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0화 〉15. 해피 오프닝 - (4) (150/163)



〈 150화 〉15. 해피 오프닝 - (4)

아버지가 건네주신 돈 때문에 가장 큰 문제가 사라졌다.

하지만 지혜와  사이의 고민은 더더욱 커졌다.


“… 이 돈은 절대  쓰면 안 되겠네.”

“그치.”

“… 꼭 필요한 것만, 가능한 싸게 사자.”


“응응.”

이전부터 돈 관련 문제를 열심히 따지기 했지만, 돈이 생긴 뒤에 오히려 더더욱 세밀하게 따지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이 돈은 가장 크고, 중요한 곳에 쓰기로 결정했다.

바로 ‘집’.

지금 지내고 있는 월세집이 나쁘진 않지만, 결국 매달 꾸준히 돈이 나가는 것은 가계에 큰 부담이 되기 마련이었다.


“전세가 좋겠지?”

“그렇지. 근데 이건 어른들에게 물어보고 하는  나을  같아.”

“응응. 그렇지. 아버지 친구분 중에서 복덕방 하시는 분 있으니깐 그 쪽에 물어봐달라고 얘기할게.”

“어.”

“그럼 이제 가장 큰  역시 예식장이네…. 다른  다 감당할만한 돈이라고 해도 예식장은 진짜 어떻게 하….”


아무리 싸게 잡아도 천 만원.


부담되는 가격이었다.

어디까지나 대여료 + 식비 만으로  만원이었지 그 외의 비용까지 합치면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2천만원 정도가 나왔다.


그리고 그런 나와 지혜의 고민은 의외의 곳에서 해결됐다.

동수였다.


“너 등신이냐?”

“… 뭐? 왜?”

“우리 학교 회관 기억나냐?”

“거기 왜?”

“졸업생은 거기 대관해서 결혼식 할 수 있다. 몰랐냐?”


“… 엥?”

“병신아, 좀. 주변에 관심 좀 가져라. 전에 축구부 그… 왜 골키퍼 매번 하던 형님 있잖아.”


“어어….  안경 쓴 분?”

“그래. 그 형님 우리 학교 예식장 빌렸잖아.”

“… 전혀 몰랐다.”


“거기 음식은 안 나오지만 예식장으로는 쓸  있을걸? 잠시만. 내가 그 형이랑 연락해보고 다시 연락해줄게.”


“고맙다, 동수야.”


결혼은 당연히 웨딩홀에서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동수가 학교에서 결혼한 선배와 나를 이어줬고,  선배님을 통해 자세한 설명을 들은 뒤 학교에 연락해보자 말도 안 되는 싼 가격에 빌릴  있음을 알았다.

전화를 마친 뒤, 나는 넋이 나간 얼굴로 지혜를 바라봤다.

“지… 지혜야.”

“응? 왜 자기? 얼굴이 왜 그래?”

“40만원….”

“응?”

“우리 학교 예식장 대관하는데 2시간에 40만원이래.”


“… 진짜?”

“…어. 대신 식사할 곳은 주변에 따로 없고, 양가 합쳐서 160석 밖에 없어.”

“꺄악!”


지혜가 비명을 지르며 내게 안겼다.

“아니, 160명이 어디야?! 각자 80명인거지?”

“어….”

“자기 80명 넘게 부를 일 있어?”


“…”


나는 잠깐 고민했다.

“친척이랑 아버지, 어머니 지인분  합치면 조금 애매할 거 같긴 한데 80명이면 거의 되지 않을까? 약간 오버해서 서 계신 분들 있는  조금 양해를 구해야지.”


“그 정도면 충분하지.”


게다가 더 알아보다보니 출장 뷔페도 가격이 괜찮았다.

그리고 여기서 또 한 번, 동수가 큰일을 해줬다.

“어, 동수야. 고맙다, 진짜.”


“야,  혜성이 기억나냐? 네 아들 군번.”


“어어. 기억나지.  말뚝 박지 않았냐?”

“전화번호 그대로니깐 걔한테 연락해봐라.”

“응? 왜?”


“아, 새꺄. 그냥  해라.”

“… 그래.”


별 생각없이 동수의 말에 따라 전화번호를 뒤져 혜성이에게 연락했다.

오랜만의 전화였음에도 다행히 혜성이는 나를 밝게 반겨주었다.

“박 뱀! 잘 계십니까?”

“박 뱀은 무슨 큭큭. 그냥 형이라고 부르라니깐?”


“그래도 박 뱀이 더 익숙하지 말입니다.”

