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화 〉4화 (4/201)



〈 4화 〉4화

#야왕 4화



 달이라는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이성빈은 그 시간을 알뜰하게 보냈다. 깡말랐던 몸도 보기 좋게 변해 있다. 내공은 없지만 무림에서 익힌 간단한 권각술을 꾸준히 수련하며 체형이  달라졌다.
“성빈 씨. 여기에요.”
카페에서 장혁이 손을 흔들고 있다.
“시간 딱 맞춰 왔네요. 아메리카노?”
“좋죠.”
이성빈이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본다. 거리를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인다. 저들 모두가 어딘가에 있는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을 것이다.
“논현동이 홍대하고는 느낌이 많이 다르죠.”
“네, 그러네요.”
“주위가  빌딩들이라 퇴근 시간 이후에는 보통 사람들은 별로 없어요. 어떻게? 마음의 준비는 다 됐어요?”
이성빈이 고개를 끄덕이자 장혁이 환하게 웃는다.
“좋네요. 커피 다 마셨으면 이제 갈까요?”
장혁과 함께 밖으로 나온다. 길가에 서 있는 빨간색 스포츠카가 누구 것인가 했더니 장혁의 것이었다. 조수석에 오르니 곧 출발한다.
목적지는 멀지 않았다.


- 야누스

간판이 예상보다 투박하다.
들어가는 입구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덩치들 두 명이 서 있다. 사내들은 장혁을 보고는 살짝 고개를 숙인다.
“들어가요.”
계단을 따라 내려가 두꺼운 문을 열고 들어가니 넓은 홀이 반겨준다. 바닥을 닦는 웨이터들이 장혁을 보고 꾸벅 인사를 한다. 이곳 야누스에서 장혁의 위치가 결코 낮지 않은 것 같다.
“아 참, 메이크업은  했죠?”
“해야 합니까?”
“아니요. 안 해도 멋져요. 손님들 중에 애들 메이크업하는  싫어하는 분도 계시거든요. 이야, 그런데 정말 예술이다. 피부가 뭐 이리 좋아요. 부모님께 감사해야겠네.”
장혁을 만나기 전 샵에 들러 머리는 관리를 받고 왔다.
“우선 같이 일할 친구들 소개해 줄게요. 여기서 일하는 애들이 성격이 참 강해요. 그래서 처음에 서먹서먹할 수 있어요. 그런데 친해지면  좋은 애들이에요. 그리고 지금부터 말을 낮출 거예요. 이해하죠?”
“네, 편하실 대로 하세요.”
“좋아. 일단 이름 먼저 짓자. 본명을 그대로 써도 되기는 하는데 네가 불편할 수 있어. 어떻게 할래?”
“빈. 빈으로 할게요.”
“좋네. 자-, 들어가자.”
홀에서 가장 가까운 룸으로 들어간다. 이성빈이 살고 있는 원룸의 두 배 정도 되는 넓은 룸이다. 안에는 십여 명의 남자들이 앉아 있다.
“모두 주목.”
장혁의 외침에 남자들의 시선이 모인다. 이성빈은 사내들의 면면을 살핀다. 모두 잘 생긴 남자들이다. 하지만 대부분 얼굴이 조금씩 부자연스럽다. 성형 수술을 한 것이리라.
“오늘부터 함께 일 할 새로운 동료다. 이름은 빈. 나이는…….”
“스물 넷입니다.”
“들었지? 일단 와꾸는 끝내주고, 노래도 끝내준다. 괜히 싸우지들 말고 앞으로  지내라.”
장혁이 이성빈의 어깨를 툭 친다.
“비어 있는 곳 아무데나 앉아. 나는 예약 손님 모시러 가야 하니 선배들한테 궁금한 것 있으면 물어보고 그래.”
장혁이 대기실에서 나간다.
이성빈은 비어 있는 곳에 앉는다.
“이야-. 형 정말 잘 생겼다. 전 유민이라고 해요. 나이는 22살. 앞으로 잘 지내요.”
“네. 잘 부탁해요.”
“편하게 말 하세요.”
