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6화 〉36화 어쩔 수 없는거야 (36/425)



〈 36화 〉36화 어쩔 수 없는거야

리드레아의 재데뷔 예정일 까지 50일 정도가 남았다.
앨범 준비에 남은 일은 자켓 사진 촬영과 뮤비 촬영. 그리고 의상 뿐.
곡, 녹음, 안무 그리고 컨셉을 확정한 정도가 다인데 촬영은 12월 예정이고, 의상은 코디가 가져온 스케치나 사진들을 보고 최종결정을 할 뿐이라 지금 당장은 할 일이 없어졌다.

본래 방송국 사람들과 기자들을 만나고 다녀야 하지만 프로모션cd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 사장인 나까지 돌아다니지 않는다.
나이사님과 윤팀장이 꾸준히 돌아다니고 나는 때때로 가서 얼굴을 익히는 정도이다.

"끄아아"

대충 오늘 할일이 끝나자 두팔이 뻗어 기지개를 핀다
바쁜 날이 아닌 여유가 넘치는 하루였지만, 퇴근 시간만 되면 이상하게 몸이 피곤하다.

일도 끝났으니 집에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순간 망설여진다.

"이대로 가봤자 할 것도 없고 심심한데. "

리드레아는 연습, 누나는 아직 일이 조금 남았기에 아무도 없다.
19살 부터 계속 혼자 살아왔지만, 요즘  사람들과 어울려 살았다고, 새삼 혼자인게심심하다고 생각하는거 보니 사람이 참 간사하는 생각이 든다.

전에 인사를 했던 PD나 기자에게 안부전화나 해볼까 하다가 관뒀다.
재수없게 저녁이라도 먹자고 하면 귀찮기 때문이다.
피디나 기자가 먼저 보자고 하는건 환영할만한 일이긴 하지만, 노골적으로 접대를 원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건 아직은 섣부른 일이다.
진짜 망하고 아쉬워지면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은 피하고 싶다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아예 접대를 안 하겠다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오늘만은 피하고 싶다.

"애들 연습이나 보러가자."

자리에서 일어나 연습실이 있는 지하로 향했다.
계단을 내려오면 지하 1층 문이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복도를 따라조금 가면 왼쪽에 문이 있다.
여기는 조금 작은 2연습실로 새별너울이 사용한다.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정면으로 문이 있는데 이곳은 1연습실로 리드레아가 사용한다.

가까운 2연습실  밖에서 유리를 통해 안을 보니 몇명만이 거울을 보며 각자 연습을 하고 있다.
오늘 연습에 빠진 사람은 없을테니 몇명은 보컬실에 들어가서 연습을 하고 있나 보다.

조금 더 들어가 1연습실을 들여다 보니 음악소리가 들려오고 곡에 맞춰 단체 안무를 연습중인 모습이 보인다.
나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갔다.

리드레아는 춤을 추고 있고 트레이너는 뒤에 서서 연습실 정면의 리드레아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 지켜보고 있다
벽쪽에는 나이사님이 의자에 앉아 그녀들을 지켜보고 있다.
나는 조용히 그에게 다가가 눈으로 인사를  뒤 옆에 앉았다.

데뷔곡이 확정되고 안무가 나온 후부터 리드레아의 연습시간은 날이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보통은 사장이 와서 연습을 지켜본다면 부담스럽겠지만, 쟤네들은 그런거 없다.

연예계 생활 7년차의 관록이 있기에 트레이너를 비롯한 다른 스탶이 관여할거 없이 알아서 잘들 한다.
데뷔 직후 부터 온갖 행사를 뛰어 온 그녀들이다.
무대 경험이 수백번이 넘는 베테랑들이다.

연예계 경력 하나 없이 사실상 돈 하나로 사장노릇을 하고 있는 나에게는 그녀들의 연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공부가 된다.
여기서 배워서 새별너울 애들한테 아는 척  먹을거다.

"제이 2절 a파트 중간에 때 숙이는 자세 조금만 더 숙여. 그래야 전체 밸런스가 맞아. 세미는 사비 그 날의~ 에서 오른발 조금 더 틀어. 이 자세에서 발이 완전히 앞을 향해야 하는데  돌아"
"오케이"
"네. 언니"

곡이 끝나자 리드레아의 리더이자 메인댄서인 니키가 거울을 보며 틀리거나 부족한 점을 지적해준다.
일상에서는 니키를 리더가 아닌 그저 동네친구1 정도로 대하는 멤버들이지만 지금은 니키에게 까불거나, 말대꾸 한 번 없이 고개를 끄떡인다.
그만큼 그녀를 신뢰하는 것이다.

니키를 중심으로 멤버들 스스로 안무 완성도를 높여간다.
이러니 트레이너나 안무가는 방향을 제시해 줄 뿐 나설 틈이 없다.

제이와 세미는 니키가 말한 부분을 연습하고, 아인과 티나도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반복해본다.
니키도 거울을 보며 자신의 동작을 확인한다.

