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화 〉200화 성인군자
버드윙에 달랑 두 명 있던 매니저가 한방에 싹 사라지자, 급히 사람을 구해야 했다.
아직 컴백이 멀었으니 실장, 팀장급은 천천히 구한다 해도, 당장 애들을 관리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일 없이 놀고 있고, 성격과 힘이 장난 아니어서 남자애들 6명을 휘어잡을 수 있는 사람을 급히 투입했다.
다은이, 다연이 할아버지다.
매니저로 쓰려는 게 아니라 숙소와 연습실에서 애들 빗나가지 않도록 감시하는 감시인 역할이 전부였기에 그에게도 그다지 부담가는 일은 아니었다.
손녀 둘 뺏어가고 남자새끼들을 6명이나 맡기냐고 투덜거렸지만, 서울 올라오고 다은이, 다연이 만날 때 외에는 심심해 죽으려는 양반이었기에 버드윙으로 등을 떠밀어 보냈다.
겉으로는 하기 싫어 죽으려고 하지만, 일거리 줄 때마다 은근히 좋아한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
웨이븐 애들이 엇나간다거나 반항하지도 않겠지만 설령 반항한다 해도 선장으로 억세고 거친 선원들을 휘어잡던 경력이 수십 년이니 애들 6명쯤은 우스울 거다.
수진 얘기를 들어보니 버드윙에서도 욕쟁이 할아버지로 지내는데, 애들이 무서워하기는커녕 재밌다고 좋아해서 해고 폭풍으로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많이 밝아졌단다.
또, 혼자 집 청소하고 관리하던 버릇이 어디 안 갔는지, 버드윙에 가자마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고장 난 데 고치고, 페인트 벗겨진 데는 페인트 칠까지 다 했단다.
아저씨가 버드윙에 나가기 시작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조금 시간이 걸릴 거로 생각한 팀장도 구했다.
작은 기획사에서 현장 스케쥴 관리하다 대형기획사에 스카웃 비스무레 하게 옮긴 사람이었는데, 3년간 로드 비슷한 일만 하다가 때려쳤다고 한다.
속아서 갔더라도 보통은 로드매니저 2년 정도 하면 직급을 올려주니 버틴 거였는데, 3년을 잡일만 시켜서 결국 그만뒀다고 했다.
듣기로 거기 공채출신 매니저들과 중간에 들어온 매니저들 간의 알력 다툼과 차별이 좀 있었던 것 같았다.
덕분에 경력이 꼬여 팀장 달고 피디 만나고 다녀야 할 사람이 스케쥴 매니저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으나. 버드윙에서 팀장을 구한다는 말을 듣고 월급이 짜도 좋으니 팀장만 시켜주면 열심히 하겠다고 지원한 것이다.
그는 면접에서 다양한 기획과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경력이 꼬였더라도 경험은 어디 가지 않는다며 충분한 인맥을 어필한 덕에 수진의 마음을 사로잡아 팀장이 되었다.
솔직히 1년이나 1년 반 정도 팀장으로 경력 쌓고 더 좋은 대로 옮기겠다는 게 뻔히 보였지만, 수진은 내년까지 해봐서 희망이 보이면 월급 올려줘서 잡던지 다른 사람 구하면 되고, 잘 안되면 애들 군대도 가야 하니 접을 거라면서 신경 쓰지 않았다.
“오늘 보니 준비가 끝난 것 같아서 안심했어. 모레가 녹음이니 오늘, 내일 보컬 연습은 무리하지 말고 목 잠기지 않을 정도로만 하면서 목 관리에 주의해. 유세혁 너는 긴장만 안 하면 A급 메인보컬이니 마인드 컨트롤에 특히 신경쓰고. 알았지?”
“네”
“트레이너 님. 저는 다 끝났으니 애들 부탁드릴게요.”
“예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녹음을 이틀 앞두고 전에 하지 못했던 웨이븐의 보컬 테스트를 했다.
