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123화 뭐 할래?
카페에서 얘기를 마치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넓은 5층에 혼자 있을 수 없었던 효정은 연휴 동안 4층에서 나와 함께 지내기로 했다.
우리는 심신이 모두 지친 효정을 데려와 별다른 말도 안 한 채 씻고바로 자게 했다.
누나도 나와 섹스를 하는 대신 효정이를 데리고 누나의 방에서 잤다.
아침이 되어 얼굴을 보았을 때, 효정이는 어젯밤 우리 앞에서 울었던 것 때문에 부끄러워했지만, 누나와 함께 있으면서 진정이 되었는지 어제보다 많이 나아져 보였다.
누나는 효정이를 생각해서 정말 오랜만에 집에서 매우 정상적인 차림이었으며, 성적인 대화, 자극도 않은 채 오직 효정이만을 챙겨주었다.
덕분에 굉장히 신선한 기분이었다.
누나는 원래 오늘 집에 가서 연휴가 끝나고 돌아올 예정이었지만, 일정을 바꿔 설날에 차례와 식사, 성묘하고 그날 저녁 바로 돌아오기로 했다.
누나는 효정이 걱정되어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지, 시간을 끌다가 결국 점심을 먹고 난 후에야 집에 갔다.
“나 갈게. 내일 저녁에 올 테니까 그동안 둘이 잘 있고.”
“알았어. 걱정하지 마.”
근심스러운 얼굴로 나에게 말한 누나가 다음은 효정이를 보며 말했다.
“효정아. 혹시 재윤이가 이상한 짓 하면 나한테 전화해. 알았지?”
나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누나에게 말했다.
“누나. 나랑 효정이 사이에 이 이상무슨 일이 있겠어?”
매일 알몸을 보이고 키스를 하며 서로의 성기를 맞대는 사이다.
이 이상 일이 있어봤자 섹스인데, 이미 아영이가 스타트를 끊은 이상 우리가 섹스를 해봤자 큰일도 아니다.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 벌어진 거지.
내 말에 잠깐 당황한 듯한 누나가 고개를 끄떡이더니 다시 효정이에게 말했다.
“효정아. 재윤이가 너한테 아무 짓도 안 하면 전화해.”
그래. 이게 훨씬 자연스러워
“걱정하지 마세요. 아빠랑 둘이 즐거운 시간 보낼테니까요.”
효정이 싱글 생글 웃으며 누나를 배웅했다.
어제 그렇게 울던 애가 하룻밤 만에 밝아진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연기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
몇 달을 본 나도, 몇 년을 본 누나도 효정이 사정에 대해 알지 못했다.
새별너울 애들은 알까 궁금해졌지만, 효정이에게 물어볼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애들이 돌아오면 따로 기회를 봐서 리더인 박윤미나 최수현한테 넌지시 물어 보는 게 나을 것이다.
효정이 걱정되어 한걸음 걸을 때마다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는 누나를 집에는 효정과 나만이 남겨졌다.
철컹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자 나는 효정을 돌아보며 물었다.
“뭐 할래?”
“전, 티비나 볼래요. 딱히 할 것도 없어서…….”
“그래? 알았어. 너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하고, 여기나 5층이나 똑같으니까 편하게 있어.”
뭐지? 이 어색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는?
단둘이 있는 게 처음이 아니다.
매일 검사한다면서 둘만의 시간을 가졌었다.
그랬기에 누나가 집에 간다고 해도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둘만 남으니 의외로 어색하다.
단둘이 있을 때는 검사하고 서로 몸을 부딪치느라 바빠서 대화한 적이 별로 없었다.
시답지 않은 농담 따먹기나 일 관련된 얘기만 했을 뿐.
효정이뿐만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다.
생각 이상으로 어딘가 비틀어지고 이상한 관계이다.
효정이 일을 계기로 나도 태도를 확실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지금 깨달은 것도 사실 너무 늦은 거지만.
효정과 같이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던 나는 별다른 대화도 없는 이 어색한 분위기를 못 참고 늘어지게 낮잠이나 한숨 자겠다며 슬며시 소파에서 일어나 방에 들어갔고, 효정이는 티비나 보겠다 했다.
