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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2화 〉15. 해피 오프닝 - (完) (152/163)



〈 152화 〉15. 해피 오프닝 - (完)

그 후로  많고 많은 자잘한 일들이 있었다.


신혼 여행지도 미리 예약하고, 몇몇 중요한 사람들은 일일이 만나서 직접 손으로 쓴 청첩장을 건네주고, 회사에도 알려서 축하인사도 받고.

바빴다.

힘들기도 했고, 지치기도 했고.

근데 싫었냐고 그러면 그렇지는 않았다.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는 일은  기분 좋은 일이었고, 신혼 여행은 떠올리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기분이었다.


겨울이 지나가면서 날이 점점 따스해지고, 결혼식이 가까워지자 점차 실감이 나면서도 묘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결혼 하루 전이 되었다.

“자?”

“응?”

“안 자네.”


“크큭, 자는 사람한테 자냐고 물으면 그 사람이 어떻게 대답하냐?”


“그것도 그렇네.”

결혼 당일 당사자가 늦을 수는 없었기에 나와 지혜는 대구에 내려와 근처의 호텔에 머무르고 있었다.


내일이면 이제 지혜와 결혼이다.


“… 실감이 안 나네.”


“뭐가?”


“자기 남편 되는 거. 이제 누군가의 남편이라고 불리는 거.”


“… 나도.”

“어때? 지금 기분?”

“나…? 음… 이상하네.”

지혜가 내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자기 처음 봤을 때 있잖아, 난 자기랑 결혼할거라 생각해 본 적 없다?”


“크큭, 그건 나도 그렇지.”

“… 그냥 지나가는 인연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생각한 적도 있고.”


“그랬어?”

“어. 그러던 사람이 지금 내 옆에 있네. 앞으로도 옆에 있을 거고.”

“신기하네.”

“그치?”


지혜의 손이 내려와 내 왼손을 붙잡았다.

결혼을 준비하며 기어이 장모님이 하나 맞춰주신 결혼 반지였다.

내가 지혜에게 선물했던 똑같은 반지.

“반지 케이스 들고 왔지?”


“어. 그치.”

“하아…, 어쩌지.  내일   같은데.”

“그래서 방수로 메이크업 해주신다고 그랬잖아.”

“그치? 시청에 찾아갔는데 화장 얼룩 묻은 상태면 엄청 웃기겠지?”


“마음 놓고 울어. 어깨 빌려줄게.”

“크히힛, 응.”

지혜가 내 품에 안기며 웃음을 터뜨렸다.


“… 고마워.”

“뭐가?”


“그 날. 자기 집으로 가던 날, 용기내서 나한테 통화해준 거.”


“나야말로 고맙지. 자기가 받아줘서.”


“아니…, 내가 더 고마워.”

지혜는 고개를 들고 내 턱을 쓰다듬더니 이내 입을 맞추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자기한테 고백할 용기까지 없었거든.”

“그래서 프로포즈는 먼저 한 거야?”

“아, 맞네. 자기 빨리 나한테 고맙다고 그래. 나 아니였으면 자기 결혼 못 했어.”

“크큭, 고마워.”

“나야말로. 아~, 어쩌지.  잠 못   같은데.”


“계속 이렇게 얘기만 하다보면 못 자는 거지. 잘려고 노력해 봐.”


“1 시간만 이야기하자. 딱 1 시간. 응?”

“…”


시계를 바라보자 아직 11시 반이었다.


내일 못 해도 6시에는 일어나야하는  생각해보면 조금 빡빡하지만,  일어날 시간도 아니었다.


결국 나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오케이,  1 시간만.”

“응응.  마실래?”

“물. 다른 거 마시기는 좀 그렇네.”

“그래.”

지혜가 일어나 냉장고에서 물을 들고 돌아왔다.

“자.”

“고마워.”


“… 여보.”


지혜가 갑자기 나를 저렇게 부르자 목에 사레가 들렸다.


“크헉. 켁…. 야! 갑자기 그거 안 하기로 했잖아.”

“… 결혼하면 해도 된다매.”

“…”

“왜? 여보는 별로야?”

