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5화 〉75화 무조건 모르는거야 (75/425)



〈 75화 〉75화 무조건 모르는거야

"공 작가는 이쪽 기획사에 연락해서 출연 결정된거 알려주고 내일까지 이 팀 배경 조사랑 사전 인터뷰 일정 잡아. 그리고 안무 영상 달라고 하고, 아직 없다고 하면 당장 찍어서 늦어도 내일 오전 중에는 내가 확인할 수 있게 보내라고 해. 전 작가는 1위 후보들 스케쥴 체크해서 출연 여부 확인 하는거 어떻게 됐어?"

"한 팀은 출연하는거 진작에 확정했고, 다른 한 팀은 원래 저번주 까지만 음방 돌고 국내 활동 마칠 계획이여서 해외 스케쥴이랑  겹치긴 했는데, 이번  1위가 유력하다보니 비행기 시간 늦추고 생방 나오겠데요"

"사녹(사전녹화) 잡아 달라고 안하고 생방 나온다니 잘됐네. 그럼 오늘 회의는 여기서 끝내지"

탑뮤직 책임피디인 김중현이 회의를 끝내자 회의실에 모여있던 연출, 작가등 탑뮤직  스탶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나선다.

탑뮤직 팀의 회의에서는 지금 활동 중인 인기 아이돌들의 출연여부를 확인하고, 출연을 애타게 희망하는 신인들, 무명 아이돌들 중 누구를 출연시킬지를 결정한다.
케이블 인기 없는 음방 같으면 인기 아이돌을 출연시키는데 조금 힘이 들기도 하지만, 탑뮤직은 공중파인만큼 수월한 편이다.

나름 규모 있는 기획사 신인의 데뷔 혹은 인기 아이돌의 컴백 첫 무대가 예정되어 있으면 방송에서 소개할 자료화면과 엠씨들 대본작성을 위한 사전조사를 해야 하고, 카메라 감독과 엔지니어, 조명, 연출 등이 방송에서 화면을 어떻게 만들지 구상하기 위해 미리 안무영상 혹은 기획사 자체적으로 찍은 리허설 영상을 받아놔야 한다.

아무리 인터넷 스트리밍이 강세인 시대라고 하지만 여전히 방송에서 화면 한번 더 잡히고, 언급 한번 더 되는건 모두 큰 홍보가 되기에 기획사 측은 방송국에서 요청만 하면 매우 협조적인 태도로 각종 영상과 자료들을 보내준다.

회의를 마친 전시연은 공나민과 함께 자판기 앞을 찾았다.
가볍게 휴식을 하고 목을 축이기 위해서였다.

평소 같으면 회의가 끝나마자 눈치를 보며 자리로 달려가 전화기를 붙들거나, 메인작가에게 넘겨 주기 위한 자료 조사를 시작해야겠지만, 그날 이후 김중현이 잔소리가 확연히 줄어들었기에 탑뮤직 팀 스탶들의 분위기도 조금 느슨해지고 전에 없던 여유가 생겼다.
또한 전시연과 공나민에게는 허영애라는 든든한 빽이 생겼기에 더욱 마음이 편한 상태다.

그녀들은 오렌지 쥬스와 홍차 음료를 각자 손에 들고는 적당히 쉴 곳을 찾아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공나민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언니, 혹시 신 사장님이나 사모님하고 연락해 보셨어요?"

"아니. 연락 할 일이 뭐가 있겠어."

"신 사장님이 언니한테 이력서 내보라고 그랬다면서요. 사모님이 언니 신경 써준다고 해도 방송국 일  할거라고 했으니 그럴거면 빨리 연락하는게 낫지 않아요?"

"너 같으면 연락할  있겠어?"

전시연의 한마디에 공나민이 말이 없어졌다.
전시연이 당장 연락을 주저하는건 말 꺼내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이력서 보내기 부끄럽다 같은 이유 때문이 아니다.
그녀들은 몰랐으면 좋았을 사실을 알고 있기에, 신재윤, 허영애와 연락하기가 껄끄러웠다.

".....그것도 그렇네요"

공나민이 작게 고개를 끄떡인다.
신재윤과 허영애는 모르지만, 그녀들은 그들의 관계를 알고 있다.
그런 장면을 목격했으니, 용무가 있다해도 연락하기가 조금 망설여진다.

