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화 〉 16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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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왕 167화
전범 기업.
전쟁 당시 군납 물품을 적극적으로 제조했거나 점령지, 식민지 국민들을 강제 징용해 노동력을 착취하는 등의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이를 바탕으로 성장한 기업을 일컫는다.
일본의 대표적인 전범 기업은 미쓰비시와 미쓰이 그룹이다.
두 그룹 모두 현재 일본의 재벌 그룹이다. 특히 미쓰비시 그룹은 일본 재계 15위의 대기업이다.
미쓰비시 그룹의 전쟁범죄 행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 가지를 거론하면 곧 ‘아’하게 될 것이다.
군함도.
일본어로 하시마라 부르던 섬에서 당시의 조선인들을 강제 징용한 이들이 바로 미쓰비시 그룹이다.
미쓰이 그룹 역시 미이케탄광에 조선인들을 강제 징용했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지금은 재계를 쥐락펴락하는 강한 힘을 얻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한국인이라면 치를 떠는 전범 기업이 있으니 바로 후지코시 주식회사라는 곳이다.
근로정신대.
어린 소녀들에게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해 주겠다며 일본으로 데려가 천인공노할 짓을 행한 미친 집단이 바로 후지코시 주식회사다.
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은 여전히 후지코시와 소송이 진행 중이다.
달도 뜨지 않은 밤.
십여 개의 그림자가 담을 뛰어넘고 있다. 담의 위에는 센서가 작동되고 있어 누군가 담을 넘으면 바로 경보가 울리게 된다.
하지만 경보는 울리지 않았다.
담을 넘은 이들이 센서보다 월등히 높게 도약한 것이다. 담을 넘어 정원에 진입한 무리들 중 한 명이 손을 휘두른다. 무언가 반짝인다 싶더니 커다란 경비견이 비명도 내지르지 못하고 쓰러진다.
서로 수신호로 대화를 나눈 괴한들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조금 전 경비견을 죽인 괴한이 근처의 조경석을 박차고 2층 난간에 올라선다.
창문 앞에 선 괴한이 주머니 속 작은 기계 장치의 버튼을 누른다. 창문에 설치되어 있는 경보 장치에서 불빛이 사라진다.
괴한이 단검을 꺼내 들고 창문을 향해 천천히 찔러간다. 놀랍게도 창문은 아무런 저항 없이 뚫리고 만다. 단검이 창문을 뚫는 순간 단검이 파랗게 물들어 있었다.
단검을 빼낸 후 그 틈으로 작은 캡슐 하나를 집어넣는다. 5분가량을 기다린 괴한이 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넓은 침실이었고 중앙에는 큰 침대가 놓여있다.
부부로 보이는 중년의 남녀가 잠들어 있다. 괴한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남자의 심장에 단검을 꽂아 넣는다. 생의 마지막 순간을 작은 꿈틀거림으로 마무리한 사내. 단검을 뽑은 자리에서 뜨거운 피가 흘러나온다. 그 피가 옆에 자고 있는 여자에게 흘러갔지만 여자는 깨지 않는다.
조금 전 넣은 캡슐의 강력한 수면 효과 때문이다. 괴한은 이미 죽은 남자의 목을 단검으로 잘라낸다. 다시 한번 단검이 파랗게 물들더니 뼈가 단숨에 잘려 나간다.
준비해 온 특수 용기에 남자의 머리를 담은 후 다시 창문 밖으로 나간다. 함께 온 이들은 정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괴한이 밖을 향해 손짓하자 일제히 담을 넘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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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후지코시 주식회사의 대표 하세가와 료타가 자택에서 목이 잘린 채 살해되었습니다. 범인은 하세가와 료타의 머리를 가지고 갔습니다. 경찰은 하세가와 료타와 원한 관계에 있는 이들을 조사하는 한편 주변의 CCTV 등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21세기에 말도 안 되는 참혹한 살인이 일어났습니다.
이성빈은 호텔에서 뉴스를 보고 있다.
“곡주님.”
왕첸이 다가온다. 그의 손에는 네모난 통이 들려있다.
“그자인가?”