“… 좋지. 너무 좋아서 그렇지.”

“그래, 히힛? 많이 불러줘야겠네?”


“… 그래도 아직은 자기가 조금 더 좋네.”

“응?”

“연애하는 느낌 나잖아. 솔직히 결혼한다고 그러면 막 뭔가 엄청 크게 바뀔 거 같았거든? 근데 음… 아직 식을 안 치뤄서 그런지 뭔가 엄청 달라진  같지 않네.”

“그건 나도 그런데…”

지혜가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안에서 서류를 꺼내들었다.


“내일 이거 내면 기분이 달라지지 않을까?”


“…”


지혜의 손에서 서류를 넘겨받자 그 안에는 나와 지혜의 글씨로 쓰인 한 문서가 있었다.

혼인신고서.


결혼하면서 우리는 가능한 서로가 원하는 것을 최대한 하고자 노력했다.


지혜의 꿈은 결혼식 그 자체였다면, 내 꿈은 결혼식 후에 있었다.

결혼이 끝나고, 그대로 드레스와 예복을 입은 채로 시청에 가서 혼인신고서를 제출하고 오는 것.

멋지지 않은가?

인생에 한 번 낼 서류인데 이 정도 오버는 하고 싶었다.


다행히 지혜도 동의했고, 드레스 대여 업체에서도 그런 경우가 많다면서 허락을 받았기에 나와 지혜는 며칠 전에 미리 혼인신고서를 다 써뒀다.

지혜의 동글동글한 글씨와  삐뚤삐뚤한 글씨가 합쳐진 우리 둘의 합작품.


물끄러미 서류를 보고 있자니 방금까지 실감이  난다고 했던 것과 달리 또 가슴이 이상했다.

설레기도 하고, 울렁이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고.

참 알  없는 감각이었다.

“… 내일 시청 가서 가족등본도 바로 떼볼까?”


“내 이름 나오나 확인해보게?”

“어. 바로 나오려나?”


“바보야. 걔네도 일 처리 하는데 시간이 있겠지. 그건 다음에  봐.”

“… 아쉽네. 오케이, 그건 나중으로.”


“그보다 신혼 여행은 기대 안 돼? 나는 엄청 기대 중인데?”

“나는 너한테 얼마나 기 빨리고 돌아올까 두려워지는데.”

그도 그럴 것이 지혜는 오랜 만에 나한테 ‘참으라’ 요구했다.

몸이 떨어져서 주말 커플일 때나 2주씩이나 참았지, 서로 붙어 살고, 매일 껴안고 자는 사이에 2주를 참으란 것은 지옥 같았다.

도중에 못 참고 한밤 중에 화장실에서 혼자 하다가 걸렸을 때를 떠올리면…


오우.


“히히힛, 돌아올 때 걸어서 돌아올 생각하지 마?”

“… 제주도 가기 무섭네.”

“네가 정했다?”

“… 눼.”

신혼 여행은 멀리  가고 그냥 제주도로 했다.

우리 둘  따로 여권을 만들어봤자  일도 없다고 생각했고, 해외여행 너무 비쌌다.


여행이야 나중에 돈 벌어서 차근차근 가자고 미뤄두고 무난한 제주도로 잡았다.

무엇보다 3월엔 유채꽃이 엄청나게 예쁘기도 했다.

집 한 구석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찍은 신혼 사진에는 항상 제주도의 유채꽃밭이 배경이었고 나와 지혜 또한 그래서 제주도로 정했다.

“…  이대로 못 잘  같은데.”

“밤 새면 후회한다.  피곤한 거 얼굴에 다 드러날 걸?”

“으으…. 수면제라도 챙길 걸 그랬나?”


“잘 때까지 자장가라도 불러줘?”

“자기 목소리 듣고 있으면 더 못   같아. 덮치고 싶어서.”


“… 나 지금 민감하니깐 건드리지 마.”


“오구오구, 그랬어요? 내일 밤까지만 참아, 히힛.”

“하아…. 그렇지, 하루만 더 참으면 되지.”


“아, 맞다. 자기.”

