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0화 〉13. 동거 - (7) (130/163)



〈 130화 〉13. 동거 - (7)

회사에 출근한 뒤, 하루 종일 얼굴에서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히히힛….”

계속해서 쉼없이 웃음이 새어나와 주체하기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성준이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처음엔 그저 막연히 오래 걸릴 것이라는 생각 밖에 없었다.


아마도 결혼한 뒤에야 같이 살게 되겠지.

성준이가 사회 초년생이라 부담될테니 결혼한 뒤에도 한동안은 주말 커플로 지내리라 생각했다.


나는 남자가 집을 하든, 여자가 집을 하든, 아니면 같이 집을 하든 신경쓰지 않았지만 어느 쪽을 택하든 서로에게 부담되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냥 나만의 자취방을 얻어서 주말마다 성준이가 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하지만 갑자기 성준이 집이 이사를 하게 되면서 그가 서울로 오게 될 줄이야.

지금 이 순간도 꿈만 같았다.


하지만 핸드폰을 열어 오늘 아침 찍어둔 성준이가 자는 모습을 보자 실감이 났다.


나는 이제 성준이와 같이 산다.


동거한다.


“으히힛~.”

“뭐 하냐?”

“꺄악!”

갑자기  뒤에서 들린 소리에 나는 황금히 핸드폰을 내려뒀다.

뒤를 돌아보자 그 곳에는 윤경이가 있었다.

“깜짝이야…, 소리 좀 내고 다녀.”

“… 누구야? 남자친구 사진? 나도 좀 보자.”


“안 돼.”

“아, 왜.  번 보여줬잖아.”

“자고 있는 사진이라서 안 돼. 남한테 안 보여주기로 약속했단 말이야. 대신 잘 찍은 사진으로 보여줄게.”


“아냐, 됐어. 자는 사진인 줄 몰랐지. 이거 퇴근 전까지 처리해야한대.”

“응.”

“그보다 점심 어쩔거야?”


“남자친구랑 같이 먹기로 했어. 미안. 오늘은 패스.”

“남자친구 대구 산다고 하지 않았나? 오늘 서울 왔어?”

“내가 전에 말 안 했나? 나 주말부터 같이 살기 시작했지롱~.”

“진짜?! 결혼하는거야?”


윤경이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지자, 나는 당황해서 그녀의 엉덩이를 때렸다.

“야…! 소리 좀 낮춰.”


“대박…. 진짜 둘이 결혼해?”


“아직은 아닌데…. 어제 우리 가족이랑 인사도 했어.”

“대박이다. 5살 연하라고 하지 않았나?”

“그치.”

윤경이가 부러운 눈빛 반, 놀라움의 눈빛 반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괜히 어깨가 으쓱했다.

“서울엔 어떻게? 집 구했어?”

“전에 이사한다고 했잖아. 월세로 투룸 하나 구해서 같이 살기 시작했어.”

“부르지 그랬어. 집들이 갔을텐데.”


“에이…. 이전에 자취방에도 몇 번 놀러와놓고.”

“하긴. 한참 뜨거울 때인데 내가 방해하는 것도 그렇겠다, 야.”


“그렇지. 그러니깐 오늘부터 퇴근 후에 함부로 전화하지 마. 알았지?”

“그래, 이 년아.”

윤경이가 내 책상에 걸터앉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좋겠다. 나는 언제 결혼하냐….”

“… 그러니깐  남자 딱 잡아서 진득하게 연애하라니깐?”

“괜찮은 남자가 있어야지. 나는 남자보는 눈이 좀 없나보더라.”


“금사빠는 아니고?”

“그것도 있고. 여튼 결혼하게 되면 꼭 말해. 들러리는 내가 서줄게.”

“응응. 무조건 너지.”

“그래, 점심 맛있게 먹고. 아….”

윤경이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기 전에 내 어깨를 붙잡았다.

“… 너 결국 걔랑 결혼 생각하는거지?”

“… 그렇지. 왜?”


“그럼  언니한테도 소개시켜주는 게 예의가 아닐까?”

“놀고 있네. 떄 되면 알아서 어련히 내가 소개하지.”


“오늘은 어때?”

“오늘? 굳이?”


“궁금하단 말야. 같이 살기 시작했으면 사실상 게임 끝 아니야?”


“그… 렇지.”

성준이한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면서도 윤경이가 이렇게까지 얘기하니깐 마음이 살짝 들떴다.

그래.

솔직히 성준이도 우리 부모님한테 인사드렸고, 나도 성준이네 부모님과 꾸준히 연락하기 시작했는데  정도면 사실 약혼은 끝낸 거 아닐까?

