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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7화 〉 147화 (147/201)

〈 147화 〉 14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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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왕 147화

가부좌를 틀고 앉은 왕첸이 길게 호흡을 토해내며 천천히 눈을 뜬다.

“흐음­.”

잠시 동안 가부좌를 풀지 않은 채 그 자세를 유지한다.

“아직은 잘 모르겠군.”

며칠 전 황홀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성빈은 화화곡 주변을 둘러보겠다고 나섰다 돌아 온 후 왕첸에게 이런 말을 했다.

­ 호화단 내에서 충성심이 가장 강한 아홉을 뽑아 이곳으로 데리고 와.

곡주의 명이기에 왕첸은 다시 상하이로 돌아가 호화단원들 중 충성심이 강한 아홉을 선발해 다시 화화곡으로 돌아왔다.

이성빈은 왕첸을 포함해 열 명의 호화단원들을 한 자리에 모아두고 말했다.

­ 너희들에게 심법을 전수하겠다.

왕첸과 호화단원들은 이성빈이 한 말을 듣고 너무 놀라 입 밖으로 심장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심법은 호곡화들의 전유물이었다. 호곡화가 아닌 그 누구도, 아무리 화화곡에 충성심이 강하다 해도 심법을 익힐 수 없었다.

호화단원들이 강한 이들이라 해도 호곡화들에 비할바는 아니다. 심법을 이용해 내공을 축적한 그녀들의 강함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있었다.

그런데 곡주인 이성빈이 호곡화들의 전유물이라 할 수 있는 심법을 전해준다고 하지 않는가.

­ 너희들에게 전해 줄 심법은 운해심법雲?心?이다. 운해심법은 과거 청운도문이라는 곳의 심법이다. 청운도문은 유명한 무림 문파가 아니다. 무공보다는 종교적인 색채가 강했던 곳이지. 이렇다 할 공격 무공은 없지만 그들이 가진 운해심법만은 진짜였다. 과거 무림의 대소사를 모조리 꿰고 있다 알려진 천귀자가 운해심법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이십 년을 익히면 눈일 밝아지고, 삼십 년을 익히면 삿된 기운이 쉽게 침법하지 못하고, 사십 년을 익히면 하늘의 기운을 읽을 수 있다.

터무니 없는 말이라 생각했다.

40년 수련을 한 것으로 하늘의 기운을 읽을 수 있다니 너무 허황되지 않은가?

하지만 이성빈의 설명을 들으니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운해심법은 내공을 형성하기가 매우 어렵다. 뛰어난 자질을 가진 이라면 5년, 평범한 이라면 10년, 둔재라면 20년이 걸려도 내공을 형성하지 못한다. 또한 30년 내공이 쌓이기 전까지 운해심법은 저잣거리에 떠도는 삼재심법보다 보잘 것 없다. 그러니 운해심법을 익히려 하는 이들이 있었겠는가? 심지어 청운도문의 도사들 중에도 사문의 운해심법이 아닌 삼재심법을 익히는 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설명을 듣고 이해는 하였지만 또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생겼다. 기왕이면 뛰어난 심법을 알려주면 좋지 않은가? 내공을 형성하기도 힘들고, 또 그 이후에도 30년을 꼬박 수련해야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심법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번 의문 역시 이성빈이 짧은 말로 풀어 주었다.

­ 그 기간을 내가 좁혀주겠다.

이성빈은 왕첸을 시작으로 선발 된 호화단원들에게 일일이 내공을 주입해 운해심법의 구결에 따라 진기도인을 도와주었다.

그때가 떠오른 왕첸이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이성빈의 내공이 혈도를 타고 흐를 때 마다 느껴지던 전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와 섹스를 한다해도 그런 황홀함은 얻지 못할 것이다.

왕첸이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주변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운해심법을 수련하는 단원들이 있기에 최대한 조용히 움직인다.

밖으로 나온 왕첸이 한쪽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이성빈은 한 달 후를 기약하며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호곡화들 역시 오두막에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아무도 이성빈이 그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

다만 이성빈이 오두막에 들어가고 보름이 지난후부터 기묘한 향기가 화화곡에 퍼지고 있기에 연단을 하는 것이 아닌가 추측을 할 뿐이다.

“왕 단주.”

뒤에서 갑자기 느껴지는 기척에 왕첸이 황급히 몸을 돌린다. 몇 걸음 뒤에 백교가 서 있다. 왕첸의 이마에 땀이 한 방울 흘러내린다.

‘느끼지 못했다.’

백교가 이렇게 가까운 곳까지 다가왔음에도 전혀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이것이 내공을 지닌 이가 아닌지 싶다. 그래서인지 내공에 대한 고픔이 더 크게 다가온다.

“네, 백교님.”

“왕 부주석 이야기 들으셨어요?”

“네? 어떤 이야기를 말씀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왕 부주석이 궈보슝을 만났다고 하네요.”

궈보슝은 중앙군사위의 부주석이다.

군부에 영향력이 막강하고 특히 동북 삼성을 지배하는 이들의 대부 노릇을 하고 있는 자이다.

“…….”

“왕 부주석이 그를 왜 만났을까요?”

“공적인 친분은 있겠지만 개인적인 친분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니요.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요.”

왕첸이 모르겠다는 듯 백교를 바라본다.

“왕 부주석, 그리고 궈보슝은 모두 우리 곡의 사람이에요.”

“네?”

왕첸이 놀란 눈으로 백교를 바라본다.

궈보슝은 몰라도 왕용은 화화곡과 연관이 되어 있을 리가 없다.

“왕 부주석은…….”

“왕 부주석의 옛날 이야기 아나요?”

“물론입니다.”

