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화 〉 17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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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왕 171화
로엔 그룹 회장실.
쾅!
“그게 무슨 말이야?”
“미나모토 가문이 배신했습니다.”
로엔 그룹의 회장 신이한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보고를 하는 자신의 최측근의 얼굴을 바라본다.
“자신들이 보유 중인 구연사의 지분을 매각한 후 잠수했습니다.”
“그, 그게…….”
말이 되냐며 호통을 치고 싶었다. 하지만 측근이 자신을 상대로 심각한 장난을 칠 이유가 없었다.
“그들이 왜?”
미나모토 가문은 2대에 걸쳐 충실히 문지기 역할을 수행해 주었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아니 넘칠 정도의 대가를 주었다. 미나모토 가문은 일본 내에서 재벌 가문 부럽지 않은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소식을 들은 직후 보안팀이 일본으로 넘어갔습니다.”
보안팀이라고 해서 보안에 관련된 일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로엔 일가를 위해 온갖 더러운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은 철저하게 전문화되어 있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경찰보다 뛰어나다.
“일본 내에서도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지분 전체인가?”
“아닙니다. 미나모토 겐지가 가진 지분은 그대로였습니다.”
“아내와 자식들인가?”
측근이 고개를 숙인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눈을 감고 있던 신이한이 눈을 뜬다. 측근은 그의 눈 속에서 이글거리는 불길을 보았다.
“내 앞에 데리고 와. 어디에 숨어 있던, 죽었으면 그 시체라도 내 앞에 가져다 놔.”
“네, 회장님.”
**
“로엔 그룹의 지분 20%를 확보했습니다.”
“30%라고 하지 않았나?”
일본에서 작업을 마치고 돌아온 암화에게 이성빈이 묻는다.
“오늘내일하는 미나모토 겐지에게 지분이 남아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군.”
로엔 그룹은 지분 구조가 다른 대기업들과 조금 다르다. 알려진 바로는 사주 일가가 보유 중인 그룹의 지분은 30% 정도다. 다른 대기업들 역시 그 정도 지분으로 그룹을 지배하고 있으니 일견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로엔 그룹의 지분 30%를 보유하고 구연사의 실질적인 주인이 로엔 일가다. 그렇기에 로엔 일가는 그룹의 지분 60%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룹에 대한 지배력이 다른 대기업들과는 다르게 강력하다.
만약 암화가 이성빈에게 보고한 대로 30%의 지분을 확보했다면 로엔 일가와 똑같은 양의 지분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과 같은 양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당장 로엔 그룹을 차지할 수는 없다. 로엔 일가에 우호적인 지분들 때문이다.
국민연금 공단과 금융권, 그리고 해외 투자자들이 그들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로엔 그룹의 우호 세력들을 등 돌리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이성빈이 어서 말해 보라는 듯 바라보자 암화의 보고가 이어진다.
“로엔 그룹의 계열사들 중 그린 우드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린 우드? 로엔 그룹의 계열사들은 모두 로엔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나?”
“네. 그래서 저희도 처음에는 잘못 기록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조사를 해 보니 그곳이 조금 재미있는 곳이었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산을 관리하고 나무들의 품질 개량 등을 연구하는 작은 규모의 회사였습니다. 연구원과 종업원의 수를 모두 합쳐도 여덟 명뿐이었습니다.”
“로엔 그룹의 계열사가 직원이 여덟 명이라고?”
확실히 이상하다.
“일단 그린 우드의 대표가 2년 전까지 로엔 그룹의 기획조정실장으로 있던 사람입니다.”
기획조정실장이란 회장의 최측근과도 같은 존재다.
“좌천당한 건가?”
“처음엔 저희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눈 밖에 난 기조실장을 좌천시키기 위해 그린 우드라는 계열사를 만들었다고 판단한 거죠. 하지만 그린 우드가 보유하고 있는 다른 계열사들의 지분이 심상치 않습니다.”
심상치 않다는 표현까지 사용하는 것을 보니 뭔가 있기는 있는 듯하다.
“건설 지분 5%, 제과 지분 4%, 유통 지분 5%, 엔터 지분 10%, 식품 지분 4%. 그 밖의 계열사들의 지분도 조금씩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그린 우드의 지분은 로엔 일가에서 꽉 쥐고 있고?”
“네. 그룹 승계를 위한 작업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건설, 제과, 유통, 식품은 로엔 그룹의 주력 계열사들이다. 그들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그린 우드는 그 가치만 두고 본다면 몇 개의 계열사를 합친 것보다 대단하다 할 수 있다.
“지분을 로엔 일가가 모두 틀어쥐고 있다면 손을 쓸 방법이 없지 않나?”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이성빈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자 암화가 설명을 잇는다.
“그린 우드의 또 다른 역할이 있습니다. 바로 사주 일가의 비자금 조성입니다.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 돈들이 그리로 흘러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 돈은 해외 조세피난처의 계좌로 분산되고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그린 우드는 계열사들의 지분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미국과 일본 증시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이성빈이 암화의 앞에 놓인 잔에 차를 채워 준다. 입이 마른지 암화가 곧바로 차로 입을 축인다.
“그린 우드의 직원들은 모두가 여의도에서 이름깨나 날렸던 증권맨들이었습니다.”
“그런가?”
전 기획조정실장이 대표로 가 있고 여의도 증권가에서 이름을 날리던 이들이 직원으로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암화의 말들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건드릴 수 있는 여지가 없지 않은가?”
“충분합니다. 그들이 대출받은 은행이 바로 미국의 씨티은행이기 때문입니다.”
“씨티은행이라.”
