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화 〉160화 힘내
영준이 새별너울과 코디를 비롯한 스탶들의 아침식사를 전해주고는 바로 복도로 나왔다.
”두 사람 다 식사 아직 안 했잖아요? 애들이랑 같이 안 드세요?“
”여자들이 떡볶이, 김밥 같은 분식으로 먹고 싶다고 해서 그걸로 했는데 저희는 별로라서요. 영준이는 이 방송국 처음이니 구내식당 구경시켜줄 겸 해서 거기서 먹을 생각입니다.사장님도 저희랑 식사 같이하시죠.“
여자들이 환장하는 떡볶이.
남자도 좋아하긴 하는데 하루 첫 식사로 떡볶이라면 망설여지는 게 일반적이다.
”저는 아침 먹어서 아직 밥 생각이 없어요. 저는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고 다녀오세요.“
잠시 더 권유할까 말까 고민하던 윤팀장은 알았다고 하고 영준이를 데리고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활동기간 중에는 연예인이나 매니저나 짬이 있을 때 먹어둬야 한다.
그렇게 두 사람을 구내식당으로 보내고는 자판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홍차음료를 뽑아 들고 자판기 근처에 있는 3인용 로비의자에 앉아 폰을 꺼냈다.
어제 6시 이후로 여태껏 보지 않은 인터넷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음원성적은 어차피 미진입일테니 음원사이트는 볼 필요도 없고, 기사가 얼마나 떴는지가 가장 큰 관심사였다.
어디보자 새.별.너.울
한글자한글자 신중히 치고 돋보기 모양의 아이콘을 눌렀다.
어제 오후 6시 쯤에 기사검색을 했었으니 거의 17시 만이다.
[BICA의 무모한 도전 새별너울 데뷔. 업계 한편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
제일 위에 있는 기사부터 뭐 이따위냐
그래. 무모한 도전이라고 하는건 나도 이해해
신생회사가 3개월간 두 팀을 런칭하는게 일반적인 일이 절대 아니니까.
근데 언제부터 업계가 우리 회사 걱정을 했다고 지들이 우려하고 지랄이야.
제목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져 바로 다음 기사를 살폈다.
이번에는 기분이 좆같아졌다.
[플로리아 미안. 신인상은 우리가 가져갈게. 새별너울 무서운 기세]
이건 플로리아, 새별너울 두 그룹 모두에게 똥 뿌리는 기사다.
기자 미쳤네. 여기 어디야?
E-PACT 편집장도 싫어한다는 사이드뷰구나
클릭수에 미친 어그로 새끼들.
맨날 사무실에만 처박혀 있어 아무도 얼굴 본 적이 없다는 환상종 같은 새끼들
제일 위에 있는 기사 두 개의 제목만 보고는 짜증이 나서 인터넷 창을 껐다.
새별너울로 어그로 끄는 걸 보니 반응이 있긴 있는 모양인데 수치적으로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없으니 답답하다.
음원은 애초부터 기대도 안 했으니 제외.
첫 방도 아직이니 음판이나 뮤직비디오 조회수, sns 반응도 현시점에서는 무의미.
대형기회사 신인도 최소한 첫방은 해야 뭔가 각을 볼 껀덕지가 생기는데, 나는 데뷔 이틀만에 첫방도 안 한 상태에서 이러고 있으니 답이 나올 리가 없다.
이놈의 조급증 때문에 속만 답답할 뿐이다.
”사장님. 여기서 뭐 하세요?“
벽에 등을 기대 아직 캔에 남은 음료를 마저 마시는데 한지윤이 양손 가득 비닐봉지를 들고 나타났다.
”넌 뭐해?“
”먹은 거 쓰레기 버리러 나왔어요.“
새별너울의 심부름 담당답게 쓰레기 버리는 일도 쟤가 하는구나.
한지윤은 공부, 운동, 춤, 노래, 외모 등등 어디 하나 빠지는 데가 없는 애다.
성격도좋다.
새별너울에 센터 같은 건 없지만 만약 센터를 정한다면 한지윤이 될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약점 아닌 약점이 있다.
한지윤은 좋게 말하면 대인배, 나쁘게 말하면 호구다.