"김피디님은 아시려나 모르시려나...."

"김피디가 아는지 모르는지는 중요한게 아냐. 우리가 중요하지. 우리는 모른척, 아니 모르는거야. 혹시나 누가 물어본다 해도 무조건 모르는거야. 알았지?"

"네"

이런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을 수록 좋다.
그리고 되도록 신경쓰지 않는게 좋다.
특히 밖에서 둘만 있는 자리라면 몰라도 지금처럼 방송국에서 말을 꺼내는 것은 삼가해야 한다.

공나민에게 주의를 준 전시연은 음료수를 마시며 3일 전 그날 밤 호텔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잠들어 있던 전시연의 귓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침대가 삐그덕 거리는 소리, 누군가 사람을 때리기라도 하는지 살결이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이상한건 울음인지 신음인지 구분 안가는 목소리였다.

처음에는 꿈인 줄 알고 계속 잠을 청 했지만, 점점 더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가 커졌다.
결국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전시연은  앞의 광경을보자 순식간에 잠이 달아나고 심장이 멎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옆 침대에서 김중현의 부인인 허영애 위에 신재윤이 올라가 있었다.
둘은 서로의 몸을 감싸고는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목까지 이불을 덮고 있긴 했지만, 이불이 움직이는 모양과 허영애에게서 흘러나오는 신음소리에서 그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미쳤어. 미쳤어.'

눈앞에 펼처진 광경에 너무도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계속 보고 있을 수도 없어, 일단은 다시 두 눈을 감았다.

'어떻게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이 저럴 수 있어. 더군다나 나랑 나민이가 한 방에 있는데!'

멎는  알았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허영애가 유부녀지만 이혼한다고 했으니 신재윤과 저러는걸 억지로 이해한다고 쳐도, 자신과 공나민이 바로 옆에 있는데 저러는게 이해가 안된다.

벌떡 일어나서 무슨 짓이냐고 소리를 질러야 할지, 아니면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며 너무 시끄러우니 좀 조용히 해달라고 말해야 할지 등 여러 상황이 머릿속을 지나갔지만, 그 어떤 결정도 쉽게 내릴 수가 없었다.

다시 자려고 해도, 이미 잠이 다 달아나기도 했고, 저들의 소리 때문에 도저히 잠이 들 수가 없었다.
전시연이 옆에 있는 공나민이 깰까봐 걱정될 정도로 두 사람은 마치 이 방에 둘만 있는 것처럼 섹스를 했다.

가끔씩 몰래 눈을 떠보아도,  사람은 이쪽을 신경도 안쓰고 자기들만의 시간을 즐기는데 여념이 없었다.

손으로 귀를 막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자기가 일어난 것을 들킬까봐 그럴 수도 없었다.
자다가 뒤척이는 척하며 반대쪽으로 몸을 돌릴까 했지만, 얼마간의 고민 끝에 어차피  들리는거 눈으로 상황을 확인해야 덜 답답할거 같아 계속 그들을 향하며 자는 척을 했다.

전시연은 이런 일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순진한 처녀가 아니다.
남자친구도 몇번 사귀었었고, 성 경험도 그녀 나이대 다른 사람들 만큼 있다.

그러기에 조금만 참으면 저들의 섹스가 끝나고 조용해질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기대는 완전히 무너졌다.

'신재윤 저 사람 정말 인간 맞아?  끝나지를 않는거야!"

전시연이 잠에서 깨고 허영애가 절정에 오른게 벌써 두 번이다.
그런데도 신재윤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허영애를 놓아주지 않았다.
아니 허영애가 놓아주지 않았는지, 신재윤이 놓아주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두 사람의 섹스는 끝나지 않았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섹스가 계속해서 이어지자 차라리 들키는게 좋을 같다는 생각에 한동안 눈을 뜨고 쳐다 보았으나 둘만의 세계에 푹 빠져버린 신재윤과 허영애는 이쪽을 전혀 신경도 안썼다.
그럼에도 이불은 꼭 목까지 덮고 있으니 나중에는 짜증이 났다

'저럴거면 이불 걷고 좀 하지. 그럼 볼거라도 많잖아.'

