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6화 〉 176화 (176/201)

〈 176화 〉 17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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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왕 176화

세 대의 차가 저택으로 들어선다.

맨해튼 부촌의 저택으로 들어선 차들 중 가운데 차에서 왕첸이 내려 뒷문을 열어 준다. 차에서 내린 이성빈이 주위를 살핀다. 잘 정돈된 아름다운 정원이 보인다. 곳곳에 설치된 조명이 밤의 정원을 환상적으로 연출한다.

“곡주님. 들어가시죠.”

호화단 대원들과 함께 저택 안으로 들어간다.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50대 중반 정도의 동양인이 정중히 허리를 숙인다.

“곡주님을 뵙습니다.”

앞으로 저택의 모든 관리를 책임질 사내로 화화곡에 속해 있다. 본래는 호화단의 간부였지만 현재는 은퇴한 상태다.

앞으로 미국에 왔을 때, 정확히는 뉴욕에 왔을 때 머물게 될 저택이다. 한 달 전에 구입했고 이미 실내 인테리어와 가구 배치까지 끝난 상태다.

응접실로 가 앉으니 고용인들이 테이블 위에 가볍게 술상을 차려 준다. 통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테이블 위에 위스키와 간단한 안주가 놓인다.

“같이 한잔하자.”

“아닙니다.”

왕첸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자신은 이성빈을 지키는 방패다. 방패가 술에 취하면 안 된다. 왕첸의 굳은 의지가 느껴졌지만 이성빈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야. 하루쯤은 쉬어도 괜찮아. 이곳의 경호 상태는 네가 더 잘 알잖아.”

어쩔 수 없다는 듯 왕첸이 이성빈의 맞은편에 앉는다. 이 저택의 경호 상태는 백악관보다 뛰어나다. 호화단의 최정예들이 주위를 몇 겹으로 감싼 채 경호하고 있다. 심지어 저택 내부에 미사일 경보 시스템까지 설치되어 있다. 경보가 울리는 즉시 지하 벙커로 이동하면 안전하다.

당장 미국의 최고 특수 부대가 침투를 시도한다 해도 이곳에 올 수 없을 정도다.

술 한 잔을 가득 채워 왕첸의 앞으로 밀어준다.

“수련은 잘하고 있어?”

“네, 곡주님.”

이성빈을 수행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시간을 수련에 투자하고 있다. 이성빈이 준 환단을 먹은 이후 상상도 하지 못할 경지에 이르렀다.

화화곡에서는 호곡화들에게만 내공이 허락된다. 그런 호곡화들을 지켜야 할 호화단들은 내공을 익힐 수 없다. 화화곡에 충성심이 강하기에 나쁜 마음은 품지 않았지만 항상 내공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내공이 있다면 자신의 임무를 더욱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다는 충성심이었다. 그런데 곡주인 이성빈이 신단이라 불릴 수 있는 환단과 함께 내공을 허락해 주었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다. 수련을 하면 할수록 강해지는 것이 느껴질 정도다. 그래서인지 술, 여자, 도박 같은 것보다 수련이 더 좋다.

완벽한 중독이라 할 수 있다.

이성빈이 위스키 한 잔을 단숨에 비우고는 다시 술을 채운다. 왕첸이 이성빈을 잠시 바라본다. 내공을 지니지 못했을 때는 막연히 이성빈이 강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공을 지닌 지금은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신이시다.’

이성빈의 몸 안에 담긴 기운이 얼마나 대단할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다. 이성빈이라면 저렇게 앉은 자리에서 손가락 하나를 들어 자신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도 회사 몇 개를 살까 해.”

“…….”

왕첸이 대답하지 않는다. 이성빈은 왕첸과 업무적인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그 말은 그저 혼자 하는 말이라는 뜻이다.

“SB 그룹의 미국 진출이 되겠지.”

“축하드립니다.”

이성빈이 피식 웃는다. 남자가 봐도 반할 것 같은 완벽한 미소다. 왕첸이 술잔을 비운다. 이성빈이 손을 뻗자 놀랍게도 왕첸의 술잔이 그에게 끌려간다.