“응?”


지혜가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받치며 말했다.


“가슴 만질래?”

“야아…! 도발하지 말라고…”

“으히힛. 아~ 나 자기 참느라고 안절부절 못 하는게  이리 귀엽지이?”

“너 진짜 내일 가만 안 놔둔다.”


“꺄아악, 큰일나겠네.”

“후우…, 빨리 누워. 자야지.”

“알았어. 이젠 진짜 자야지.”


지혜가 다시 베개에 머리를 받치고 눕자, 나도 그녀를 마주보며 누웠다.

“성준성준.”


“왜, 지혜지혜.”

“나 행복하게 해줄거야?”

“…”

뭐라고 대답해야 고민하며 지혜의 뺨을 만지작거리다가 말했다.

“아직 안 행복해?”

“응?”

“난 지금도 행복한데.”

“… 나도, 히힛.”

“앞으로도 계속 이렇지 않을까?”


“애기 낳으면 조금 달라지겠지?”

“아, 그렇긴 하겠네. 그럼  전까지만. 지금처럼.”


“지금처럼 어떻게?”

“매일 같은 공간에서, 같이 숨 쉬고, 같이 지내면서, 같은 걸 보다가, 같이  드는거.”

“좋네.”

“좀 다른거면 이제 자기는 법적으로  아내네.”


“꺄아악!   아내라는 단어 되게 이상하다.”

“어디가?”

“몰라. 가슴이  그냥 마구 뛰어. 들을 때마다 되게 몸부림치게 된다?”


“너무 좋아서?”

“응응. 너무 좋아서.”


지혜가 침대 위를 조금 뒹구르다가 내 가슴팍으로 들어왔다.

“박성준의 아내, 윤지혜네 이제부터.”

“외국식 아닌  다행으로 여겨야겠다. 박지혜면 좀 이상하잖아.”

“그럼 자기가 내 성으로 따라와야지. 윤성준은 괜찮잖아.”

“데릴 사위로 들어가는 거야?”

“응응. 자기가 나한테 시집오는거지.”

“크큭, 드레스 내가 입을까?”


“아! 난 양복 입는 거 좋은데? 우리 바꿔?”


“… 내가 미안.”


“크히힛, 바보.”


지혜가 조금 얌전해지자 나는 그녀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내일은  거 아닐거야.”

“응?”

“결혼식… 음… 되게 중요하겠지. 하는 내내 긴장도 될 테고, 가슴도 벅찰 거 같아. 하지만 그 뒤를 생각하니깐 별 거 아닐거야.”


“왜 그렇게 생각해~?”


“그 다음날부터 우린 부부잖아. 그 생활이  기대된다고. 결혼은 그냥 우리 연애 생활의 끝인거지. 그런 생각이 좀 들더라.”

“나는 결혼식 많이 기대했는데?”


“나도 기대하지. 아… 그러니깐 그… 뭐라고 해야되냐.”

나는 잠깐 말을 고르다가 지혜에게 말했다.

“너 영화 끝이 좋아, 시작 부분이 좋아?”

“응?”

“예를 들어 왜… 우리 전에 봤던 그 영화 기억나? 히어로물인데 시리즈로 나오는 거.”


“응응, 기억나지.”

“이번에 시리즈가 완결났잖아?”


“어. 마지막에 감동적이라고 자기 엄청 울었잖아.”

“너도 울었으면서. 여튼… 어떻게 보면 그거도 해피엔딩이잖아.”

“그치.”


“나는 근데 영화는 무조건 오프닝이 좋아. 가슴이 두근 거리니깐. 엔딩은 싫어. 더  일이 없고, 즐길 수도 없잖아.”

“특이하네, 자기.”

“그런가? 소풍으로 바꿔 생각해 봐. 소풍 가기 전이 좋아? 갔다온 뒤가 좋아?”


“아! 그거면 가기 전이 좋지.”

“그런 거야.”


“그런 거야?”

“응, 크큭.”

“그럼 자기는 해피 엔딩보다 해피 오프닝이 더 좋겠네?”


