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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6화 〉14. 취업, 여름, 그리고 바다 - (11) (146/163)



〈 146화 〉14. 취업, 여름, 그리고 바다 - (11)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살짝 무리해서 고기를 샀다.

돼지나  말고.


비싼 소로.


오늘 저녁은 조금 사치를 부려보겠다 생각하며 기분좋게 지혜를 기다리고 있자,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자기자기. 합격했어?!”


“어. 업무시간 아니었어?”

“화장실 간다고 하고 연락하는거지.”

“빨리 끊어야겠네, 그럼. 중견급 정도 되는 회사고, 내가 관심있던 곳이랑 겹치기도 하고. 면접관 분 착하시고, 복지도 괜찮았고.”

“돈이랑 복지가 제일 궁금한데? 회사 사람이 아무리 좋아봐야 돈  주면 의미없다?”

“구직 사이트 리뷰 보더라도 하나같이 커리어 쌓기 좋은 기업이라고 얘기하고, 월급도 나름 괜찮아. 4대 보험 다 들어가고, 퇴직금 있고, 차 있다고 하니깐 유류 지원도 해주겠다는데?”


“대박이다…. 어떻게 해…, 나 눈물 나려고 그래.”


“아니, 크큭. 네가  울어?”

“그래도… 자기 마음 고생 많았던 거 같아서…”

지혜의 목소리가 조금씩 축축해지자, 울음은 전염되는지 나도 살짝 울컥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항상 나를 달래줬을 지혜가 속으로는 얼마나 내 걱정을 많이 했을지 절절이 느껴졌다.

“… 고마워.”

괜히 목이 메는 걸  참고 지혜에게 말했다.


나름 참는다고 참았는데 지혜도 내 목소리의 물기를 살짝 느꼈는지 피식 웃으며, 울었다.


“자기는 왜 울어….”

“안 울거든.”


“목소리가 우는 목소리인데?”

“… 아니야. 여튼 이따 집에서 봐. 아니지, 내가 데리러 갈까?”

“아냐. 자기 오늘은 푹 쉬어. 취직하면 이제  놀잖아. 마지막 남은 백수생활을 좀 즐겨야지.”


“… 그래.”

“어머님한테도 꼭 연락하고. 전에 걱정하시더라.”

“엄마가 물어봤어?”

“아…, 여튼 나중에 얘기해. 알았지?”

“그래.”

“응, 끊을게. 이따 봐. 쪽.”


“쪽.”


소리내어 뽀뽀 소리를 내는 걸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 엄마랑 계속 연락했구나.”


티내고 있지 않았지만, 지혜 또한 당연하게도 내 취직 때문에 걱정이 많았나보다.

당연하지만 우리 어머니도.


주말마다 꾸준히 연락을 드리고 있긴 하지만, 몇십년을 같이 살다가 요즘에 떨어져 지내고 있으니 걱정이 많기도 하실거다.


핸드폰을 들어 어머니의 번호를 눌렀다.

“… 어, 엄마. 아니. 그냥 평일에 오랜만에 전화할 일이 생겨서. 어.  취직한다.”

참 많은 사랑을 받고 있구나 싶었다.



저녁이 되자 지혜가 손에 예쁜 종이가방을 들고 집으로 왔다.


“왔어?”

“응, 자기. 일루와.”


“그래, 크큭.”


지혜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목을 껴안고는 찐하게 뽀뽀를 해주었다.

그녀의 립스틱이 볼에 남는 것도 신경쓰지 않고 나는 그녀의 애정 공세를 기분 좋게 받았다.


“축하해, 자기. 이제 진짜   될거야.”

“어. 그동안 고생 많았어.”


“고생은 무슨. 자기가 고생한거지, 뭐. 그래도 생각보다 오래 안 걸려서 다행이다.”

“그러게. 종이가방은 뭐야?”


“이거 선물.”

“응?”

“자, 열어봐.”

지혜가 종이가방을 건네주었다.

“뭔데 그래? 기대되게.”

지혜가 건네준 것은 고급진 수첩과 볼펜 세트였다.


