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111화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E-PACT는 연예기사 전문 인터넷신문사다.
거창하게 언론사라고는 하지만, 많은 영세 인터넷 언론사들이 그러하듯, 인터넷 커뮤니티나 다른 기사들 짜깁기하여 기사를 올려 클릭수를 유도한 뒤, 광고 수입으로 회사를 유지한다.
규모가 작고 인지도도 없지만 명색의 언론사이기에 발로 뛰는 취재도 한다.
그러나 까놓고 말해 독자의 클릭을 유도하는건 자극적인 제목이지 양질의 기사가 아니기에, 들이는 시간과 비용에 비해 그다지 효율이 좋지 않은 취재는 가능한 삼가하고 있다.
특히나 요즘같이 추위가 기승을 부릴 때는 더욱 그렇다.
추운 날 밖에 나가 고생하면 뭐하나, 앉아서 대충 짜깁기만 해도 충분한데.
인터넷 연예언론사 E-PACT의 대표 겸 편집장 변석환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자사 기사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포털 사이트에 키워드를 넣고 검색한 뒤 검색 결과 중 뉴스란을 살펴본다.
수많은 언론사의 기사가 주르륵 나열되지만, E-PACT의 기사는 보이지 않았다.
몇 페이지 뒤로 넘긴 뒤에야 비로소 E-PACT의 기사가 보였다.
변석환은 건너편 책상에서 등을 보이며 앉아 있는 김준용에게 소리쳤다.
“김준용, 너 몇 년 차인데 아직도 이거 밖에 안 되냐? 기사 노출이 안되잖아. 좀 더 제대로 써봐.”
앉아서 열심히 타이핑을 하고 있던 김준용이 뒤돌아 변석환을 보았다.
“편집장님 또 그러시네. 저희 같은 영세업체는 노출 안 되는거 아시잖아요. 노출 순서는 포털사이트에서 정하는건데 제가 할 수 있는게 뭐가 있겠어요.”
“얌마, 사이드뷰 이 대표가 신입 하나 똘똘한 놈이 들어와서 조회수 엄청 빨아 먹는다고 나한테 자랑하더라, 사이드뷰나 우리나 비슷한 처지인데 거기는 되고, 왜 우리는 안되는건데?”
“사이드뷰처럼 저도 막나가도 되요? 허락만 하시면 지금 당장이라도 누구에게 무슨 의혹, 어디서 무슨 논란 이런거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데.”
변석환이 사이드뷰나 E-PACT나 비슷한 신세라고 했지만, 사실은 전혀 비슷하지 않다.
사이드뷰 이 대표와 변석환은 같이 신문사에서 일하던 기자동료로, 두명 모두 퇴사하고 각자가 인터넷 언론을 차렸다.
정확히는 변석환이 먼저 퇴사하고 E-PACT를 차렸고, 그걸 보고 이 대표가 사이드뷰를 차린 것이다.
E-PACT 변석환은전직기자 자존심으로, 비록 이름없는 영세 인터넷신문이지만 남들 다 하듯 자극적인 제목으로 관심는 끌되, 가짜뉴스와 카더라는 최대한 보도를 자제하는 편이지만,사이드뷰는 비공식 모토가 어그로와 관종이라고 할 만큼, 클릭만 유도할 수 있다면, 그 어떤 기사도 서슴치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 결과 E-PACT는 여전히 이름 없는 그저 그런 인터넷신문 중 하나일 뿐이고, 사이드뷰는 인터넷커뮤에서 어그로, 관심종자, 유사언론으로유명세를 떨치게 되면서 광고수입이 급격히 늘어나 회사가 커지고 있다.
“누가 사이드뷰처럼 막 나가래? 효석이 걔 작곡가 대담기사 봐. 그거 올라간지 2시간 밖에 안됐는데, 조회수 잘 나오잖아. 그런거 써보라고.”
“그건 요즘 제일 잘나가는 리드레아 대리프로듀싱 의혹을 써놨으니 그렇죠. 그런데 걔 그거 확실하긴 하데요? 만약 가짜뉴스면 뒷감당하기 힘들텐데.”
