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08화 〉208화 연구 (208/425)



〈 208화 〉208화 연구

”누나,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거지?“

”아니, 제대로 들었어.“

누나가 전해준 이야기를 듣고는, 내 귀가 멀쩡한 건지 의심되어 귀를 몇  손가락으로 후벼 판 뒤 다시 한번 물었다.

”누나, 방금 한 얘기 제발 농담이라고 해줄래?“

”미안한데 사실이야. 저쪽은 진지해.“

”그러니까, 누나, 영애, 수진의 주치의이자, 나이사님의 처제이며 사모님 동생인 양희선 선생님이 우리를 연구하고 싶다는 거고 누나는 나만 좋다면 허락한다는 거지?“

”제대로 들었네.“

병원에서 본 양희선은 말도 조심조심하고, 이 사람  사람 눈치를 보는 게, 괜히 내가 미안해질 정도였는데, 그런 사람이 이런 부탁을 할 줄은 몰랐다.

너무 뜻밖의, 그리고 어이없는 부탁인지라 가부는 둘째치고 이유가 궁금했다.

”우리를 연구해서 무슨 이득이 있다고. 아니 애초에 의사가 우리를 연구할 게 뭐가 있대?“

누나는 손에 쥐고 있던 폰을 보며 설명했다.

”여기 나한테 보내  연구계획서에는 산부인과 의사로서 산모의 정신적, 육체적안정을 위해 부부생활에 관련된 카운셀러의 역할을 하기로 하는데, 우리 커플이 화목하게 지내는 이유를 연구해 다른 부부, 커플들에게 도움이 될  있는 점이 있는지 알아보고 싶대. 또, 피임이나 임신 중 섹스같이 환자에게 성에 관련된 조언을 해야 할 때가 많은데, 우리를 조사하여 중 성적인 면에서 아쉬운 점이 없는지, 없다면 어떤 성생활을 하는지 연구해서 참고한데. 이외에도 몇가지 더 있는데  줄기는 이 정도야.“

누나가 지금 읽는 연구계획서가 몇 페이지짜리인지 몰라도 어쨌든 저런 것까지 작성해 보내는 정성이 갸륵해도, 흔쾌히 허락하기에는 심상치 않은 내용이다.

”한마디로 우리 사생활을 다 파고 싶다는 말이네.“

”돌려 말하긴 했지만 그런 거지. 그래도 너무 기분 나빠하지는 마. 나한테 계속 미안하다고 하면서 조심스레 물어보더라고. 너한테도 원래는 회사에 와서 직접 부탁하겠다고 하는 거 내가 대신 말해주겠다고 한 거야.“

”기분 이전에 지금은 아는 사람들끼리 대화나 주고받는 정도지만, 글이나 자료로 남기면 유출될 위험이 너무 커져서 그래.“

”그 얘기도 했어. 환자 정보 비밀엄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도 나오는 의사의 기본 덕목이고 의료법으로도 명시돼 있다면서, 자기는 논문을 써서 발표하려는 게 아니라, 우리를 참고해서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점이 있는지 찾고 싶은 것뿐이래. 그래서 조사한 내용도 섹스는 데이트, 임신은 청혼 이런 식으로 단어도 다 바꿔서 쓰고, 남자 1명과 24명의 여자가 아니라 24쌍의 커플들을 조사한 걸로 할거래. 다른 사람이 보면 무작위로 선발한 20~30대 연령대인 24쌍의 커플들을 대상으로 첫 만남부터 결혼까지 걸린 시간, 과정을 설문 조사한 것처럼 만든다고 했어.“

”나름 머리 많이 썼네.“

”우리 설득하려고 준비 많이 한 거지. 나한테 허락해 달라고 보낸 자료 제목도 현대 젊은 세대 커플 유형 조사 협조 요청서야. 내가 너한테는 풀어서 말해준 거지, 이거 보면 내용도 남들이 보면 보통 커플한테 연구 참여를 부탁하는 걸로 보여.“

언제부턴 준비한 건지 모르겠지만, 궁리를 많이  티가 났다.
사모님이 동생에게 우리 얘기를 해준 게 3일 전이고, 내가 병원에 다녀온  어제다.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준비한 걸 보니 역시 똑똑한 사람은 다르구나 싶다.

