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50화 특별대우
마지막 3번째 의상까지 시착이 끝났다.
옷을 만든 곳은 황 코디가 찾은 곳이었는데, 싼 가격에 기대보다 옷이 잘 나왔다.
"수고했어. 황 코디. 의상들 정말 마음에 들어. 황 코디가 열심히 노력하고 발로 뛴 결과야. 디자인이나 시안은 좋지만, 황 코디가 맡기자고 했던 가게 제작단가가 다른 곳보다 많이 싼곳이여서 잘못 나오면 어쩌나 좀 걱정했는데 정말 잘 나왔어. "
나는 실물로 본 새 의상에 기대이상으로 만족했기에 오늘을 위해그동안 고생한 황 코디를 찾아가 격려하고 칭찬했다.
"디자인 학원 선배가 스스로 디자인쪽은 재능 없다고 만드는 일에만 집중하세요. 주로 스케치는 가능해도 스케치대로 만들 실력이 안되는 학생들이나 아마추어들 의뢰 받아서 샵 꾸리시는데 제가 아이돌이 입을 옷이라고 말씀드리니 엄청 좋아하시면서 열심히 해주셨어요."
역시 세상은 인맥이야
학연, 지연, 혈연. 나에게 이득이 된다면 이거만큼 좋은게 없는 법이다
"이 정도라면 다른 곳에 맡길 이유가 없지. 선배라는 분한테 말해. 앞으로도 이정도 퀄리티가 유지 된다면 계속 제작을 맡길거고, 단가도 지금보다 더 쳐준다고 말야."
오늘 입어본 3벌은 다음달에 있을 자켓촬영과 뮤비 촬영 때 입을 옷들이다.
그렇기에 이런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다.
리드레아의 활동은 3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음방을 3주간 돌게 된다면 의상 3벌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3주는 커녕 일주일도 못 버틴다.
앞으로 필요한 의상이 더 있다는 말이다.
무대의상이 이상하면 사진과 영상으로 남아 두고두고 놀림감이 된다.
회사와 코디가 욕먹는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연예인에게 흑역사로 남는다.
그렇기에 좋다고 생각하면 확실하게 확보해 놔야 한다.
"네. "
"남은 의상은 이제 몇개지?"
"만들어야하는 건 한명 당 4벌씩이요. 나머지는 기성품들 중에 협찬 받을 수 있는 샆들을 한참 알아보는 중이에요"
앞으로 더 만들어야 할 의상이 한명 당 4벌이면 5명이니 만들어야 하는 것만 20벌에 앞서 만든 15벌까지 35벌이다.
기성품과 협찬을 최대한 사용하기로 했음에도 이 정도다.
사실 컨셉만 조금 달리 잡으면, 만드는거 없이 기성품과 협찬으로 떼울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컨셉에 맞춰 의상을 선택해야지, 의상에 따라 컨셉을 바꾸면 주객이 전도되는거다.
정한 방향은 확실히 따라가야지 안그랬다가는 중구난방으로 이도저도 안된다.
"그 4벌 빼고 나머지 중에 적당한걸 못 찾아서 만들어야 한다면 나한테 보고해. 대안을 찾아보거나 혹은 디자인이랑 기성품 카탈로그랑 보고 어느쪽이 나은지 보고 결정할 테니까 말야"
찾는게 없어? 만들어. 혹은 협찬 안 해준데? 그럼 사! 라고 할 만큼 우리회사가 여유있지는 않다.
내가 보고 적당히 타협해야 할 건 타협할거다.
처음 계획했던 의상에서 조금 바뀐다해도 우리가 추구하는 바에 맞는지 아닌지는 내가 가장 잘 알기에 중심을 잡아줄 수 있다.
황 코디와 이야기를 하던 중에 어시인 문 코디가 한아름 옷을 들고 나가는게 보였다.
15벌이나 되는 옷들을 혼자 다 못 들기에 새별너울 애들이 나눠서 도와주고 있다.
이제 저 옷들은 다시 입기 전까지 2층에 있는 의상 창고에 보관 될 것이다.
"문 코디는 어때? 이쪽 일 처음 시작하는건데 이제 적응 좀 한거 같아?"
"남들 다 힘들어하는 어시생활인데 저렇게 꾸미고 다닐 정도로 여유가 있죠"
어쩐지 말에 가시가 있는 듯한 느낌이다.
