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화 〉14. 취업, 여름, 그리고 바다 - (1)
“그럼 중소기업이긴 한데 내 친구 밑에서 일 한 번 해볼래요?”
“일이요?”
아버님의 갑작스런 말에 나는 당황했다.
그리고 내 당황스러움은 옆에 앉아있던 지혜도 알아차렸다.
“아빠가 뭐래?”
“잠시만. 그… 혹시 어떤 일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아예 취직하라고 하는 건 아니고요. 대충 사람은 오십 명 좀 안 되게 있는 작은 공장인데 대기업 하청도 넣고 그렇거든요. 캐드 할 줄 알아요?”
“아…, 네. 할 줄 압니다.”
“그럼 실무경험 쌓는다 생각하고 잠깐 해보면 어떨까 싶어서 전화했어요. 친구랑 그냥 술 마시다 나온 얘기니깐 흘려들어도 상관없고.”
“어….”
솔직히 조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물론 좋은 회사를 취업하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았다.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또 한편으로는 요즘 취업 시장이 워낙 어려운데다가 어디 취직이라도 하면 다행이다 라는 말도 많이 들어서 마음이 조금 복잡했다.
“4대 보험은 다 나오고, 퇴직금도 주고, 연차 같이 자세한 건 마음 있으면 연락해요. 내가 지혜한테 전화번호는 줘놓을테니깐.”
“아…, 네.”
“너무 부담가지지는 말고요. 그냥 요즘 취업시장이 하도 어렵다 그러니깐 갑자기 생각나서 연락한 거예요. 그… 음….”
아버님은 잠시 말을 뜸 들이셨다.
“… 내도 지혜가 서른 전에 결혼하는 거 보고 싶기도 하고.”
“… 네.”
“진짜 부담은 가지지 마요. 그냥 지나가다 들은 얘기 정도라 생각하고. 알았지요?”
“네, 알겠습니다.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주말 잘 쉬어요.”
“옙.”
전화를 끊자 방금까지 옆에서 잠잠했던 지혜가 나에게 달려들듯이 물어봤다.
“뭐야뭐야? 아빠랑 무슨 얘기한거야?”
“… 나보고 일 한 번 해보겠냐고 그러시네. 친구 분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직원 찾는다고.”
“아~, 아빠 동창인가보다.”
“누군지 알아?”
“응응. 그 공장 하시는 분 한 분 계셔.”
“… 거기 어때? 들어본 적 있어?”
내가 물어보자 지혜의 눈이 살짝 커졌다.
“왜? 관심 있어?”
“… 아니 그… 음….”
나는 지혜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솔직히 내가 지금 돈 없이 서울 올라온 거잖아.”
“… 그치?”
“근데 돈 나갈 일은 많고. 당장 차도 있고, 핸드폰 비는 집에서 내주고, 집세도 자기랑 반반이긴 하지만 이것도 부모님이 내주시는거고.”
“응.”
“… 그래서 그래. 취직할 때까지 1~3개월 단기 알바 뛰기도 그렇잖아? 요즘 그런 단기 알바 구하는 사람이 어딨냐?”
“그렇네. 그래서? 해보고 싶어?”
“어?”
지혜가 내 손을 붙잡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야?”
“음…. 글쎄….”
나는 지혜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조금 망설였다.
“… 나는 그냥 돈을 벌고 싶어.”
“자기. 나는 자기가 지금부터 사법고시를 한다고 해도 기다려 줄 수 있어.”
“엥? 사법고시?”
“그냥 비유지. 그러니깐 자기는 돈 문제 신경 안 써도 된다고.”
“…”
“물론 신경 안 쓰기엔 조금 부담되겠지. 그… 자기는 남자니깐, 더 그런 것도 있을 거고.”
“… 어.”
“근데 적어도 내 눈치는 안 봐도 된다고.”
지혜가 나를 쳐다봤다.
“… 자기는 아직 어리고, 원래 같으면 좀 더 여유롭게 지내도 되잖아. 괜히 나 때문에 조금이라도 빨리 남들을 따라잡으려고 하는 게 못내 마음에 걸리네?”
“…”
“물론 돈 문제 아예 신경 쓸 수는 없겠지. 하지만 고작 몇 개월 때문에 자기가 후회할 선택은 안 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생각해 봐, 자기.”
