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117화 이게 통했다
"여보세요"
"야이 개새꺄!"
전화를 받자마자 욕이 날아들었다.
나는 화가 나기보다 황당하고 궁금했다.
전에도 말했지만 이 인간 나쁜 사람은아니다.
아니 오히려 사람은 좋은 편이다. 경우없는 사람이 아님에도 뜬금없이 나에게 전화해 욕을 했다.
뭔가 이유가 있다는거지
대체 무슨일이지?
"뭔데 대체?"
"기사 봤다 예전에 나온 BICA ENT. 신재윤 사장 기사. 이런 엄청난 사실을 니가나한테 영원히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냐!"
젠장! 나도 까먹고 있었다.
리드레아 재데뷔 전에 취재하는데에 따라 갔다가 내 기사가 난 적이 있었다.
민망하기도 했고 별 반응도 없어서 나도 잊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사가 있었는데 이렇게 늦게 알아낸게 신기할 정도다.
하루 종일 연예기사만 들여다보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건 아닌가 보다.
이 인간에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가는 한도 끝도 없이 계속 끌려다닐 수가 있기에 일단 나는 한껏 여유로운 척을 했다.
"후후 이제야 알았냐. 너 생각보다 많이 늦다?"
"리드레아 기사 폭발하는 바람에 검색 저 뒤에 밀려 있던거 이제야 봤다. 내가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너 기다려. 내가 당장 쳐들어간다"
이유불문 저 인간이 회사로 오는건 막아야 한다.
어쩌지? 잠시 머리를 굴리던 나는 저 인간이 온갖 스케쥴을 따라다녀도 팬싸는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렇다면 난 세미를 회사 로비데스크에 세워놓겠어. 그러면 넌 문 건너편에서 쳐다만 보고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겠지. 가까이서 보면 올인할까봐 팬싸도 안간다는 놈이니까"
"이..이..이놈이내 약점을..."
설마했는데 정말 이걸로 부들부들한다.
대충 아무말이나 해놓고 더 궁리해볼 생각이었는데 이게 통했다.
이 인간 아이돌이 얽히면 진짜 제정신이 아니구나.
"내가 안되면 내 여자친구를 대신 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나의 성에 침입하려는 버서커의 약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돌 그 자체이다.
저 인간의 여자친구도 마찬가지로 아이돌팬, 그것도 리드레아의 팬이다.
"여자친구가 티나 팬이라고 그랬지? 티나한테 회사근처 카페에 모시고 가서 커피 한잔 대접하라고 하지 뭐. 커피한잔 마시며 너랑 헤어지는걸 권유하라고 시킬까?"
"이 사악한 새끼 군대 있을 때 내기 한번도 안 져주고 악착같이 뜯어먹을 때부터 알아봤지만, 상상이상으로 사악한 새끼였어"
"나도 모른척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어. 조건을 말해. 협상을 하자"
이 인간을 분노케 하는건 여기까지만 하고 달래기에 들어갔다.
성격 좋은 놈이라지만 이성을 잃으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적으로 만들면 나만 피곤하다.
잠시 고민하는 듯 아무런 말이 없다가 이내 마음을 정했는지 하나둘 조건을 말하기 시작했다
"첫째 리드레아를 비롯한 모든 BICA ENT. 소속 걸그룹들의 모든 쇼케이스, 팬미팅, 콘서트표 2장 제공. 공짜로 달라는거 아냐. 돈 낼테니까 자리만 보장해줘. 둘째, 활동 중 내가 원할 때 최대 3회 사전녹화 방청석에 넣어주기. 나도 바쁜 사람이라 어차피 그 이상은 가지도 못하고, TO 몇 명 없는 본방에 빽으로 넣어 달라고 할 만큼 양심 없지도 않아. 사녹 댓림픽 빠지기만 해도 난 만족이다. 셋째, 앞으로 나에게 리드레아 스케쥴 알려주기. 넷째, 세미를 비롯한 리드레아의 비공개 일상사진 정기적으로 제공 어때? 간단하지?"
앞에 두 개는 나름 합리적이었는데 뒤로 갈수록 사심이 폭발하고 있다.
나는 조건 중 궁금했던 것 하나를 물었다.
"젤 처음 말한 추후 걸그룹들이라니 대체 무슨 의미야?“
새별너울이 빠른 시일내에 데뷔할거라는건 지금 우리 회사 사람들과 협력업체 일부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리드레아의 공식활동이 끝났다하지만, 아직도 음원차트 1위를 고수하며 미디어와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럴 때 새별너울의 데뷔정보가 새어 관심이 분산되면 팀킬이 될 수도 있다.
