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26화 〉226화 설득력 있다? (226/425)



〈 226화 〉226화 설득력 있다?

실은 호텔에 도착하기 전에 호텔에서 우리를 이상한 눈으로 보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그러나 막상 가보니 기우에 불과했다.

방학, 휴가철인 탓에 오후 4시가  되지 않은 시간임에도 호텔 야외풀에서는 시끄러운 음악과 함께 풀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고,  끓는 청춘들이 남녀 가릴 거 없이 노출의 계절 여름을 위해 열심히 운동한 몸들을 한껏 자랑하고 있었다.

로비를 지나다니는 이들도 해외 바이어, 관광객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연인, 친구, 부부, 가족등 일행과 함께 호캉스를 즐기러 온 사람들 같았다.

역시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 어렵다 해도  사람은 논다.
나처럼.

화요일 오후 4시에 북적거리는 호텔을 보니 방이 없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풀파티 참석자들은 대부분 투숙객이 아니고, 4인 이상의 다인 투숙이 가능한 큰 방은 불금이나 토요일 외에는 그렇게 잘나가는 편이 아닌지라 방을 잡고 체크인 할 수 있었다.
체크인해준 리렙션 직원는 낮술이 거하게 오른 우리를 낮부터 놀다가 호텔 파티룸에서 3차나 4차로 놀기 위해  사람들이라 여기는 것 같았다.

체크인하고 키를 받아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던 중 호텔 직원으로 보이는 남성이 우리에게 다가와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마케팅팀 과장 장길현이라고 합니다.”

“아. 네.”

“고객님의 체크인을 도와 드린 리셉션리스트로부터 고객님께서 12층 럭셔리 펜트하우스 파티룸에 체크인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저희 호텔에 파티를 즐기러 오셨다면 풀 파티도 예정에 있으신지요?”

이 사람이언제 우리 얘기를 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투숙객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조금의 불편이라도 없게 하도록 호텔 직원들끼리 무전, 통신등 다양한 방법으로 투숙객 정보를 공유한다.

이 사람이 왜 우리에게 풀 파티에 관해 묻는지 알 것 같았다.

호텔  파티는 클럽처럼 입장객 물관리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호텔에서는 외모가 뛰어난 모델, 셀럽,별그램 인플루언서, 너튜버 등을 섭외해 참가하게 한다.
이태원을 제외하고 모델처럼 보이는 외국인 여성 풀 파티 참가자들이 있다면 거의 섭외라고 보면 된다.

이러니 호텔 마케팅 팀에서 미녀들이 즐비한 우리 일행을 보고 눈을 반짝이는 게 당연하다.

“저와 와이프가 와이프 친한 동생들 대접하는 자리인데, 파티룸을 잡은 건 이 인원이 전부 들어가서 편하게 식사하고 이야기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라 잡은 거지 파티를 하려고 잡은 게 아니에요. 호텔에서  파티 하는지도 모르고 왔어요.”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묻지도 않은 우리 일행의 관계에 대해 말해주며, 완곡하게 거부했다.

“지금 열리고 있는 풀 파티는 1부로 6시에 끝나며, 7시부터 자정까지 2부가 진행됩니다. 2부에는 다양한 이벤트와 유명 DJ들의 참석할 겁니다. 고객님들의 소중한 시간을 방해할 의도는 추호도 없으나, 만약 고객님들께서 잠시 시간을 내어  파티에 참가해 주신다면 저희도 그만한 보답을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요. 저희가..”

“우리가 가면  해주실 건데요?”

상대의 극도로 공손한 저자세가 소혜의 허세를 자극했는지, 그녀가 뜬금없이 나서 그에게 물었다.
장길현 과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의 준비한 보답을 설명했다.

“먼저 풀 파티 참가하실 때 필요한 의류 일체와 여벌 옷, 석식, 무료 세탁 서비스, 양도 가능한 호텔 레스토랑 이용권을 제공하겠습니다. 석식은 레스토랑, 뷔페 어디든 원하시는 곳에서 드시고, 원하시면 방으로 가져다드리겠습니다.”

필요한 의류라는 건 수영복을 돌려 말한 것일 거다.

“딴 건 없나요? 가령 샴페인이나 와인이라던가....”