황 코디가 꾸몄다고 할 정도로 오늘 문 코디가 차림에 신경쓴 티가 역력했다.
마치 오피스레이디 처럼 골반라인이 드러나는 통이 좁은 치마에 옅은 노란색의 블라우스, 그리고 블라우스와 머리에 포인트를 주어 나이들어 보이지 않고, 20대 초반같은 느낌을 살렸다.
신발도 조금 굽이 있는 힐로, 사실 두 다리로 뛰는 일이 많은 연예인 스탶에게 적합한 차림은 아니였다.
나는 지금 황 코디의 말이 흔히 말하는 막내가 막내답지 않다라는 의미로 말한건 아닌지 조금 걱정이 들었다.
박봉과 과로에 시달리며 힘든 어시 생활을 거친 사람들이, 자기가 책임자가 되면 밑에 사람들에게 똑같이 대한다.
"나 때는 안 그랬는데.". "요즘 애들은 의지가 없어" 라는 말을 입에 달면서 말이다.
그러니 지금도 여전히 어시생활이 힘들다는 말이 계속 나오는거다.
나는 황 코디도 결국 그런 사람이었나 싶어 조금 심란해졌다.
"어시일이 고되고 힘든 일이란건 누구보다 제가 가장 잘 알아요. 지금 같은 비활동기 아니면 저런 여유를 부리기 힘들죠. 부디 앞으로 정말 힘들 때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 저도 열심히 혜리를 도와야겠죠."
나는 마음속으로 잠시나마 그녀를 오해한걸 사과했다.
그녀는 후배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혜리는 운이 좋은 거에요"
"뭐가?
"어시 일을 우리회사에서 시작하잖아요. 다른 곳에 비하면 여긴 천국이에요. 교통비 주는 것만 해도 큰 복지거든요. 거기에 리드레아도 착하고, 사장님이나 다른 분들도 다 젠틀하죠. 앞으로 일 자체는 힘들어도, 다른 걸로 스트레스 받는 일은 적을거에요."
옷 때문에 항상 짐이 많은 코디와 어시는 버스,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힘들다.
차가 없으면 택시를 타야한다는 말이다.
짐이 적어도 시간에 쫓겨서 택시를 타거나 퀵을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교통비가 만만치 않게 든다.
많은 회사들이 자기부담으로 넘기고는 하는데, 나는 일로 인해 드는 교통비는 대주기로 했다.
"어시 생활이 힘들고 대우가 열악하긴 하지만 사람을 잘 만나면 괜찮긴 해요. 그런데 사람 잘못만나면 진짜 죽고 싶어지죠. 잠깐 쉬고 있으면 당장 나가서 협찬 받아오라고 하거나, 기껏 협찬 받아왔더니 맘에 안든다고 돌려보내 샾에서 욕먹게 하고, 바로 다음날 어제 보낸 옷 다시 가져오라고도 하죠. 그러면 중간에 낀 어시만 또 욕 먹는거에요. 촬영할 때 배우가 연기하다가 옷 상한거를 운반할 때 일어난 파손이라면서 나한테 떠넘기고, 배우가 옷 맘에 안 들어하니까 내가 샾에서 엉뚱한 옷 픽업한거라면서 또 내가 욕먹게 만들고, 사장이란 놈은 얼마 되지도 않은 월급도 제대로 안줘서 카드빚만 늘어나게 해놓고 지 자식들 학교 준비물 사는 거까지 나한테 시키고......내가 진짜 이 실장 그 년이랑 그 망할 회사 때문에 고생한거 생각하면......으드득."
황코디가 어시 생활의 힘든점을 마치 들은 얘기인듯 늘어놓다가 실제로 겪은 일이었음을 자기도 모르게 고백하고 말았다.
그것도 두 주먹을 부들부들 떨고 이를 갈아가며 말이다.
내가 옆에 있음에도 그 년 소리까지 나왔으니 쌓인게 엄청 많다는거다.
눈빛을 보니 눈앞에 이 실장이란 여자와 전 회사 사장이 있으면 당장이라도 따귀를 날릴거 같은 표정이다.
어시 생활의 열악함이라기보다 악덕기업을 잘못 만난거 같지만 어쨌든 엄청 고생했다는건 알겠다.