이런저런 소리는 다 내면서, 막상 자기들 몸은 얼굴만 내놓고 다 가리고 있으니 보는 입장에서는 답답했다.
저들은 체위도 안 바꾸고 저 자세 하나로만 계속하고 있다.
가끔씩 이불이 흘러내려 신재윤의 등과 허영애의 상체라인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그럴 때면 곧장 다시 이불을 끌어올려 몸을 가렸다.

끝없이 계속될 것만 같던 섹스는 허영애가  하다가는 정말 죽을거 같다고 손사래를 치고서야 끝이 났다.

한동안 대놓고 구경하던 전시연도 그제서야 눈을 감고는 다시 자는 척을 했다.
지금껏 안 들키고 자는  했는데,  끝난 지금에 와서 들키기엔 왠지 아까운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눈을 감은 전시연의 귓가에 기진맥진한 허영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아...자기..정말...하아..너무 대단해. 나 처음으로 여자로 태어난게 행복하다고 생각했어. 이런 경험했으니  이제 자기 없이 못살아"

'난 몰래보고 듣기만 했는데도 영애 언니 마음을 알거 같아. 몇번이나 가버렸으니 언니가 저럴만 해.'

전시연이 마음 속으로 조용히 영애에게 동의하는 동안 기운을 차린 영애와 재윤이 몸을 일으켜 씻으러 가는 소리가 들렸다.

욕실 문이 닫히고 희미한 물소리가 들려와 전시연이 막 눈을 뜨려는 순간  뒤에서 공나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아.. 가슴 떨려 죽는  알았네"

전시연은 깨달았다.
지금껏 공나민도 자신 처럼 자는 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신재윤과 허영애에게 집중하느라 그녀도 옆에 공나민이 있다는 사실을 잠시 까먹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나민아"

전시연은 천천히 몸을 돌려 공나민을 작은 목소리로 부르자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숨을 고르고 있던 공나민이 깜짝 놀라며 전시연을 바라보았다.

"언니!"

"넌 언제 일어난거야?"

"한참 됐어요. 언니는요?"

"나도"

신재윤과 허영애가 씻는 동안 두 사람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충 얘기를 해보니 공나민은 전시연보다 일찍 일어난거 같았다.

공나민도 전시연처럼 소리 때문에 깼다고 했다.
처음에는 알 수 없는 소리보다 낯선 곳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자신이 옷을  입고 있었고, 옆에는 전시연이 있는걸 보고 걱정했던 일은 없었던거 같아 안심 했다고 한다.
안심한 것도 잠시, 고개를 돌려 옆 침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고는 너무 놀라 소리 지를 뻔했다고 했다.

"대체 저 여자 누구에요?"

"김중현 피디 부인"

"네?"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인 공나민이 깜짝 놀라며 스스로 입을 막는다.
전시연은 모습을 보고 소리를 죽이기 위해 자기 입을 가리던 허영애의 모습이 떠올랐다.

신재윤과 같이 밤을 보낸 여자의 정체는 공나민에게 충격적이었다.
허영애와 몇번 전화통화를 한 적은 있었지만, 얼굴을 본건 지금이 처음이다.

전시연은 공나민이 술이 취해 잠든 동안 있었던 일을 차분히 설명을 해주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녀들과 신재윤 입장에서 모든게 생각대로 잘 풀렸다는 거지만,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불편한 입장이 되버린 그녀들이었다.

혼자 가슴 졸이던 공나민과 전시연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혼자만 알고 끙끙 앓는 것보다 둘이서 얘기라도 하면 마음이 훨씬 편해지기 때문이다.

전시연과 공나민이 많은 얘기를 나누기도 전에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들은 약속이나 한 것 처럼 동시에 눈을 감으며 다시 자는 척을 했다.

귓가에 전시연과 공나민이 이런 상황에서 한번도 안 깨고 잘도 잔다는 신재윤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전시연은 당장 일어나 "자긴뭘 자요. 한숨도 못 잤어요"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 전시연과 공나민은 신재윤이 이제 방에서 나가야 한다며 깨울  까지 계속 자는 척을 했다.


잠시 말 없이 음료수를 마시고 다시 공나민이 물었다.

"언니 그러면 BICA ENT.는 안 갈거에요?"