“그래도 남자가 볼펜이랑 수첩은 들고 다녀야한다고 맨날 울 아빠가 그래서.”

“고마워, 진짜. 잘 쓸게.”


“응응.”

 때, 종이가방 아래 다른 것도 보였다.

“영수증도 들어있네?”


“아! 그거 보지 마!”


“왜?”


“안 돼에. 보지 마아…!”

지혜가 기를 쓰고 막으려 들자 나는 손을 높이 들어 영수증을 보았다.


“뭐가. 엄청나게 비싸게 주고 산 것도 아닌…데?”


날짜가 이상했다.


“잠깐만…, 지금이 8월이니깐….”

“히잉….”


“… 7월에 이걸 사놨어? 왜?”

“… 자기 금방 취직할 거라고 생각하고 처음 면접 보러가던 날 사놨어.”

“아….”

그렇게 오래 전부터 기대했구나.

지혜가 조심스레 내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 난 자기 금방금방 붙을 줄 알았단 말이야.”

“… 나도 그럴 줄 알았지.”

“근데 자기 그  불합격이라고 해서… 내내 회사에다가 놔뒀어. 자기 합격하면 주려고.”

“…”


생각보다 참 오래 기다리게 했구나 싶었다.

“일루와.”

지혜의 팔을 잡아당겨 그녀를 끌어안았다.

“으이구, 기특해가지고 진짜.”

“… 너무 설레발  거 같아서  민망하긴 하드라.”

“그랬어?”


“… 그래도 전해줬으니 됐어. 영수증 빼둘 걸 그랬네….”

“아냐. 덕분에 더 감동 먹었어.”

“응?”


“…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조금 늦었지만, 이제 다음 달부터는 나도 돈 번다.”

“응응. 이제 다 잘 될거야.”


“그래. 다 잘 될거야.”


그렇게 한참을 신발장에서 서로 껴안고, 서로의 등을 토닥여주며, 서로 위로했다.

앞으론   될거라고.

이제 더 이상 걱정은 없을거라고.


서로에게 다짐하듯이.


“나 소고기  놨어. 그거 먹자. 내가 해줄게.”

“아! 그럼 나 와인 조금 마셔도 돼?”

“그래. 자기 내일 회사 괜찮겠어?”

“조금만 마시면 되지, 뭐.”

“자기만 괜찮다면야. 다 먹고 야한 짓도 조금 할까?”

“오늘 평일인데?”


“특별한 날에는 하기로 했잖아.”

“히힛, 앞으로도 특별한 날 많았으면 좋겠네~.”


“그럴 거야. 자기 옷 갈아입고 와. 고기 굽고 있을게.”

“응.”


 날 밤은 정말 행복했다.


역시 고기는 소고기다 다시 한 번 확신하고, 약간 취한 지혜가 귀여운 모습을 보이다가 도중에 눈물도 살짝 보이고, 그런 그녀를 달래다가 야한 짓도 하게 되고.


참 행복했다.



*

회사일은 생각보다 할 만했고, 어려웠다.


할 만했다는 것은 걱정했던 부분이 크게 문제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

혹시나 지랄맞은 사수, 상사를 만나면 어떻게 되려나 싶었지만 다행히도 회사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았다.

가끔씩 이해가  가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불쾌하진 않았다.

그냥 나랑  안 맞는 사람이구나 정도가 전부였다.


일은 조금 어려웠다.

대학교에서 배운 전공을 살릴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회사는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내게 요구했다.


처음에는 그냥 기사 자격증을 잘 활용해서 관련 업무만 볼줄 알았지만, 알고보니 나는 만능 인력이었다.


컴퓨터가 고장나면 내가 찾아간다.

영어를  수 있는 사람을 찾으면 내가 간다.

갑자기 힘  사람이 필요하면 내가 간다.

아무튼 나는 만능이여야했고,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일들도 금새 손에 익어갔다.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니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고 평일은 집에 돌아오면 피곤함에 찌들어 지혜와 잠깐 노닥거리다가 자기 바빴고, 주말은 평일동안 놀아주지  해 살짝 심통이 난 지혜를 달래주며 잔뜩 야한 짓을 하느라 바빴다.

