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41화 〉241화 이게 뭐라고 (241/425)



〈 241화 〉241화 이게 뭐라고


나는 희희낙락 웃으며 폰을 들어 어느 수상한 사이트로 들어가고 있는 윤정에게서 고개를 돌려 대기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8시 09분.

녹화현장을 보여주는 대기실 티비에서는 한창 남자양궁이 진행되고 있었다.
남자양궁이 1시간 예정이니 끝나려면 20분 정도 남았다.
예전에는 남자양궁 하나만 2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지금은 녹화시간 줄이고 종목을 늘린다고, 참가팀을 남녀 각각 4팀으로 줄여서 1시간씩이 되었다.

슬슬 나가면 여자양궁이 시작될 테니 여자 아이돌 구경 좀   나가보기로 했다.

“윤정아, 혜리야 나 양궁 구경하러 가볼까 하는데 너희도 갈래?”

“대기실 비울  없으니 저희는 여기 있을게요.”

“알았어. 무슨일 있으면 전화하고.”

“잠시만요.”

몸을 돌려 나가려고 하니 윤정과 혜리가 달려와 키스를 한다.
누가 언제 들어올지 모르니 길게는 안 했지만, 그래도 키스답게 입술만 쪽하고 끝이 아니라 서로의 혀가 오간다.

“아무리 급해도 인사는 하고 가셔야죠. 빨리 가슴 주무르고 보지팡팡도 해주세요.”

나는 시키는 대로 옷 위로 두 여인의 가슴을 주무르고는 가랑이 사이를 손바닥으로 쓰다듬고 손가락으로 가운데 부분을   눌러주었다.
예전에 난 엉덩이파가 절대 아니고 어디든 다 좋다고 주장하는 나에게, 정말 아니라면 다른데를 만지라면서 이렇게 시킨 이후로 이것도 인사의 하나로 늘 이러고 있다.

여기가 밖이니  위로 만지는 거지, 집이나 회사, 차 안이면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여자들과 합의한 내 의무사항이다.

“다녀오세요.”

인사가 모두 끝나고 난 뒤에야 해맑게 손을 흔들어 잘 다녀오라고 해준다.
나는 다시 한번 여인에 볼에 뽀뽀를 해주고는 대기실을 나갔다.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이런 절차 때문에 인사 한번 하려면 시간을 오래 잡아먹지만, 바꾸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예전처럼 좋으면서 싫은 척하는 거 때려 치고 좋으면 좋다고 인정하기로 했으니까.

좋은 거 맞잖아.  그래?

********

매니저를 비롯한 기획사 관계자들은 그라운드 근처에 얼쩡거릴 수 없으니 객석 쪽으로 올라가 야 한다.
나도 계단을 이리저리 올라 팬석이 없는 비어있는 구역쪽에 자리를 잡았다.

팬들을 동원해 객석을 채운다지만, 그렇다고 꽉꽉 집어넣어 만원 관객으로 채우지는 않는다.
그냥 적당히 채워놓고 카메라가  잡히지 않는 곳은 통째로 비워놓는다.

그래서 이런 곳은 카메라만 있어 관계자들 몇 명이 구경하기 좋다.
내가 자리 잡은 구역도 카메라 한 대와 매니저들로 보이는  세네 명이 앉아서 구경하고 있었다.
다들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보이는 걸로 보아 실장급이거나, 나름 큰 행사라고 동행한 이사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나처럼 작은 회사의 사장 일 수도 있다.

어쨌든 다 모르는 사람들이라 가서 인사할까 하다가, 진짜 기획사 사람인지 아닌지도 모르니 그냥 그 사람들 뒤편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앉았다.

운동장에선 남자양궁이 결승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꽤나 팽팽한 경기인지 흥분한 중계진의 목소리가 장내에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졌다.

“NCODE의 제이텀 10점. 이번에도 10점입니다. 팬들의 환호를 보십쇼. 대단합니다.”

“제이텀 선수의 맹활약으로 NCODE가 GX-KIDS에 1점차까지 따라붙습니다. 앞으로 양팀 세발씩을 남겨놨는데요, 결승 마지막까지 결과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합니다. 아, 이번 남자양궁 결승 정말 재밌어요.”

해외투어 중이라는 NCODE가 아체대 참가한  모두가 놀랐다.

