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화 〉 19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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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왕 191화
왼쪽 뺨을 맞으면 오른쪽 뺨을 내밀어라.
“출발했나?”
“네, 곡주님.”
하지만 이성빈은 성인이 아니다.
한 대 맞으면 두 대를 때리지는 않아도 적어도 당한 만큼은 갚아 줘야 한다.
호화단과 암화의 정예들이 일본으로 출발했다. 목적은 당연히 일본 내각정보조사실과 그 배후에 있는 이들과 관련이 있다.
“몇 명이나 갔지?”
“다섯이 갔습니다.”
“피바람이 불겠군.”
왕첸이 말한 다섯 명은 영단을 복용한 열 명 중 다섯을 의미한다. 이성빈의 초근접 경호를 전담하는 그들이 움직였다는 말은 제대로 응징을 하겠다는 것이다.
“시끄럽지 않게 해.”
“일본 역시 드러내지는 못할 겁니다.”
다시 한번 끔찍한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질 것이다.
현, 전대 호곡화들, 그리고 김인영이 각자의 아이들을 안고 다가온다.
“바로 출발하면 되나?”
“네, 곡주님.”
오늘은 이성빈이 아이들과 다 함께 처음 나들이를 하는 날이다. 저마다 예쁜 옷을 입고 있는 아이들이 신이 나 소리를 지르고 있다.
그런데 아이들보다 엄마들이 더 신난 것 같다.
“출발하지.”
아이들과의 첫 나들이 장소는 영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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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내각정보조사실의 수장인 타치바나 카이토는 운전을 하며 계속해서 사이드미러와 룸미러를 힐끔거리고 있다.
“흐음.”
뒤에 따라오는 차는 처음 보는 차였다. 확인할 때마다 다른 차가 뒤에 있었다. 조금 멀리 떨어진 뒤쪽까지 확인했지만 미행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분이 이상했다. 오랜 세월 정보 계통 일을 한 사람의 ‘촉’이 위험을 말해 주고 있다.
타치바나 카이토는 차를 좌측으로 꺾었다. 좁은 길이었고 뒤를 따라오는 차는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좁은 길을 운전해 간다.
위험을 알리던 촉도 작동을 하지 않는다. 좁은 길을 한참이나 달린 후 다시 큰길로 합류하기 전이었다. 큰 도로로 합류하는 신호등이 있는 삼거리에 붉은 불빛이 보인다.
노란 안전모를 쓴 남자가 경광봉을 흔들며 다가온다. 타치바나 카이토의 촉이 다시금 발동했다. 다급히 차를 뒤로 후진시켰다. 다가오던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왜 이러지?”
자신이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식은땀을 닦고는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간다. 다행히 집에 도착할 때까지 별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차를 주차하고 현관을 열었을 때 어째서 ‘촉’이 계속해서 경고했는지 알 수 있었다.
“크흠.”
현관 안쪽 전실의 신발장 반대편 전신 거울.
거울에 붉은 글씨로 무언가 적혀 있다. 냄새로 볼 때 피로 쓴 글씨였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
간단하고 유명한 글귀지만 피로 쓰여있기에 허투루 넘길 수 없다. 글씨 아래에 종이 한 장이 붙어 있다. 지도를 작은 크기로 출력한 것이다.
지도를 확인하는 순간 타치바나 카이토가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기 시작한다. 작은 점 세 개가 찍혀 있다. 그 점이 찍힌 곳은 그가 너무나도 잘 아는 곳이다.
한 곳은 바로 지금 이곳이고 다른 두 곳은 제법 거리가 떨어진 곳이다. 이곳은 대외적으로 알려진 곳이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여 만든 위장 거처다.
하지만 나머지 두 곳은 아니다. 한 곳은 그의 아내와 아이들이 살고 있는 집이고 다른 한 곳은 유사시에 가족들이 피신할 안가다.
내각정보조사실 내부에서도 아는 사람은 타치바나 카이토 본인 한 사람뿐이다.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만나러 갈 때도 몇 번이나 확인하고 변장까지 한 후에야 가곤 했다.
“호기심?”
자신의 호기심이 무언지 떠올려 보았다. 어떤 호기심을 품었기에 이런 무서운 경고가 날아온 것일까?
“SB 그룹.”
최근 보고를 받거나 지시를 내린 일들 중 가장 굵직한 것이 바로 한국의 SB 그룹과 연관된 일이었다. 타치바나 카이토가 이를 꽉 깨문다. 분노가 치밀어 올라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감히…….”
하지만 뒷말을 토해내지는 못했다. 몇 겹의 보안을 뚫고 전실의 거울에 이런 수작을 부린 이들이다. 어딘가에 도청 장치가 있을지 모른다. 한 마디 말실수가 사랑하는 가족에게 피를 강요할지 모른다.
소파로 가 앉는다.
중년 여인이 차를 가져다 내려놓는다. 위장 거처답게 위장 가족들도 이곳에 살고 있다. 아내인 척 연기하는 중년 여인과 두 명의 아이들. 그런데 누구도 불청객이 다녀갔음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지도를 다시 확인한다. 위치는 정확하다. 입이 바짝 마른다. 차를 단숨에 마신다. 입천장이 델 것 같은 뜨거움이었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
휴대폰을 들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한다.
“타키오. 내가 아주 많이 피곤해서 마사지를 받고 싶어. 그래. 예약 좀 부탁해.”
전화를 끊은 후 곧바로 집을 나선다.
**
영국 요크셔험버 웨스트요크셔주 리즈.
이성빈 일행이 호텔에 도착하자 건장한 체격의 백인 사내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정중하게 인사한다.
“회장님과 가족분들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이제는 아리수 호텔로 이름을 바꾼 호텔이다. 백인 사내는 영국 내 리즈 지점을 관리하는 책임자다.