저러니빨리 벗어나기 위해 어시 2년차임에도 포트폴리오 열심히 준비해서 우리회사 모집 공고 뜨자마자 지원한거겠지.
"죄...죄송합니다!"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황 코디가 급히 사과를 한다.
"하하 아니야. 황 코디 고생 많았네. 카드빚 급하면 가불 해줄께. 필요하면 말해"
황코디의 얼굴이 빨개진걸 보니 갑작스런 과거 고백이 많이 창피한가 보다.
사장 앞에서 그 년 소리랑 카드빚까지 나왔으니 그럴만하도 하다.
"황 코디, 난 직책이 무엇이든간에 우리 직원이 피곤에 찌들어 힘들어하는거보다 저렇게 여유있는 모습이 보기 좋아. 꾸미고 싶을 때는 꾸미고 편안하게 입고 싶을 때는 편안하게 입으라고 해. 그 정도는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거라 믿어. 아참, 그리고 황 코디가 잘못 생각하는게 하나가 있어."
좋은 말을 늘어놓다가 갑자기 황코디의 잘못을 지적하니 조금 당황한거 같았다.
친구사이라면 아무일도 아니겠지만, 사장과 직원 사이라 필요이상으로 당황하는거다.
사장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신경 쓰이는건 말단 직원들의 슬픈 숙명이다.
나는 빨리 말을 이었다.
"문 코디의 행운은 우리 회사에 온게 아냐. 황 코디 같은 좋은 선배를 만난거지. 나도 황코디 같은 좋은 사람이 나한테 온 걸 행운이라고 생각해"
나는 황 코디가 내 칭찬에 좋아할 줄 알았다.
그런데 어째 반응이 예상과는 다르다.
뭐야? 칭찬한거잖아. 왜 계속 당황하면서 얼굴이 빨개진 상태인데?
웃어. 웃으라고.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이야
잠시 우물쭈물 하던 황코디가 입을 열었다.
"저...사장님은 오늘 혜리처럼 몸매 드러나고 은근히 섹시한 스타일이 좋으세요?"
난 그저 여유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했을 뿐이다.
그리고 앞으로 편하게 입으라고 까지 말했다.
난 오늘 문 코디가 옷을 잘 입었다고 생각했을 뿐, 섹시의 ㅅ자도 꺼낸 적이 없다.
그런데 왜 이야기가 갑자기 그쪽으로 가는거야!
그나저나 이거 대답 잘해야 한다.
요즘은 엄격한 세상이라 말 잘못하면 성희롱으로 걸린다.
"꼭 집어서 어떤 스타일이 좋다는게 아니야. 옷 잘 입는 사람은 청바지에 티 하나만 걸쳐도 자기 스타일과 개성을 잘 살리잖아. 같은 의미로 문 코디도 패션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자기에게 맞는 옷을 잘 입는거 같다는 말이야"
이 정도면 꼬투리 잡힐 일은 없겠지.
"알겠어요. 혜리는 저런 차림이 잘 어울린다는 거군요. 제가 생각해도 혜리는 몸매가 좋아서 라인을 드러내는게 잘 어울리긴 해요."
잠깐 칭찬하고 격려하겠다고 시작한 이야기가 어째 점점 수렁에 빠지는 기분이다.
"저는 어때요? 저는 어떤 스타일로 입으면 잘 어울릴까요? 혹시 보고 싶은 옷 있으세요?"
나를 빤히 바라보며 자신에게 어울리는 차림을 물어본다.
황 코디.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어.
그런걸 다 알면 내가 코디하지 돈 주고 사람 쓰겠어?
차라리 어디 운동하면 몸매가 더 이뻐지겠냐고 물어봐. 그건 대답해 줄 수 있어
잠깐, 다시 생각해보니 그거도 안되겠다.
그럴려면 선행조건이 필요한데, 그 조건을 말했다가는 정말 양손에 은팔찌 찰 수도 있다.
"나야 모르지. 난 코디가 아니잖아. 황 코디가 나한테 알려줘야지."
"네 알겠어요. 제대로 준비해서 보여드릴게요."
어째 면접 때나 처음으로 자기가 준비한 의상 초안을 가져올 때마다 더 결의에 가득찬 얼굴이다.
이렇게 까지 불타오르는걸 보니 옷이라는건 여자의 자존심인가 보다.