남은 건 양가 부모님끼리 인사한 뒤에 식장 알아보고, 웨딩 사진 찍고, 청첩장 찍어 돌리는 거 뿐이란 생각이었다.


물론 성준이 취직이 우선이겠지만, 진짜  발짝만 더 내딛으면 나머지는 일사천리란 생각이 들었다.


“어때? 나 오늘 점심 같이 먹을 사람 없단 말이야~.”


“어쩌지….”

“빼지 말고. 빨리~”


윤경이가  어깨를 잡아흔들자, 결국 나는 가장 확실한 선택지를 골랐다.

“남자친구한테 물어볼게.”

“물어보고 답해줘?”


“어.”


윤경이가 다시 자기의 자리로 돌아갔다.


핸드폰을 꺼내 잠시 화면을 쳐다보았다.


아직 11시 반.


‘… 지금 쯤이면 끝났으려나?’


핸드폰을 잠시 쳐다보고 있자, 성준이에게 먼저 연락이 왔다.

[나는 끝. 회사로 갈게. 자기는?]

문자를 보자 또 다시 웃음이 나왔다.

성준이가 내 회사 앞까지 찾아올 줄이야.


평일에 성준이와 같이 점심을 먹을 줄이야.


‘어쩜 이리 내 맘을  알까.’

마음이 들뜬 걸 숨기고 문자를 보냈다.

‘… 윤경이 안 싫어하려나?’

언젠가 한 번 소개시켜주고 싶긴 했지만, 하필 오늘이여야할까.


[둘이서만 밥 먹고 싶어?]


최대한 말을 돌리고 돌려서 혹시 다른 사람이 끼어도 되겠냐는 의사표현.

다행히도 성준이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윤경아, 남자친구가 괜찮데.]

[장윤경 : 오케이. 밥은 뭐 먹을건데?]

[중국집 갈까?]


[장윤경 : 별로야. 차라리 파스타 집에 가자.]

[그래.]


윤경이한테도 말을 끝낸 뒤, 나는 다시 시계를 쳐다봤다.


한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

“…”


12시 30분이 지나자 회사에서 사람들이 조금씩 나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처음엔 그저 몇몇의 무리 뿐이다가 어느순간부터 물밀듯이 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그 수많은 얼굴들 사이로 지혜를 찾았다.


‘… 어딨지?’


그 때, 멀리서 나를 부르는 지혜의 목소리가 들렸다.


“성준아~.”

손을 번쩍 들고 흔들며 방방뛰는 지혜를 발견하자, 자연스레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 갈게!”


“아냐, 거기 있어!”

지혜는 나보고 가만히 기다리라고 했지만, 나는 그냥 지혜를 향해 다가갔다.

몰려나오는 인파 속에서 지혜를 만나자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기다리라니깐.”

“내가 움직이면  빨리 만나잖아.”


“바보….”


지혜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내 가슴을  쳤다.


애정이 담겨있는 애교였다.


 때, 지혜의 옆에 서있던 여성 분이 헛기침을 했다.

“크흠, 크흠. 나 여기 있다.”

“아, 미안. 성준아, 인사해. 여기는 내 친구 윤경이. 몇 번 말했지?”

“아, 안녕하세요. 박성준이라고 합니다. 지혜 남자친구고요.”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장윤경이고, 지혜랑 같은 여고 나왔어요.”

“아~, 네.”


윤경이 누나는 대구 촌놈인 내 기준에 서울 여자였다.


살짝 화려한 속눈썹과 눈화장 때문이었다.

“그럼… 가실까요?”


“응, 가자. 내가 안내해줄게.”

“어.”


지혜가 내 팔에 팔짱을 끼고 자연스레 길을 안내했다.

“이 쪽으로~.”

평소보다 지혜가 살짝 신나보였다.

나도 은근히 기대가 컸다.

지혜의 여고 동창이라니.

그녀의 과거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 궁금했다.


동수에게 의해 까발려진  흑역사들을 되갚을 기회라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막상 식사를 하면서 내 예상과는 달리 윤경이 누나는 쉴새없는 질문을 쏟아냈다.

“지혜랑 언제 결혼할 거예요?”


“지혜 어디가 좋았어요?”

“혹시 주변에 여자친구 없는 남자 있어요?”


등등등.

답변은 또 다른 이야기를 낳았고, 그렇게 밥을 어디로 먹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점심시간이 금방 끝났다.


“그럼 난 먼저 간다? 남자친구랑  놀다 들어와.”

“어, 잘 가.”


“…들어가세요.”