그러다보니 새별너울에서도 심부름 담당이 되었다.
한지윤이 그런 건 아마 부족하고 아쉬운 게 별로 없기 때문일 것이다.
어딜 가나 잘한다고 칭찬받고, 집도 부자다.
그러니 자기가 조금 손해 보는 걸 별로 개의치 않는다.
속 좁은 것보다는 낫지만 저러다 사람 한번 잘못 만나면 크게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스타일이다.
그러니 내가 내 품에 넣어두고 잘 보살펴야 한다.
암. 그렇고말고.
한지윤이 쓰레기를 버리고 내 옆에 앉으려고 하기에 손을 들어 말렸다.
”사람들 눈이 있어. 내가 젊고 어린 사장이라 소속 연예인이랑 수상한 관계라고 오해 사기 딱 좋아.“
”사장님 잘 모르시네. 숨기고 피하는 게 더 오해 사기 쉬워요. 누가 오해하면 사장님 약혼자 있다고 하면 되죠.“
”됐어. 조금만 조심하면 될 걸 괜히 불씨를 피울 필요 없잖아.“
한지윤이 내 앞에 서서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란히 앉는 것도 오해 사기 좋고, 둘이 마주 보며 정답게 얘기하는 것도 오해 사기 좋다.
내가 일어나자 한지윤이 천천히 대기실로 걸음을 옮기고, 나는 그녀를 따라갔다.
차라리 대기실 돌아가는 길에 몇 마디 하는 게 더자연스러우니까.
”플로리아 선배님이랑 엔젤릭 선배님들은 사장님이 젊어서 저희한테 잘해주는 거 같다고 부럽다고 하던데요.“
”벌써 친해졌어?“
”친해진 건 아니고 떡볶이가 많길래 좀 나눠주면서 얘기 몇 마디 했을 뿐이에요. 플로리아 선배님은 떡볶이 1년 만에 먹었데요.“
한지윤은 겨우 2주 차이인데도 플로리아에게 선배님 호칭을 붙인다.
플로리아에서 먼저 선배님 소리 하지 말라고 하기 전까지는 당연히 선배님이다.
아이돌끼리는 그렇게 선후배 위계에 집착하지 않으니, 플로리아와 새별너울도 아마 한 대기실 쓰면서 계속 보면 이번 주 내로 선배님 소리 때긴 할 거다.
”우리도 먹는 거 관리하긴 하지만 다른 데에 비하면 느슨하니까. 대신 운동을 많이 시키지.“
”그 얘기도 했어요. 우리는 회사에서 먹는 거 터치 많이 안 하고 알아서 조절하는 대신 영애쌤이 시키는 대로 운동한다고요. 그랬더니 영애쌤 인기폭발해서 지금 대기실에서 플로리아 선배님, 엔젤릭 선배님들 몸매관리 상담해주고 있어요.“
영애는 날이 갈수록 인기가 많아지는구나.
애들도 금방 영애 좋아했고, 회사에서도 시연과 코디들이 영애를 두고 서로 자기랑 같이 일하자며 신경전을 벌였었다.
그런 사람이 있다.
어디서 뭘 하든 항상 관심받고 인기 많은 사람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스타라고 부른다.
영애는 연예인 했으면 탑스타 됐을 게 분명하다.
대기실에 도착하자 한지윤이 문고리를 잡고는 돌아본다.
”대기실 분위기 많이 풀렸으니 이제 사장님도 여기 계시지 말고 같이 들어가요. 눈치 안 봐도 돼요.“
”.....알았어?“
”모르면 바보죠. 어서 들어오세요.“
대기실에 들어가니 조용하고 서로 눈치만 보던 아까와는 확연히 달랐다.
영애는 지윤이 말처럼 엔젤릭 멤버 1명, 플로리아 멤버 2명과 상담중이었고, 새별너울과 플로리아도 멤버 전원은 아니어도 몇 명이 섞여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다만 엔젤릭은 영애와 얘기하는 1명을 제외한 나머지 4명 모두 멀찌감치 떨어져 자기네 자리에 있었다.