유민이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짓는다. 대기실에 모여 있는 남자들 중 가장  생긴 남자를 꼽으라면 유민이다. 성형의 흔적도 보이지 않고 이목구비가 조화롭다.
탁-
맞은 편의 한 남자가 탁자 위에 담배갑을 던지며 퉁명스럽게 말한다.
“아무리 화류계라지만 선후배 관계는 명확히 하자.”
“후니 형. 벌써부터 군기 잡아요? 처음인데 그러지 마요.”
유민이 후니라는 남자에게 웃으며 말한다.
“아니 뭐 그냥 그렇다는 거지.”
후니가 바로 꼬리를 내린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유민이라는 남자가 이곳의 실세 정도 되는  같다.
“상민이에요. 형 보다 한 살 어려요.”
“혁이에요.”
남은 이들과 인사를 나눈다. 후니라는 남자를 제외하고는 적대감을 보이는 사람은 없다. 물론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아직은   없다.
이곳에 오기 전 조사한 호스트라는 직업에 몇 가지 민감한 사항이 있다.  중 가장 민감한 것이 다른 호스트의 손님을 빼앗는 것인데 그것 때문에 칼부림이 나기도 한다.
“남들은 손가락질 하는 직업이지만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이 직업 만큼 돈 많이 모을  있는 곳도 없거든요. 그러니까 형도 힘들어도 마음을 붙여 봐요.”
유민은 이성빈의 적응을 도우려는 것인지 쉴 세 없이 떠들고 있다.
유민의 말을 들으며 이곳 클럽 야누스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있을 때 였다.
“모두 준비해라.”
남자들이 일제히 일어선다. 각자의 옷매를 점검하고 거울을 본다고 수선을 떤다.
“청담동 5공주 오셨다. 그분들 까다로운 것 알지? 누가 초이스 될지 몰라도 오늘은 정말 잘 좀 하자. 어째 열 번을 넘게 왔는데 지명을 받은 녀석이 한 명 밖에 없냐?”
장혁이 유민을 턱으로 가리킨다.
“유민이는 지정이니까 먼저 들어가 있어. 준비되는 대로 바로 들어갈게.”
“네, 형.”
유민이 대기실을 벗어난다.
“후니. 옷이 그게 뭐냐? 며칠 째 똑같은 옷이 말이 되냐? 응? 돈이 없어? 선금 땡겨 간  벌써 다 썼어?”
“죄송합니다.”
“제발 너한테도 투자를 해라. 그래야 손님도 받고 그럴 것 아니냐? 다른 녀석들도  들어. 너희들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데 손님들이 너희들을 사랑할  같아? 제발 잘 좀 하자.”
“네!”
모두가 한 목소리로 외치자 장혁이 대기실의 문을 연다.
“가자!”
전쟁터의 개선장군처럼 앞장을 서 걷는 장혁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온다. 복도를 따라 가장 안쪽의 룸 앞에 멈춘다.
“마지막 점검.”
벽이 온통 거울이다. 선수들은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점검한다. 이성빈은 잠시 거울을 힐끔거리고는 고개를 돌린다.
“좋아.  새끼들 멋지다. 논현 최고의 호스터 바가 어디지?”
“야누스!”
“좋아! 오늘도 손님들에게 최고의 밤을 선물해 드라자. 입장!”
장혁이 먼저 룸으로 들어가고 선수들이  뒤를 따른다. 이성빈은 가장 마지막에 룸으로 들어간다.
대기실 만큼이나 넓은 룸이다. 통짜 대리석 테이블에 고급스러워 보으는 소파. 그리고 편하게 앉아 수다를 떨고 있는 다섯 여자들.
장혁이 말한 청담동 5공주인 듯하다.