털썩
조용히 방문을 닫고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지난 연말연시에는 하루종일 이러고 있다가, 마음 내키면 산에 가고, 찜질방에 가고 하면서 보냈다.
그때 너무 자유롭게 푹 쉬어서 이번에도 그렇게 할 생각이었지만, 계획이 많이 바뀌게 됐다.
내일 저녁에 누나가 돌아온다.
그때까지 이렇게 집에서 빈둥거리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왠지 아깝다.
내일이 설이구나.
사실 나에게 명절은 노는 빨간 날 말고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가 되면서 이렇게 된 게 아니다.
아버지와 살 때부터 이렇게 지냈다.
갈 곳도, 만날 친척도 없다.
아주 어렸을 때는 왜 나는 엄마가 없냐, 우리 친척은 없냐 같은 것들을 물었지만,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은 적은 없었다.
그냥 없으니까 없다고만 들었을 뿐이지.
내가 살던 산골 마을은 명절이 되면 도시에 나갔던 사람들이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을 뵈러 돌아와 북적이곤 했다.
예전에는 마을 전체가 북적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역귀성이니 간소한 명절이니 해서 점점 명절에 오는 사람들이 적어졌다.
평소라면 남는 시간에 가만히 있는 것을 못 참고 무슨 일이든 하든 아버지는 명절에 마을이 북적이면 오히려 안 나가고 집 안에만 계셨다.
그래서 우리 부자에게 명절은 집에서 놀면서 티비나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날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도 마찬가지다.
아버지는 무덤, 납골당, 수목장 같은 거 다 부질없다며 유골을 당신이 좋아했던 마을 뒷산에 뿌려달라고 했다.
드라마에서처럼 유골을 강이나 산에 뿌리는 건 실제로는 불법이고 금지된 일이다.
그래도 세상살이가 다 법대로는 되지 않는다.
특히나 시골 마을은 아는 사람들끼리 좋은 게 좋은 거라 하면서 알면서 넘어가 주는 일이 많다.
마을 어른들은 마을 뒷산에 유골을 뿌리는 것에 대해 모른 척해주었고, 그것에 대해 말을 꺼낸 적도 없다.
혼자 남은 내가 불쌍해서 봐준 것도 있을 거고.
우리 주제에 무슨 제사를 지내고 차례를 지내냐며 다 필요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제사, 차례 다 안 한다.
아버지 기일에는 생전 좋아하시던 음식과 술상을 간단히 차려놓고 향 하나 피우고 절만 할 뿐.
아, 그러고 보니 효정이 어머니 돌아가셨다고 했지.
차례나 제사는 어떻게 하나…….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방을 나섰다.
내일이 설이다.
뭐라도 하려면 빨리 준비해야 한다.
“효정아.”
“네?”
“.......”
막상 물어보려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내일이 설인데 평소에 너희 어머니 차례나 제사는 어떻게 하니? 라고 물어보기가 쉽지가 않다.
“무슨 일이신데요?”
“어…. 음…. 내일이 설이잖아…….”
“네.”
“저기…. 차례 지내야 하지 않겠어?”
“무슨 차례요?”
“너희 어머니 차례상.”
“아…….”
효정이도 까먹고 있었는지, 어머니 차례상이란 말에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러나 효정의 당황했던 얼굴은 금세 평상시로 돌아온다.
효정은 나에게서 시선을 돌려 티비를 향하며 말했다.
“괜찮아요. 할 필요 없어요.”
의외의 대답이었다.
차라리 나에게 미안해하면서 괜찮다고 하는 모습까지는 상상했지만, 저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할 줄은 몰랐다.
조금 전의 당황한 표정은 대체 뭐였을까?
나는 다그치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궁금함을 최대한 숨기며 물었다.
“크흠...왜?”
“엄마 교회 다니셔서 제사, 차례 같은 거 안 했거든요.”
무슨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는 줄 알았더니 종교적인 이유였구나.
숙소생활 중인 리드레아와 새별너울 중 독실한 신자는 아무도 없는지 여태 종교행사를 가겠다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단 나부터가 신앙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고, 주위에 어떤 종교든 독실한 신자가 없었기에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효정을 보니 물어보기 전에 잔뜩 긴장했던 게 허탈해진다.