"BICA ENT.에피지에서 나온 여자연생들 있다는건 조금 깊이 파는 아이돌팬들이면 다 아는거야. 아마 몇 년후가 되겠지만, 언젠가 데뷔시키려고 데려간거겠지. 지금부터 미리 찜하는거다.“
다행히 새별너울의 데뷔정보가 유출되지는 않은거 같았다.
이거는 가능
둘째도 문제 없다.
셋째, 넷째가 문제다
"앞에 두개는 가능하지만 셋째 넷째는 안돼. 특히 마지막은 사생활 침해야. 아무리 사장이라도 그건 안돼. 설령 B컷으로 바꾼다 해도 리드레아가 자기들 B컷 유출되는걸 좋아하겠어? 스케쥴은 팬카페에 공개되니 당연히 비공개 스케쥴을 말하는거겠지? 비공개는 비공개인 이유가 있어. 비즈니스에 영향이 가는 조건은 안돼"
"사진은 듣고보니 그러네. 내가 잘못생각 했다. 그래도 스케쥴은 가능하잖아. 비공개 스케쥴 유츌되는거한두번도 아니고"
저 인간 말대로 비공개 스케쥴도 어떻게 알아서 사 진찍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막으려는데 유출된 것과 사장이 유출시키는건 차이가 크다.
"안돼는건 안돼. 셋째 넷째 대신 내가 다른 걸 제시하지. 우리회사 구경 시켜주마. 이번에 리드레아가 받은 1위 트로피들 다 보여주고 만지게 해주지 여자친구랑 같이 와도 돼. 어때?"
"제안이 너무 달콤한데. 혹시 함정파는거 아니지? 구경하는 중에 갑자기 리드레아가 나와서 내가 올인하게 만드려는...“
꼭 지 같은 고민을 한다.
무슨 함정을 판다고 연예인을 보여주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냐고.
저 인간이 우리한테 올인하는건 절대 좋은일 아니다.
열성적인 팬은 환영하지만 저 정도 미친팬은 원치 않는다.
모든 걸그룹을 파던 놈이다.
저 열정이 우리에게만 집중된다면 끔찍할거다.
아까도 세미 놔둔다는건 협박이었지 만약 정말 쳐들어왔다면 리드레아와 새별너울은 꼭꼭 숨겨두고 안보여 줄 생각이었다.
"리드레아 뿐만 아니라 연습생들도 네가 마주치는 일 절대 없을거야. 걱정하지마. 네가 와서 보는건 우리 직원들 뿐일거다. 약속하지. 단 이쪽도 조건이 있어."
내가 저 인간 좋으라고 당근만 제시할리 없다
이쪽도 당연히 조건이 있다.
"첫째. 우리회사 구경 끝나면 다시는 오지 말 것. 너라면 걸그룹 팬들 사이에 어느 정도 알려진 사람일텐데 특정 팬이 회사랑 친해서 이득 받는거 다른 팬들이 엄청 싫어하는거 너도 알거아냐. 그러니 회사 근처에도 오지마. 둘째 나한테 전화해서 부탁이나 정보 캐려고 하지 마. 물어봐도 안 알려준다는 걸 미리 말하는거야. 셋째, 어디 가서나랑 아는 사이라고 함부로 말하지마. 다른 팬들 귀에 들어가는 순간 정말 끝장이야. 팬이 매니저랑 친분 과시해도 욕먹는데, 사장이랑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라고 하면 나만 귀찮은게 아니라 너도 매장당할 수 있어서 하는 말이다. 내가지금까지 한 제안은 네가 팬이 아니라면 거부해도 너는 아무 상관없겠지만, 안타깝게도 너는 팬이 맞지. 그것도 그쪽에서 꽤 유명한."
"내가 널 교육시킨 보람이 있구나. 팬들 마음을 그리 잘 알 줄이야. 알았어. 다 받아준다."
그냥 알았다고 하면 될 걸 쓸데없는 말을....
"협상 타결을 축하하는 의미로 네가 제안에서 빼먹은 싸인시디도 앞으로 계속 보내줄 걸 약속하지 이건 내 성의야"
"아 맞다. 싸인시디. 내가 너무 분노한 나머지 그걸 까먹었네. 네놈이 잊지 않고 챙겨줬으니 내가 정상참작해주마. 고맙고 빨리 날짜부터 잡자. 언제갈까? 내일? 내일모레?"
