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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화 〉 16. 신혼여행 ­ (7) (159/163)

〈 159화 〉 16. 신혼여행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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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조식은 객실까지 배달이 가능했고, 덕분에 우린 방 안에서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좀 튼튼해 보이는 나무 느낌의 큰 상판에 이런저런 다채로운 과일과 빵, 생과일주스, 심지어 훈제연어까지 소규모 뷔페를 따로 준비해준 것만 같은 아침 식사는 호화롭기 그지없었다.

“하나씩 다 먹어도 배부르겠다.”

“양은 또 적더라. 먹을까?”

“어. 먹자.”

아침을 먹으며 지혜와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는 사이사이, 나는 2일차의 일정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 이거 맛있네. 처음 보는 과일인데.”

“용과 아니야?”

“그런가?”

신혼여행의 2일차는 대부분 호텔 안에서 진행되는 일정이었다.

“자기, 아~”

“아~”

지혜가 까주는 이름 모를 동남아의 맛난 과일들을 입속에 집어넣으며 조금씩 잠기운을 털어내며 새삼스레 생각할수록 참 잘 짜인 일정이라며 속으로 감탄이 튀어나왔다.

대부분 손님이 어떤 일정을 진행할지 선택할 수 있는 유동성 좋은 일정이었고 굳이 꼭 참가해야 될 일정이라면 전부 밥 시간대에 식사와 함께 진행할 수 있는 일정들이었으니깐.

그래도 제법 돈을 줬는데 음식은 호텔에서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슬슬 배도 불러오자 지혜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잔을 챙겨 왔다.

“땡큐.”

“아침 어땠어?”

“맛있더라. 자기는?”

“나도 맛있었어.”

새콤달콤한 과일향 후에 씁쓸한 커피를 마시자 잠기운이 완전히 가신 것만 같았다.

“지혜야.”

“응?”

“오늘 일정 어떻게 할래? 2일차는 대부분 호텔 안에서 해결할 수 있던데.”

“이대로 침대에서 자기랑 2차전?”

“… 어제 4차전까지 하지 않았었나?”

“그럼 5차전.”

“…”

지혜가 야해서 참 좋은데, 이럴 땐 지혜가 야해서 참 두렵다.

“크큭, 농담이야. 얼굴 좀 펴, 자기. 나도 다리가 후들거려서 아침부터 하긴 힘들어.”

“… 그럼 다행이고.”

“뭐야, 진짜 힘들었어?”

“그건 아니고.”

어렵네, 신혼여행.

“그… 내 기억에 아마 점심에는 수영장에서 먹는 거고, 저녁에는 호텔 내에서 준비한 전통공연 같은 게 있던 걸로 기억하거든. 맞나?”

“잠시만…”

지혜가 핸드폰을 뒤적거리더니 잠시 후 고개를 끄덕이며 애매했던 내 기억에 확신을 더 해줬다.

“응응. 맞아.”

“그럼 오전에는 뭐 할래?”

“자기가 하고 싶은 거?”

“3일 째에는 다시 밖에 나갈 거지?”

“첫날 안 가 본데 가 봐야지. 그때 원숭이 공원인가 거긴 안 가지 않았나?”

“응응. 그랬지.”

“으음…”

솔직한 심정으로는 안마부터 빨리 받고 싶었는데 그러면 여러 번 씻는 게 귀찮아진다.

점심때는 수영장에서 플로팅 식사라고 물 위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이벤트가 있으니깐, 적어도 점심 후에 안마까지 한 번에 받고 씻는 게 깔끔하리라.

그렇다고 오전에 뭐 할 게 있나?

“… 모호하네.”

“조금 쉴까, 그럼?”

“응?”

지혜가 소파에 몸을 기대며 눕더니 배를 쓰다듬으며 씨익 웃었다.

“맛있는 거 먹었고, 배부르고, 외국에 좋은 호텔인데 기왕 온 거 좀 느긋하게 지내는 것도 괜찮지 않아?”

“음…”

“자기 어제 첫날부터 엄청 바빴잖아. 비행기에서도 내내 불편해 보이던데.”

“…괜찮아?”

나야 뭐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또 막상 외국까지, 그것도 신혼여행을 와서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호텔에서 뒹굴거리는 건 시간이 좀 아깝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혜는 내 손을 붙잡아 자기 뺨에 가져다대니 미소 지었다.

“뭐, 어때. 우리 신혼여행이고, 나는 자기만 좋으면 다 좋아.”

그러고는 내 손에 입을 맞추며 일부러 쪽 소리를 냈다.

“자기랑 함께라면 언제든지 좋아.”

“…”

지혜의 말을 들은 나는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러니 내가 윤지혜한테 반했지.”

“히힛, 뭐래. 이리 와 자기.”

지혜가 웃으며 자기 앞에 소파의 빈 부분을 손으로 툭툭 때리자, 나는 그곳에 앉아 지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머리카락을 한 번 손으로 훑을 때마다 은은하게 올라오는 그녀의 샴푸향에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 참 좋았다.

“그래, 쉬자. 기왕 좋은 호텔에 왔으니깐 좀 빈둥대다가 한 11시 쯤부터 수영하자.”

“응. 침대로 갈까? 소파 조금 좁은데?”

“…”

혹시 또 이것도 함정인가?

그런 생각이 들어내가 잠시 머뭇거리자 지혜가 등을 퍽 소리 나게 때렸다.

“안 덮칠게, 좀!”

“… 진짜지? 나 소리 지를 거야?”

“뭐라고? 여기 다 외국사람인데?”

“SOS나 폴리스 플리즈 그러면 다 알아듣지 않을까?”