뻘쭘한 기분에 머리를 긁적이며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음……. 날씨 좋네….
잠시 창문 밖을 바라보자, 효정이 소파에서 일어나 천천히 나에게 걸어왔다.
그리고는 나를 껴안았다.
나는 두 팔을 들어 안겨 오는 효정을 감싸 안았다.
내 품에 안긴 효정이 고개를 내 가슴에 묻은 채 말했다.
“고마워요.”
“한 것도 없는데 고맙기는…….”
“저 신경 써 주시고 계시잖아요. 그걸로 충분해요.”
효정의 말에 효정을 한없이 여리고 약한 어린애로만 생각한 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어제 본 나약하고 겁에 질렸던 모습에 잠시 잊고 있었지만, 효정은 본래 강하고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하룻밤 사이 흔들렸던 모습은 사라지고 다시금 내가 아는 모범생이자 어른스러운, 내가 아는 민효정으로 돌아와 있던 것이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한동안 서로를 껴안은 채 서 있었다.
조금이나마 서로 진심을나누는 시간을 가진 후에는 어색한 분위기가 많이 사라졌다.
나나 민효정이나 이제는 평상시처럼, 아니 평상시보다 더 친해진 기분이었다.
이제 와서 친해진다는 게 웃기지만, 이제라도 친해지는 게 어디냐 싶었다.
해가 지고 저녁을 먹을 때가 되자, 이제는 소파에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정말 자기 집인 양 소파에 늘어져 누워 한 손에 리모컨을 든 채로 티비를 보고 있는 민효정에게 말했다.
“저녁은 뭐 먹을래? 먹고 싶은 거 말해. 다 시켜줄게.”
“해줄게도 아니고 시켜줄게 에요? 요리 몇 개는요즘 싱글남성 필수라고요. 그래서 장가 가겠어요?”
민효정이 실망했다는 투로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훗. 다른 것도 아니고 장가 가지고 나를핀잔주면 내가 할 말이 아주 많다.
“나한테 시집온다는 여자가 거의 20명이야.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야.”
“많은건 저도 인정하지만 20명까지는 안될걸요?”
이제 와서 왜 모른 척이지?
크리스마스 때 내 앞에서 벗은 여자들이 20명 가까이다.
“너 다 알면서 왜 그래? 누나, 리드레아, 너희들, 영애, 시연, 윤정, 혜리. 봐봐. 주연씨랑 혜민씨 빼도 18명이잖아.”
주연씨와 혜민씨를 뺀 건 애매해서다.
분명 새별너울 애들처럼 가끔씩 사장실에 찾아와 나에게 몸을 맡기는데 이 이상에 대해 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나야 당연히 내 여자들로 생각하고 있지만, 본인들 의견도 중요하니 일단 보류다.
여자 입장에서 나랑 즐기는 정도로만 끝낼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주연씨와 혜민씨가 정말 즐기는 정도로만 생각한다면 나중을 위해 입막음이 중요하겠지만, 그걸 대비한다고 크리스마스이브 때 촬영한 거니 크게 걱정은 안 된다.
효정이 다시금 티비로 시선들 돌리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우리는 빼요. 우리는 아빠 신부 안 하고, 딸 할거에요.“
”신부가 딸보다 좋지 않아?“
”부인은 이혼하면 남이잖아요. 한번 아빠 딸은 영원한 딸이고요. 딸도 아빠랑 섹스하고 아빠 아이 낳을 수 있는데 왜 신부를 해요. 딸이 훨씬 낫지.“
도덕이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
민효정 너…. 누나랑 외모만 닮은 게 아니라 사상도 많이 닮았구나.
정말 누나 미니미, 아니 누나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거같다.
만약 어제였으면, 나는 아빠, 딸 소리에 고개를 돌려 대답을 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제 위선적인 나 자신을 발견하고 더는 피하지 않기로 다짐한 나도 이제는 변할 것이다.