요즘은 아이돌 인식이 나아졌다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아이돌에 편견이 강하면서도 실력에 엄격하다.
들어보지도 않고 아이돌은 노래 못하고, 아이돌 노래는 별로라고 하면서도 정말 아이돌이 노래 못하면 신랄하게 깐다.
기획사들이 실력 있는 메인보컬에 목매는 이유도 다 이래서다.
춤 잘 추는 건 아이돌이라면 디폴트 수준으로 당연한 거라, 어지간히 잘해서는 거론도 잘 안 된다.
이민준이 나가고 새 메인보컬로 발탁된 유세혁은 긴장으로 음 이탈을 하는 버릇이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막상 녹음하면 긴장으로 버릇이 다시 나올 수도 있지만, 한번 밖에 기회가 없는 라이브가 아닌 될 때까지 할 수 있는 녹음이기에 걱정하지는 않는다.
정 안되면, 기계로 만져서 붙여도 되고.
웨이븐을 트레이너에 맡겨두고 나는 연습실을 나와 사무실로 갔다.
사무실에서는 주인아저씨와 오늘도 버드윙에 따라 온 다은, 다연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수진과 하린은 그들을 보며 웃고 있었다.
“이 미친년이. 야 이년아 그게 할애비한테 할 말이야?”
“요즘 우리 뭐하고 사는 지 물어본 건 할아버지잖아.”
“무슨 일인데요?”
“이제 겨우 20살밖에 안 된 미친년이 내년에 나 증손주 보여주려고 열심히 한다고 하잖아.”
“다연아, 밖에서는 말조심해야지.”
어차피 이 아저씨한테는 못 볼 꼴도 보여줬기에 숨길 것도 없다
여자가 많다는 건 알았지만, 설마 모녀까지 있었는지는 상상도 못 했는지, 처음 수진, 하린도 내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거의 두 시간을 욕하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끼리만 있는 게 아닌 밖에서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봐라. 이년아. 이 양심 없는 새끼도 눈치를 보잖아.”
“제가 양심이 없긴 뭐가 없어요. 산삼값도 드렸고, 여기서 일하시는 것도 월급에 차비, 식비 다 챙겨드리잖아요. 누가 보면 공짜로 노인네 부려 먹는 줄 알겠네. 노인네인 거 뻔히 아는데 끝까지 어르신 말고 아저씨라고 불러달라는 누가 더 양심 없는 거죠”
“싸가지 없는 새끼. 날이 갈수록 주둥아리만 늘어서 꼬박꼬박 다 따지고 들어.”
저렇게 방방 날뛰며 화를 내면서도 밖이라고 여자 이야기는 하지 않는 걸 보면 눈치는 확실한 양반이다.
여기가 버드윙이 아닌 아저씨네 집이었으면 진작에 여자가 몇명이나 있으면서 손녀딸들을 뺏어갔네 뭐네 했을거다.
그러니 나도 아저씨와는 편하게 얘기할 수가 있다.
옆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수진이 웃으며 아저씨에게 말했다.
“관리인님 그만 하세요. 재윤씨 저희 버드윙에 중요한 사람인 거 아시잖아요. 다른 사람들 들을까 무서워요.”
그는 매니저가 아니고, 그렇다고 팀장, 부장, 같은 직급을 붙이기도 애매한 위치이기에 관리인으로 불린다.
버드윙도 비즈니스 하는 곳인데 할아버지나 아저씨라고 부르면 진지함이 떨어지는 거 같아 고민 끝에 붙인 직책이 관리인이다.
언뜻 들으면 수위나 경비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내부인력 및 시설 관리담당의 준말이라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만족하고 있다.
“이 새끼한테 삼일은 욕해야 하지만, 연사장이 그만 하라면 그만해야지.”
참 이게 신기하다.
그는 버드윙에서 일한 후부터 수진을 착한 막내동생 같다며 마음에 들어 하고 말도 잘 듣는데, 딸이 아닌 막내동생이라는 거 보면 아저씨도 양심 없는 건 확실하다.