소혜 이거 나 술 먹이겠다는 거 군.
하긴 16억이 걸렸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니지.

“만약 참석하시어 1시간 이상 계신다고 약속을 해주신다면 샴페인과 와인 한병씩 제공해드리겠습니다.”

“그 정도면 괜찮네요. 그럴게요.”


“감사합니다. 고객님을 담당할 컨시어지를 안내해드릴 테니, 추후 필요한 사항이 있으시면 컨시어지에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컨시어지는 투숙객이 요구하는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다.
기본적으로 호텔 안내부터 신문, 영화, 꽃배달, 선물구행 대행, 관광안내  투숙객의 요구사항을 최대한 충족시켜준다.

물론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 호텔 안내 빼고 나머지는 전부 빌에 청구한다.
세상에 공짜 없다.

“최소혜. 96억짜리 내기에서 시간을  마음대로 빼버리네. 하루 더 늘릴까?”

12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 누나가 고개를 천천히 돌려 소혜에게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잠깐만, 생각해봐. 나, 주리, 설미 집에 외박하는 이유 설명해야 하는데, 호텔 초청으로 레드타임 멤버들이랑 파티 참석했다고 하면 되잖아. 우리만 그런가. 서은이도 부모님이랑 같이 살잖아.”

어? 설득력 있다?
우리는 전화 한통해서 오늘 나, 누나, 주연이 외박해. 하면 끝이다.
하지만 다른 여자들은 외박하는 적당한 핑계거리를 찾아야 한다.

남편한테 호텔에서 파티하느라 외박한다고 하면 ‘이게 지금 장난하나?’ 할  있지만, 호텔의 초청이고, 레드타임 멤버들과 함께라면 하면 참작의 여지가 있다.
전직 연예인 남편들이니 말이 좋아 초청이고 섭외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옷에서 고기 냄새, 술 냄새 풀풀 풍기는데, 짐도 없이 와서 세탁 맡기면 호텔 직원들이 우리 이상하게 생각할  뻔하잖아,그렇다고 이 상태 그대로 내일 또 입기도 그렇고. 그러니 풀 파티 핑계로 공짜로 세탁 맡기고, 속옷도 내일 또 입기 그러니 속옷도 사고, 여벌 옷은 호텔에서 준다니  됐지.”

소혜가 의외로 맞는 말만 하는 통에 이번에는 누나가 곱게 넘어갔다.
하지만 마지막 한마디는 잊지 않았다.

“네 말이 맞아. 난 너처럼 맞는 말 틀렸다고 억지 안 부려. 인정해. 풀 파티 최소 한 시간 참석해 달라고 했다고  한 시간만 있을 수는 없으니 풀에 있는  1시간 30분. 그리고 준비하고 왔다 갔다 하는 30분 포함해서 2시간 빠지는 건 인정해줄게. 그 이상 지체되면 내일 다른 호텔 가서 1박 더할 거야. 알았어?”

“...응”

역시 돈을  사람이 왕이다.
아까는 이년 저년 하던 소혜가 돈을 쥐고 있는 누나 앞에서 고분고분해졌다.
아까보다 술이 깨서 정신이 좀 돌아온 탓도 있겠지.




룸에 들어오자마자 레드타임은 씻는다고 우르르 욕실로 몰려가고, 주연이 방에서 회사에 전화하는 동안 누나와 나는 룸을 둘러보았다.

호텔 12층에 있는 이곳은 복층 구조로 되어 있어 위층에는  2개와 작은 리빙룸이 있고, 아래층에는 넓은 거실과 소파, 직사각형의 기다란 원목식탁이 있는 다이닝룸, 실내풀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하얀 벽면과 다크 브라운 인테리어, 베이지 계통의 소파와 가구들, 곳곳에 놓인 화분이  어울려 안락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춤추고 먹고 떠드는 소란스런 파티보다 차분하고 편안한 모임이 더 잘 어울리는 곳 같았다.

거실 한쪽 벽면은 모두 통유리로 되어 있었고, 거실 오른쪽 문 뒤편에는 스파를 겸한 작은 실내풀이 있었다.
거실과 풀 사이 벽에는 큰 유리창이 있었고, 거실과 같이 풀장 정면에 통유리 창문이 있었다.
창문쪽 풀의 난간 높이를 낮추어 풀에 들어가 기대어 앉으면 창문 너머로 펼쳐진 시원한 풍경을 한눈에 즐길 수 있는 구조였다.