“뭘?”
“우리 아빠가 그럴리는 없겠지만, 자기가 만약 거기 취직하면 눈치 안 보이겠어?”
“…”
지혜의 말이 맞았다.
만약 그 직장을 다니게 되면 아무래도 지혜 아버님의 친구 분이 운영하시는 공장이니 여러모로 눈치가 보일 것이다.
“그것도 있지.”
“우리 아빠 제안이라고 꼭 해야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편하게 마음 먹어. 정 안 되면 간다 정도로. 그 정도가 제일 좋지 않을까?”
“그렇네.”
내가 지혜를 껴안은 채 몸을 기울이자 그녀가 나와 같이 매트리스 위로 누웠다.
지혜의 머리를 쓸어넘기며 웃었다.
“우리 지혜 어쩜 이리 예쁘면서, 배려심도 깊고, 똑똑하기까지 할까?”
“다 자기 사랑하는 마음에서 오는 거지, 히힛.”
“내가 열심히 해야겠네.”
“응, 열심히 사랑해줘.”
“크큭, 어.”
팔을 내밀자 지혜가 내 팔을 배고는 뒤돌아누워 리모컨을 돌렸다.
“아~, 재밌는 거 없나?”
“그러게. 일요일인데 티비에 뭐 재밌는 게 없네.”
“그러게~.”
지혜가 슬그머니 자신의 엉덩이를 내 다리 사이에 대고는 비비기 시작했다.
“심심하네에~.”
“…”
“우리 성준이가 열심히 하겠따고 했는데 재미있는 거 없나아~.”
“… 야.”
안 그래도 날이 점차 더워지기 시작하면서 얇게 입은 지혜와 나는 옷 너머로 서로의 살결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지혜에게 조금은 타박하듯 말하자, 그녀가 나를 보며 말했다.
“아, 맞다. 자기.”
“응?”
“가슴 만질래?”
“…”
“그냥. 딱히 바라는 건 없고. 자기도 심심할까 봐~.”
“하아….”
지혜 가슴은 못 참지.
결국 일요일도 두 번 더 해버렸다.
*
나는 지혜와 살면서 두 가지 사실을 새로이 깨달았다.
하나는 사람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란 점이다.
매일 같이 야한 짓을 하는 이 나날에 절대 익숙해지지 못 하리라 생각했지만, 점차 적응해가는 내 몸이 무서웠다.
또 하나는 사람의 성욕은 상상 이상이며 최고의 마약이란 점이다.
아무리 하고난 뒤 힘들더라도 한 번 끓어오르면 쉽게 못 참는다.
좋게 말하면 지혜와 매일 같이 꽁냥 라이프.
조금 사실적으로 말하면 지혜에게 매일 착정당하는 일상이 흐르며 어느 새 6월이 끝나가고 있었다.
“… 더워.”
“그러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서로 들러붙은 채 땀을 흘리며 선풍기 앞에 앉아있었다.
“… 에어컨 틀까?”
“아직은. 조금만 더 참자.”
“응….”
“그보다 자기 소개서 다 썼어?”
“… 아직.”
자격증을 위한 실기 수업은 다 끝나고, 시험은 7월에 있었기에 남는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 나는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대기업 공채는 9월부터 있었고 그 사이 남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일자리 박람회와 중견 기업에 이력서를 낸 게 그 시작이었다.
“… 자기 소개서 너무 어렵다.”
“일기 쓰듯이 써 보는 건 어때?”
“… 그게 또 쉽지가 않네.”
기업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박성준’에 대해 전혀 모르니 자기 소개서에 인생 이력 등을 적어내라고 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만, 솔직히 너무 싫었다.
내가 언제 내 자신에 대해 되돌아볼 일이 있었으며 뭔가 특별한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냥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평범한 성인이였고 남들처럼 대충 초,중,고등학교를 나와서 대학 진학 후에 군대도 갔다오고 이제 취업 준비를 하는 사람이다.
무슨 세계 여행을 다녀온 경험도 없으며 어디 봉사를 다닌 적도 없고 뭔가 특별한 공모전을 해 본 적도 없다.
없고, 없으며, 없었다.