“박팀장이랑 최선주씨는 어디 갔어요? 저 연습실 가기 전에는 있었는데 안 보이네요.”
“박팀장 그놈도 싹수가 노래. 여기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선주 뒤만 졸졸 쫓아다녀. 하여간 남자 새끼들은 다 똑같아.”
“관리인님. 좀 전에 말씀 드렸잖아요. 박팀장이 선주 따라간 게 아니라, 자켓 사진 맡아 줄 사진작가 만나러 가는 길에 선주 세무사 사무실 가는 거 태워다 주는 거예요.”
“흥.”
노인네 심통은.
웨이븐 애들한테는 입은 거칠어도 잘해준다는데, 나 때문인지 여자가 근처에 있는 남자는 다 싫은가 보다.
박팀장은 태워다 준것 뿐인데 욕먹기 너무 억울한거 아닌가?
심통 난노인네랑 노는 것도 즐겁지만, 버드윙에 일하러 온 만큼 이쯤에서 그만 하고 수진에게 말했다.
“애들 괜찮던데요. 연습 많이 했나 봐요. 녹음 예정대로 할 수 있겠어요.”
“다행이네요. 세혁이는 어때요?”
“똑같죠. 긴장만 안 하면 잘할 거에요.”
“애가 원래 좀 기가 약한데 이민준한테 눌리고 살아서 더 그래요.”
“아이돌 하는 애가 자신감 없다는 건 말이 안 돼죠. 옆에서 잘한다, 잘한다 계속 해주면 자기도 잊고 있던 자신감 금방 되찾을 거에요.”
오늘 보컬 테스트 결과와 박팀장에 대한 평가, 로드매니저 구하는 일들을 논의하는 도중 옆에서 어이없다는 듯 콧웃음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참나.”
얌전히 잘 듣고 있다가 갑자기 무슨일인가 싶어 나와 수진이 동시에 고개를 돌려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아저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손을 들어 사과했다.
“아, 일하는 데방해해서 미안해. 나도 이 미친 세계에 적응했는지 연사장한테 이름 부르면서 반말하는 새끼가 눈치 본다고 존댓말 하니까 어색해서 나도 모르게 그랬어. 원래는 이게 당연한 건데 말이야.”
처음에는 아저씨 앞에서 수진아 라고 부르며 반말했다가 싸가지 없다고 욕을 먹었었다.
그때 수진이 나에게 반말듣는 게 어려진 것 같아 좋다고 했고, 저 양반도 자기를 어르신이나 할아버지가 아닌 아저씨라고 불러달라고 하는 사람이니 그 이후로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조심한다고 수진에게 연사장님, 연사장님 하면서 존댓말을 하니 어색한 모양이다.
“여기는 우리만 있더라도 옆방에 사람 있으니 가능한 조심하는 거죠. 연습실에 있는 멤버나 트레이너가 화장실 가다가 들을 수 있잖아요. 최선주씨가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고요.”
“알아. 그래서 미안하다고 했잖아. 내 입에서 미안하단 소리 1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거니 귀한 말 들었으면 닥쳐. 에이. 재수 없는 니놈 쌍판 그만 보고 옆방 가서 애들 댄스인지 뭔지 지랄하는 거나 봐야겠다.”
아저씨가 멋쩍은 듯 괜히 투덜거리며 사무실을 나가고 문이 닫히자 그의 뒷모습을 미소 짓고 지켜보던 수진이 말했다.
“관리인님 말만 저렇게 하지 정이 많은 분 같아요. 저한테도 재윤씨가 속 썩이면 패줄 테니 말하라고 했고, 웨이븐 연습 끝나면 마시라고 물이나 음료 같은 거 잊지 않고 준비해줘요. 밥은 잘 먹었는지, 반찬은 뭐였는지 꼬박꼬박 확인도 하시죠. 엊그제는 저 몰래 애들 고기 사 먹으라고 용돈 주시길래 모른척했어요.”
하여간 저 츤데레 영감.
