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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화 〉 159화 (159/201)

〈 159화 〉 15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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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왕 159화

“샤린 제과 측과 대화를 나누는 중입니다.”

“잘 진행 되고 있나요?”

“서로의 입장 차이가 조금 있습니다.”

“금액 차이인가요?”

김형용 변호사가 고개를 흔든다.

“저희들이 제시한 금액은 수용했습니다. 다만 임직원의 고용 승계를 조건으로 제시했습니다.”

이성빈이 피식 웃는다.

“자기 밥그릇은 빼앗기기 싫다는 뜻이군요.”

“그렇습니다.”

“임직원들에 대한 조사는 진행 중입니까?”

“네. 대표님께서 지정해주신 업체에 의뢰를 했습니다. 지금까지 그들이 찾은 임원들의 비리의 양만 해도 상당합니다.”

“그렇군요.”

이성빈은 암화의 조직원들에게 회사를 하나 설립하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생겨난 회사의 이름은 ‘밀정’이다. 이성빈은 밀정에게 SB 그룹에서 인수하려는 회사들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를 지시했다.

“그들은 여전히 회사가 자신들의 손 아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잘못 된 생각은 고쳐줘야 겠죠?”

김형용이 피식 웃는다.

“억울해 할 겁니다. 보통 사람들이 그렇거든요. 자신의 착각이라는 것은 모른 채 원망할 겁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이지 않습니까?”

“샤린의 대표가 식사를 함께 하자고 합니다.”

“밥 한 끼야 못할 이유가 없지요.”

“당장 오늘이라도 상관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이성빈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비싼 밥 한 끼 얻어 먹으러 갈까요?”

**

샤린 제과의 대표는 의외로 나이가 젊었다. 이성빈 보다 두 살이 많을 뿐이다.

“반갑습니다.”

이성빈은 상대와 악수하고 자리에 앉는다.

“제계에 떠오르는 신성 SB 그룹의 오너가 이렇게 젊은 분일 줄은 몰랐습니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이성빈이 묘한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며 묻는다.

“그게 중요합니까?”

“아, 아닙니다. 하하하! 그저 또래로 보여서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겁니다.”

“또래라고 해서 모두가 친해지는 것은 아니죠. 서로의 입장 차이가 있다면 더더욱 그렇죠.”

상대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간다.

이석문 회장.

계열사라고 해 봐야 제과와 관련 된 소규모의 회사 몇 곳 뿐이지만 그는 회장 직함을 달고 있다.

“하하, 그렇죠. 앉으시죠. 여기서 가장 잘하는 것을 예약했는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이성빈은 자리에 앉으며 이석문을 보며 말한다.

“보통은 상대에게 묻고는 합니다. 좋아하는 음식의 취향은 어떤지, 혹은 가리는 것이 있는지.”

이석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진다.

“좋은 의미로 자리를 마련했는데 회장님께서는 저와는 조금 생각이 다른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색이 다른데 생각이 같을 수는 없지요. 왕첸.”

“네.”

이성빈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가자.”

왕첸이 방문을 연다.

그때 뒤에서 이석문의 음성이 들려온다.

“이대로 나가면 더 이상의 대화는 없습니다.”

‘휴’하고 짧게 한숨을 토해낸 이성빈이 몸을 돌린다.

“지금 그걸…….”

이성빈의 고개가 슬며시 기울어진다. 조금은 삐딱한 시선으로 이석문을 바라보며 말한다.

“협박이라고 하는 겁니까?”

“무슨 말을­.”

“우리나라에 제과로 등록이 되어 있는 회사만 3백 곳이 넘습니다. 그 중 자기들만의 기술, 즉 특허를 가진 곳이 백 곳이 넘어요. 샤린 제과. 좋은 회사죠. 동종 업계 중 인지도도 상당하고요. 하지만 선택지가 샤린 제과 딱 하나라고 생각하나요?”

“…….”

이석문이 말 없이 이성빈을 노려본다.