새별너울, 플로리아에 비하면 차이가 나는 선배라서 그런 걸까,아니면 중견회사인 루프엔터 소속이자 지금 가장 기대받는 신인 플로리아와 올해 가장 잘나가는 걸그룹 리드레아의 후배 그룹으로 선배들의 후광에 힘입어 음방 스케쥴이 가득찬 새별너울, 두 그룹과의 차이로 인한 자격지심으로 끼지 못하는 걸까.
세 그룹 모두 나이는 비슷할 텐데.
오늘 음방이엔젤릭 스케쥴 전부라는 아까 윤팀장의 말로 인한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신경 안 쓰는 척하면서 이쪽을 힐끔거리는 걸 보니 마냥 선입견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거 같았다.
조금 착잡한 기분을 느끼며 대기실 문 앞,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왼쪽 벽에 있는 3인용 로비의자에 앉았다.
아까 자판기 앞에 있던 것과 같은 의자로 여기 방송국은 대기실과 복도 의자를 이걸로 통일했나 보다.
”아, 사장님 여기 계셨군요. 죄송하지만, 잠시만 나와주시겠습니까?“
대기실에 있다보니 윤팀장이 식사를 마쳤는지 돌아와 나를 대기실 밖으로 불러냈다.
밖으로 나가보니 처음 보는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있었다.
윤팀장이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저희와 같은 대기실을 쓰는 플로리아를 맡은 루프엔터 염광진 실장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루프 엔터테인먼트 염광진 실장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BICA ENT. 신재윤입니다.“
”저희 직원한테 BICA ENT. 사장님이 대기실 오셨다는 얘기를 듣고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르실 겁니다. 리드레아를 성공시킨 가요계 화제의 인물이신 사장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직원이라는거보니 대기실에서 플로리아 쪽에 있던 남자 2명, 그 둘 중 한 명이 연락했겠군.
그런데 내가 뭐라고 왔다고 내가 대기실 왔다고 자기네 실장한테 연락까지 했는지 신기하다.
내가 무슨 미스테리의 주인공이라도 되나.
”다른 곳도 아니고 루프엔터의 염실장님에게 그런 말 듣기에 부끄럽습니다. 전 그저 운이 좋아 여기 윤민석 팀장님같이 좋은 사람들을 만나 덕을 봤을 뿐입니다. 이번에 나온 플로리아 정말 대단하더군요. 역시 루프엔터라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했습니다.“
”하하 저희 애들은 새별너울에 비하면부족하죠. 저희가 2주 일찍 나왔기에 망정이지 같이 나왔으면 그대로 묻혔을 겁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네요.“
나야 플로리아가 실제로 잘나가고 있기에 플로리아 좋단 말이 가능하지만, 염실장은 새별너울 무대를 한 번도 본 적 없으면서 웃으며 새별너울이 더 좋다고 띄어주는 여유를 보인다.
저게 바로 자기 그룹이 잘나가니까 할 수 있는 말이다.
염실장도 상대가 나니까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고.
엔젤릭 매니저한테 저런 말 하면 좀 잘나간다고 건방지다며 뒤에서 욕먹는다.
플로리아는 음반판매가 만장을 넘어 만오천장에 가까워지며 팬덤이 계속 붙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고, 뮤직비디오조회수도 남부럽지 않게 나오고 있다.
아직 4월이니 벌써 신인상을 논하는 건 너무 이르지만, 플로리아는 지금까지의 성과만으로도 올해 말에 열릴 모든 가요 시상식에서 신인걸그룹상 후보에 오를 것이다.
이렇게 서로를 한껏 치켜주며 화기애애했던 염 실장과의 대화와 달리 나중에 엔젤릭 담당 매니저와 인사를 할 때는 참 조심스러웠다.
서로 의례적인 말만 오갈 뿐이었다.
엔젤릭은 이번 주 음방스케쥴이 오늘 하나고, 라디오 스케쥴도 없다.
잘나가는 플로리아랑 비교할 것도 없이 어제 데뷔한 새별너울이 이번 주 모든 음방에 출연하고, 출연 확정된 라디오가 4개인 것에 비교하면 처참할 정도다.