이만큼 우리가 궁금한 건지,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큰 건지는 모르겠지만, 정성은 인정할만했다.
그러니 누나도 믿음을 가지고 나에게까지  건을 가지고  거고.

누나 마음에 안 들었다면 나한테 물어볼 것도 없이 누나 선에서 아웃시켰을 거다.

책상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던 나는 금방 결정을 했다.
나 하나 조사하는 게 아니라 우리 전부다.
나 하나의 의견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의 의견을 다 들어봐야 한다.

”결정했어. 믿기로 한 이상 계속 믿어야 하고. 딱히   것도 없어. 대신 여자들 전부 물어봐서  명이라도 싫다고 하면  얘기는 거절이야.“

”알았어. 네 말 대로 할게.“

용무를 마치고 자기 사무실로 돌아가는 누나가 사장실을 문을 열며 나를 보며 말했다.

”내 예상에는 아마 다들 좋다고  거야.“

말없이 누나를 빤히 쳐다보며 눈으로 이유를 묻자, 누나는 자신의 배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밖에서 우리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나 이사님. 진선 언니, 쌍둥이 할아버지 셋뿐인데  이사님, 할아버지는 그런 말을 하기 적당하지 않고, 진선 언니는 나랑 리드레아 말고는 아직 친한 사람이 없지. 그런데 전부 한 명씩 세세하게 인터뷰한다니 꺼릴 것 없이 실컷  여자라고 자랑할 기회잖아.“

누나를 제외한 여자들은 우리끼리 아니면 남에게 사랑하는 사람,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말 못 한다.
아이를 낳아도 아빠가 누군지도 말 못 하고 미혼모로 살아야 한다.
겉으로는 내색  해도 속으로는 스트레스일 것이다.

누나가 사생활을 다 파헤치겠다는 요청을 자기 선에서 끊지 않고 나에게까지 가져오고 은근히 양희선을 편들어주는 뉘앙스를 풍겼던 건 정성껏 준비한 양희선이 갸륵해서도, 나 이사님, 사모님과의 관계를 생각해서도 아니었다.

자신의 그림자에 가려져야 그녀들에게 조금이라도 빛을 쬐어주기 위해서였다.

”그런 거였구나.“

”그래.그러니 이 일에 대해 걱정하거나 부담 갖지 마. 모두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말을 마친 누나가 나가고 깍지를 낀 손을 뒤통수에 대고 의자에 기대며 생각했다.

역시 나는 누나를 이길 수 없어.
나보다 잘난 여자를 만나서 참 다행이야.

양희선 선생님의 요청을 수락하고 난 후. 희망산부인과를  이사님, 윤 실장과 의논하여 연예인, 직원 구분 없이 우리 여자들의 여성질환 검진 병원으로 지정했다.
남자들을 빼놓은  아니고, 우리 회사 직원들의 건강관리를 위해 회사 복지 차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을 병원을 하나 지정하고, 이외 여성질환에 대해서만 양희선의 희망산부인과를 덧붙인 것이다.

직원들 전원이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할  있는 적당한 병원을 양희선을 통해 소개받았으며, 양희선이 나 이사님의 처제라는 사실도 직원들에게 밝혔다.
이정도는 뒷말 나올 거리도  되는 일이기에 쉬쉬할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양희선의 병원을 모두에게 공개한 이유는 양희선과 여자들이 만날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회사 직원, 연예인들의 여성질환 건강검진 병원으로 지정됐으니 매니저들에게 리드레아, 새별너울이 산부인과에 가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으며, 나중에 기자나 팬들에게 걸리더라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

리드레아가 병원을 떠나자마자 홍가희와 임소리가 진료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양희선과 유한나는 홍가희와 임소리가 왔음에도 고개도 들지 않고 무슨 책 같은 것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홍가희는 애초부터 열렬한 환영 같은 건 받아본 적이 없으니 그런 그녀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평소와 같이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와, 역시 연예인은 연예인이에요. 그동안 본 여자들 다들 장난 아니게 이뻤는데 리드레아는 차원이 달라요.“

”유명 연예인이라는 후광효과랑 옷, 화장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거야.“

다른 사람이그랬다면 질투로 깎아내리는 걸로 여겼겠지만, 유한나는 쿨하다 못해 냉기가 느껴질 정도로 냉정한 여자라 그녀가 말했다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다.