통 안에는 눈을 감고 있는 남자의 머리가 담겨 있다. 조금 전 뉴스에 흘러나온, 현재 일본을 들썩이게 하는 살인 사건의 피해자 하세가와 료타였다.
“네, 곡주님.”
“인적 없는 산에 버려 들개들의 밥이 되게 하라.”
“명을 받듭니다.”
“흔적은 남기지 않았고?”
왕첸이 고개를 숙인다.
“CCTV를 피해 하수구를 통해 접근했습니다. 잠입하기 전 경보 장치 등을 모두 차단했습니다.”
“잘했군.”
“그의 집 금고에서 가져온 것들은 어떻게 할까요?”
“과거의 기록이 남아 있지는 않겠지?”
“조사해 보았지만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대신 여러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준 자료가 있었습니다.”
이성빈이 고개를 끄덕인다.
“금괴와 보석들, 그리고 달러와 엔화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흔적이 남지 않게 현금화해서 정신대 할머니들을 지원하는 재단에 기부하도록 해.”
“네. 화인들을 통하면 흔적이 남지 않을 겁니다.”
일본에서는 중국계 일본인을 화인이라 부른다.
“그들을 통제할 수는 있고?”
“중국인들이 있는 곳에 화화곡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손짓을 하니 왕첸이 하세가와 료타의 머리를 들어 올린다.
“다음은 누구입니까?”
“아직 때가 아니야. 마음 같아서는 모두 죽여버리고 싶지만 그래서는 안 되지. 서서히 숨통을 조여야지. 그리고 해야 할 일도 있고.”
“네, 알겠습니다.”
왕첸이 밖으로 나가고 이번에는 한 여자가 안으로 들어온다.
“곡주님. 지시하신 것입니다.”
암화가 건낸 서류를 받아 살핀다. 그곳에는 로엔 그룹의 지배 회사인 로엔 홀딩스와 그곳 대부분의 지분을 가진 구연사라는 곳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구연사에 대해 심층적으로 조사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그곳의 구성원들이 파악될 겁니다.”
“조치는?”
“단숨에 머리를 쳐 내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구연사의 구성원들이 파악되는 대로 그들에게 접근할 겁니다. 그리고 그들을 타락시킬 겁니다.”
구연사라는 유령회사가 로엔 홀딩스의 지분 대부분을 가지고 있다. 구연사라는 회사가 있다지만 결국 지분을 가진 것은 사람이다. 그 사람들을 파악해 암화의 방식대로 처리하겠다는 뜻이다.
“타락이라, 재미있군.”
인간을 타락시키는 방법은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육체적 타락이다. 사랑이라는 감정, 혹은 약물을 통한 타락, 그것도 아니면 중대한 범죄에 휘말리게 해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 수도 있다.
암화는 수백 년 동안 화화곡을 위해 수많은 이들을 그런 식으로 타락시켜 왔다. 그들은 대부분 중국을 움직이는 실질적인 권력자들이었다.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고 그들이 가진 지분을 흩어 놓을 생각입니다. 한국의 로엔은 누가 자신들을 공격하는지도 모를 겁니다.”
자신들과 마찰이 있은 후 이성빈이 일본으로 왔으니 의심은 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성빈의 짓이라고 단정 짓지는 못할 것이다.
“계속 수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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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빈은 수행원도 없이 택시를 타고 이동 중이다. 얼굴은 본래의 얼굴이 아니다. 목적지에 도착해 내렸다. 운동화에 청바지, 그리고 티셔츠 차림이다.
주변의 일본인들과 구분이 되지 않는 모습으로 목적지인 박물관에 들어선다. 느긋하게 박물관 곳곳을 둘러본다.
“많네.”
이성빈이 보고 있는 것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조선에서 수탈한 문화제들이다. 전시가 되어 있는 것들은 모두 위작일 것이다. 진품은 안전한 금고에 보관 중일 것이다.
박물관을 모두 둘러본 후 인근 공원 벤츠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지나가던 행인 한 명이 이성빈이 앉은 벤츠에 잠시 앉아 땀을 식힌 후 떠나간다. 그가 앉아 있던 곳에 쇼핑백 하나가 놓여 있다. 그것을 든 이성빈이 공원을 나서 택시를 탄다.