“너 말뚝 박았잖아. 근데 병장한테 존대해도 되냐?”


“에이~, 그래도 박 뱀한테 어떻게 말을 놓습니까.”


“크큭, 그래도 오랜만에 목소리 들으니 반갑다. 동수가 너한테 연락해보라던데 무슨 일 있냐?”


“아, 예. 박 뱀, 조만간 결혼한다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어. 청첩장 나오면 바로 보내줄게. 시간 안 맞으면 꼭 안 와도 돼고.”

“탈영해서라도 나가겠슴다!”


“크큭, 오버는.”

그래도  혜성이는 한결같다 싶었다.


“그래서 내 결혼이 왜?”

“김 뱀이 말해줬는데 박 뱀, 출장 뷔페 찾는다고 들었습니다.”


“어. 식장은 구했는데 거기 음식이 안 된다고 해서.”

“저희 집 출장 뷔페 합니다.”

“…”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박 뱀?”


“그 때 요리사라고 했잖아, 새끼야.”

“요리사 맞지 않습니까? 여튼, 박 뱀 결혼하시는데 제가 또 보태드려야하지 않겠습니까? 혹시 구하셨다면 상관없는데 아직 못 구하셨으면 얘기하십쇼.”


“… 괜찮냐? 솔직히 돈 아끼려고 구하는 중이긴 한데.”


혜성이를 볼 낯이 없었다.

아는 사이기에 더욱 돈이 오고가는 게 무서웠다.

돈 같은 게 개입되지 않는 순수한 사이로 남고 싶었다.

그냥 혜성이는 내가 알던 군대 후임, 언제봐도 즐거운 동생 정도로.

하지만 혜성이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박 뱀. 부담스러우면 안 하셔도 되는데 어지간하면 걍 연락해주셨으면 합니다.”

“야…, 그래도 사람 많으면 그만큼 돈이 비싸지는데….”


“저희  많이 남기면서 하니깐 괜찮습니다. 그리고 박 뱀, 저 군 생활 동안 박뱀 없었으면 진즉에 자살했습니다.”

“새끼야, 무서운 소리 할래?”


“진심입니다,  뱀.”


“…”


“박 뱀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몰라도   전역할 때 했던 말 진심이었습니다.”


“… 소름 돋는 소리 할래?”

혜성이는  전역할 때 울면서 ‘1년만 더 군생활 하다 가시면 안 됩니까?’ 라고 했었다.


이 새끼, 생각해보니깐 이건   넘네.

“여튼, 박 뱀. 꼭 연락주십쇼. 전화번호 문자로 보내놓겠습니다.”

“… 그래. 고맙다.”

“청첩장 나오면 꼭 보내주시고요.”


“당연하지, 새끼야. 수고해라.”

“옙, 수고하십쇼.”


전화를 끊자 왠지 이상한 기분이었다.

‘… 내가 혜성이한테 뭘 해줬었나?’


그냥 같이 군 생활을 한 정도였다고 생각했지만, 혜성이에겐 그렇지 않았나 보다.

나중에 동수를 만나고서야 들었다.


혜성이가 한  급하게 휴가를 나간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 돈이 없다고 해서 10만원을 별 생각없이 빌려준 적이 있었다.

나중에 전역모나 하나 해달라고 하며 돌려받지도 않았는데 그 10만원이 혜성이한테는 어지간히 컸었던 모양이다.

막상 내가 전역할 때 즈음엔 전역모가 부조리라고 없어져서 아무 것도 안 받고 나오기도 했지만, 그것마저 그냥 그러려니 하고  생각 없었다.

“그 새끼, 전에 그 10만원 얘기하면서 초소에서 엄청 울더라.”


“… 그랬냐?”

“어. 나도 잘 모르는데  정도면 그냥 받아줘라. 다 네가 뿌린 씨앗이다.”


“…”


결국 나는 혜성이가 보내준 전화번호로 연락을 했다.

가격은 생각보다 합리적이었고, 엄청 비싸지도, 엄청 싸지도 않은 딱 적당한 가격이었다.


그렇게 식장과 음식 업체를 고른 뒤.

결혼식 준비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


가장 먼저한 것은 양가 부모님끼리 만나는 일이었다.


일정을 조율하기가 상당히 힘들었는데 서로 ‘이 쪽에서 서울로 가겠다’, ‘이 쪽에서 경주로 내려가겠다’라고 워낙 강경한 의견을 펼치셔서 사이에서 곤란했었다.


하지만 결국 ‘결혼은 대구에서 여니깐 이번에는 서울에서 만납시다’로 결론이 났고,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울로 올라오셨다.