미국이라면 록펠러 가문을 이용해 압박을 가할 수 있다. 하지만 썩 좋은 방법은 아니다. 록펠러 가문에 계속해서 무언가를 부탁하게 되면 결국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암화의 말에 이성빈은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천화 투자가 씨티은행의 대주주입니다. 23%의 지분을 가지고 있지요. 그리고 중국 국영 투자도 10%의 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이 씨티은행처럼 큰 은행의 지분을 타국이, 그것도 적대국이라 할 수 있는 중국이 보유하는 것을 두고만 봤다고?”
“두고만 본 것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었던 것이지요. 2007년 미국 경제는 최악의 암흑기에 들어섭니다.”
이성빈은 떠오르는 것이 있어 중얼거린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론.”
“네, 맞습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최악의 위기였습니다. 미국의 대형 금융사, 증권 회사의 파산이 이어졌죠. 금융 위기는 미국을 넘어 세계로 번져 나갔습니다. 여담이긴 하지만 벤 버냉키 미국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의 의장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입은 금융 손실을 1천억 달러라고 발표했습니다.”
12조 원이 넘는 거액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그 발표를 말도 안 되는 개소리 취급을 했죠. 천억 달러는 빙산의 일각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었죠. 각설하고. 천화 투자와 중국 국영 투자가 씨티은행에 투자를 하게 된 것이 바로 그때입니다.”
“좋아. 씨티은행의 지분 33%를 보유하고 있어. 그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지?”
천화 투자가 보유 중인 23%는 당연히 이성빈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중국 국영 투자의 10%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 주석은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이성빈에게 전화를 하고 있다.
이성빈이 선물한 영단의 효과로 제2의 인생을 누리고 있다며 매번 고맙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씨티은행이 담보로 잡은 로엔 그룹 계열사들의 지분을 꿀꺽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능한 일인가?”
“곡주님께서 로엔 그룹과 싸우시면 자연스럽게 계열사의 지분이 갖는 가치가 떨어지게 됩니다. 돈을 빌려준 입장에서는 담보에 대한 가치가 떨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씨티은행이 압박할 명분이 생기는 겁니다. 그들이 투자한 미국과 일본의 회사들에 작업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투자한 회사의 가치가 떨어지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휴지 조각이 됩니다.”
흥미로운 이야기다.
주식이라는 것이 아주 재미있다. 주체가 되는 회사는 아무런 일도 없는데 은근히 퍼지는 소문에 가격이 하늘까지 솟구쳤다, 바닥까지 떨어지기도 한다.
“타이밍을 잘 잡으시면 됩니다. 전방위적으로 로엔 그룹을 압박합니다. 그린 우드의 비자금 등을 검찰에 고발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계열사들의 주가 하락, 대출을 해 준 씨티은행의 압박, 그리고 투자한 곳들의 주식 하락.”
“그 정도라면 충분히 흔들 수 있겠군.”
“흔들리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
요즘 이성빈은 초저녁이 되면 집에 돌아와 백교 등과 함께 식사를 한다. 부풀어 오르는 그녀들의 배를 보는 것도 즐겁고 그녀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것 역시 즐겁다.
“오늘 인영 언니가 놀러 왔었어요.”
요즘 김인영이 집에 자주 놀러 온다고 한다. 이성빈의 아내인 백교와 친분을 나누기 위함이다. 세광 메디컬을 내려놓은 후 그녀는 태교에만 전념하고 있다.
“잘 지내도록 해.”
“네, 곡주님의 씨앗을 잉태한 분이잖아요.”
꼭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이성빈이 김인영을 비롯한 이재은과 한선영에게 영단을 주고 무공을 알려주었을 때 이미 호곡화들은 그녀들을 자매처럼 여기고 있었다.
“어머님이 김치를 가져다주셨어요.”
“회사 일도 바쁘실 텐데 김치까지 하실 시간이 있었나?”
“저도 그게 궁금했는데 고용인과 함께 담그셨다고 하시더라고요.”
흑설이 이성빈의 잔에 차를 채운다.
“전대 호곡화들께서 고생이 많으세요.”
백교가 이야기하는 전대 호곡화란 정확히 전전대 호곡화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전대 호곡화까지는 모두 이성빈의 아이를 잉태하고 있다. 그 덕에 일선에서 물러선 전전대 호곡화들이 다시 현역으로 나서야만 했다.
이성빈은 전전대 호곡화들에게도 아이를 갖고 싶지 않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내공을 보유하고 있기에 나이에 비해 한참이나 건강한 육체의 소유자들이기에 임신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들이 거절했다. 이유는 이성빈의 아이는 건강한 육체에서 자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신들이 내공을 보유해 젊음을 유지하고 있지만 단지 그뿐이라는 것이다.
아이가 자랄 옥토, 즉 좋은 자궁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성빈은 그런 그녀들의 뜻을 존중해 주었다. 대신 이성빈의 아이들이 태어나면 자신들이 교육을 담당하겠다고 벌써부터 준비가 한창이었다.
청연이 이성빈의 입에 사과를 넣어 준다. 반을 베어 무니 남은 반을 자신이 먹는다. 청연은 다른 호곡화들에 비해 배가 유난히 많이 불렀다.
“쌍둥이들은 잘 자라고 있나?”
“네, 곡주님. 쌍둥이답지 않게 크다고 해요.”
쌍둥이들은 평균적으로 조금 작게 태어난다. 하지만 청연의 배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아닌 듯하다.
“곡주님. 화화곡의 힘이라면 로엔 그룹쯤은 단숨에 무너트릴 수 있어요.”
이성빈이 요즘 로엔 그룹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을 알고 있는 백교가 은근한 투로 말한다. 그러자 이성빈이 웃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대로 둬. 일하는 느낌도 나고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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