“객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기다리고 있는 손님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가족들은 룸으로 안내해 주고 전 그쪽으로 안내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직원들이 가족들을 챙기는 것을 확인한 후 2층 카페로 향한다. 안쪽 룸으로 들어가니 미리 와 기다리고 있던 이들이 이성빈을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건넨다.
“안녕하십니까. 에이서 홀딩스의 대표 아서 케인입니다.”
에이서 홀딩스는 리즈를 연고지로 하는 프리미어리그 축구 클럽 리지 유나이티드의 소유주다.
“반갑습니다. 이성빈이라고 합니다.”
“이전에 영국에 방문한 적이 있으신가요?”
“아쉽게도 이번이 처음이군요.”
“하하, 부디 좋은 추억 만드시고 가시길 바랍니다.”
음료가 준비되고 본격적으로 만남의 목적에 관한 대화가 오가기 시작한다.
“리즈 유나이티드에 관심이 있으시다고요.”
“네. 아주 큰 관심이 있습니다.”
축구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는 스포츠 자체에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미국에 방문해 제임스 록펠러와 대화를 나누다 없던 관심이 생겨 버렸다.
록펠러 가문은 여러 스포츠 구단을 소유하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 많은 NFL과 NBA, MLB에 모두 구단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영국과 스페인의 프로 축구 구단도 소유 중이었다. 록펠러 가문의 이름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소유주는 그들이 분명했다.
미국 방문 때 제임스 록펠러가 농담 삼아 한 마디 건넸다.
내 팀과 자네 팀이 겨룰 때 내기를 걸면 재미있을 텐데 말이야.
그래서 스포츠에 관해 알아보았다.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는 축구와 야구였다. 프리미어 리그 토트넘에서 활동하는 한국 선수가 좋은 활약을 하면 대서특필을 할 정도다.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알 수 있을까요?”
아서 케인의 물음에 이성빈이 손을 뒤로 뻗는다. 왕첸이 서류 파일을 건넨다.
“우선 올해 겨울 이적 시장에서 영입하려는 선수 명단입니다.”
이성빈이 건넨 서류를 받아든 아서 케인은 차를 마시다 사레가 들려 계속해서 콜록거린다.
“이 선수들 전부를 말입니까?”
“최대한 노력해 봐야죠.”
“이 선수들을 모두 영입하려면 천문학적인 금액이 필요합니다. 당장 이 선수 한 사람만 해도 이적료가 1억 3천만 파운드는 필요합니다.”
1억 3천만 파운드는 한화로 2천억이 넘는 돈이다.
“다른 선수들도 이 선수만큼은 아니더라도 몸값이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아니,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이들이 리즈에 오려고 하겠습니까?”
“대부분 온다고 하던데요.”
이성빈의 말에 아서 케인이 경악한다.
“사전 접촉을 한 겁니까? 그거 불법입니다.”
“아직 저는 축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그들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이 불법입니까?”
“그건…… 그런데 정말 이 선수들이 리즈로 이적해 오겠다고 했다는 말입니까?”
“세 명은 아직 간을 보고 있지만 그들 역시 곧 마음을 돌릴 겁니다.”
이성빈이 다른 서류를 건넨다.
“경기장도 새로 지을 계획입니다. 물론 주의 동의가 있어야겠지요.”
“규모는 어느 정도나 생각하십니까?”
“적어도 8만석 규모는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현재 사용 중인 렐런드 로드가 4만 석이 조금 미치지 못하니 두 배가 넘는 규모가 된다는 의미다.
아서 케인이 차로 입을 축인 후 묻는다.
“리즈에 그 정도 막대한 자금을 투입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가치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죠. 가치는 만들어 가는 겁니다. 지금까지의 리즈 유나이티드가 어땠는지 관심 없습니다. 저는 앞으로의 리즈 유나이티드에 관심이 있습니다.”
아서 케인은 재벌의 유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맨체스터 시티의 만수르 구단주가 그렇고 첼시의 로만 구단주가 그렇다. 그들은 막대한 자금을 이적 시장에 투입한다. 일각에서는 돈으로 명예를 사려 한다고 비난하지만 결국 그들은 좋은 성적으로 비난을 일축해 버린다.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시겠지요?”
“좋은 선수들을 영입한다고 해서 곧바로 우승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전보다는 낫겠지요. 다만 우승은 몰라도 두 개의 팀만큼은 이기고 싶군요.”
아서 케인은 그 두 개의 팀 중 하나는 알 것 같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 리그의 명문이자 세계 모든 축구 클럽 중 구단 가치가 가장 높은 구단.
그리고 리즈 유나이티드와는 로즈 더비로 묶여 있는 라이벌이다. 물론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리즈 유나이티드의 팬들 뿐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들에게 리즈 유나이티드는 안중에도 없을 테니 말이다.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셔 가문의 전쟁인 장미 전쟁에서 유래가 된 더비전은 프리미어 리그의 유명한 더비 중 하나다. 더비가 있을 때마다 지역 경찰들이 총동원되어야만 했다. 자칫 광분한 두 팀의 팬들 사이에 유혈 사태가 발생할 테니 말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나머지 한 곳은 어딥니까?”
“에버턴입니다.”
“네? 에버턴이요?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에버턴의 구단주가 바로 록펠러 가문이었다. 이성빈이 웃으며 한마디 한다.
“에버튼 구단주하고 술 내기를 했거든요.”
아서 케인이 멍하니 입을 쩍 벌린다. 리즈 유나이티드를 인수하고 천문학적 이적료를 사용하고, 8만석 규모의 경기장을 신축하려는 이유가 고작 다른 팀의 구단주와의 술 내기 때문이라니.
아서 케인은 최근에 봤던 최고의 미친놈에게 어색하게 웃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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