여기서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풀에 앉아 스파 물줄기에 마사지 받으며 시원한 모히토 한잔과 함께 경치 감상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완벽한 휴가가 될  같았다.
이러니 사람들이 호캉스 가나 보다.

우리 집도 여느 호텔 펜트하우스 못지않다고 자부하지만, 역시 휴식을 위한 호텔은 생활감이 묻어있는 집과 느낌이 다르긴 달랐다.

“이런 데가 있는 줄 알았으면 리드레아, 새별너울, 직원들이랑 와볼걸. 너무 집에만 있었나 봐.”

“우리 집 좋잖아. 여기는 풀이 있고, 경치가 좋은 거지 엄밀히 보면 우리 집이 더 좋아.”

“박한민네 호텔 펜트하우스는 여기보다 훨씬 좋겠지?”

“그렇겠지. 거기는 5성급 호텔 중에서도 한 손가락에 꼽히는 호텔이니까. 그런 곳은 하룻밤에 천만 원 넘는데.”

“그 인간 호텔이 좋다는 걸 알면서도 갈 때마다 너무 잘해주니까 선뜻 못 가겠어. 우리도 받는 만큼 뭔가 주고 싶은데, 딱히 줄 게 없잖아.”

“안 그래도 며칠 전에 혜선이한테 리드레아, 새별너울이랑 호캉스 겸해서 놀러 오라고 연락 왔는데, 우리가 가는  선물이니 부담 갖지 말라고 하더라.”

“애들 데려가면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면서 계속 붙잡는 통에 우리가 호텔에 감금될 위험이 있어.”

“확실히. 어쩌면 우리 너울이 예정일까지 호텔에서 못 나올 수도 있어. 혜선이라면 의사도 호텔로 부르고, 산후조리에 백일잔치, 돌잔치 할 때까지 호텔에 있으라고 할걸.”

누나나 나나 농담하는 거지만, 누나 안에서 혜선 씨 평가가,  안에서 박한민 평가랑 거의 동급이라는 건 확실하다.
나와 누나도 잘 만난 커플이지만 박한민과 혜선 씨도 우리 못지않게 참  만난 커플이야.

호텔에 오니 자연스레 박한민이 떠올랐고 박한민 하니 군대에서 같이 음방 보던 기억이 떠오른다.

레드타임에서 예지가 박한민 최애였지.
명망 높은 귀족가 아가씨같이 품위 있고 우아한 스타일,

중증얼빠 외길인생을 걸어온 나도 그렇지만 박한민 그 인간 취향도 참 소나무야.

“아참. 예지 처녀보지라니까 개통식 아프지 않게 잘해줘. 너라면 걱정할  없다는 거  아는데, 예지는 레드타임에서 특히 귀여워하는애라 말하는 거야. 후후, 예지와  사이에서 태어날 아이가 벌써부터 기대 돼. 얼마나 이쁘고 귀여울까.”

박한민의 리드레아 최애 세미의 처음을 내가 가져갔는데 곧 예지의 처음도 내가 가져간다.
새별너울 최애라고 했던 박윤미도 그랬고.
어째 NTL하는 기분이 들어 묘하다.

갑자기 박한민한테 미안해지네.

진짜로 NTL을 노리는 얼굴도 모르는 주리, 소혜 남편에 대해서는 아무 느낌도 없는데, 박한민한테만 미안해지는 걸 보니 나도 악당  됐다.
극악무도한 누나와 악당인 나는 잘 어울려.
역시 우리는 천생연분이야.

켈리 킴은 줘도  먹는 놈이니 생각할 가치도 없고.

잠시 박한민을 떠올린 나는 우리 둘만 있는 김에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아까 최소혜한테 일부러 그런 거야?”

