소됐데요.”

“… 진짜?! 큰일났네….”

“… 그러게요. 그래서 성준이가 누나한테 대신 좀 가달라고 했어요.”

“나한테? 굳이 왜. 그냥 나오지 말라고 하면 되잖아.”

“아… 그…. 밥 먹기로 약속했다면서요? 그래서 성준이가 저한테 돈 주면서 대신 밥이라도 사주라고 하더라고요. 미안하다고.”

“…”

그런 거까지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데 싶었다.

한편으로는  성준이답다 싶기도 했다.

“성준이랑 많이 친한가 봐? 그런 부탁도 들어주게.”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거든요. 여튼 안에 들어갈래요, 누나? 사람도 많아서 번잡한데. 저 배고프거든요.”

“…”

들어갈까 말까 망설여졌다.

원래 성준이와 잡은 약속이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싶었다.

그래도 성준이가 돈까지 주면서 대신 부탁했다니깐, 이대로 가는 것도 좀 그렇겠지.

“그래. 대신 나 술은 안 마신다?”

“그래요, 크큭.”

그래서  생각없이 광수를 따라 음식점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으로 들어간 뒤, 광수와는 생각보다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성준이의 대리로  거 였음에도 단 둘이서 밥을 먹는 게 조금 거북할까 싶었지만, 이전에 한 번 소개팅에서 얘기도 했었고, 광수가 말을 잘하기도 했다.

“대박이다. 그럼 군대에서 다시 만난거야?”

“네, 그렇죠. 아, 누나.  술 좀만 마실게요.”

“그래.”

“누나도 마실래요?”

“난 조금만.”

식당에 들어온 뒤로 광수와 계속 얘기를 나누다보니깐, 점점 긴장이 느슨해졌다.

광수는 그런 재주가 있었다.

말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신뢰하게 만들고, 이야기를 주도하는 재주.

그래서 처음 들어올 때만해도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얘기를 하다보니 조금 술이 땡겼다.

“짠.”

“짠.”

잔과 잔을 부딪히고, 술이 넘어갔다.

한 잔, 두 잔.

조금씩 술이 늘어가기 시작하자, 광수는 점점 이야기를 묘한 쪽으로 끌어나갔다.

“그래서… 누나는 성준이랑 사귀는 거예요?”

“… 아니. 아직은.”

“아직은? 크큭, 오~. 마음이 없진 않으신가봐요?”

“그냥 가볍게 썸 타는 정도지, 뭐.”

술을  잔 더 마시며 나는 대답을 피했다.

광수가 계속 누나, 누나 그러면서 나를 치켜세우다보니 나는 연상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대범한 척, 거짓말을 했다.

어디까지나 성준이한테 쉬워보이기 싫었다.

“… 그럼 아직까지 썸인 거예요?”

“응. 이 얘기 그만하자. 더 말하기 좀 그렇네.”

“… 왜요? 나는 재밌는데…, 크큭.”

광수는 살짝 술에 취한거지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묘한 분위기였다.

“… 그럼 누나, 아직 남자친구는 없는 거죠?”

“그건 왜?”

“없으면 제가 해보고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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