저번에 봤을 때 지 입으로 바쁘다 바쁘다 그러더만, 바쁘기는 개뿔.
당장 오지 못 해서 안달이다.
"너 여자친구 스튜어디스라며. 비행 스케쥴 물어봐야 하는거 아냐? 너랑 여자친구랑 스케쥴 맞춰서 가능한 날짜랑 시간을 알려줘. 내가 그거 보고 이쪽 스케쥴이랑 맞춰서 알려줄께"
"알았어. 가능한 빠른 시일내에 보자"
"할말 끝났으면 어서 가라 좀."
드디어 통화가 끝났다
그래도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다.
난 저 인간이 여기 올인 선언하고 매일같이 출근도장 찍거나 사장실에 눌러앉아 자리펴는 상상까지 했다.
이 정도면 사장인거 들키고 수월하게 넘긴거다.
*****
아이돌동산 촬영이 끝난 후 나이사님과 최매니저는 리드레아와 함께 행사장소로 향했고, 나는 회사로 돌아왔다.
오늘은 중요한 촬영이니 나도 참가했을 뿐 행사에 사장까지 다 쫓아갈 필요는 없다.
엄밀히 따지면 나이사님도 행사 따라다닐 군번은 아니지만, 회사 형편상 사람이 부족하고 아직은 최매니저 한명만 보낼 수만 없기에 따라가는거다.
아마 올해 순조롭게 풀린다면 1년 정도만 더 나이사님이 동행하고 후에는 최매니저 승진시킨 후 로드 한 명을 더 뽑을 수도 있다.
나는회사에 오자마자 직원들을 불러모았다.
리드레아의 활동이 끝나고 중요한 스케쥴도 마무리가 되가는 만큼 이제는 본격적으로 새별너울의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업무지원팀장으로 일을 진척에 따라 뒤에서 이런저런 보조를 해줄 누나와 새별너울을 맡고 있는 윤민석 팀장, 리드레아의 스타일리스트지만 이번에는 새별너울의 스타일리스트까지 맡기로 한 황윤정, 그리고 내 손발이 되어 관련 협력업체들과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장윤철까지 4명이 회의실에 모였다.
리드레아의 촬영이 잘 끝났는지, 다른 스케쥴은 잘 갔는지, 나는 잘 다녀왔고 회사에는 그동안 아무 일이 없었는지 같은 의례적인 안부인사를 마치고 모두 자리에 앉았다.
나는 가장 먼저 황윤정을 향해 말했다.
”윤정씨. 의상은 이제 막 구상 들어간거 아니까 얼마나 준비 됐는지 같은거 묻지 않을거에요. 오늘 윤정씨를 부른건 한 파트의 책임자로서 다른 사람들 준비 사항이나 진행사항같은거 같이 공유하자는 취지니까 부담갖지 말고 잘 들으시다가 혹시 궁금한거나 필요한거 있으시면 말씀하시면 되요.“
”네.“
리드레아의 음방의상이 아무리 미리 준비가 되어있었다해도 활동하는 내내 스타일리스트들도 같이 방송국에 동행하며 리드레아를 케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리드레아의 활동이 끝난지 얼마 안됐기에 새별너울 의상은 이제 컨셉 구상이나 하는 정도지 초안이 나오려면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
윤정에게 오늘 회의에 부담을 갖지 말라고 일러둔 후 장윤철 보며 물었다.
”윤철씨 녹음실 예약은 어떻게 됐죠?“
”일단 다다음주에 일주일 잡아놓긴 했는데, 세부 일정은 녹음 참가할 작곡가들 스케쥴 픽스가 안 되서 조금 더 기다려야 합니다. 설 연휴 시작 전에는 확정될 겁니다.“
본래 음악적 지식이 없는 나에게 작곡가의 도움은 매우 중요하다.
내가 감이 좋다고 하더라도 원곡자만큼 곡을 이해하고 있지는 않다.
나는 어디까지나 대략적인 느낌일 뿐, 디테일 만큼은 엔지니어의 도움으로도 부족하다.
”그럼 녹음일정은 며칠 후에 다시 논의하기로 하고, 윤팀장님 로드매니저는 찾는건 어떻게 되가나요?“
”마침 보고 드리려고 했습니다. 괜찮은 녀석을 찾았죠.“
내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윤팀자이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1,2주 전에는 사람찾기 힘들다고 고민이 많더만, 드디어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았나 보다.