무협 소설에나 등장하는 신비로운 힘이다. 이성빈은 빈 잔에 다시 술을 채우고 왕첸에게 밀어준다.

“왕첸.”

“네, 곡주님.”

“리이펑을 살펴봐.”

“리이펑 입니까?”

이성빈이 고개를 끄덕인다.

리이펑은 오늘 이성빈과 술을 마신 세 사람 중 한 명이다. 천화 투자 미국 지부의 자금을 집행하는 데 최고 승인자가 바로 리이펑이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사실 이런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 이성빈이 지시하면 그저 따르면 그만인 것이다. 왕첸이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질문하는 이유는 리이펑이라는 사내 때문이다.

그는 대대로 화화곡에 충성하는 가신 가문 출신이다. 쉽게 예를 들자면 중국 천화 그룹의 부회장이었던 장웨이와 유사하다 할 수 있다. 장웨이의 가문처럼 위상이 높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다.

“냄새가 나.”

“냄새 말씀이십니까?”

의심스러운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뜻일 것이다. 왕첸이 이성빈의 최근접에서 경호하고 있다지만 호화단과 암화는 별개의 조직이다. 그들이 하는 일에 간섭할 수 없다. 어쩌면 그 암화가 이성빈에게 무언가를 조사해 보고했을 수도 있다.

이성빈은 생각에 잠긴 왕첸을 보며 피식 웃는다.

“그냥 말 그대로 냄새가 나서 그래.”

“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성빈이 술을 마시고는 빈 잔을 내려놓으며 말한다.

“묘한 냄새가 나거든. 그런데 그 냄새를 얼마 전에 맡아 봤어.”

정확히는 시가 냄새다. 보통의 시가와는 다른 독특한 향을 가진 시가였다. 그래서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장린펑. 미국 내 차이나 마피아의 대부. 그가 피우는 시가 냄새가 어째서 리이펑에게 날까?”

**

은밀한 공간.

두 사내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왠지 모르게 불안합니다.”

말을 하는 사내는 리이펑이다. 마주 앉은 사내, 장린펑이 씨익 웃는다.

“그래서요?”

“네?”

“그래서 뭘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는데요? 천화 투자의 자금 중 일부가 우리 쪽으로 흘러들었다고 보고라도 하시려고요?”

“그건 아닙니다.”

그런 보고를 하게 되면 자신뿐 아니라 그가 속한 가문이 풍비박산 날 것이다. 화화곡의 중심에 가깝기에 화화곡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가장 잘 알고 있다.

화화곡은 은혜를 절대 잊지 않는다.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배로 갚는다. 그리고 화화곡은 원한을 절대 잊지 않는다. 은혜를 배로 갚는다면 원한은 열 배, 백 배로 갚는다.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 세력들이 화화곡과 맞섰다. 하지만 그들 중 멀쩡히 살아남은 이들은 단 한 명도 없다.

화화곡은 먼저 누군가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지만 한 번 손을 쓰기 시작하면 적이라 분류되는 이들을 완벽하게 소멸시켜 버린다.

화화곡이 가장 큰 적으로 구분 짓는 이들이 누굴까? 외부의 적? 아니다. 바로 배신자였다. 자신은 지금 화화곡을 배신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

‘잘하고 있는 것인가?’

어제 함께 술을 마신 곡주라면 이실직고했을 때 용서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바로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다.

“자­, 이제 해결 방법을 함께 찾아보도록 할까요?”

장린펑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속삭인다.

**

백 명.

정확히 백 명이 움직이고 있다. 왕첸을 비롯한 호화단의 간부 열 명이 각기 아홉 명의 호화단원들을 이끌고 열 개 방향에서 같은 곳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

왕첸이 주먹을 들자 뒤를 따르던 단원들이 멈춰 선다. 머리와 어깨, 허리를 차례로 터치한다. 마지막으로 점검을 하라는 뜻이다. 호화단원들이 최종 점검을 실시한다. 각자가 지닌 화기의 점검까지 끝난 후 가슴을 가볍게 두드린다.