"모르겠어. 그쪽에서도 무조건 받아준다고 한 것도 아니니, 일단은 이것저것  알아보고 결정하려고"

전시연이 겉으로는 방송국 나가면 할 일이 없겠냐며 자신만만하게 말하고 있지만, 막상 나가서 다른 일을 찾으려니 불안한게 사실이다.
선후배 동료 중에 작가 생활 관두고 노는 사람들 한 둘을 본게 아니다.
어떤 사람은 힘들었어도 방송국에서 일할 때가 좋았다며 절대 나오지 말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비록 지금 일은 없지만, 방송국을 나온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 사장과 잘 아는 사이가 된 BICA ENT,의 제의는 솔깃하다.
또한 신재윤이 제의한 일이 작가라기 보다 사실상 피디 혹은 크리에이터에 가까운 일이란 것도 마음에 든다.

문제는 딱 하나. 신재윤의 얼굴을 다시 보는 것이다.
그날 이후 밤에 잠들 때면 그들의 모습이 떠올라 얼굴이 빨개지고 가슴이 빨리 뛴다.
아직까지 그들을 회상하며 자위같은걸  적은 없지만, 일찍 잠들지 못하고 있는게 사실이다.
다른 사람들의 섹스를 라이브로 봤으니 그럴만도 하다.

'영애언니가 여자로 태어나서 행복하다고 하고 당장 그 날부터 같이 살고 싶다고 할 정도였지. 대체 얼마나 좋았으면 그랬을까. '

전시연도 성겸험은 있지만, 영애만큼 좋아했던 적은 한번도 없었기에 신재윤과의 섹스가 어떤 느낌일지 상상조차 안된다.
신재윤의 목소리를 듣거나 얼굴을 본다면, 계속 그날 보았던 장면만 떠오를거 같아 망설여진다.
지금도 그를 생각한 것만으로도 조금 두근거린다.

'또 두근거리네. 마지막으로 남자친구 있던게 2년이 넘어서 내가 남자가 그리운건가? 아니며 내가 원래 성욕이 강했었나? 아...나도 이제 나를 모르겠어.'

혼란스러운 마음에 슬쩍 공나민을 보니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거 같았다.
오히려 아무 생각도 없는지 허공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
전시연은 공나민이 아직 경험이 없으니 저럴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민이는  같은 고민은 없는거 같아 부럽네. 모르는게 약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얘를 보니 알거 같아'

"후우....."

모든게 잘 풀려 신경  일이 많이 줄었지만, 어쩐지 그 날 이후로 이상하게 한숨이 많아진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여기 소개할게요. 오늘부터 우리 회사에서 피트니스 강사로 일하시게 된 허영애씨입니다. 앞으로 필라테스, 요가를 가르쳐 주실거고, 올바른 헬스 기구 사용법과 여자에게 알맞은 운동, 몸매 관리에 대해 잘 알고 계시니 앞으로 여러분이 궁금한게 있으면 이  한테 물어보면 되요.

"안녕하세요. 허영애에요. 잘 부탁 드려요"

나는 허영애와 함께 연습실을돌아다니며 리드레아와 새별너울 애들에게 그녀를 소개했다.

지금 10년간 영애는 운동과 관리, 그리고 여행을 주로 하며 살았다.
열심히 운동을  결과 지금같은 외모와 몸매는 물론, 필라테스와 요가 강사자격증까지 가지고 있었다.

운동 가르쳐 주던 강사들의 권유로 따놓았던 것인데, 그것을 알게 된 내가 우리 회사에 애들 운동을 가르쳐주는 강사로 일할 것을 제의했고, 그녀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바로 승낙했다.

3층 체력단련실을 좀  활용하고, 새별너울 애들의 체형관리를 위해 요가 혹은 필라테스 강사를 구하는 중이었는데, 그녀에게나 나에게나 정말 잘된 일이다.

나는 각 연습실을 돌며 리드레아와 새별너울에게 그녀를 소개하고는 앞으로 그녀가 사용할 사무실로 안내했다.

출장 강사가 아닌 우리 회사에 직접 고용된 강사라 책상을 제공하는건 당연한 일이었기에 주는 김에 조금 더 인심써서 개인사무실을 제공했다.
어차피 공간에 비해 직원수가 적어 남아도는게 사무실이다.

그녀는 운동강사 및 3층 체력단련실의 관리 책임자를 맡으며 소속 여자 연예인들의 체중, 체형관리에 도움을 줄 예정이다.