“이석문 회장. 3년 전에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치였더군요. 피해자는 지금도 2급 장애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시의 판결은 운전기사의 운전 미숙.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과연 판결이 그렇게 나올까요?”

“그게 무슨 개소…….”

이석문의 목에 시린 칼날이 다가와 멈춘다. 이석문은 이성빈의 뒤에 있던 왕첸이 언제 자신에게 다가와 검을 뽑았는지 보지도 못했다.

“문제가 그것만이라면 괜찮을 텐데 아쉽게도 그렇지가 않네요. 2년 전 룸싸롱에서 여자의 머리를 양주병으로 때리셨네요. 피해자는 머리에 열일곱 바늘을 꿰매었네요. 지금도 상처 주변을 감추기 위해 가발을 쓴다고 하네요. 법원의 판결은 피해자가 실수로 넘어져 테이블에 머리가 부딪친 것으로 끝났나네요. 합의금으로 2천만 원을 줬네요. 평생 안고 갈 상처를 남기고 준 합의금 치고는 너무 작지 않나요?”

“내, 내가…….”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지만 목 앞에 놓인 검의 압박이 상당하다. 왕첸의 시린 눈빛을 마주하자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비단 문제는 당신 뿐만이 아니네요. 회사의 요직에 앉아 있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제가 많네요.”

이성빈이 다시 자리에 앉는다. 비어 있는 잔을 앞에 내려놓으니 왕첸이 검을 거두고 술병을 들어 잔을 채워준다.

“임직원에 대한 고용 승계가 조건이라고 하셨나요?”

“…….”

“고용 승계 해 드릴게요. 다만­!”

이성빈이 잔을 비우고 앞에 놓인 전을 하나 입에 넣는다.

“그 사람들이 1년을 채울 수 있을까요? 아니, 당장 고소장이 수도 없이 날아들 것 같은데요.”

“저­, 회장님.”

“말씀하세요.”

“저희 회사를 인수하시겠다고 한 가격 말씀입니다.”

“그 가격에서 한 푼도 깎을 생각 없어요. 다만 그 돈을 받은 후에 갚아야 할 것은 다 갚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이석문이 떨리는 눈빛으로 이성빈을 바라본다.

“임금 채납. 거래처에 지불해야 할 돈. 그리고 임직원들 배 채워주겠다며 제대로 배당하지 않은 금액까지. 혹시라도 회사를 인수했는데 알지 못하는 세금 문제가 툭 튀어나오기라도 하면 제가 회장님을 다시 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성빈이 손을 든다. 왕첸이 다가와 고개를 숙인다.

“김 변호사 들어오라고 해.”

왕첸이 나가고 잠시 후 김형용과 함께 들어온다.

“변호사님. 계약서 챙겨 오셨죠?”

“네, 회장님.”

김형용이 이석문 앞에 계약서를 내려놓는다.

“조금 전 말한 것들은 계약서에 명시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계약서에 없다고 해서 지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에요. 그 정도는 아시죠?”

**

“샤린 제과, 아니지. SB 제과를 잘 이끌만한 사람이 있을까요?”

“이미 다 알아봐 두었습니다. 김재훈. 48세. 샤린 제과의 부사장으로 재직하던 사람입니다. 전대 회장이 갑작스런 사고로 죽기 전까지 전반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던 사람입니다. 현 회장인 이석문이 취임하고 가장 먼저 팽 당했고요.”

“사람은 괜찮나요?”

“김재훈 부사장이 해고 당한 후 떠난 임직원의 수만 서른 명이 넘습니다. 사람 됨됨이를 알 수 있는 부분이죠. 그리고 김재훈은 업계 1위부터 3위까지의 제과 업체에서 스카웃을 하려고 노력하던 사람입니다.”

“좋네요. 이야기는 어디까지 진행 중이죠?”

“현 대표와 비슷합니다.”

김형용은 SB 건설의 현상훈 대표를 이야기한다. 현상훈은 금화 건설에 재직하다 SB 건설의 대표로 스카웃 된 사람이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 금화 건설을 뛰어 넘는 건설사를 만드는 것이다.