”이쁜  맞잖아요.“

”리드레아가 못생겼다고 한 적 없어. 내가 보기에도 아이돌 중에서도 리드레아의 미모는 돋보여. 내가 말한 후광효과는 그 남자의 다른 여자들하고 비교해서 차원이 다르게 이쁘다는 건 아니라는 거지. 너 김지연씨, 허영애씨, 연수진씨 왔을때도 그랬고, BICA 직원들이라는 여자 왔을 때도 이쁘다고 난리였잖아.“

홍가희도 유한나가 원래 이런 사람임을 알고 있음에도, 같이 장단을 맞춰주면 될 걸 꼭 그렇게 딴죽을 걸어야겠냐는 투로 입을 삐쭉거렸지만, 유한나는 홍가희를 보기는커녕 양희선과 함께 뭔지 모를 책 같은 것만 보며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

홍가희는 이런 유한나가 이 병원에서 그나마 가장  대꾸를 해주는 사람이라는 현실에 좌절하며, 의자에 힘없이 털썩 주저앉으며 물었다.

”그래서 리드레아는 뭐래요? 김지연씨 다음으로  남자 여자가 된 게 리드레아였다면서요?“

”다른 여자들 하고 비슷해. 특히 니키는 빨리 그 남자 아이를 갖고 싶다고 인터뷰하는 내내 선생님한테 빨리 임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집요하게 물어봤어.“

홍가희, 임소리 모두 남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 얘기임에도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동안 인터뷰한 여자들  이랬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인터뷰했던 전시연, 코디라는 황윤정, 문혜리, 일반 사무직원이라는 이주연, 주혜민에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 각별히 주의를 요해야 한다던 쌍둥이 성다은, 성다연, 연수진의 딸 연하린, 그리고 새별너울과 전부터 병원에 다니던 김지연, 허영애, 연수진. 리드레아는 컴백준비로 바빠 좀처럼 시간을  내다가 비로소 오늘 여자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양희선과 인터뷰를 했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아요. 자기 입으로 전용보지라고 자랑하는 여자들이잖아요.“

홍가희가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지만, 처음에는 얼마나 놀랐는지 인터뷰 기록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고, 양희선과 유한나가 거짓말할 사람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이게 정말이냐고 수십 번을 물었다.

24명 모두 막말로 첩만도 못한 자기들 신세를 한탄은커녕 그의 여자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어찌나 자부심이 강한지 인터뷰 내용을 홍가희, 임소리와 공유하는 것도 주저없이 허락했을 정도다.

”선생님. 이제 24명 전부 인터뷰하셨잖아요. 소감이 어떠세요?“

한참 책을 보던 양희선은 홍가희의 질문에 고개를 들더니, 보던 책을덮고는 조심히 내려놓았고, 유한나도 그제야 숙이고 있던 몸을 일으켜 홍가희와 임소리를 보았다.

”이 연구는 실패했어요. 여기서 끝이에요.“

”네?“

”전 단순히 남자가 섹스 잘하고, 여자 좋아하고, 성격 좋고 말 잘해서 여자들이 홀린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전혀 아니에요. 논리적으로 설명할 길도 없고, 다른 남자는 그를 흉내  수 없어요. 오직 그만 가능한 거에요. 이들이 화목하게 지내는 이유를 알아내 다른 커플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했던 자체가 잘못된 시도였어요.“

이들이 어떻게 화목하게 지내는지 알아내, 다른 커플들에게도 적용하여 도움을 주고 싶다는건 신재윤을 설득하기 위한 구실이 아닌, 그녀의 진심이었다.