매일매일이 충실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첫 월급을 받고, 추석이 막 지날 무렵.

나는 지혜의 본가에 찾아갔다.

“아이구, 어서와요. 안 피곤해요?”

“아닙니다. 전혀요.”

어머님은 전처럼 살갑게 나를 맞이해주셨고, 아버님 또한 전보다 익숙해졌다.

“왔어요? 취직했다면서요?”

“예예.”


“일은 좀 할만해요?”

“네, 생각보다  맞습니다. 보내주신 엑기스 덕분에 잘 해나가고 있습니다.”

“뭘 그런 거 가지고. 이따 갈 때 좀 챙겨가요. 유통기한 얼마 안 남은 거 많으니깐.”


“예.”

아버님은 꾸준히 엑기스를 보내주시곤 했는데 얼마 전에 지혜가 내게 비밀을 가르쳐줬다.

‘“이거 봐봐, 자기. 이건 투명하지?”


“응.”


“투명한 건 유통기한이 짧은 애들이야.”


“진짜?”

“우리 집은 그렇게 구분해. 이게 원래 박스에 유통기한 표기가 따로 있거든?”

“어.”

“유통기한 다 되가는 애들은 다른 박스에다 넣어두는데 이거 봐. 새 박스지? 그럼 이건 얼마 전에 만든 거다?”


“새 거란 얘기야?”


“응응. 아빠가 계속 자기한테 좋은 거만 보내주는 거 같아.”

“… 나중에 감사하다고 인사드려야겠네.”

“아냐, 하지 마. 아빠가 원래 이거 티내지 말라고 했는데 그래도 자기가 알긴 알아야 할 거 같아서 얘기해주는 거니깐.”


“나중에 눈치봐서 얘기할게.”

“그래.”

추석 때 지혜의 아버님과 어머님의 가장 큰 관심사는 ‘그래서 언제 정식으로 결혼할거냐?’ 였다.


당연한 얘기였고, 지혜 또한  이야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것 같았다.


도대체 언제쯤 내가 프로포즈할까.

최근 들어 지혜가 자주 손가락의 반지를 만지작 거리는 걸 보고 있자니 조금이라도 그 시간을 앞당기고 싶었지만, 그래도 허술하게 하고 싶진 않았다.

“그 혹시 결혼 때문에 걱정하는 거면 너무 신경쓰지 마요. 지혜 엄마랑 지혜가  뭐라그래도 일이 좀 손에 익고, 안정되면  때 쯤 해요. 알았지요?”

“… 네.”

지혜 아버님은 그런 내 마음을 알아차리셨는지 저런 얘기들을 해주셨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웃음이 튀어나왔다.

우리 아버지랑 하는 말이 똑같았기 때문에.

아버지란 존재는 다 비슷하구나 싶었다.


그렇게 날이 지나고, 지나고,  지나면서.


겨울이 찾아왔다.

지혜를 만난 계절.

11월이 끝나갈 즈음.

회사 일이 슬슬 익숙해지고, 내가 이 일을 앞으로도 계속 하겠구나 확신이 생기고, 지혜의 기대감이 피곤함으로 바뀔 무렵 즈음.

나는 혼자 백화점을 찾아갔다.

“뭐 찾으세요, 손님?”

“프로포즈 하려고요.”

“어머,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아내되실 분은요? 같이 안 오셨어요?”

“네. 몰래 왔어요.”

“손가락 사이즈는 아세요?”


“네네.”

백화점에서 프로포즈를 하기 위한 반지를 샀다.


이름만 들어도 알 정도의 유명한 브랜드의 반지였다.


내 한  월급 정도에 해당하는 거금이였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지혜는 종종 스몰 웨딩을 언급했고, 나 또한 돈을 벌기 시작하자 결혼에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가는  알았지만, 어림도 없지.

남들 하는 거  해주고 싶었다. 돈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주문했던 반지를 받고, 반지 케이스를 옷 깊숙히 내 심장에 가까운 왼쪽 안 주머니에 숨긴 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지혜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

“오늘?”

“응. 오늘.”


“이렇게 갑자기?”

“응, 이렇게 갑자기.”