“현 사장단과 똑같은 조건을 제시하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SB 그룹의 임직원들은 연봉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하지만 연봉으로 끝이 아니다. 실적에 따른 성과급이 연봉보다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 보니 임직원들은 어떻게든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은 대표라해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맡은 회사의 실적이 기준보다 초과하게 되면 그에 따른 성과급이 지급된다.

SB 건설의 현상훈 대표가 한 분기의 성과금으로 4억 원 이상을 챙겨 간 것은 그룹 내에서 아주 유명했다.

“양서 식품의 경우는 순조롭습니다. 경영진이 회의를 느껴 손을 떼려하고 있스빈다. 하지만 JY 쇼핑몰의 경우는 조금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이유는요?”

“금화 그룹 때문입니다.”

이성빈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금화 그룹의 차남 윤병욱 앞에서 금화 그룹의 주력 계열사와 같은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선언을 했으니 그들이 두 손 놓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JY 쇼핑몰을 인수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조건은요?”

“우리들이 내건 조건에 10% 정도 플러스 했습니다.”

“거기에 10% 더 하죠.”

“그러면 인수를 할 의미가 없습니다. 차라리 새로 시작하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이성빈이 피식 웃는다.

“그 10%가 금액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됩니까?”

“7백억 쯤 됩니다.”

“7백억을 더 써서 적의 목을 베 사기를 꺾을 수 있다면 남는 장사 아니겠습니까?”

“그렇기는 한데…….”

“그렇게 하세요.”

“네, 회장님.”

SB 인베스트먼트 사옥에 도착해 김형용과 헤어진 후 대표실로 올라간다.

“회장님. 사성 그룹 이선우 부회장님께서 전화 하셨습니다. 괜찮은 시간에 술 한 잔 하자고 하십니다.”

“흐음­.”

이선우와의 술자리라니 웬지 부담이 된다.

얼마 전 제주도에서의 만남 때문인 것 같다. 이성빈이 잠시 생각한 후 말한다.

“오늘이라도 상관 없다면 항상 보는 그곳에서 보자고 하세요.”

“네, 회장님.”

**

이선우는 홀로 앉아 일품 소주를 마시고 있다.

“시간은?”

손목에 시계가 있고 옆에 휴대폰이 있음에도 묻는다.

“아직 20분 남았습니다.”

“윗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몹쓸 놈 프레임을 씌우려고 했는데 아쉽게 됐네.”

노크와 함께 문이 열린다.

“왔어?”

심각한 표정을 지운 이선우가 이성빈을 보며 환하게 웃는다.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나도 이제 막 왔어.”

그런 것 치고는 술병이 반이나 비어있다. 이선우의 맞은 편에 앉으니 잔을 채워준다.

“요즘 재은이는 가끔 보나?”

“네,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만나고 있습니다.”

“다행이군.”

이선우가 잡채를 들어 입에 넣는다.

“미국 쪽에 인맥이 있나?”

“조금요.”

“내가 미국 쪽에 일이 생겨서 말이야. 아쉽게도 내가 잡은 끈들은 그 일을 해결 할 정도의 역량은 없는 것 같아.”

사성 그룹의 인맥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하지만 먼저 묻기 보다는 이선우가 이야기 할 때까지 기다린다.

“미국 상원에서 반도체 수입에 대한 법령을 발의 중이야. 우리 그룹에 치명적인 법령이지.”

“그렇습니까?”

“분기마다 올라오는 그저그런 발의였어. 하지만 미국의 현재 사정이 썩 좋지 않아 화제의 중심이 되어 버렸어.”

“어떻게 도움을 드리면 됩니까?”

“그 법령을 발의한 주요 의원들이 있어. 내가 가진 인맥들로 어떻게 해 보려 했지만 안 됐지.”

이성빈이 술을 비운 후 말한다.

“반도체.”

이선우의 잔을 채워준다.

“재은 누님에게 주시죠. 그러면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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