태교가 별게 아니다.
산모의 몸과 마음을 최대한 안락하고 편안하게 해주는  가장 좋은 태교다.
좋은 음식, 좋은 음악보다 중요한 것이 안정되고 편안한 가정이고, 이를 위한 근간이 원활한 부부 사이다.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요.  여자들은 섹스가 주는 쾌락 미쳤다거나, 야한 걸 좋아하는 여자들이 아니에요. 성에 대한 인식이 대부분 평범하고 몇 명은 보수적이에요. 그 남자에 관련된 사항에서만 이러는거예요.“

”야한 걸 좋아하는 여자들이 아닌데 그 남자 취향을 맞추려고 이러는 거예요?“

”아니요. 오히려 반대에요. 여자들이 폭주하는 걸 그가 막고 있는 거예요. 최근에도 애널섹스를 했으니 애널도 그 남자 거라는 증표로 항상 애널플러그를 하고 다니려고 했다가,  남자가 몸에 안 좋다고 강력하게 반대해서 무산됐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집에서만 하고 다니기로 합의했대요. 가장 늦게 합류한 쌍둥이도 얼마 전에 애널섹스를 하기 전까지 자기들도 빨리하기를 바랐대요.“

“그럼 남자 취향도 아닌데 왜 다들 싸구려 행세를 하는 거죠?”

“예를 들어 말해줄게요. 남자들이 펠라티오를 좋아하는 이유는 행위 자체가 주는 쾌감도 있지만, 여자가 내 것이라는 소유욕을 충족하고 만족감, 우월감이 주는 요인이 커요. 이 여자들은 반대에요.  남자의 여자라는 사실이 이들에게는 최고의 행복이고 쾌락이에요. 펠라티오를 하는 여자를 내려다보며 남자들이 정복감을 느끼듯이. 이 여자들은 그 남자의 전용보지라는 용어를 통해 그 남자의 여자라는 소속감과 안도감, 충실함을 느끼는 거에요. 일부 M성향이 있기도 하겠지만 전부가 이런 의식이라는 건 정신적인 만족이 다른 이들은 상상할  없을 만큼 크다는 거죠.”

양희선의 설명을 들을수록 홍가희는 진짜 특이하고 이상한 여자들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이 여자들은 그를 사랑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자신들의 존재 이유가 그의 것이 되기 위해서라고 믿어요. 아름다운 외모, 인기 아이돌이라는 위치, 모녀, 쌍둥이라는 비윤리적인 관계 전부 그를 위해서라는 거죠. 그래서 지금 가장 인기 많은 아이돌이라는 리드레아도 연수진씨들과 성다은씨들을 은연중 부러워하고 있어요. 일부는 자기 친구, 언니, 동생, 친척, 심지어 엄마도 그 남자에게 안기게 하고 싶었지만, 주변에 그의 기준에 맞는 여자가 없어서 그만뒀대요.”

이미 알고 있던 유한나는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홍가희와 임소리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헐, 지난 며칠간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더 놀랄 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남아있었네요. 세컨드라도 좋다고 돈 많은 남자만 찾는 내가 정상으로 보여요.”

셀프디스를 섞어서 놀라움을 표하는 홍가희에게 임소리도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근데  기준이라는 게 뭐길래 남자에 미쳐서 윤리, 도덕  내팽개친 여자들이 포기했대요?”

“외모요. 남자가 자기 입으로 얼빠라고 할 만큼 얼굴을 중요하게 보고, 또 몸매도 얼굴 못지않게 중요하게 보는데 눈이 엄청 높대요. 여러분들도 여기 왔다 간 여자들 봤으니 아실 거에요.”

홍가희 뿐만 아니라 임소리, 유한나, 양희선 모두 병원에 다니는 임산부들 외에, 처음으로 그의 여자라며 나타난 여자들을 보고 BICA 소속 연예인들인 줄 알았다.
연예인이라고 다 유명한 것도 아니고, 무명 연예인이라고 못 생긴 건 아니니, 그저 이렇게 이쁜 여자들도 못 뜨는 게 연예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들이 기획팀장, 경리, SNS 관리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란 후부터는, 병원에  처음 보는 엄청 이쁜 여자 = 그 남자 여자라고 여기게 되었고, 실제로 지난 일주일간 병원을 방문한 미인들은 전부 그의 여자들이었다.

