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3화 〉43화 (43/201)



〈 43화 〉43화

복도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서 있다. 기세가 사납지만 조폭들은 아닌  같다. 주차장에서 쓰러트린 사내들과 같은 보디가드들인  같다.
금테 안경을 본 사내들이 가볍게 고개를 숙인다. 복도 끝의 방 앞 도착한다.  매무새를 점검한 금테 안경이 노크를 한 후 말한다.
“최 실장입니다.”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문을 열며 한쪽으로 비켜선다.
“들어 가세요.”
안으로 들어가니 입구 반대편에 한 남자가 앉아 있다. 손에  온더락 잔을 빙빙 돌리며 들어선 이성빈을 바라본다. 뉴스를 통해  번이고 얼굴을 봤던 사성 그룹의 부회장 이선우였다.
“앉지.”
자리에 앉으니 이선우가 술병을 보며 묻는다.
“한잔 하겠나?”
“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이선우가 잔을 채워준다. 이성빈은 얼음에 희석도 하지 않고 단숨에 술을 비운다.
“내가 자네를 왜 불렀는지는 알고 있겠지?”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니 지금 내가 어떤 말을 할지도 알고 있겠군.”
“말씀하시기 전에 제가 먼저 대답하겠습니다.”
이성빈이 이선우의 잔을 채워 주고는 짧게 말한다.
“부회장님 뜻에 따를 수 없습니다.”
이선우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사성 그룹으로 태어난 후 누구도 자신 앞에서 이런 식으로 말을 하지 못했다. 심지어 거대 여당을 이끄는 당수도, 검찰의 고위 공직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조금 흥미가 생겼다.
이선우의 표정이 본래대로 돌아온다.
“이유도 말해  수 있나?”
“재은 누님이 최근에 뭔가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누님? 누님이라…… 뭐가 바뀌었지?”
이선우가 위스키를 마시며 묘한 눈빛으로 이성빈을 바라본다.
“부회장님께서 알고 계시겠죠.”
무엇이 달라졌다고 정확히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딸은 요즘 확실히 조금 달라졌다. 나쁜 의미가 아니다. 좋은 의미로 달라졌다.
“재은 누님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이선우의 눈썹이 다시 꿈틀거린다. 하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는다. 어린시절 주변의 다른 아이들과 달랐던 딸의 모습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래서?”
“고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재은 누님은 절 만나러 와서 술을 조금 마시는 것 뿐입니다.”
“고작 재은이와 술잔을 기울이는 것 만으로 재은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선우는 병이라는 표현 대신 문제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의학적으로 접근하면 병명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병으로 분류할 문제는 아니었다.
“이미 효과가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 좋아. 자네 말대로 재은이가 이전과 달라졌어. 하지만 그것이 치료가 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지?”
“이미 대답을 알고 계시면서 왜 같은 질문을 하시는지  수 없군요.”
이선우가 이성빈의 잔을 채워준다.
“사실 나는 자네 같은 친구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아. 힘들게 돈을  생각은 하지 않고 여자들에게 빌붙어 사는 거머리들이지 않은가?”
이성빈이 빙긋 웃는다. 모욕적인 말이지만 이선우의 진심은 아니었다. 그의 눈이 말을 하고 있기에 알  있다. 이선우의 도발에 이성빈 역시 도발로 응수한다.
“부회장님 역시 힘들게 돈을 벌어 본 적은 없지 않으십니까? 좋은 부모님 만나서 지금까지 고생이라는 것을 모르고 사셨지 않습니까? 물론 위기라고 느낀 순간은 있으실 겁니다. 기업을 경영하시는 분이니 보통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겠죠.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그 위기가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과 같을까요?”
“후후, 할 말 없게 만드는군.”
검지로 테이블을 톡,  두드리며 이선우가 말한다.
“평범한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나 평범하지 못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어느 순간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더군.”
“…….”
“자네에 대해 조사한 것이 기분 나쁘나?”
“전혀요. 저라도 소중한 사람 곁에 이상한 녀석이 기웃거리면 조사할 겁니다.”
“이해해 주니 고맙군. 자네 말대로 태어날 때부터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어. 누군가의 뒷조사를 할라치면 하루가 지나기  그 자의 조상들이 누군지까지 알아낼  있네. 자네에 대해 조사하며 조금 흥미가 생겼어.”
이성빈이 이선우의 잔을 채워준다.
“공무원 준비를 하던 친구가 갑자기 호스트 바에 출근을 하질 않나. 한성 그룹 한 회장이 아끼는 딸의 마음을 훔치지를 않나. 자네의 단골들의 면면을 보자니 제법 화려하더군. 아무튼 재미있어.”
“감사합니다.”
이선우가 표정을 굳히며 묻는다.
“재은이를 어떻게 치료할 거지?”
“마음을 치료하는 것입니다. 인류가 자랑하는 치료법이나 약물로는 치료가 불가능 하죠. 마음의 병을 치료할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마음으로 치료를 하는 겁니다.”
“자네의 마음이 재은이의 마음을 치료할 수 있다?”
이성빈이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좋아. 나는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 사성의 부회장이기 이전에 재은이의 아버지야. 딸아이가 어린시절부터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할 수 없었어. 자네 말대로 현대의 의학을 모조리 동원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지. 재은이가 평범한 사람이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 할  있네.”
이선우가 이성빈의 잔을 채워준다.
“지금 자네의 잔을 채워주 듯 자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줄 수 있지.”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많은 것을 받고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을 깨어진 독에 비유하지. 아무리 채워도 절대 채울 수 없다는 뜻이지. 자네에 대해 조사를 했다고 했지? 이전에 비해 삶의 질이 많이 좋아 졌더군. 자네에게 푹 빠진 한성 그룹의 딸아이가 인심을 많이 베풀었더군. 하지만 그래도 찾아보면 자네에게 필요한 것들이 있을 거야.”
“그런 것이 있다면 주시겠다는 뜻입니까?”
“물론이야. 당연히 재은이가 정상인이 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지만.”
“결국은 그렇게  겁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가는…….”
이성빈이 잔을 들어 위스키를 삼킨다.
“일단 킵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역시 재미있어. 자네가 어떤 부탁을 할지 벌써부터 기대 되는군. 먼저 작은 선물을 하나 주지. 물론 그냥 주는 것은 아니야. 재은이를 조금이나마 달라지게 해  것에 대한 보답이야.”
“기대되는데요.”
이선우가 잔을 들어올리며 웃는다.
“기대해도 좋을 거야.”