하는 짓이 완전히 운수 좋은 날 김 첨지랑 똑 닮았다.
“나만 싫어하는 건가?”
“관리인님 보는 앞에서 다은이, 다연이 개통식 했다면서요. 나중에 재윤씨 보는 앞에서 우리 딸이 다른 남자랑 개통식하면 재윤씨 기분이 어떻겠어요?”
“으악 끔찍해. 있지도 않은 딸인데 누군지도 모를 남자를 죽이고 싶어졌어. 죽일 거야. 기필코, 반드시, 무조건 죽일 거야.”
양심 없다고 해도 상관없고, 니가 할 말이냐고 욕해도 상관없다.
잠깐, 아주 잠깐 상상했을 뿐인데, 진심으로 얼굴 모를 남자를 벌써부터 죽이고 싶어졌다.
“거봐요. 그러니 관리인님 정도면 성인군자죠.”
“알아, 아니까 나도 아저씨한테 잘하는 거야. 아저씨는 내가 예예 하면서 공손한 것보다 깐죽되는 걸 더 마음 편해하니 맞춰주는 거고. 그러니 그런 끔찍한 이야기는 두 번 다시 하지 말아줘. 잠깐 상상했는데 아직도 소름 돋고 주먹이 부르르 떨려.”
“후후. 재윤씨 아이 생기면 얼마나 팔불출 아빠가 될지 알겠네요. 걱정 마세요. 저뿐만 아니라 여기 하린이, 다은이, 다연이, 다른 애들 전부, 아이 생기면 가정교육 확실히 시킬 거에요.”
“응, 제발 부탁할게.”
일 하러 왔다가 끔찍한 이야기를 듣고 몸을 부르르 떨어야 했다.
여자가 많은 만큼 아이도 많을 테고, 세월이 지나면 하나둘 제 짝을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는게 자연스러운 일이란 걸 알지만, 그래도 자식의 첫 경험 같이 몰라도 될 일은 계속 모르고 싶다.
으아, 20년 후에 일어날 일로 셀프 고통을 받아야 하다니.
이게 바로 아저씨가 말한 업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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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사님과 최경식 그리고 기획팀 장윤철, 김미연을 모아놓고 앞으로 리드레아의 컴백 활동에 대한 회의를 했다.
오늘은 컨셉이나 음악, 의상이 아닌 프로모션, 홍보 관련이 의제라 코디와 리드레아는 제외했다.
“이번 활동은 리드레아가 원히트원더로 끝날지, 명실상부한 인기아이돌로 완전히 자리매김할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활동입니다. RAZRA 측에서 모델 연장 계약은 물론, 리드레아 앨범 프로모션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준다고 했으니 장윤철씨랑 김미연씨가 RAZRA측과 연락 맡아주세요.”
RAZRA는 리드레아가 여름특별시즌 한정으로 모델을 맡은 패션 브랜드다.
아직 여름이 다 끝나지도 않았지만, RAZRA에서 리드레아와의 모델 계약을 연장하고 싶다고 연락해왔다.
리드레아의 이번 컴백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RAZRA의 홍보효과도커지는 것이기에 RAZRA는 앨범 프로모션도 참여해주겠다며 적극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혀왔다.
다음 앨범 곡 중에 여름 이미지에 걸맞는 곡을 자사 매장에서 틀고, 앨범이름과 타이틀 곡 제목을 사용한 카피라이트를 만들어 브랜드와 리드레아를 동시에 홍보하기로 했다.
제법 규모 있는 중견기업이 붙어서 홍보를 도와주겠다고 하니 우리로서는 반가울 뿐이다.
대신 나중에 RAZRA와의 계약이 끝나도 상도의 때문에 몇 년간 다른 패션 브랜드 모델은 못 하는 거지.
“나이사님, 리드레아 컴백 쇼는 좀 알아보셨어요?”