“오셨어요, 어머님?”


“아이고…, 침대도 아직 안 샀니?”

“신혼집 알아보고 바로 사려고요, 히힛.”


“부부는 침대가 제일 중요하니깐 다른 데는 돈 아껴도 침대엔 팍팍 써. 알았지?”


“네. 아, 짐 주세요.”

“그래. 이거는 이번에 마늘 장아찌  거고, 이건 요즘 귤이 제철이라 가져왔다. 성준이한테 맡겨놓으면 하루 만에 다 까먹으니간 숨겨놨다가 조금씩 줘, 알았지?”

“네.”

“… 내가 그거 혼자서 다 먹을까 그래?”

“그래, 이 놈아. 지혜도 좀 챙겨줘.”

“…  진짜 열심히 챙겨주는데.”

“말은…. 애가 이렇게 말랐는데?”

“…”

다이어트는 지혜가 알아서 했는데….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울에 도착한 뒤, 들고오신 반찬거리만 건네주시고 오늘 약속 잡은 식당으로 향했다.

 가의 부모님이 만나는 자리는 큰 문제없이 화목함  자체였다.

“아이고…, 사돈댁이 올라오게 해서 미안합니다. 우리가 내려가야 했는데.”


“허허, 아닙니다. 결혼은 그래도 아래 쪽에서 하게 되서 저희야말로 죄송하죠.”

“허허허.”

“허허헛!”

아버님들은 서로 대화  마디 나누시고 웃음을 터뜨리시기를 반복했고, 어머님들 쪽은 서로를 칭찬하기 바쁘셨다.

“아이고…, 사위가 얼마나 싹싹하든지.”

“아니예요. 지혜가 얼마나 예쁘던지 우리 아들이랑 바꾸고 싶었다니깐요?”

“아하핫, 저도 듬직한 아들이 필요했는데 바꾸실까요?”


“그럴까요?”

“…”


정작 나와 지혜는 긴장해서 밥을 제대로 못 먹었지만, 어른들은 그렇지 않았다.


서로 살갑게 얘기를 나누신 뒤에는 번호도 교환하고, 쉼없이 악수도 하시고, 예물이니 예단이니 복잡한 얘기들도 나누시곤 했다.

그리고 끝날 때 즈음엔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처럼 헤어지기를 아쉬워하셨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예. 대구에서 뵈요.”


“앞으로 저희 아들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지혜 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신없이 상견례가 끝난 뒤, 지혜 아버님.

이제는 장인 어른이라고 부르게  아버님이 자주 연락하곤 하셨다.


“박 서방. 이 쪽 집은 어때요?”

“예. 주소만 불러주시면 제가 지혜랑 같이 다녀와보겠습니다.”


“그래요, 이 쪽은 주소가…”

전세금을 사실상 우리 집에서 내는 입장이 되자, 장인 어른은 가구를 채워주시기로 하셨다.


시간이 나실 때마다 꾸준히 서울과 경기권에서 괜찮은 신혼집을 찾아 알려주셨고, 나와 지혜가 주말에 시간이 날 때마다 그 곳을 찾아다니기를 반복했다.


빨리 신혼집을 정해야 그 안에 가구를 채워넣을 수 있으시다고 얘기하시는 와중에도 가능한 좋은 집과 좋은 조건, 좋은 사람을 찾기 위해 노력하셨다.

게다가  가구도 다른 곳에서 훌쩍 얘기가 들어오곤 했다.

“어…. 어?! 야! 네가 냉장고를 왜 해 줘? 야? 야!!”

“… 무슨 일인데 그렇게 소리를 질러?”

“윤경이가 냉장고 샀데.”

“어?”

“… 축의금 대신으로 보내주겠데.”

“나중에 감사하다고 따로 인사드려야겠네.”

결혼은 둘 만의 일이 아니라는 게 새삼스레 많이 체감되었다.

지혜와 나, 둘만 고생하면 될 줄 알았던 일에 많은 사람들의 힘이 보태졌다.


 이래서 경조사가 중요하다고 하는 것 같았다.


나와 지혜의 중요한 일인데, 자신의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도와주는 것들이 하나하나 너무나도 커서 가슴이 벅찼다.

“… 언제 온다는데?”


“몰라….”

“… 청첩장 나오면 직접 만날 거잖아? 그 때 물어보자.”


“응.”


지혜가 머리를 다듬고 신발장으로 조르르 달려나왔다.


“갈까?”

“응.”

오늘은 드레스 시착  웨딩사진 촬영일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