“단독보도나 의혹제기도 아니고, 작곡가랑 대담기사잖아. 설마 작곡가가 자기 이름걸고 기사나가는데 구라쳤을까.”
“그렇죠?”
오늘 아침 2년차 기자 박효석이 모처럼 기자다운기사를 가져와 게재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수록곡 작곡가 인터뷰를 할 생각을했냐며 신기해 했지만, 박효석은 취재원과 쏘스가 비밀인건 기자들 상식 아니냐며 많은걸 알려 하지 말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변석환은 제대로 된 기사이면서 나름 특종을 가져온 박효석이 기특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찝찝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의 오랜 기자생활 경험상 이런 건 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정말 엄청난 특종이던지, 엄청난 골칫덩이가 되던지.
어제 술자리를 가진 사이드뷰 이대표가 요즘 조회수가 너무 잘 나와 서버를 늘려야겠다고 자랑하는 바람에 욱하고 올리긴 했지만, 박효석에게 좀 더 꼬치꼬치 캐묻지 못한게 내심 마음에 걸렸다.
아까 기사가 올라가기 무섭게 BICA ENT.의 나주용이란 사람에게 전화가 와 사실이 아니라면 정정보도를 요청했다.
보통의 기획사라면 언론과 척을 지기 싫어하기에 “기자님”이라며 좋게좋게 말하지만, 나주용은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변석환은 기사작성도 못하고 괜시리 검색만 하고있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BICA ENT. 사장 신재윤입니다."
“예...저는 E-PACT의 대표이자 편집장을 맡고있는 변석환입니다.”
BICA의 나주용이란 사람이 전화했을 때부터 찝찝하긴 했지만 이렇게 BICA 사장이 바로 회사를 찾아올 줄은 몰랐다.
사무실에 기사의 대상이 찾아오는건 절대 흔한 일이 아니다.
그만큼 상대가 단단히 따지기로 마음먹었다는 뜻이다.
사장치고는 꽤 어려보이는 이 남자는, 40대로 보이는 남자 한명과 같이 사무실을 찾았다.
"사장님이 여기 어쩐 일로.....?“
"그냥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변석환은 신재윤이 자기소개를 마치자마자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예감이 들었지만, 사무실로 쳐들어온 당사자는 화를 내지도, 따지지도 않고 여유롭게 사무실을 둘러보거나, 마주치는 사람마다 자기소개를 하고 인사를 하고 있었다.
기사만 아니였다면, 말처럼 정말 인사나 하러 온 걸로 알았을 것이다.
변석환은 어쨌든 손님이기에 신재윤과 일행을 테이블에 앉힌 후 커피를 대접하였다.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커피를 맛본 재윤은 커피잔을 내려놓고는 담담한 눈빛으로 변석환을 바라보며 말했다.
"기사 봤습니다.“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쳤다.
‘슬슬 시작이구나’
초반 기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해 변석환 또한 감정의 동요를 나타내지 않고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며 말했다.
"안 그래도 그쪽 나주용이란 분한테 연락 받았습니다. 정정보도를 요청하셨죠?"
"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저희는 기자들의 독립성, 자주성을 존중하며, 데스크에서 그 어떤 간섭도 하지 않습니다."
변석환은 한 언론사의 대표이자 편집장으로서 당당하게 그에게 답했다.
아무리 클릭수와 광고에 의지해 겨우 먹고 사는 영세 인터넷 언론이라고 해도, 나름 언론사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변석환이다.
그렇기에 사이드뷰처럼 가짜뉴스, 낚시, 어그로 기사를 쓰지 않기 위해 애써왔다.
"역시 훌륭하십니다. 한 언론사의 대표이자 편집장을 맡을만한 분 이란걸 알게되서 정말 안심입니다.“
신재윤은 변석환의 답변이 마음에 들었는지 입가에 미소까지 지은채 고개를 끄떡인다.
그러나, 그로서도 기사는 이대로 물러설 수 없는 중요한 문제,
"하지만 이 기사는 확실히 오보입니다. 이걸 정정하지 않고 이대로 놔둔다며 저희 손해가 막심할 겁니다."
"오보라는 증거가 있으십니까?"