"가운데로 모여. 한번  하자"

어느 정도 동작을 가다듬은 니키가 말하자 거울 앞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멤버들이 다시 모여들어 시작대형을 잡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트레이너가 음악을 튼다.

곡이 흘러 나오자 천천히 팔과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안무뿐만 아니라 곡의 분위기와 가사에 따른 시선과 표정도 변한다.

음악에 맞춰 하나가 된 것처럼 멋진 군무가 펼쳐지기도 하고, 자기만의 개성을 뽑내기도 한다.
그녀들의 몸에서 땀이 흐르고 움직일  마다 머리가 흩날린다.

나는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이쁘다'

화려한 의상도, 한껏 꾸민 메이크업과 헤어도 아닌, 연습복에 땀에 젖은 모습이지만, 그녀들의 모습은 내가 그동안 보아 온 모습 중 가장 이쁘고 아름다워 보였다.

집에서 보아오던 짐덩어리들이 이렇게 변한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너무 가까웠기에  수 없었던, 그리고 잊고 있던 그녀들의 매력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그녀들의 외면에만 신경쓴 탓에 몰랐던 진짜 매력을 느끼게 된  같다

그녀들을 보며 두근거리고 있을  나와 함께 연습장면을 지켜보던 나이사님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락세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매너리즘에 빠진거 같았는데 회사를 옮기고 애들 많이 달라졌죠. 전에 볼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지요. 그런데 오늘은 특히 더 하군요. 연습이지만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에요"

트레이너가 있으니 나에게 존대를 하는 나이사님이다.
그는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그녀들을 가장 오래, 많이 지켜본 사람이다.
그런 그의 말이라면 신뢰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알면 욕할 수도 있으나 조금은 의무감에 그녀들을 대해  나다.
원래 가까울 수록 소중한 줄 모른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진심으로 반한거 같다.
연예인을 보는 팬의 입장이 아닌, 남자로서 여자에게 반한거 같다.

너무 몸과 얼굴만 보고 쟤네들을 가지려는게 아닐까 했던 양심의 가책이 없어진다.
그래 진심으로 반했으니 어쩔 수 없는거야.

암 그렇고 말고.

"다들 수고 했어.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시간 가는  모르고 홀린 채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보니 트레이너가 연습을 끝내고는 애들을 불러 모아놓고 오늘 연습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다.

슬쩍 시계를 보니 저녁 7시.
평소 밤 10시 11시까지 연습을 했었는데 오늘은 일찍 끝났다.
내가 보고 있는게 부담스러워서 그런가 하면서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옆에 있는 나이사님에게 슬쩍 물었다.

"매일 늦게까지 하던데 좀 일찍 끝나네요? 댄스는 여기까지 하고 다음은 보컬 연습 하는건가요?"
"보컬연습은 낮에 했고, 오늘은 이걸로 끝 입니다. 신인이라면 계속 늦게까지 연습시키겠만, 리드레아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준비가 끝났다 싶으면 컨디션 조절에 더 신경쓰면서 유지하는 선으로 연습해야죠. 오래 한다고 다 좋은건 아니니까요."

오늘 기합이 제대로 들어간거 같다고 하더만, 스탶들이 보기에도 준비가 끝났나 보다.
이제 나만 잘하면 되는거다.

"나이사님도 이제 댁에 가셔야죠?"
"아니요, 아직 일이 있습니다."

나이사님이 연습을 지켜보고 있길래  일은 다 한줄 알았는데 아직도 남아 있는 일이 있다고 한다.

무슨 일이 있는거지?
나이사님은 오늘도 방송국을 돌고 왔다.
저녁시간에 만날 사람도 없고,  일도 없다.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지금이 바쁜중에 유일하게 한숨 돌리는 타이밍인데 아직도 야근해야  일이 있어요? 혹시 회사에 제가 모르는 무슨 문제 있나요?"

경험이 부족한 나에게 비밀로 한 무슨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 지레 걱정부터 들었다.
아무리 감 하나만 믿고 뛰어들었다고 해도 극복할  없는게 실무다.
좋고 나쁘고는 내가 밀어붙이면 된다.
하지만 그외 것들은 경험이 쌓이는거외에 현재로서는 방법이 없다.

사장이라는 직위상 실무를 하는게 아닌 최종결제만을 하고 있지만, 사실 결제올라온 서류를 아무리 살펴도 이해가 안될 때가 많다.
어디 물어보기도 그렇고, 혼자 인터넷, 책등을 찾아 이리저리 알아가는 중이다.

"아닙니다. 사장님께 숨기는  전혀 없습니다. 그냥 진행 상황과 스케쥴 노릴만한 방송, pd들 리스트 다시 한번 확인해 보려고 합니다."

아무  없다니 일단 마음은 놓인다.
나이사님은 직원들 중 누나와 함께  회사에서 신뢰할  있는 유이한 사람이다.
그들이말하면 믿는게 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나저나 급한일도 아닌데 나이사님이 야근을 자청한다는건 그만큼 조바심이 난다는거겠지?
상사로서 이럴 때 할 수 있는건 한가지 뿐이다.