“그치. 행복한 시작. 앞으로가 기대되고, 결국 마지막에 찾아올 해피 엔딩이 기대되는 그런 게 더 좋아.”

지혜가 내 가슴 속에 더 머리를 파묻으며 중얼거렸다.


“해피 오프닝… 좋네.”


“…”

지혜의 중얼거림을 들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졸음 기운이 느껴졌기에.


지금 잠이 안 들면 내일 아침은 정말 일어나기 힘들테니깐.


그래서 지혜의 머리를 그저 멍하니 쓰다듬으며 나도 눈을 감았다.


‘해피 오프닝…. 너무 좋지.’

영화는  본 뒤의 감동도 좋지만, 제일 처음 시작할 때.


광고가 다 끝나고 영화관의 불이 꺼지는 그 시간이 좋았다.

그 때부터 나는 내내 즐거울테니깐.

뭐, 재미 없는 영화라면 짜증만 샘솟겠지만, 내 인생이 영화라면 다를거다.

옆에 지혜가 있으니깐.

지혜와 함께하는 결혼 생활은 즐거울  밖에 없을 테니깐.

항상 나를 기쁘게 만드는 존재가 바로 지혜니깐.

그런 생각을 하며 조금씩 잠에 빠져들었다.

꿈 속에서 나는 마치 영화관에 앉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 곧 영화가 시작될 거다 생각하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애쓰며 잠들었다.



챕터 15. 해피 오프닝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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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잇…, 방수라고 했는데… 씨이….”


“사진 찍을 때까지는  참았잖아, 크큭.”

“이거 드레스 자락 좀 잡아줘. 엄청 걸리적 거린다…”

“응, 크큭.”


지혜의 길게 늘어진 드레스를 붙잡고 시청의 주차장에 내렸다.


자동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우리를 본 직원은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단번에 알아차린듯 했다.

“저 쪽으로 가시면 되요.”

“네, 감사합니다.”

“자기자기. 나 눈 안 번졌어?”


“많이  번졌어. 조금, 아주 조금.”

“씨이… 나중에 사진  만져달라고 해야겠다.”

“용케도 참았네, 크큭.”


“아이씨…, 아빠가 갑자기 그런 말 하니깐 못 참았지.”

“자, 뚝. 이제 그만 울어.”


“나 휴지 좀 줘…”


“아까 주지 않았나…? 아, 여기 있네.”

“하아…, 킁! 됐어. 나 진짜 이제  울게.”

“더 울어도 되는데?”

“아잇, 그만 놀려. 진짜아…”


“알았어, 크큭.”


내가 웃으면서 서류를 직원에게 건네려던 순간, 지혜가 서류를 붙잡았다.


“같이 내야지, 바보야.”

“아, 맞네.”

내가 왼쪽 귀퉁이를, 지혜가 오른쪽 귀퉁이를 잡고 직원에게 건네며 말했다.


“저희 결혼했어요.”




이제는 오래된 얘기지만, 나에겐 5살 연상의 여자 친구가 있었다.

지금은 아내가 된,  여자친구.


그녀를 떠올릴 때면 항상 나는 웃음이 먼저 떠오른다.

160 초반의 작은 키에 웃음을 지을 때마다 그려지는 초승달 형태의 눈웃음이 사람의 자제력을 잃게 만드는 요망한 매력을 가지고 있던 그녀.

나와 비교하면 훨씬 자그마한 손을 가지고 있어서 함께 길을 걸을 때는 깍지를 끼기보다 내 검지와 중지를  쥐고 다닌 그녀.

그런데도 밤만 되면 내 위에 올라타 그 작은 손으로 나를 괴롭히던 그녀.

남자가 인생에서 가장 성욕이 강해지는 20대 초반,


여자가 인생에서 가장 성욕이 강해지는 20대 후반.


하필 그 시기에 만난 우리는 참 많은 것을 했다.


주로 야한 쪽으로, 가능한 다양한 것을, 이런저런 장소에서.

이 이야기는 그녀와 보냈던 내 연애의 기록들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쓰일 예정인 이야기들의 단편이고,

지혜와 내가 써낼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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