“그래서 경찰 오면 뭐라고 설명하게?”

지혜가 요망한 웃음을 띠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두 손을 자기 턱 밑에 받치며 재잘거렸다.

“이렇게 예쁜 아내가 덮친다고?”

“응. 동네방네 자랑해야지. 이렇게 예쁜 여자랑 내가 결혼했다고.”

“크큭, 맘에 드니깐 봐줄게. 뽀뽀.”

입술을 내미는 지혜와 가볍게 입을 맞추고, 손을 잡고 일어났다.

그렇지.

이렇게 예쁜 여자랑 내가 결혼하는 건데 외국 경찰한테도 자랑해야지.

아주 당연한 일 아닌가?

오전에는 쉰다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나와 지혜가 아예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 침대에 누워서 서로를 껴안고 빈둥거린 건 고작해야 한 30분 정도 됐으려나?

빨리빨리, 효율성, 가성비의 민족 한국인의 피는 어디 가질 않는지 최소한의 휴식을 취한 뒤에는 저절로 일어나 어제 제대로 못 본 호텔의 숙소 내부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이거 어메니티 가져가도 되나?”

“가져가라고 두는 거잖아.”

“화장품 샘플 느낌으로 생각하면 되겠지?”

“그치.”

객실 내부를 둘러보니깐 생각보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일단 우리가 온 호텔의 가격은 퀄리티에 비해 엄청 저렴하단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5성 호텔의 스위트 룸이 이런 곳이 아닐까 할 정도의 그런 곳.

숲속 사이의 좁게 난 길을 지나 도착한 우리들만의 개인적인 숙소.

사방이 탁 트여 개방감을 주지만, 그 공간이 대부분 숲이나 야산이라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곳.

숲이나 야산…

그리고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게 하나 있었으니, 벌레였다.

“… 캐노피가 왜 있나 했더니 모기장 비슷한 거구나.”

“그러게… 밤에는 몰랐는데 낮에 보니깐 벌레 많다.”

벌레가 참 많이 보였다.

알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는데…

게다가 그 와중에 눈에 띈 무언가가 있어 나는 발코니의 창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지혜야, 이거 봐봐.”

“응?”

“나 어제 이거 보고 되게 분위기 있다고 생각했거든?”

고리가 달린 약간 중세풍 느낌의 램프등.

발코니 밖에 있는 개인 수영장을 들어가기 전 탁자 위에 놓여 있었던 그 물건 옆엔 램프등에 달려들어 타죽은 벌레들의 시체가 수북했다.

“… 근데 당연하게 벌레가 엄청 모여 들었네.”

“저기 위에 벌레 잡이 램프도 따로 있는데?”

“진짜네…”

어젯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자 기분이 묘했다.

근데 지혜는 조금 달랐나보다.

“아하핫!”

“왜?”

갑작스레 지혜가 웃음을 터뜨리자 왜 그러나 싶었다.

“아니, 크큭. 나는 동남아니깐 그래도 벌레 엄청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

“나도 좀 했었지.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을 뿐이지.”

“근데 자기는 어제 벌레 많다고 느꼈어?”

“전혀.”

“나도 벌레는 하나도 눈에 안 들어왔거든.”

“그게 왜?”

“그만큼 어제 집중하고 있었다 싶어서.”

“당연히 집중하게 돼지. 네가 어제 그 속옷…”

“응?”

문득 지혜의 잠옷차림에 시선이 멈췄다.

“… 어제 그거야?”

“당연히 갈아입었지.”

“그치?”

“짜잔.”

지혜는 잠옷으로 입고 있던 원피스의 치마를 슬쩍 들춰 보였다.

그리고 치마 아래로 보이는 팬티는… 어…

색깔이 달랐을 뿐,

중앙 부분이 뚫려 있어서 지혜의 갈라진 틈이 그대로 보였다.

“… 왜 어제랑 똑같아?”

“쇼핑몰에서 2 1 행사를 하길래.”

3개나 있구나.

“그거 안 불편해?”

“약간 묘하게 흥분돼서 좋은데?”

“변태야.”

“자기도 좋아했으면서, 뭘. 그리고 예쁘잖아?”

지혜가 아예 자세히 보라는 듯 치마를 훌쩍 들어 올리고 내게 다가왔다.

“안 예뻐?”

“… 예뻐.”

“그치? 오늘 밤에도 이거 입을까?”

“자기만 편하면 뭐…”

“그래, 히힛. 너무 실망하진 말고.”

“응?”

“다른 것도 준비해놨거든.”

“…”

지혜의 가방을 한 번 뒤져 봐야 하나…

나는 신혼여행을 그냥 내 옷가지만 챙겨 왔는데 지혜는 그 이상의 무언가를 제법 많이 챙겨 온 듯했다.

그때, 핸드폰의 알람이 울리며 10시 40분이 되었음을 알렸다.

“아…”

“슬슬 옷 갈아입고 나갈까?”

“아쉬워라~ 자기 좀만 더 유혹했으면 아침에도 한 번 했을 거 같은데.”

“… 그러니깐 유혹하지 마.”

나는 티나게 부풀어 오른 바지를 가르키며 지혜에게 말했다.

“수영장에서 서면 어떻게 하라고.”

“그럼 내가 빼주면 되잖아.”

“야이…”

“꺄하핫. 우리 자기 이렇게 크데요~ 하면서 나도 자랑해야겠다. 아!!”

짝!

지혜가 문득 손뼉을 치며 말을 멈추더니나를 바라보곤 웃었다.

“경찰도 부를까? 우리 자기꺼 이렇게 크다고?”

“…”

나는 언제쯤 우리 지혜한테 말로 이길 수 있을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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