"퇴근하세요. 사장 명령이에요"
"네?"
"내년에 활동 시작하면 바빠서 제대로 들어가지도 못할거에요. 잠깐의 여유라도 일찍 가셔서 사모님 점수 따셔야죠."
"하하하 그 점은 전혀 걱정할 거 없습니다. 집에서 제가 늦게 들어가는게 익숙해서 일찍 들어가면 오히려 놀랄 겁니다,."

농담처럼 말하며 웃고 있지만 반쯤은 진실일거다.
그러니 더욱 일찍 보내야 한다.

"그래도 오늘은 들어가세요. 사모님한테 쥐꼬리 만한 월급주면서 얼마나 부려먹는거냐고 멱살 잡히고 싶지 않아요."

일할 때 하고  때 쉬자  모토이다.
나는 농담을 섞어가며 탐탁치 않아하는 나이사님을 확실하게 집으로 보내기 위해 리드레아까지 끌어들였다.

"니들 나이사님 사모님 전화번호 알지? 빨리 전화해서 나이사님 지금 퇴근하라는데 안 가신다고 일러."
"어머. 팀장오빠 진짜야?"

티나가가장 먼저 반응하며 자기 짐 중에 전화기를 찾기 시작하자 나이사님은 마지못해 집에 가겠다고 한다.

새로운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유부남 협박하는 데에는 부인 끌어들이는게 최고다.
앞으로도 종종 써먹어야지

나이사님 보내는 김에 그동안 늦게까지 애들 보느라 피곤했을 트레이너까지 서둘러 보냈다.

"배고파 빨리 샤워하고 밥먹고 싶어"

내 재촉에 그들이 연습실을 떠나자 니키가 연습실 바닥에 널부러져 쪼그라 든채 배고픔을 호소한다.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같은 자세로 한껏 몸을 굽히고 있는거 보니 많이 배고픈가 보다.
다른 멤버들은 걸리적 거린다며 비키라고 니키를 구박하는 중이다.
연습할 때 보여주던 리더로서의 카리스마 따위는 한순간의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새삼 반한 것도 있고 굶주림과 피곤함에 배를 움켜쥐고 있는 니키의 모습이 너무도 짠해보여 오늘은맘껏 먹도록 해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오늘 외식할까? 내가 쏠게. 잔소리 안하고 먹고 싶은 만큼 먹게 해줄께"
"외식!"

니키를 향해 슬며시 말했지만 반응은 다른 곳에서 더욱 격렬한 반응이 튀어나왔다.
아인이었다.
자기 짐을 정리하던 아인이 외식 소리에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온다.
어찌나 박력이 넘치던지 나도 모르게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오빠 외식!!!"

방금보다 느낌표가 두개나 더 늘었다.
요즘 멤버들의 다이어트 식단을 같이 먹느라 아인도 많이 힘들었다는거다.
내가 고개를 끄떡이자 밝게 웃은 아인이 서둘러 자신의 짐을 챙기러 갔다.
아인의 밝은 미소를 보니 잘한 결정이라는 확신이 든다.

"많이 먹으면 혼날거야"
"내가 괜찮다는데 누구한테 혼나?"
"......"

니키가 여전히 쪼그라 든 자세로 힘없이 말했지만, 내 말을 듣더니 무언가를 깨달은거 같았다.
애들 체중관리 담당이 나다.
그리고 난 사장이다.
내가 괜찮다면 괜찮은거다.

"오빠 정말 괜찮아? 진짜 맘대로 먹어도 돼?"

니키와 더불어 가장 다이어트에 고통받는 티나가 간절한 눈빛으로 물어온다.
제이 아인은 애초에 다이어트가 필요없고, 세미는 유지만 하면된다.
 니키와 티나만 힘든 상황이다.

"오늘은 치팅데이야 맘껏 먹어도 아무말 안할게"

다이어트를 한다고 계속 굶거나, 적은 양만 먹는게 능사가 아니다.
요요를 줄이기 위해 내 몸에게 충분히  먹고 있으니, 평소에 조금 먹는걸 너무 흡수하지 말라고 속이는 날이 치팅데이다.

"우아아아"
"먹고 싶은대로 먹으래. 나 저녁먹고 후식으로 케잌에 아이스크림까지 먹을거야"

광전사가 빙의한 듯 갑자기 니키가 벌떡 일어나 티나와 끌어안고 방방 뛰었고 티나는 그동안 못먹은걸 다 먹겠다고 결의를 불태운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흐뭇해진다
그동안 너무 운동과 다이어트만 외치는 악덕사장이 된 것 같아 미안해짐과 동시에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흐뭇해진다.

아인은 어느새 짐을 다 챙겨 연습실 밖으로 나가고 있다.
빨리 씻고 나갈 준비하겠다는거다.
먹을거에 집착이 없는 제이와 세미의 반응은 평소와 같지만, 기뻐하는 니키와 티나를 보고 웃는걸 보니 그녀들이 보기에는 짠했던 모양이다.

"니키, 티나 그만 뛰고 빨리 씻어. 나갈 준비해야지"

밥 먹을 생각에 덩달아 배고파진 나는 그녀들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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