”남자 눈이 높다는 게 여자들 사이에 강한 유대감과 우월감을 만들고 있어요. 나는 이 남자 여자다. 우리는  남자 마음에 든 여자들이다. 같은 식인데, 이런 의식이  남자의 여자라는 걸 특권, 선택받은 사람으로 여기고 있을 만큼 강해요. 그래서 자신과 가까운 다른 여자들을 끌어들이는데 거리낌이 없는 거죠. 그 남자에게 바치기 위한 여자를 찾는 게 아니라, 선택받은 여자를 찾는 거로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인터뷰 중에 저한테 자기는 그 남자 전용보지라는 말을 자랑처럼 하는 것도 그녀들에게 전용보지는 특권이기 때문이에요.“

그동안 양희선과 여자들의 인터뷰를 모두 지켜본 유한나가 보기에 그녀들은 그냥 자랑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남에게 말 못 했던 한을  듯 자신이 지금 얼마나 행복하며,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끊임없이 풀어놓아, 인터뷰 예정 시간을 넘기기가 일쑤였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지 못한 홍가희에게는 소름 끼칠 정도로 이상한 여자들로만 보였다.
홍가희는 닭살이 돋는다는  두 팔로 몸을 감싸며 질색했다.

“사랑이 아니라 완전 사이비 종교잖아요.”

“가희씨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게 당연해요. 하지만 직접 대화를 나눈 저와 옆에서 지켜본 한나쌤은 이들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저같이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여자가 사랑을 연구하려고 했으니 실패하는 게 당연한 거죠.”

그녀들에 대해 알수록 연관되고 싶지 않은 홍가희는, 양희선이 그녀들의 사랑을 이해하는 듯한 발언을 하자 믿을  없다는 얼굴로 유한나에게 물었다.

“한나 언니, 언니도 선생님처럼 그 여자들이 사이비에 빠진 광신도가 아니라 무슨 헌신적인 불멸의 사랑으로 보였어요?”

“응. 난 한심한 남자들만 만났잖아. 그래서인지 나도 좋은 남자 만나서 연애하고 싶을 정도로 부러웠어.”

유한나의 충격 발언에 홍가희 뿐만 아니라 임소리까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문득 홍가희는 진료실에 들어오고 계속 놀라고만 있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유한나의 발언은 지난 일주일간 들은 여자들의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머릿속에서 전부 날려버릴 만큼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유한나는 이 병원에서 그녀들을 만난 첫날부터 남자라면 지긋지긋하다고 했으며, 실제로 식당, 가게에서도 남자 점원을 상대할 때면 말 한마디 없이 카드만 내밀었다.
무례한 행동임에도 남자들은 좋다고 굽신거리면서  한마디라도 걸어보려고 애를 썼고.

그랬던 유한나가 방금 연애하고 싶다고 했다!

홍가희는 옆에서 자기 볼을 꼬집고 있던 임소리의 어깨를 붙잡고 앞뒤로 세게 흔들며 말했다.

“소, 소리야. 지금 한나 언니가 연애하고 싶다고 한거 같은데, 내가 잘못 들은 거 맞지? 잘못 들었다고 해줘. 제발.”

“아파...꿈이 아니었구나. 가, 가희 언니 그만 흔드세요. 어지러워요.”

“시끄러. 이제 들을 거 다 들었으니 선생님 방해하지 말고 그만 나가봐. 홍가희  언제까지 접수대 비워둘 거야. 소리야 가서 그동안  검사키트 오더하는 김에 필요한  있으면 같이 주문할 거니까 가서 재고 조사해.”

홍가희가 임소리를 붙들고 소란을 피우자 유한나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사람을 쫓아냈다.
양희선은 그녀들을 보고 미소 짓고는 책상 한쪽에 고이 모셔놓았던 책자를 펴들었다.

그렇게 진료실 밖으로 쫓겨나는 홍가희의 귓가에 “일기”, “오늘은 내 차례”, “하루만 더요” 같은 말이 들려왔지만, 양희선과 유한나가 자기들끼리만 속삭이는 통에 제대로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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