“갑자기 왜? 무슨  있어?”

“그냥 오랜만에 좀 가고 싶어서.”

“… 그래, 가자. 자기, 회사에서 무슨  있었어?”


“조금. 바람 좀 쐬고 싶네.”

“응응.”

정말  거 아닌 날이었다.

목요일.

주말까지는 아직 하루가  남았고, 이미 일주일의 4일을 보내 가장 피곤한 날.

나는 지혜에게 같이 서울역을 가자고 말했다.

 기준으로 지혜와 처음 사귀게 된 장소이자, 항상 지혜와 이별했던 장소.

서울역에 도착하자 심장이 조금씩 빨리 뛰기 시작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혜는 조금 신나보였다.


“오랜만이네, 여기도. 거의  년만에 오는 거 아닌가?”

“그렇게나 됐나?”

“그치. 자기랑 같이 살게된 이후로  일이 없었잖아. 전에 경주에 갈 때도 운전해서 내려갔으니깐.”

“맞네.”

“근데 갑자기 서울역은 왜?”


“그냥 오랜만에 와보고 싶었어.  말처럼 한동안 안 왔다 싶어서.”

“… 그래?”


지혜는 눈을 가늘게 뜨며 씨익 웃었다.

“자기, 오늘 좀 수상해에?”


“내가?”

“응. 회사에서 또 뭐라고 한 소리 들었어?”


“… 요즘은  까이거든.  에이스야. 유망주.”


“그래놓고 전에 발주 잘못 넣은 거 있다고 그렇게…”


“아아아아! 안 들려어~.”

“크큭, 알았어. 안 놀릴게.”


지혜와 걷다보니 자연스럽게 익숙한 플랫폼에 도착했다.

부산행 플랫폼.

기차가 올 시간은 아닌지  빈 플랫폼의 벤치에 앉자 지혜가 살짝 몸을 떨었다.

“추워?”


“조금 쌀쌀하네. 벌써 겨울이 왔나보다.”

“따뜻한 거 사올까? 옆에 편의점에서?”

“그럴래?”


“잠깐 기다려?”

“응응.”

편의점에서 따스한 캔커피를 사서 돌아오자 지혜가 두 손으로 캔을 붙잡고 마시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으으, 따끈해.”


“좀 괜찮아?”


“응, 괜찮아.”

지혜와 나는 말없이 커피를 비웠다.

지혜가 다 마신 캔 커피를 벤치에 내려놓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자기, 그래서? 오늘 갑자기 왜 여기 오자고 한 거야?”

“그렇게 이상해?”

“응. 평일에 갑자기 서울역을 올 이유가 없잖아.”

지혜가 두 손을 모아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 괜히 기대하게 되는데?”

“그런가? 크큭.”

캔 커피를 들이키려고 보니 이미 다 비운 상태였다.

벤치에 빈 캔을 내려놓고 나는 지혜의 손을 붙잡았다.


“지혜야.”

“으… 응.”


“그냥…, 서울역이 한 번 와보고 싶었어. 너랑 같이 살기 시작하니깐… 음…. 항상 붙어있잖아?”

“그렇지?”

“우린 맨날 서울역 아니면 대구역에서 헤어졌잖아. 그래서  싫어했는데 또 한편으로는  기차역이 항상 너를 만나던 장소니깐. 여기가 제일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응?”


안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자, 반지케이스가 손에 잡혔다.


“… 네가 말했잖아. 화려하지 않고, 둘이서만 있는 조용한 곳에서 하는 게 좋다고. 근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조금 특별한 장소에서 하고 싶더라고.”


“…”

지혜의 눈이 크게 뜨였다.

“… 매번 여기서 헤어졌지. 근데 앞으로는 더 이상 떨어질 일이 없을 테니깐, 그래서 여기서 얘기하고 싶었어.”


벤치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는 품 속에 간직하고 있던 반지 케이스를 꺼내들었다.

뚜껑을 열어, 지혜에게 내밀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나랑 결혼하자, 윤지혜.”

챕터 14. 취업, 여름, 그리고 바다 


-> 챕터 15. 해피 오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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