변석환이 오보의 증거를 묻자, 신재윤은 옆에 앉아있는 이에게 하나의 서류를 받아 변석환에게 건내며 말했다.
"리드레아의 향후 6개월간의 예상 수입과 그동안의 투자금입니다. 예상 수입의 근거는 지난 3주간 음반판매량, 음원수익, 계약 체결된 행사, 현재 계약논의 중인 행사 및 광고들입니다.“
"이걸 왜.......?"
"대한민국 국민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방법은 하나죠. 고소하려고 합니다.“
‘씨발’
변석환은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사이드뷰는 그렇게 어그로를 끌어도 이런 일이 한번도 없었는데 왜 우리는 바로 이런일이 생기는걸까 하는 원망이 들었다.
투자금에 예상수입이 합쳐지니 대충 살펴봐도 10억이 넘는다.
10억. 그런 돈 있었으면 내가 이렇게 인터넷 신문사 같은거 안하고 그냥 마누라랑 편하게 여행이나 하면서 살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변석환은 당황하지는 않았다.
이런 일을 법정으로 끌고가면 비용도, 시간도 오래 걸리고, 설령 신재윤이 이긴다해도, 배상금액도 그렇게 많지 않다.
참고로 우리나라 판례에서 기사로 인한 손해배상 판결 최고액은 4억정도이다.
변석환은 이런 엄청난 일을 별일 아니라는 듯 시종일관 여유로운 태도로 말하는 신재윤 때문에 배알이 꼬였지만, 자기도 나름 언론사의 대표이자 편집장으로서 동요하는 모습을 보일 수 없어 똑같이 여유로운 척을 계속했다.
"오늘 찾아온 이유가 기사 안내리면 저희 회사를 고소하겠다는 말씀을 하려 오신겁니까?"
"하하하, 아닙니다. 제가 성격이 급해서, 앞뒤를 다 짜르고 말했네요.“
신재윤은 의자에 기대어 있던 자세를 고쳐잡고 두손을 테이블 위에 올려 깍지 끼고는, 여전히 웃는 모습을 보이며 말했다.
"전 여기 E-PACT에 아무런 원한도, 감정도 없습니다. 방금 편집장님이 기자들 개개인의 독립성을 존중하신다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편집장님이 하신 말씀은, 이 기사는 박효석씨 개인의 행위일 뿐이라는걸 확인 해주신거라 안심했습니다. 변호사님도 들으셨죠?"
"네 방금 똑똑히 들었습니다."
‘같이 온 사람이 BICA 직원인줄 알았더니 변호사였구나.!’
변석환은 신재윤이 여기 따지러 온 것이 아니라 이미 모든 결정을 끝내고 통보하러 온 것이란걸 깨달았다.
대담기사가 올라간지 2시간 밖에 안됐다.
2시간 동안 BICA는 딱 전화 한통만 항의를 한 뒤, 고소할 준비를 하고 변호사까지 대동하고 회사로 찾아왔다.
변석환은 박효석이 사람 잘못 건들였다는걸 직감했다.
신재윤은 여전히 어떤 감정의 동요도 보이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오보를 한 박효석씨 1명에게만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할 겁니다. 당연히 여기 E-PACT는 아무런 잘못도, 연관도 없으니 빠지실거라 믿습니다."
"우리 회사 기자인데..."
"그럼 E-PACT도 책임이 있으시다는 건가요?“
회사의 대표이자 사주로서 E-PACT가 아닌 박효석 한명만 고소하겠다는건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그래도 박효석은 미우나 고우나 회사의 직원이다.
소송에서 회사를 빼준다고 마냥 좋아하기에는 체면이 상한다.
변석환은 신재윤에게 너무 끌려다니는거 같아 분위기 전환을 위해 슬쩍 말을 돌렸다.
"오보라는걸 확정하고 말씀하시는거 같아 기분이 나쁘군요.“
그러자 신재윤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조금 전에 증거에 대해 물으셨죠? 당연히 증거가 있습니다. 30분 내로 리드레아 마이튜브 공식 채널에 새 영상이 하나 올라갈 겁니다. 앨범녹음 당시 비하인드 영상이지요. 저희 미디어 팀이 지금 열심히 편집하고 있습니다. 혹시 원본이 궁금하시면 조금만 참으시면 됩니다. 원본은 법원에 증거로 제출할거거든요."