윤경이 누나가 사라지자, 지혜는 내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어땠어?”

“응? 좋았어.”


“… 영혼없는 대답 같아.”


“… 영혼이 빠져나가는  같았어.”

“기대한 거랑 달랐나봐?”


“… 나는 네가 동수한테 한 거처럼 네 과거 얘기 듣고 싶었지.”

“그건 나한테 들으면 되잖아?”

“내가 전에 너한테 그렇게 말하니깐 네가 의미가 없다매.”

“그랬나? 히힛.”

지혜가 웃으며 대답을 흘렸다.

“… 윤경이는 너랑 나랑 사귈 때, 내 걱정 되게 많이 해줬어.”

“응?”

“5살이나 연하라고 하니깐. 너 그 때 기억나? 우리 그… 처음 밖에서 하던 날.”


“… 잊을 리가.”


얼마나 강렬한 기억이었는데 그걸 잊겠는가.

“그 때 나한테 조언해준 게 윤경이.”

“진짜?”

“응. 그래서 오늘 솔직히 자기랑 둘이서  먹고 싶기도 했는데 윤경이가 하도 보고 싶어해서 데려왔어.”

지혜가  턱을 손톱으로 부드럽게 긁으며 말했다.

“봐라. 얘가  남자친구다. 우리 성준이 이렇게  났다. 괜히 걱정했지? 이런 식으로 보여주고 싶었어.”

“… 그렇구나.”


여자들의 우정은  남자들과 미묘하게 다른 무언가가 있나보다.


“… 근데 이해는 가네.”

“응? 뭐가?”

“윤경이 누나. 나한테 질문하는 게 약간 자기 아버님 같았어.”

“응?”

“우리 지혜 정말 행복하게 해 줄 자신있냐는 말을 돌려 묻는 느낌? 그런 느낌을 되게 많이 받게 되드라.”


“… 그래?”

“어.”

“그래서 대답은?”


지혜가  두 손을 붙잡고, 나를 살짝 올려다봤다.

눈을 마주할 때마다 매번 느낀다.

참 예쁜 눈이구나.

이 눈이 항상 내가 어디있나 쫓는구나.

내가 고개를 살짝 숙여 지혜의 정수리에 입을 맞추었다.


“행복하게 해줄게. 그러기 위해서 노력할게.”

“… 응. 자주 그런  해줘.”


문득 느꼈는데 요즘 따라 지혜가 어리광이 많아진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더 예쁘게 느껴졌다.

귀엽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고.


“그래, 크큭.”


“아직 시간 좀 남았는데 커피 사줄까? 안 피곤해?”

“자기가 사주면 마시지.”


“그래, 가자.”


지혜는 이후 다시 회사로 돌아가기 직전까지 내내 재잘재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식사 후에 봄의 화창한 날씨 때문인지 살짝 나른한 기분과 함께 지혜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포근했다.

아슬아슬한 시간까지 밖에서 있다가 결국 시간이 되자, 내가 먼저 지혜를 돌려보낼 수 밖에 없었다.


“… 이따 저녁에 봐?”

“응.”


지혜는 손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손가락의 마디 사이에 애매하게 걸친 손가락이 지혜의 마음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가긴 가야하지만, 헤어지기 싫다는 그런 맘이 느껴졌다.


나 또한 그러했으니깐.

같이 살면 오히려 서로를 원하며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이 조금 덜할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는 붙어있지 않는 모든 시간 동안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  반차 낼까?”

“갑자기?”

“그냥… 몸이 좀 안 좋네.”


“야….”

“알았어, 농담이야. 농담….”


지혜가 조금은 처진 목소리로 그리 말하자,  또한 마음이 흔들렸다.

내가 지혜의 머리를 잡아당겨 내 품으로 끌어안았다.


“…저녁에 다시 보자. 응?”

“응….”


“이따 밤에 내내 같이 있자.”

“으으응. 싫어.”

지혜가 고개를 들었다.


“퇴근 후부터 내내 같이 있어줘.”


“그럴까?”

“응응.”


“알았어. 그러자.”

“… 그리고 상도 줘.”

“뭐 받고 싶은데?”


지혜가 살짝 발을 들어 내 귓가에 속삭였다.


“자기 자지~.”


“…”


지혜가 부끄러운 듯 웃으며 내 어깨를 때렸다.

“진짜 갈게. 이따 봐~.”

“… 어.”

멀어지는 지혜를 보며 나는 입맛을 다셨다.


“쓰읍….”

 되겠네, 우리 지혜.

밤에 혼내줘야겠다.


아주 잔뜩.


그렇게 다짐하며 나도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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