“원래 내가 레드타임 리더였다가 걔가 리더한거잖아. 나 더문 나가고 애들이 지연언니는 이랬는데, 저랬는데 이러면서 비교를 많이 했나봐. 사장, 실장도 무슨  있으면 나랑 비교하면서 혼내고. 그래서 그 기집애 나한테 열등감이 엄청나게 컸어. 열등감을 숨기려고 허세도 많아졌고. 그러다가 결혼 잘했네, 남편 부럽다. 이런 소리 들으면서 허세만 남고 열등감은 사라졌는데 내가 너 데려왔잖아. 소혜가 처음 인사하자마자 계속 연하 타령한 거 기억하지?  신랑이라고 데려온 너를 보고 잊고 있던 열등감을 다시 떠올린 거야. 딱 봐도 자기 남편보다 네가 훨씬 낫거든. 아까도 누가 소혜 남편이랑 너랑 아주 살짝 비교한  가지고 소혜가  남편 욕하는 거냐고 짜증 낸 게 그래서야. 내가  자랑할 때마다 열등감이 쌓이다가 내가 소혜 허세와 자신감의 근원인 잘난 남편을 직접적으로 긁으니 아니라고 반박은 못 하고, 불붙은 다이너마이트처럼 확 폭발한 거지. 그때 내가 바로 올가미를 던져서 잡은 거고.”

“난 누나가 최소혜한테 우리 회사에서 오라고 슬쩍 말 던지고 남편이랑 의논하라고 한 게, 바깥바람 들게 해서 가정불화 만들려는 건 줄 알았어.”

“남편이랑 의논하라 한 건 머릿속으로 남편이랑 너랑 계속 비교하게 해서 열등감 쌓이게 하려고 한 거야. 소혜 남편이 대기업 다니면서 회사에서 인정받고  잘 번다 해도 결국엔 월급쟁이인데, 나는 너 만나서 잘나가는 기획사사모님 되고, 애들도 막 취직시켜주니 소혜가 얼마나 짜증이 나겠어. 그러니 지도 우리 회사에 오고 싶으면서도 오겠단 말은 못 하고 빙빙 돌린 거야. 뭐, 생각대로 안 풀리면 네 말대로 가정불화 만들려고 한 것도 맞아. 너랑 남편을 계속 비교하게 만들고, 주리, 설미, 서은이가 우리 회사에서 재밌게 사는 거 계속 보여주면서 마음을 흔들면 불만과 짜증이 커지고 그게 남편에게 향했을 테지, 행복하고 단란하던 가정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하고 소혜의 열등감을 네가 메꿔주면 디 엔드.”

누나 계획을 알아챘다고 득의양양하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내가 눈치챈  어디까지나 플랜B, 대비책에 불과했다.
누나는 처음 소혜의 반응을 보자마자 이중삼중으로 소혜를 옭아맬 계획을 짜고 실행해 옮기고 있었다.

“누나, 내가 위약금 낼 테니 더문엔터 트레이너 하지 말고 BICA 사장해라. 누나가 나보다 더 잘할 거야. 누나가 사장하면 5년 이내에 BICA 대형 만들고, 10년 이내에 CS, YH도 이길 것 같아.”

“안돼. 나 더문에서 트레이너 꼭 해야 할 이유가 있어.”

“고향 같은 더문엔터가 망가지면 안 되니까? 그렇다면 나도 이해해. 나 같았어도 누나처럼 했을 거야.”

“아니, 그건 덤이고, 메인은 세이걸즈, 륜시스 전부 네 전용보지로 만들고, 괜찮은 여연생들도 찾고 키워서 네 전용보지로 만들려고. 아까 시현이 말처럼 네 유전자는 많이 많이 퍼뜨려야 하고, 그만큼 씨를 받을 맛있는 전용보지도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 BICA는 한동안 연습생 못 받으니 그동안은 더문에서 찾아야지. 시현이 고 기집애. 오랜만에 봤더니 애가 아주 괜찮아졌어. 아주 마음에 들어. 애가 말하는  너무 이뻐서 우리 회사랑 계약해준다고한 거야.”

“아까는 꿈을 꾸는 게 기특하다며!”

“그래. 네 유전자를 많이 퍼뜨리는 꿈. 얼마나 기특해.”

더문엔터는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겼다.
눈에 띈 건 남김없이  잡아먹어 재앙 그 자체라는 EF5등급 토네이도급 포식자 고양이에게.


누나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제법 흘렀는지 욕실 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