로드 찾기에 고심하던 윤팀장을 옆에서 지켜보던 나이사님 마저 기준을 낮추고 적당한 사람 뽑으라고 할 때 고개를 저었던 윤팀장이다.
그런 윤팀장이 괜찮다고 저렇게 자신있게 말할 정도니 어떤 사람일지 호기심이 생겼다.
”호오. 어떤 사람인데요?“
”군대에서 제대한지 얼마 안됐는데 고등학교 때까지 육상선수였다고 합니다. 그쪽에서는 꽤 기대받는 유망주였던거 같은데 고3 때 부상을 당해서 운동 접었다고 하더군요. 외모나 성격도 괜찮고 군대에서도 운전병이였다니 큰 차 운전도 문제 없을겁니다. 일단 제 차 한번 몰아보게 했는데 잘 하더군요.“
이런 간단한 조건인데도 마땅한 사람 찾기가 정말 힘든게 로드매니저다.
많이 관두기도 하고, 지원자 중에 이상한 사람도 원체 많아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거. 팬을 걸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연예계를 동경해서, 연예계에서 일하고 싶어서는 당연한 지원동기이기에 넘어가지만, 특정 아이돌, 특정 연예인의 팬은 최대한 걸러낸다.
그나저나 군대에서 제대한지 얼마 안됐다면 나보다 어리겠네.
우리 회사 직원들 대부분이 연상이라 대하기가 좀 곤란한데, 어린 사람이면 나도 좀 편해지긴 하겠다.
”저만 오케이하면 되는건가요?“
”그렇습니다. 사장님이 시간 되는 날에 면접보시고 결정하시면 됩니다.“
”저까지 볼 필요 있나요. 출근하라고 하세요.“
”네? 회사 직원 뽑는건데 사장님이 한번 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윤팀장님 손발이 될 사람이니 윤팀장님이 알아서 잘 뽑으셨을거라 믿습니다. 회의 끝나는대로 연락해서 출근하라고 하세요. 얼굴은 그 사람 출근하면 볼께요.“
윤팀장을 믿는것도 있고, 한달넘게 찾다가 최근에 겨우 찾은 후보자가 마음에 안든다고 거부해봤자 더 나은 사람이 나타날거 같지도 않아 바로 허락했다.
신중한 것도 좋지만, 때로는 과감한 결단도 필요하다.
솔직한 심정이 무엇이든 간에 내가 자신을 굳게 믿어준다고 생각한 윤팀장이 조금 감격한 듯 잠시 말없이 나를 바라보던 윤팀장이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시급한 문제였던 로드 건을 물어본 뒤 윤팀장에게 몇가지 질문을 하고, 또 반대로 건의사항을 받은 뒤 다음은 누나에게 물었다.
”김팀장님 새별너울 관련 지원팀 준비는 어떻게 되가죠?“
”새별너울 SNS를 비롯한 팬카페, 공식 계정, 공식 채널등은 진작에 만들어놓고 비공으로 돌려놓은 상태에요. 새별너울이 쓸 차는 영업소에서 설 끝나는대로 나온다고 했어요. 새 로드매니저도 금방 온다니 보험처리까지 녹음전에 끝날거고, 애들이 데뷔준비 할 때 차 쓰는데는 지장없을거에요.“
이제 새별너울도 차를 써야할일이 점점 많아질 것이다.
회사에서 해줄 수 있는건 연습과 의상까지.
녹음, 자켓 촬영, 뮤직비디오 촬영부터 시작해 밖에 나돌아 다닐 일이 많아진다.
활동시작하고 리드레아도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는 일상의 반복이다.
가끔씩 쉬는 날을 만들어준다해도 다들 자느라 바쁘다.
슬슬 새벽너울도 그런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때가 온다.
문득 다 큰 딸들 독립시키는 아빠 심정이 이런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이내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새별너울 애들이 강하게 밀고 있는 그놈의 아빠타령이 생각나는 동시에 내가 애들과 무슨짓을 하고 있는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회의 중에 갑자기 머릿속에 살색이 가득해지자 나는 정신차리라는 의미로 두 손으로 머리 양 옆을 탁탁하고 쳤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보니 윤팀장과 장윤철은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지마 누나는 미소를 짓고 있다.
내가 방금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안다는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