”개판도 그런 개판이 없을 거 같지만, 나도 이제 받아들이기로 했어. 그래 딸 해라. 너희들하고 싶은 대로 다 해.“
”정말요?“
누운 채로 리모콘을 든 손만 까딱까딱하던 민효정이 마음대로 다하란 말에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얼굴을 보니 정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얘네들이 거의 한 달간을 아빠, 아빠 해왔지만, 저번에 피학성벽에 눈을 뜨고 폭주하려는 박서정을 달랠 때 말고는 내 입으로 아빠, 딸 소리를 단 한 번도 안 했다.
그런 내가 이제는 받아주겠다고 하니 저러는 것이다.
”거짓말 아니죠?“
”내가 너한테 거짓말을 왜 해?“
그러자 소파에 앉아 있던 민효정이 벌떡 일어서서 나에게 다다닥 하고달려와 점프를 하며 안겨들었다.
나는 몸의 중심을 잡고 나에게 달려드는 민효정을 받아 안았다.
쪽! 쪽! 쪽!
민효정은 내 품에 안기자마자 내 볼 여기저기에 마구 뽀뽀를 했다.
”아빠 너무 좋아요.“
”나도 우리 이쁜 딸이 이렇게 아빠 좋아해 줘서 행복해.“
내 말에 민효정이 환하게 웃는다.
내 입에서 드디어 딸이라는 소리가 나오니 기쁜 것이다.
이번에는 민효정이 내 입술에 차분히 키스한다.
나는 민효정을 받아 든 채로 그녀와 키스를 나누었다.
입술이 맞닿고 혀가 얽히는 키스.
크리스마스의 첫 키스 이후 수없이 해온 키스지만, 오늘은 느낌이 달랐다.
한참 동안 서로의 얽혀 있던 혀와 입술이 떨어지고 민효정은 내 품에서 내려오며 말했다.
”당장 아빠랑 섹스하고 처녀 주고 싶지만 참을 거예요.“
아마 누나가 말한 촬영 때문이겠지.
지난번 강아영의 기습섹스 이후 누나는 아영이를 칭찬하는 동시에, 첫 경험을 찍지 못했다며 매우 아쉬워했다.
애들에게도 나와 섹스하는 건 좋으나 가능하면 촬영할 수 있게 미리 알리라고 주의를 주었었다.
”촬영 때문에 그렇지?“
”아니에요. 그런 건 상관없어요. 선생님도 촬영하면 좋다고 했지, 카메라 없을 때 섹스하지 말라고는 안 하셨어요. 오히려 하고 싶으면 참지 말고 하라고 하셨죠. 전 좀 더 의미 있게 하고 싶어서예요.“
누나……. 나한테 한 말이랑 다르잖아. 주의를 줬으니 애들이 아영이처럼 갑자기 섹스하는 일이 없을 거라고 했잖아.
누나가 내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고 방심하게 하려고 그랬던 걸까.
내가 잠시 누나의 의도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민효정이 말했다.
”다다음 주에 저랑 지윤이, 진아 졸업식이잖아요. 졸업식 때 학교에 와주세요. 학교 졸업하면서 처녀도 졸업하고 싶어요.“
”졸업식 날 하고 싶다는거지?“
”네. 졸업식날 학교에서 저희 처녀 가져가 주세요. 마지막으로 교복입는 날이자 아빠의 진정한 딸로 다시 태어나는 날로 만들어주세요.“
난 졸업식 끝나고 집에와서 하겠다는건줄 알았는데, 학교에서 하잔다.
얘가 나 몰래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거창하든 말든 상관없어.
하고 싶다는 대로 해줄거다.
아빠 딸도 인정했는데 이제는못할게 뭐가 있겠냐 싶다.
그래도 한가지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진아랑 지윤이 말도 들어야 하지 않겠어?“
”이거 원래 지윤이 생각이었어요. 저랑 진아는 듣고 찬성했고요,“
좋아. 그럼문제없네.
하자. 까짓거 그냥 하면 되지.
”알았어. 그때 하자.“
내 말에 민효정이 밝게 웃는다.
어제로서 애매하기만 했던 한심한 나는 끝났다.
이 밝은 웃음을 보기 위해 민효정이, 내 여자들이 원하는건 무엇이든 할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