왕첸이 정면을 주시한다.

어둠 속에 움츠린 거대한 구조물이 보인다. 바로 미국 차이나 마피아의 대부 장린펑의 저택이었다. 마피아의 대부답게 저택을 경호하는 조직원의 수가 상당하다.

왕첸이 세 곳을 차례로 가리킨다. 그러자 단원들에 세 명씩 나눠 왕첸이 가리킨 방향으로 이동한다. 어둠 속에서 이동하는 그들은 조금의 기척도 흘리지 않고 있다.

왕첸을 비롯한 간부들처럼 환단을 복용하지 못했지만 내공이 허락되었다. 미약한 수준의 내공을 품었지만 내공을 지닌 것과 그러지 못한 것의 수준은 하늘과 땅 차이다.

왕첸이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뭔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저택의 높은 담 앞에 도착했을 때는 근처를 경비하고 있던 차이나 마피아 조직원들 여섯 명이 쓰러져 있는 상태였다.

왕첸이 그들 중 한 명을 밟고는 도약한다. 그의 몸이 단숨에 5미터가 넘는 담 위에 올라선다. 아래 남은 단원들이 서로 도와 담을 넘는다.

핑­ 핑­

왕첸이 빠르게 손가락을 튕긴다. 그의 손가락에서 쏘아져 나간 침이 정원을 경계하는 마피아 조직원들의 몸에 틀어박힌다. 그들은 비명도 내지르지 못하고 모두 쓰러진다.

왕첸과 조직원들이 정원을 가로지른다. 그때 다른 방향에서도 호화단원들이 속속 합류한다. 열 방향에서 침투한 호화단원들이 다시 흩어진다.

저택 전체를 완벽하게 포위한 채 각기 다른 침투 루트를 이용해 안으로 잠입할 것이다.

왕첸과 열 명의 간부들의 침투 루트는 바로 정문이었다.

철컥­

왕첸이 품속에서 두 자루의 권총을 꺼내 장전한다. 소음기가 연결된 권총이다. 다른 간부들 역시 각자의 화기를 꺼내 든다.

텅­ 텅­

왕첸이 문고리로 문을 두드린다. 눈을 반쯤 감고 있던 왕첸이 곧바로 두 자루의 권총을 문을 향해 발사한다.

피슉­ 피슉­

안쪽에서 짧은 비명과 함께 무언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콰앙­

왕첸이 발로 문을 차자 폭발하듯 터져 나간다. 안쪽에 쓰러진 세 사람을 확인하고는 왕첸이 손을 까딱인다. 아홉 간부들이 저택 안으로 들어간다.

왕첸이 벌인 소란 때문인지 저택 내부가 소란스러워진다. 위층에서 누군가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그런 소리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침투한 호화단원들이 파티를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찾아.”

왕첸이 싸늘하게 말한다. 왕첸은 응접실 소파로 가 앉는다. 10분 정도가 지났을 때 호화단원들이 속속 응접실로 모여든다.

“누, 누구야! 내가 누군지 알아!”

누군가 꽥꽥 소리를 지르고 있다. 잠시 후 단원들의 손에 질질 끌려오는 두 사람이 보인다. 그 두 사람 모두 왕첸과 안면이 있는 이들이었다.

목이 터져라 꽥꽥 소리를 지르던 장린펑이 왕첸을 확인한 후 입을 꾹 다문다. 그 뒤를 따르던 리이펑은 갑자기 딸꾹질을 하기 시작한다.

단원들이 두 사람을 왕첸 맞은편에 앉힌다.

“요, 용서해 주십시오.”

리이펑이 머리를 바닥에 쾅쾅 찧으며 외친다. 왕첸은 그런 리이펑을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한다.

“용서를 구할 상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나? 너와의 대화는 잠시 뒤로 미루기로 하지.”

왕첸이 장린펑에게 시선을 준다.

“장 대인.”

“…… 마, 말씀하십시오.”

왕첸이 테이블 위에 올려 둔 권총을 든다. 장린펑이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다. 그런 장린펑을 보며 왕첸이 묻는다.

“왜 그랬습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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