"여...영상이 있다구요?"
"아이돌은 회사차원에서 자체 컨텐츠 제작을 위해 언제 어디서든 항상 카메라 대동해서 찍는 일이 매우 많습니다. 녹음도 마찬가지에요."
‘이 사람. 증거가 다 있으니, 이렇게 자신만만했구나.’
어쩐지 분명 기사에 대해 항의하러 왔을 텐데 왜 계속 여유만만인가 했다.
이미 증거까지 다 가지고 있으니, 서두를 이유가 없었던거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E-PACT도 책임이 있으시다는 건가요? 아니면, 박효석씨 개인의 잘못인가요?“
변석환은 걸려도 더럽게 걸렸다는걸 깨달았다.
신재윤은 박효석 한명만 조질 테니 E-PACT는 끼지 말라며, 빠져나갈 구멍을 알려주고 어서 여기로 나가라고 유혹하고 있다.
여기서 넙죽 제안을 받아들이기에는 다른 직원들의 사기도 걸려있고, 대표로서의 체면과 위신이 걸려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반격을 시도했다.
"일을 크게 벌려서 이슈가 되면 그만큼 손해도 더 크실텐데요?“
BICA ENT.의 리드레아는 지금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새해 첫 스타로서 모든 관심을 받고 있는 중이다.
변석환은 이 일이 커지면 리드레아의 인기행진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될 거라 위협한 것이다.
나름 회심의 일격이었지만, 신재윤은 천천히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편집장님께서는 잘못 생각하시고 계시네요. 일을 벌일거면 세상 사람들 다 알게아주 크게 벌려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제 결백이 증명되면, 전 프로듀싱 능력을 모두에게 인정받게 되죠. 그렇게만 된다면 리드레아 2집은 아마 1집 이상으로 대박날겁니다.“
변석환은 신재윤이 미친놈이라는걸 확신했다.
정말 망한 기획사들은 마지막 방법으로 큰 이슈를 터트려 관심을 모으려고 한다.
반대로 순풍에 돛 단 듯 잘나가는 회사는 최대한 잡음을 줄이기 위해 애쓴다.
오죽하면 악플러 고소조차도 잘 안할 정도다.
그런데 신재윤은 쉬쉬해도 모자를 일을 오히려 더 크게 벌이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다.
변석환이 속으로 경악하는 동안 신재윤은 말을 이었다.
"재판에 가서 제가 질 수도 있고, 이긴다 해도 손해배상 판결 액수가 어처구니없이 미미할 수도 있어요. 그럼 다른 무언갈 찾아서 다시 고소할겁니다. 그 방법은 여기 변호사님이 전문가이시니 알아서 하실거에요. 그렇게 계속 소송을 해서 5년, 10년, 시간이 얼마나 걸리고, 회사가 망해서 문을 닫는다 해도 상관없어요. 기자분들이면 잘 아시잖아요. 저 연예계 경험 하나없이 수십억짜리 회사 세운거. 닫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어차피 회사 문 닫아도 저 먹고 사는데는 아무 문제 없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 돈보다 자존심이 더 중요한데, 거짓말쟁이, 사기꾼이 되는 건 정말 참을 수 없거든요."
"지...지금 저희회사를, 언론을 협박하시는건가요?“
변석환은 코너에 몰리자 최후의 수단, 그리고 가장 강력한 무기인 언론방패를 내세웠지만, 신재윤은 여전히 여유로웠다.
"아니요. 오해가 있으셨나 봅니다. 본의 아니게 E-PACT가 이 일에 관련이 되셨으니, 도의적으로 편집장님께도 알려드리는 것 뿐이고,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전 박효석씨 딱 한명만 고소할 생각입니다. 여기 E-PACT사에는 단 하나의 피해도가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하겠습니다.“
변석환은 시종일관 여유롭고 예의바른 태도로 미소짓고 있는 이 젊은 사장이 진심으로 무섭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