원래 연예계가 이렇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막상 잘나가는 신인, 무명아이돌과 동시에 한 대기실을 쓰게 되니 너무 확연하게 처지가 비교되어 엔젤릭 멤버들을 쳐다볼 엄두도 나지 않는다.
새별너울도 제발 잘 돼야 할 텐데.
오후 즈음 기다림에 지쳐갈 때, 윤팀장에게 커피나 한잔하자며 밖으로 불렀다.
대기실에서 새별너울, 플로리아, 엔젤릭을 보고 있으니 착잡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하나씩 뽑아 들고 인적이 없는 한적한 곳을 찾았다.
방송국은 사람이 많지만, 건물도 커서 인적이 없는 곳은 얼마든지 있기에 적당한 장소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윤팀장님 제가 잘난척한다고 해도 할 수 없는데, 아까 엔젤릭 매니저랑 인사하는데 기분이 착잡했어요. 루프엔터 염 실장하고 너무 비교돼서요.“
”연예계는 승자 독식이니까요.“
잘 모르는 팀, 특히나 무명팀은 거론할 때 주의하라고 했던 윤팀장도 여기는 인적이 없어 괜찮다고 생각했는지 나에게 주의를 시키거나 탓하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
”인기야 그렇다 쳐도 똑같은 날 데뷔하고 컴백한 새별너울이랑 엔젤릭 음방, 라디오 스케쥴만 봐도....“
”사장님.“
윤팀장은 한숨을 길게 내쉰다.
그리고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내가 아니 먼 곳을 응시하며 말했다.
”지금 사장님은 낙하산으로 합격하고 면접에서 떨어진 사람 동정하고 있습니다. 스케쥴, 특히 방송 스케쥴은 동등한 조건에서 공정한 경쟁을 통해 획득하는 게 아니에요. 인기, 인맥, 배경 등을 동원해 한정된 자리를 차지하고 빼앗는거죠. 엔젤릭이 음방 하나 더 나가면 누군가는 음방 하나 못 나가게 됩니다. 새별너울 스케쥴빼서 엔젤릭 줄 거 아니면 걱정도, 동정도 하지 마십시오. 그건 대중들이 하는거지 우리같은 사람들이 하면 안됩니다.“
그렇다,
새별너울 스케쥴을 위해 나이사님, 윤팀장이 뻔질나게 방송국 드나들고 피디들에게 아부했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나와 누나까지 방송국에 다녔다.
그래놓고, 지금 갓 데뷔시킨 신인그룹 스케쥴 좀 잡았다고 어쭙잖게 남이나 동정하고 있었다.
나 요즘 왜 이렇게 멍청하고 바보가 된 거지.
방금 윤팀장이 말한 승자독식.
뜨면 대박 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나 하나 살아남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눈물은 필연적이라는 의미였다.
”맞네요, 연예계에 발을 들인 이상, 위선적인 싸구려 동정심으로 남들 걱정할 게 아니죠.“
”표현이 조금 과격하긴 하지만, 네. 그겁니다.“
”오늘은 어째 윤팀장님한테 계속 혼나기만 하네요. 초보 사장과 초보 로드 데리고 스케쥴 뛰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윤팀장이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피식 웃는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윤팀장은 얼마 남지 않은 커피를 모두 마시고는 커피캔을 흔들며 남은 게 없는 걸 확인하고는 말했다.
”돌아가죠. 슬슬 카메라 리허설 준비해야 해요. 이제부터 바빠질 시간이죠.“
먼저 대기실을 향해가는 윤팀장의 등을 향해 말했다.
”윤팀장님,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어제는 시연이한테, 오늘은 윤팀장한테 혼났다.
두 사람 모두에게 참 고마웠다.
드디어 방송이 시작되었다.
나는 무대 옆 출연자 통로가 아닌 대기실TV를 통해 방송을 보기로 했다.
내 주위는 첫 무대를 마치고 온 엔젤릭과 새별너울 다음 출연자인 플로리아로 인해 혼잡했다.
사방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의상을 점검하고 헤어,메이크업을 살피고 있다.
스탶의 다음 순서 스탠바이하라는 소리가 들려오자 플로리아가 서둘러대기실을 나간다.