왕 부주석, 왕용의 이야기는 중국의 어린아이들이라면 꼭 듣는 교과서와 같은 이야기다.

왕용은 어린 시절 부모님을 여의고 구걸로 유년 시절을 보내다 최고 군사 학교에 들어간 후 군부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 현 부주석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구걸을 하던 아이가 과연 최고 군사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을까요?”

“…….”

최고 군사 학교는 공산당 간부들의 자식들이 입학하는 최고의 학교다. 아무리 똑똑하고, 신체 조건이 좋아도 출신 성분이 하찮으면 입학이 불가능한 학교다.

“최고 군사 학교를 졸업했다고 해서 단 한 번도 실패도 없이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있었을까요?”

“그 말씀은…….”

“왕 부주석은 화화곡이 키운 화화곡 키즈에요. 하지만 주석은 그 사실을 모르죠. 삼일 전 주석이 측근들을 불러 모았다고 해요. 왕 부주석이 그 자리에 참석했어요. 그 자리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고 하네요. 앞으로…….”

­ 천화 그룹은 국책 사업에서 배제하라.

“어떻게 생각해요?”

“뭘 말씀이십니까?”

“주석의 말이요.”

“말이 필요없는 헛소리고 개소리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요?”

왕첸이 호흡을 고른다.

“현재의 중국은 천화가 있었기에, 아니 화화곡이 있었기에 있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주석이 세계 경제 2위의 중국의 주석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화화곡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배고픈, 추위에 떨던, 하루하루 공포에 시달리던 동포들을 사람답게 살게 해 준 것이 화화곡입니다.”

“맞아요. 그런데 주석은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왕 부주석이 궈보슝을 만난 거예요.”

“그 말씀은…….”

백교가 몸을 돌린다.

“사람이 영원히 살 수는 없잖아요. 굶어 죽고, 병들어 죽고, 사고로 죽고…… 잠을 자다 갑자기 죽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멀어지는 백교의 뒷모습을 보며 왕첸이 이를 꽉 깨문다. 위성 전화를 꺼내든 왕첸이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

연단.

말 그대로 단을 만드는 것을 뜻한다.

전생에서 연단이라 함은 도가의 장생술과 합쳐져 서양의 연금술처럼 인간외적 영역에 도전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쇠를 금으로 바꾸는, 혹은 호문클로스라 불리는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연금술에 비해 연단술은 현실적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성과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각 문파의 영단들과 약왕가의 여러 약들이다. 복용하면 내공이 증진되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신비로운 힘을 지닌 약들을 만들어냈다.

이성빈은 눈을 반개한 채 은은한 향을 피워 올리나는 단로에 손을 대고 있다. 벌써 이십여 일 째 연단을 진행 중이다. 단로의 아래에는 아직 열기가 남은 숯들이 불갛게 자리하고 있다.

불이 꺼졌음에도 단로의 온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성빈은 이마에서 얼굴을 타고 턱끝에서 떨어져 내리는 땀을 닦지도 못한 채 마지막 힘을 다하고 있다.

단로가 점점 붉게 달아오른다. 당장이라도 깨어져 버릴 듯 달아올랐던 단로가 거짓말처럼 식어버린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토해낸 이성빈이 단로에서 손을 떼고 그대로 뒤로 몸을 눕힌다. 당장이라도 숨이 넘을 갈 것 같지만 얼굴은 웃고 있다.

영단 제조에 성공한 것이다.

그가 알고 있는 양왕가의 연단법에 내공심법의 이치를 더해 결국 영단 제조에 성공했다. 황제나 황후, 회생을 만들 때와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분명 낮에 눈을 감았는데 아침에 눈을 떴다. 며칠을 이렇게 정신을 놓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직까지 이곳에 누워 있다는 말은 애초에 약속한 한달이 아직 지나지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끄응­.”

몸을 일으키려던 이성빈이 신음을 토해낸다. 영단을 완성하기 전, 막바지 순간에 가진 모든 내력을 짜내었다. 연단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칫 주화입마에 이를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단로 안을 살핀다.

“호오­.”

은은한 향과 희미한 빛을 흘리는 진액이 보인다. 저것들을 환으로 만들게 되면 연단이 끝이나는 것이다. 이성빈은 적당한 크기의 환을 만들고 미리 준비한 금박지로 소중히 감싼다.

“적당한 숫자네.”

영단의 숫자는 스무 개다.

우선 호화단의 열 명이 주인이 될 것이고 백교 등 호곡화가 네 개를 차지할 것이다. 남은 여섯 개 중 세 개의 주인은 한국의 한선영과 이재은, 김인영이었다. 모든 여자들이 이성빈에게 소중하지만 세 사람은 유난히 특별하다.

남은 세 개의 영단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는 차후에 생각해 볼 문제다.

“부족하면 더 연단하면 될 일.”

황산에 천년하수오가 있는 것처럼 중국의 영산을 찾아보면 아직까지 살아남은 영약들이 있을 것이다.

오두막의 문을 열고 나간다.

“곡주님.”

백교 등을 비롯한 호곡삼화와 왕첸을 비롯한 열 명의 호화단이 도열해 있다. 모두의 눈에 걱정이 한 가득이다. 그들을 보고 있자니 이성빈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걸린다.

“많이 걱정했어?”

“…….”

이성빈이 백교 등을 차례로 위로해 준 후 왕첸 앞에 선다. 왕첸이 마른 침을 삼킨다. 어딘지 모르게 지쳐보이는 모습이지만 이전보다 더 거대해진 것 같다.

‘위엄.’

이성빈의 지금 모습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위엄 밖에 없을 것 같다.

왕첸이 고개를 숙이며 큰 소리로 외치자 다른 이들 역시 한 목소리로 외친다.

“곡주님을 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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