이런저런 경로로 거쳐 다시 호텔로 돌아온다.
쇼핑백 안에는 화장품과 티셔츠 등이 담겨 있다. 그것들을 모두 꺼내니 USB 하나가 보인다.
손짓을 하니 왕첸이 다가와 USB를 챙긴다.
“본토에서 전문가들이 올 겁니다.”
“그들이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일왕의 궁도 털 수 있습니다.”
“일왕의 궁은 털어서 뭐 하게. 뒤탈 없게 잘 처리하라고 해.”
“네, 곡주님.”
왕첸이 떠나자 휴대폰을 들어 한국 포털 사이트를 확인한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은 매우 시끄러운 상황이다. 이유는 전범 기업이고 정신대 할머니들과 소송중인 후지코시 주식회사의 대표가 살해되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댓글이 달리는데 대부분이 천벌을 받았다는 반응이었다.
한 정신대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하세가와 료타의 죽음이 그들의 한을 풀어주지는 못하겠지만 가슴 속의 작은 응어리는 풀어주지 않았을까 싶다.
전화가 온다. 발신인을 확인한 이성빈이 환한 웃음을 짓는다.
“미키. 오랜만이야.”
전화를 한 사람은 일본 AV계의 여왕 아사다 미키였다.
빈. 일본에 왔으면서 어떻게 연락도 하지 않을 수 있어?
“미안해. 굉장히 바빴거든. 지금 어디야?”
촬영하다 잠시 쉬는 중이야.
촬영이라는 말에 이성빈이 피식 웃는다. 그녀가 하는 촬영이라는 것이 남자와 섹스를 하는 것이지 않은가.
오늘 바빠?
“아니. 오늘 일정은 모두 끝났어.”
그래요? 그러면 촬영장 구경 올래?
“그래도 돼?”
당연하지. 누가 감히 내 친구가 구경 오겠다는 것을 막겠어? 나 아사다 미키거든.
“오케이. 문자로 위치 알려줘. 설마 비행기를 타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런 걱정은 하지 말아. 도쿄에 있으니.
전화를 끊고 밖으로 나간다. 아무래도 오늘은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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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아사다 미키가 알려 준 주소는 주택가였다.
“이런 곳에서 촬영을 한다고?”
“저도 놀랍습니다.”
왕첸 역시 의외인 듯했다.
다시 한번 주소를 확인하고 초인종을 누른다. 한 남자가 밖으로 나온다.
“미키 상의 손님이십니까?”
“맞습니다.”
“들어오시죠.”
수행원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간다. 크지 않은 이층집이다. 거실로 들어서니 나이트 가운을 입고 소파에 앉아 있던 아사다 미키가 달려온다.
“빈!”
반갑게 안아주는데 나이트 가운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았는지 그녀의 몸이 그대로 전해진다.
“나빴어. 연락도 하지 않고.”
“미안하다고 했잖아. 사업 때문에 와서 많이 바빴어.”
아사다 미키와 함께 소파에 앉는다. 그때 역시나 나이트 가운을 입은 남자가 다가온다.
“미키 상의 손님?”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온 빈이라고 합니다.”
“하하, 반갑습니다. 죠라고 불러 주세요. 미키 상이 가끔 빈의 반만큼이라도 해 보라고 말하는데, 그 주인공이시군요.”
이성빈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아사다 미키를 바라본다. 그녀가 혀를 삐죽 내민다.
“사실이잖아. 하긴…… 빈의 반만큼 하는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지.”
대화를 나누다 묘한 기류가 느껴져 바라보니 왕첸과 수행원들이 다른 이들과 기 싸움을 하고 있다. 덩치가 크고 인상이 험악한 사람들이었다.
일본 포르노 사업이 야쿠자와 연결되어 있다고 하더니 그쪽 계통의 사람인 것 같다.
계속해서 보고 있을 수 없어 이성빈이 한마디 한다.
“이봐. 그쪽. 나는 마츠다 아키나와 각별한 사이야. 너희들 때문에 내가 그녀와 얼굴 붉히게 되면 어떻게 될까?”
야쿠자로 짐작되는 남자들이 사색이 된다. 그리고는 허리를 깊게 숙인다.
“몰라뵈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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