**

이성빈이 부모님이 사시는 아파트에 도착했다. 차를 주차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부모님이 거실에 앉아 뉴스를 시청하고 계신다.
“아들 왔어?”
어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반겨 주신다.
“네. 아버지 저 왔어요.”
이성빈이 부모님 집에 온 이유는 아버지가  이야기가 있다며 전화를 했기 때문이다.
“오늘 이상한 일이 있었다.”
“이상한 일이요?”
“사무실에 누군가 찾아 왔더라. 사성 건설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이상한 말을 해서 말이야. 혹시 너는  알고 있는게 있나 싶어 불렀어.”
사성 건설이라는 말에 며칠 전 만난 이선우의 얼굴이 떠오른다.


- 먼저 작은 선물을 하나 주지


“사성 건설에서 왜 왔는데요?”
“지금 한창 건설 중인 아파트 현장에 샤시 시공을 맡으라고 하더라.  현장이 1만 세대가 넘어. 네가 알지 모르지만  정도 규모의 현장 샤시 시공은 엄청 큰 회사에 밀어 주거든.”
이성빈이 피식 웃는다. 작은 선물이라고 하더니 결코 작지 않았다. 건설이 진행중인 현장이라면 이미 지정  샤시 시공 업체가 있을 것이다. 아버지에게 샤시 시공을 맡겼다면 기존의 시공 업체와의 계약을 파기 했다는 뜻이다.
“샤시 공급해 주는 업체도 연결해 준다고 하네. 그냥 현장에 와서 시공만 하라는데 이런 경우가 없거든. 혹시 사성 건설에도 아는 사람 있는 거야?”
“어쩌다 보니 알게 된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사람한테 이번 일 없던 일로  달라고 이야기 해라.”
“네? 어째서요? 아파트 현장 시공 맡으면 좋은 것 아니에요?”
아버지가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좋기는 하지만 떡이 너무 커. 삼키지를 못해서 결국 채하게  있어. 이제 막 시작하는데 아파트 현장 전체를 시공한다는 게 말이나 되냐?”
“채하지 않게 하면 되죠. 아버지 회사 직원들 채용하세요. 어차피 세광 메디컬 공사하려면 직원들 더 뽑아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이 기회에 많이 뽑으세요. 계약금 받으신 걸로 차도  더 사시고 하면 될 것 같은데요.”
어머니가 쥬스 두 잔을 내어오신다. 갈증이 나는지 아버지가 쥬스를 단숨에 비운다.
“직원들 더 뽑았다 나중에 일거리 줄어들면 어떻게 해.”
“그런 일 없을 거예요.”
앞으로 맺을 인연들이 있을 테니 아버지의 일감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은 안 좋은 거잖아요.”
아버지가 볼을 긁적인다.
“하아,  모르겠다. 그래. 네 말대로 일단  볼게. 내 인생에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오겠냐? 내가 잘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네 덕을 보는 거지만 정말 잘 해 볼게.”
“잘 생각하셨어요.”
아버지가 결정을 내리자 어머니도 덩달아 환하게 웃으신다.

**

운동을 하고 집에 돌아 온 이성빈은 침대에 누워 스마트 폰을 켠다. 전화 번호부를 아래로 내리다 이름 하나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누른다.
통화 연결음이 들리고 한참이 지난 후 상대가 전화를 받는다.

- 이야, 이게 누구야? 먼저 전화를  할  아네? 나는 전화 거는 법도 모르는 줄 알았잖아요?
“잘 지냈지?”
- 잘 지냈는지 궁금한 사람치고는 너무 오랜만에 전화하는 것 아니에요?
“바쁜  뻔히 아는데 전화 하기가 그래서.”
- 그러면 오늘은 왜 전화 하셨어요?
“부탁  것이 있어서.”
- 부탁 할 때만 전화하죠?
“그런 것은 아니고.”
- 무슨 부탁인데요?
“그건 나중에 얼굴 보고 이야기 하자. 내가 조만간에 너희 소속사에 찾아 갈 거야.”
- 우리 회사에 온다고요?

블랙스완의 에이스 유니가 깜짝 놀란 음성으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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