”어제 방송국 피디 만나서 우리도 할 수만 있다면 컴백쇼를 하고 싶다라는 식으로 슬쩍 물어봤는데, 아직 리드레아의 이름값으로는 무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두어번 정도 더 활동하고 지금 같은 인기 유지된다면 골든타임 방송도 가능할 테니 그때 해보라고 하더군요. 아직 히트곡이 하나고 음판으로 볼 때 팬덤이 다른 인기 그룹에 비해 부족한 게 약점입니다.“
후우..이건 어쩔 수 없다.
아무리 팬덤이 많이 늘었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지표가 없다.
가장 최근 지표인 리드레아 첫 앨범 초동은 만 5천으로 새별너울보다 겨우 3천장 많았을 뿐이다.
리드레아는 레몬로즈 시절의 이미지 소비와 한물 간 아이돌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었지만, 새별너울은 음원 강자 리드레아의 후배그룹이라는 관심과 플로리아라는 라이벌이 있었기에 초동만 볼 때는 큰 차이가 없었다.
그래도 음원이 대박 나면서 꾸준히 팬도 늘어 총판은 8만을 넘었다.
새별너울이 여러 호기와 화제를 타고서도 총판이 3만이 안 되니, 여기서 리드레아와 새별너울의 격차가 나온다.
리드레아도 지금은 초동 5만은 넘을 걸로 평가받지만, 가장 최근 지표가 이런 수준이니 음원과 총판 하나만 가지고 컴백쇼를 하자며 방송국을 설득할 근거로는 부족하다.
3년 전만 해도 총판 8만이면 그해 걸그룹 다섯팀 안에 드는 성적이었지만, 최근 1, 2년 새에 걸그룹 음판이 급격하게 늘어 지금은 총판 8만이면 대략 8~10팀 정도가 가능하다.
걸그룹 세 손가락도아니고 열 손가락 수준의 팬덤이면 방송국을 통해 컴백쇼를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노래를 좋아하는 것과 아이돌을 좋아하는 건 엄연히 다르므로, 방송국으로서는 최소한 시청률을 보장할 수 있는 열성적인 팬덤의 수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할 수 없네요. 성급하다는 걸 알면서도 기회만 된다면 해보려고 했는데 역시나 방송국은 냉정하게 판단하는군요. 컴백쇼는 포기하죠. 대신 쇼케이스 규모를 전보다 더 늘리는 쪽으로 가요. 그리고 이번 활동을 통해 팬덤 규모가 파악되면 그에 맞춰 늦어도 12월 초에는 미니 콘서트 수준의 팬미팅을 할 계획이니 미리미리 공연장과 업체 알아보고 아이디어도 생각해 주세요.“
”11월에 새별너울 컴백이니 새별너울 준비랑 팬미팅 준비가 겹치겠군요.“
”리드레아 컴백준비 끝나면 바로 새별너울 준비. 새별너울 준비 끝나면 바로 팬미팅 준비 연달아 할 겁니다. 기획팀은 쉴새 없이 일해야 할 테니 미리 양해 구할게요. 고생은 많겠지만 제가 추석과 연말 보너스로 확실하게 보답하겠습니다.“
이런 무모해 보이는 계획이 가능한 이유는 준비할 때는 회사 직원들이 바쁘지만, 막상 활동 시작하면 매니저들이 뛰고, 직원들은 조금 한가해지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활동 중에도 직원들도 나설 일이 많았지만. 이제는 각 그룹 담당 매니저들이 늘어 활동 중에 직원들이 서포트 할 일이 많이 줄었다.
각 팀마다 매니저가 4명이 돼서 나이사님과 경식씨 팀, 얼마 전 팀장에서 실장으로 승진한 윤실장팀만으로 리드레아와 새별너울 커버가 가능하다
아마 가장 바쁜 사람은 윤정과 혜리가 될 것이다.
리드레아 의상준비 끝나면 바로 새별너울, 새별너울 끝나고 팬미팅 의상, 팬미팅 의상 끝나면 리드레아, 새별너울 13명의 연말 시상식들 의상.
아마 윤정, 혜리는 12월 31일 전에 과로사 할 지도 모른다.