영애는 사무실에 들어서자 기분이좋은지 책상을 만져보고, 책상 위에 놓여져 있는 노트북도 괜히 열었다 내렸다 해보았다.

기분좋게 사무실을 둘러 본 뒤, 책상에 기대어 앉은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회사 좋다. 인테리어도 이쁘고, 시설도 깨끗하고  새거야. 마음에 들어"

"아무래도 신생회사니까"

"나한테 이런 기회를 줘서 고마워. 우리 엄마랑 아빠도 나 일 한다고 하니까 드디어 철드는 거냐고 엄청 좋아해. 나 태어나서 일하는거 처음이거든"

나이 34살에 처음 일하는거라니. 정말 곱게 자라긴 곱게 자랐나보다.
그녀의 부모님도 기뻐한다니 다행이긴 하다.

"아참. 자기 여자친구라는 김지연 팀장. 나랑 4살 차이라는거 진짜야? 아까 보고 너무 어려보여서 정말 깜짝 놀랐어. 나도 어디가면 동안소리, 아가씨 소리 듣는데, 거기는 아가씨가 아니라 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야. 그리고 연예인도 아니고 팀장이  그렇게 이뻐.  처음에 회사 연예인인줄 알았잖아"

당연히 내가 여기에 영애를 아무말도 안하고 데려왔을리 없다.
리드레아 5명까지는  못했지만, 누나는 내 여자친구라고 미리 얘기를 해두었고, 누나와 애들도 당연히 영애에 대해 알고 있다.

처음 영애에 대해 말했을 때 누나의 반응은,

"그래? 알았어.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고 그거보다 빨리 리드레아 애들 박아줘. 기껏 처녀개통해놓고 다음날부터 없어져서 애들 화났다고. 다들 입 가슴 보지에 한번씩 다 싸게 할거라고 벼르고 있어"

 여자에게 여자친구를 소개하고, 여자친구에게 새 여자를 소개하는데 당사자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이상한 상황이지만, 애초에  주변에서 일반적인 세상 상식이라는걸 포기한지 오래다.
당장 나부터도 여자들이 화낼거라 예상하지도 않았다.

"영애가 다른데가서 그런 말하면 욕먹을 걸. 아까 나이사님이나 다른 직원들이 뭐랬는지 알아? 우리 회사 이제 아이돌만 하는게 아니라 배우 소속사도 하는거냐고 그랬어. 피트니스 강사라고 하니까 다들 깜짝 놀랐다고."

"나도 내가 이쁜 줄 줄 알았는데 진짜 연예인 앞에 서니까 자신이 없어졌어. 레몬로즈, 아니 이제부터는 리드레아랬지. 리드레아 멤버들 너무 예쁘더라. 티비에서 보던 것과 완전히 달라. 자기 여자친구도 장난 아니고. 내가 아무리 나이에 비해 젊어보인다 해도 진짜 어린애들 한테는 역시 안돼"

많은걸 가진 사람이라해도 가진거보다 부족한게  크게 느껴지나보다.
리드레아와 누나도 영애의 외모, 특히 몸매를 보고 깜짝 놀랐고, 나이를 듣고는 믿을 수가 없다고 했다.
특히 한때 베이글을 열망했던 니키는 영애를 향해 선망의 눈빛을 보낼 정도였다.
아마 지금쯤 니키는 롤모델을 만났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영애도 리드레아와 누나를 보고는 자신감을 없어졌단다.

남들이 본다면 이쁜 것들끼리 저러고 있다고 짜증낼 수도 있겠지만, 본인들은 진지하다는게 포인트다.

"한 남자의 여자들이라는 어색한 상황이지만, 이제 자주 얼굴 볼 사이니 친하게 잘 지내야겠지. 김지연 팀장도 나랑같은 생각인지 이따 같이 점심먹고 운동하자고 하더라고."

영애의 말에 누나가 벌써부터 행동에 들어갔다는걸 알게 됐다.
영애는 누나가 말하는 점심먹고 하는 운동이 일반적인 운동이 아니란걸 아직 모른다.

첫날부터 조금 급한게 아닌가 싶지만, 어쨌든 누나 방식이라면내가 걱정할거 없이 금방 친하게 지낼거다.
그럴거라고 믿는 게 속편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