“하아…, 뭐만하면 특별한 경험을 써달라고 하네.”
“히힛, 밖에서 야한 짓 했던 거 쓰면 어때?”
“… 웃으면서 내 이력서를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을까?”
“그렇겠네. 자기 잠깐만.”
“어.”
지혜를 껴안고 있던 팔을 놓아주자, 그녀가 일어나 반 수건을 집어들었다.
운동에나 쓰는 반 수건을 어디에 쓰려고 3개 씩이나 들고 있나 의문이었는데 지혜와 같이 살면서 금방 알 수 있었다.
“하아…, 그냥 에어컨 틀까?”
“전기세 아끼자매.”
“조금만 더 더워지면 틀자.”
“… 어.”
지혜가 반 수건을 옷 아래로 넣어 가슴 아래를 닦아낸 뒤, 다시 내게 안겼다.
살짝은 축축해진 지혜의 밑 가슴을 팔로 받치며 끌어안고는 내가 물어봤다.
“… 가슴 큰 것도 힘들겠네.”
“말했잖아. 무겁기도 무거워서 어깨는 항상 아프고, 허리 디스크도 올 확률 높다고 그러는 데다가 여름엔 땀이 많이 차서 짜증나.”
“회사에선 어떻게 하는데?”
“어지간하면 에어컨 틀어주긴 하는데 가끔씩 화장실 가서 땀 닦고 나오지. 속옷 따로 챙겨가는 경우도 있어.”
“… 힘들겠네.”
“그치?”
지혜가 슬그머니 내게 체중을 실으며 말했다.
“그러니깐 나 가슴 축소 수술 같은 거 받을까?”
“안 돼.”
“아, 왜~. 내가 불편하다는데.”
“… 내 꺼잖아.”
내가 지혜의 가슴을 아래에서 움켜잡자, 지혜가 웃었다.
“맞네. 자기 껀데.”
“… 그러니깐 잘 놔둬. 알았지?”
“응, 히힛.”
지혜의 가슴은 움켜잡기엔 너무 커서 항상 이렇게 아래에서 위로 잡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묵직한 그녀의 가슴 무게가 느껴져서 좋기도 했고, 아래에서 위로 올려잡으면 특유의 물컹물컹한 기분이 묘하게 중독성 있기도 했다.
내가 계속 가슴을 주물럭 거리고 있자, 지혜가 슬그머니 내 손을 붙잡았다.
“… 옷 위로만 만질거야?”
“어?”
“그렇게 말고.”
지혜가 내 손을 붙잡고는 자신의 옷을 들어주었다.
“바로 만져줘.”
“… 어.”
쓰읍.
뭔가 또 지혜에게 낚인 거 같은데….
*
“잘 다녀와.”
“응, 자기도.”
지혜와 지하철 역 앞에서 헤어진 뒤, 나는 홀로 집으로 돌아왔다.
더 이상 실기 시험을 위해 학원을 다닐 필요가 없어진 나는 아침마다 지혜를 회사에 바래다 주고 싶었지만, 지혜가 괜히 너무 멀리까지 나오지 말라면서 매번 집 근처의 지하철 역에서 헤어지곤 했다.
홀로 집에 돌아온 나는 설거지를 끝낸 뒤 방으로 들어갔다.
컴퓨터의 문서 작성 프로그램을 키고는 의제 앉아 그저 멍하니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 진짜 쓸 거 없네.’
그 놈의 자기소개서.
도대체 뭘 써야할까.
괜히 인터넷에 ‘자기소개서 쓰는 방법’ 등을 검색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구직 사이트에 들어가 새로 올라온 면접 내용은 없는지를 찾아보고는 다시 멍하니 텅 빈 자기소개서 화면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국 웹 서핑 조금 하고, 웹서핑을 하다보니 동영상도 보고, 동영상을 보다보니 드라마를 보게 되고.
…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다보니 금새 점심 시간이 되어버렸다.
“하…, 나 뭐 하냐.”
시간을 낭비하고 있단 생각이 강렬히 들었다.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계속 밑에서 슬금슬금 올라왔지만, 책상에 앉는다고 무언가가 진행되지도 않았다.
이런 악의 순환이 반복되고 있던 와중, 핸드폰이 울렸다.
지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