윤팀장과 시연은 무대 옆 출연자 출입구에서 그녀들을 지켜볼 것이다.
내 주위는 윤팀장을 제외한나머지 스탶들. 영애, 윤정이, 혜리, 영준이 있다.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나온 첫번째 무대가 끝나고 엠씨들이 모습을 비췄다.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간단한 토크를 한 남녀MC는 다음 순서 소개를 시작했다.
-이번 순서는 바로 어제. 어제 데뷔한 신인그룹입니다. 세린씨. 그룹 이름이 순우리말이에요. 새별너울. 이름 너무 이쁘지 않아요?
-저도 이름 듣고 너무 이쁘다고 생각했어요. 별이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밤바다가 떠오르더라구요.
-이름처럼 바다의 별빛 요정같은 분들입니다. 여러분들도 함께보시죠. 따뜻한 봄날에 찾아 온 기적같은 사랑을 노래하는 8명의 요정. 새별너울의 '기적이 내린 날'
잘해라 얘들아.
힘내
남녀 두MC의 새별너울 소개가 끝나자 카메라가 조명이 꺼진 무대를 비춘다.
무대 위에는 하얀옷을 8명이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서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다.
어두운 무대 위의 흰 의상이 밤하늘의 별빛 같은 느낌을 준다.
까만밤하늘에서 기적이 내려오듯 단 한개의 조명이 켜지며 가운데에 서 있는 서나라를 비춘다.
서나라가 노래를 시작한다.
노래가 시작되자 음악이 흐른다.
조명이 하나씩 늘어남에 따라라 새별너울도 한명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서나라의 시작 파트가 끝나자 전주가 흐른다.
밤하늘 같던 무대가 조명이 바뀌고 어느새 화사한 봄이 되었다.
전주가 시작되자 새별너울은 하얀 꽃잎이 흩날리듯 춤을 추고 대형을 바꾼다.
전주가 끝나자 강아영이 첫A 파트를 노래한다.
그 뒤를 박윤미 박서정 이진아 최수현이 잇는다.
후렴이 시작되고 민효정 한지윤이 노래한다.
흩날리던 꽃잎이 이제는 강하게 휘몰아치며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새별너울의 메인보컬 서나라가 후렴구의 마지막을 노래한다.
후렴에서의 고조된 감정이 거짓말같이 사라지며 어느새 따뜻한 미풍이 불고 있다 다시금 바람에 몸을 맡긴 꽃잎들이 살랑살랑 휘날린다.
두번째 파트가 시작된다.
이번에는 최수현부터다.
평온함 속에서 봄의 햇빛을 만끽한다.
따뜻한 미풍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후렴구가 다가올수록 다시 감정이 고조된다.
자신에게 찾아온 기적 같은 만남과 사랑을 놓지 않으려는 하얀 꽃잎들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아무리 바람이 세차도 그녀들은 물러나지 않는다.
후렴구가 끝나고 간주가 시작되면서 강렬함이 이어진다. 아까와 같이 한순간의 꿈이 되어사라지지 않는다.
메인댄서 박서정이 가운데에서 대형을 이끈다.
새별너울의 팔, 다리 움직임뿐만이 아닌 손가락, 손끝, 흩날리는 머리카락, 눈빛, 표정 모두가 지금의 감정을 표현한다.
박서정의 뒤를 이어 한지윤. 민효정이 대형을 이끈다.
박윤미로 시작된 하이라이트의 시작파트는 한지윤을 지나자 감정의 최고조에 다다른다.
서나라가 자신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가창력으로 곡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다.
이제 바람에 흩날리지 않는다.
바람은 그녀들의 것이 되었다. 그녀들이 바람이다.
하이라이트가 지나고 곡의 마지막 부분이 찾아오자 강아영이 대형의 가운데에서특유의 나릇한 느낌으로 따뜻함과 안정감을 표현한다.
"사장님 애들 너무 잘했어요. 애들 다 너무 이뻐요"
옆에있던 윤정과 혜리가 서로 손뼉을 마주치고 펄쩍 뛰면서 좋아한다.
그녀들은 심혈을 다해 한껏 치장시킨 자신의 작품에 아주 만족했다.