“누님들. 오래 기다리셨죠? 우리 애들이 누님들 보겠다고 꽃단장 한다고 조금 늦었지 뭐에요. 제가 길게 떠들어 봐야 누님들 지루하기만 하니까 바로 소개 들어갈게요. 자-, 인사 드리자.”
“후니에요.”
“혁입니다.”
“…….”
“빈입니다.”
이성빈이 마지막으로 인사를 한다. 선수들은 조금이라도  잘보이기 위해 여자들과 눈을 맞춘다.
“혁아.”
“네, 누님.”
상석에 앉은 여자의 부름에 장혁이 바로 달려간다.
“어떻게 얼굴이 바뀌지를 않니? 요즘 선수 수급이 힘든가 봐? 정 수급이 안 되면 보도라도 써.”
“하하, 누님. 보도가 아무리 잘 해봐야 본방 선수들만 하겠어요. 그리고 오늘 뉴페이스 있잖아요. 조오기.”
장혁이 이성빈을 가리킨다.
여자가 이성빈에게 시선을 준다. 이성빈이 살짝 고개를 숙인다. 다시 고개를 들어 여자와 눈을 맞춘다.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지만 시선을 돌리거나 하지 않는다.
기가  여자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여자의 기에 눌렸을 것이다. 여자는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다른 이들과 똑같이 접근하면  된다.
여자와 계속해서 시선을 교환한다. 살며시 웃어 주니 여자가 반응을 보인다.
“재밌네. 너 이리와 앉아.”
“감사합니다.”
모두가 놀란 반응을 보인다. 선수들은 선수들 대로, 여자와 함께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여자가 이렇게 쉽게 파트너를 정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상석의 여자가 이성빈을 빨리 골랐기 때문인지 남은 여자들도 파트너를 정한다.
“정식으로 인사드릴게요, 누님. 빈이라고 해요.”
“그래. 반가워.”
“누님께 드리는 첫인사였으니 첫잔도 조금 특별하게 드려도 될까요?”
“특별한 첫 잔? 그래. 어디 줘봐.”
이성빈이 양주를 오픈 해 그대로 입으로 가져간다. 모두가 놀란 눈으로 이성빈을 바라본다. 입안에 양주를 적당히 머금고 여자에게 다가간다. 거부반응을 보이려는 듯 얼굴을 뒤로 빼다가는 다시  자리로 가져다 놓는다.
이성빈의 하는 행동에 흥미를 느끼는 것이다.
이성빈의 입술이 여자의 입술을 감싼다. 혀로 여인의 입술을 톡톡 두드린다. 마치 인사를 하는 것 같다. 여자가 살짝 입술을 벌리자 이성빈의 혀가 부드럽게 파고든다.
잇몸을 마사지 하 듯 부드럽게 어루만진  윗니 안쪽을 간지럽힌다. 전생에서 수많은 여인들을 황홀경에 빠트렸던 입맞춤이다.
여자가 반응을 보인다. 입 주변의 근육이 부드럽게 이완된다. 준비가 끝났으니 이제 첫 잔을 주어야 할 때다. 이성빈의 입 안에 있던 양주가 자연스럽게 여자의 입으로 전해진다.
이성빈의 혀 놀림에 빠져 있다 보니 이미 양주는 여자의 목 안으로 모두 사라진 후다.
“후아-!”
이성빈이 입을 떼니 여자가 길게 숨을 토해낸다.
“이름이 뭐야?”
조금 전 소개했으니 이름을 묻는 것은 아니리라.
“달다 감甘, 이슬 로露. 달콤한 이슬. 감로주에요. 마음에 드셨어요?”
여자는 대답 대신 피식 웃어 보여 준다.
“달콤하긴 하네. 양주를 마신 것 같지 않아. 생각해 보니 신기하네.”
신기할  없다. 대기실에서 나오며 테이블 위의 각설탕 하나를 챙겼다. 그리고 여자와 키스를 하기 전 각설탕을 입에 넣고 양주로 녹여 낸 것이다.
여자가 이성빈의 잔을 채워 주고는 한마디 한다.
“너 마음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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