특히 황 코디는 스타일리스트인만큼 더 그런게 아닌가 싶다.
황 코디는 대화를 마치고서는 2층으로 올라갔다.
"사장님"
황 코디가 사라진 연습실 문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나이사님이 조용히 불렀다.
"잠시 둘이서만 할 말이 있습니다."
나이사님의 표정을 보니 평범한 이야기는 아닌거 같았다.
"사장실로 가시죠"
지하 연습실에서 2층 사장실에 오기까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나이사님은 사장실에 들어가자마자 급하게 입을 열었다.
"오늘 탑뮤직 김중현한테 연락이 왔어"
젠장
듣기로 그는 조용히(?) 즐거운 룸 생활을 만끽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사적인 감정은 접어둔 채 리드레아 활동 앞두고 조만간 데려가면 되겠지 하고 애써 모른척 잊고 살았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거라 생각은 했지만 너무 빠르다.
우리는 정식으로 활동을 한 적도 없는 신생기획사다.
아직 리드레아의 활동 계획을 발표한 적도 없으니 상식적으로 연락이 올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이렇게 된 것이다.
나는 순간 치솟는 짜증을 잠시 가라 앉히고 그냥 안부전화 일수도 있다는 말도 안되는 작은 희망을 안고 나이사님에게 물었다
"뭐라는데요?"
"내일 저녁 7시에 탑뮤직 팀 회식이 있다면서 저번에 자기가 약속 펑크낸게 미안하다고 회식하는데 오래. 자기 얼굴도 보고 팀원들 전체 얼굴도 익히게 해준다고 말야."
이 새끼가......
말은 저렇지만 회식하니까 와서 돈 내라는 뜻이다.
아마 계산서 나오면 우리가 현금을 김중현 한테 주고 김중현이 법인 카드로 긁겠지.
거기서 끝나면 차라리 다행이다.
아마 2차, 3차 다 따라가서 계산해야 할 것이다.
"이상하네요. 우리는 활동 계획을 발표한 적이 없어요. 리드레아가 있긴 하지만, 한번도 활동한 적이 없는 이름만 기획사인 상태죠. 지금 우리를 부른다는거는 개업식도 안한 가게 한테 세금 내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우리를 부른다는 거는 단순히 접대받는 것만이 아닌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걸로 밖에 생각이 안들어요."
나이사님도 혼란스러운건 나와 마찬가지였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애써 잊으며 살았지만, 나이사님은 끊임없이 아는 팀장, 실장들과 연락을 하며 김중현에 대한 정보를 모아온 것을 알고 있다.
실제로 무엇을 한다기 보다 그저 정보를 모으며 숨죽이고 기다리다가 보면 언젠가 약점을 잡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 때문이었다.
"나도 그 사람 생각을 전혀 모르겠어. 황당해서 다른 회사 팀장들 몇명한테 전화해 봤는데 다 룸 데려가서 아가씨 붙여주고 몇시간 놀고 끝났데. 우리한테만 이러는거야"
나이사님 입장에서도 많이 황당할 수 밖에 없다.
성내야 할 사람은 나이사님이다.
그럼에도 김중현은 적반하장으로 이렇게 나오는거다.
다른 회사들과 달리 우리는 나이사님과 김중현이 개인적으로 좀 얽혀 있긴 하지만, 이렇게 특별대우를 받을만큼 이상한 짓을 한적이 없다.
"나이사님만 오래요? 아니면 저도 오래요?"
"누구누구 오라는 말 같은건 안했어."
"직접 전화가 온 이상 나이사님은 무조건 가셔야 할거고, 저도 갈게요. 다른 회사 사람들 회식하는데 나이사님 혼자 있는 것보다 둘이 낫죠."
"이렇게 된거 윤 팀장도 같이 가는게 낫지 않겠어?"
윤팀장도 팀장, 실장급 매니저.
이런 자리라면 윤팀장도 같이 가는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뇨 윤팀장님 한명 쯤은 뒤에서 빠져 있는게 나을거 같아요. 그래서 급히 뭐가 필요한 일이라도 생기면 윤팀장님한테 연락해서 처리해달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는 모른다.
말 그대로 만약의 상황을 대비할 뿐이다.
"그것도 맞는 말이군. 좋아. 그렇게 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