외부 스타일리스트팀을 붙여줬어도 영애부터 다은, 다연까지 새 여자들이 올 때마다 스타일리스트 하라며 꼬시는 대에는 본능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사장님, 정말 안 되요. 불가능이에요. 리드레아, 새별너울 전부 연말 시상식 개근할 가능성이 큰데, 시상식은 레드카펫 의상이랑 무대의상도 다르다고요. 저희가 죽더라도 다 할 수만 있다면 하겠는데, 이 일정이라면 제때 못 할 가능성이 커요. 그러니 팬미팅 만이라도 내년에 해요. 네? 제발요.“
아니나 다를까. 회의에서 나온 팬미팅 이야기를 듣고 윤정과 혜리가 사장실로 쳐들어왔다.
나도 생각없이 지른 건 아니기에 방방 날뛰는 그녀들을 진정시키고는 차분히 내 계획을 들려주었다.
”스타일리스트 팀 하나 더 붙여줘도 힘들어? 지금은 너희가 모든 의상을 직접 고르고 제작하는데, 각각 전담팀 붙여서 너희는 자켓, 뮤비 의상 같은 중요한 것만 하고, 나머지는 컨셉 공유해서 스타일리스트팀 사람들한테 시안 받고 컨펌하는 형식으로 하면 어때? 그 사람들도 지금처럼 단순 심부름꾼보다는 직접 아이디어 내서 만드는 걸 더 좋아할 거고.“
”손 빌리는 수준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하청을 하자는 건데. 디자인, 제작 전부 맡기기에는 퀄리티가 걱정되니 그렇죠. 의상 하나만 이상해도 코디 욕먹는 거 아시잖아요.“
”그건 너희들이 컨트롤 해야지. 그리고 외부 스타일리스트 팀 계약할 때 포트폴리오 보고 면접한 거 다 맡기고 써먹으려고 한 거지, 지금처럼 어시 비스무레 한 심부름꾼으로 쓰려는 게 아니었잖아.“
”언니 어때요? 사장님 말씀대로 하면 미팅은 늘어날지언정 전체적으로 저희 일이 확 줄긴 해요. 팬미팅, 시상식 준비도 가능하고 코스튬 만들 시간도 생겨요.“
윤정은 턱에 손을 대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외부 스타일리스트 팀을 데려올 때, 몇몇 의상은 맡길 줄 알았다.
걸그룹이 한팀도 아니고 두팀이나 있는데, 음방 10개 한다고 부족한 일손으로 의상 10개 전부 자기들이 하는 건 너무 과부하가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들은 어시 부려 먹듯 사소한 일만 시키고 있어서 외부 팀 쪽에서 불만이 생기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기회에 그녀들을 코디 겸 관리자 위치로 끌어올리고 좀 더 다른 사람들에게 일을 분배하게 만들 계획이다.
”알았어요. 외부팀이 불만있는거 알면서도 저희가 붙잡고 있었던 건 올해는 저희 스타일에 익숙해지게 만들고, 내년부터 맡기려고 그런거였어요.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됐으니 일정을 당길게요.“
”잘 생각했어. 그럼 제일 먼저 스타일리스트 팀부터 구해야 할 텐데, 혹시 생각해둔 팀 있어? 아니면 전처럼 공개모집할래?“
”지금 팀은 리드레아 일하고 있으니 리드레아 맡기는 걸로 하고 새별너울 맡을 팀은 천천히 알아볼게요. 당장은 새팀 찾고 심사하고 고를 여유가 없어요. 적어도 자켓, 뮤비 촬영이 끝나야 시간이 생길 거 같아요.“
”알았어. 편한 대로 해.“
사람 부린다는 게 처음에는 어색하고 시행착오도 겪겠지만, 익숙해지면 이것만큼 편한 게 없다.
나도 입으로만 나불거리고 생색은 다 내면서 일은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다.
윤정이 쟤도 지금은 불안해 하지만, 곧 익숙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