새별너울은 내 우려가 무색할 정도로 정말 잘해주었다.
내가 한 건 없다.
그저 기회를 주었을 뿐인데 그녀들은 기대 이상으로 잘해주었다.
새삼 그녀들이 우리회사를 선택해 준게 정말 감사했다.
나는 무대를 마치고 돌아오는 새별너울을 맞이했다.
잘했다 못했다 굳이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미소지은 채 그녀들을 향해 손바닥을 보이며 팔을 들어올렸다.
짝
짝
짝
조금 전 무대를 나갈 때와 마찬가지로 한명씩 들어오며 나에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과 환한 미소가 어우러진 그녀들의 얼굴은생동감 있고 밝았으며 아름다웠다.
"사장님 어떠셨습니까?"
만연에 미소를 지은 채 새별너울의 뒤에 들어온 윤팀장이 물었다.
"윤팀장님은 어떠셨어요?"
나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반문했다.
만족한 듯한 그의 감상이 듣고 싶었다.
"감동했습니다. 제가 보아 온 그 아이들이 정말 맞나 싶더군요. 쇼케이스 때와는 또 달랐습니다. 정말 하루하루가 다르게 성장합니다.“
"저랑 같으시네요. 새별너울은 정말 무대 체질이에요.“
"이제야 사장님의 마음을 알 거 같군요. 저 아이들이라면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데뷔시킨 게 정답이었습니다."
윤팀장은 나 이상으로 새별너울의 무대에 감동한 것 같았다.
기대치가 나보다 낮았기에 더 그런 거 아닐까 싶다.
그는 이제 신뢰가 가득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도 많이 불안했을 것이다.
첫 그룹을 내고 3개월만에 신인을 내보낸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직이 잦은 업계라고 하지만 원한이라도 있지 않은 한 자신의 회사가 망하길 바라는 사람은 없다.
"이 회사 직원이 아니라 한 명의 아이돌 팬이자 가요계 종사자로서 기대가 되는군요."
윤팀장이 코디를 둘러싸고 무언가를 재잘재잘 얘기하고 있는 새별너울을 바라보던 나에게 말했다.
"새별너울이요?“
"아니요. 새별너울이 성공할 거라는 건 이제 전혀 의심치 않습니다. 제가 기대하는 건 사장님입니다. 리드레아, 새별너울보다 사장님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주실지가 더 기대됩니다."
윤팀장은 나에 대한 신뢰도가 맥스를 넘어 이제는 맹신의 영역으로 가고 있는 거 같았다.
아직 수치로 나온 결과는 하나도 없는데 겨우 음방 무대 하나 봤다고 이렇게 강한 믿음을 보내니 만약 내가 믿음을 깨기라도 하면 어떻게 될지 살짝 부담도 된다.
리드레아 새별너울 말고는 더는 누구 키울 생각도 없는데.
"전에 유앤스카이 팬이라고 그러셨죠. 아직도예요?”
나는 아까 윤팀장이 한 말을 기억하고 아이돌 팬이라는 부분을 다시 끄집어냈다.
"제가 이 일을 하게 된 이유도 유앤스카이 팬이어서 그랬습니다. 저나 우리 회사 사람들뿐만 아니라 여기 이 방에 있는 사람들한테 물어봐도 저 같은 사람들 많을 겁니다"
유앤스카이는 20년 전쯤에 활동했던 걸그룹이다.
해체되어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멤버 중 1명이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윤팀장님을 위해서 새별너울과 양수영씨가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봐야겠군요."
"제가 이 일한 지 몇 년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벌써 만나봤죠. 사인도 받았습니다. 하하"
나름 신경을 써준다고 유앤스카이 출신 배우와 만날 수 있도록 힘써보겠다고 하니 벌써 만나봤단다.
군 시절 맞선임인 그 인간한테도 밀리는 요즘인데 연예계 짬밥찌끄레기인 내가 짬 찰대로 찬 사람들을 이기기 힘들다.
"생각 없으시면 관두고요."
"굳이 관둘 거까지는 없죠"
20여년이 지났지만 윤팀장의 팬심은 여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