방송국이 아체대 출연을 가지고 갑질을 한다 해도, 아체대 녹화 날이 정해지기 전에 잡힌 스케쥴 때문에  나오는 건 이해를 해준다.
아체대 녹화 날이 나온 뒤에 부랴부랴 같은 날 스케쥴 잡는  국물도 없지만, 먼저 잡힌 스케쥴 취소하고 아체대 나오라고 할 정도로 방송국이 막장은 아니다.

일찌감치 스케쥴이 잡히는 해외투어가 이런 경우다.

NCODE는 아체대 녹화가 잡히기 전에 해외투어 일정이 잡혀 있던 터라 안나와도 무방했다.
그러나 재수 없게도 디지털 싱글 녹음을 위해 잠깐 귀국하기로  날이 아체대 녹화 날이랑 겹쳐, 오전만 참가하고 조기 퇴근하는 걸로 방송국과 딜을 했다.

겨우데뷔 3년차에 작은 규모긴 해도 해외투어를  정도의 인기그룹이니 방송국에서도 놓치기 싫었을 거고, 무리한 스케쥴을 돌린다고 팬들에게 욕먹는 더문엔터 입장에서는 방송국, 팬들 모두에게 변명을  수 있는 최선의 결과다.

NCODE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  없이 참가한 건데 양궁 결승 나갔으니 방송 분량 걱정은 없겠어.
팬들도 만족할 거고, 더문엔터도 이거면 비행기 값은 뽑은 거지.

딱 한 종목, 남자 양궁에만 출전한 NCODE가 결승에 진출해 방송분량을 확보하고 멤버 개개인의 원샷도 많이 잡혔으니 더문엔터, NCODE, 팬 모두에게 괜찮은 결과다.

다른 보이그룹이라면 전혀 신경도  썼을 텐데, 누나, 레드타임과의 인연과 전에 한번 더문엔터에 방문해 사장, 부사장들이랑 인사했다고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여기에 너무 무명, 비인기 그룹이라 아체대에도 못 나온 버드윙 엔터 웨이븐까지 생각난다.

나란 놈, 인연에 엄청 약하고 정을 1+2 할인 판매 수준으로 쉽게 주는 남자였구나.
이래서 내가 오는 여자 안 막고, 한번 온 여자는 도망가지 못하게 선녀 옷을 훔친 나무꾼처럼 전부  아이를 낳게 하겠다고 그러나 보네.

남자 양궁을 보며 뜻밖에 자아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아체대. 오기 싫어 새벽부터 툴툴거리고 속으로 방송국 욕만 했는데 알고 보니 좋은 프로였어.

어쨌든 이제 남은 건 마지막 세발.
아체대 양궁은 세명이 한팀을 이뤄, 한명이 세발씩 쏘고, 마지막 세트는 세명의 선수가 각자 한발씩 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GX-KIDS의 첫 번째 선수가 8점을 쏴 9점차가 되었다.
NCODE도 8점을 쏴 다시 1점차.

흥미진진한 대결에 양쪽 팬덤이 불타오르고, 타팬들도 흥미롭게 지켜본다.

GX-KIDS는 YH엔터의 보이그룹이고, NCODE는 더문엔터의 보이그룹.
두  모두 대형기획사의 대세 인기그룹이라 두 팬덤의 응원열기도 점점 뜨거워진다.

“제대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은근히 재밌네. 이래서 사람들이 명절에 아체대 보는 거구나.”

GX-KIDS 두 번째 선수가 7점을 쏘고 NCODE 두 번째 선수가 9점을 쏘자 NCODE 팬들이 난리가 났다.
NCODE의 역전. 이제 1점 앞서나간다.

마지막은 양팀의 에이스들.

GX-KIDS의 마지막 선수가 긴장되는지 몇 번이나 활시위를 잡았다가 놓기를 반복한다.
장내 화면에 크게 원샷이 잡힌 그가 긴장을 풀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 뒤에 동료들을 바라보며 멋쩍은 웃음을 짓자, GX-KIDS 팬들이 자지러지고 비명을 지른다.

“꺄악. 긴장한거 봐. 너무 귀여워.”

“오빠 파이팅!!!”

“저렇게 웃는 건 반칙이야. 하마터면 심쿵사 할 뻔했잖아.”

“여기서 죽지마. 티켓팅 한다고 그 고생을 했는데 콘서트는 보고 죽어야지.”

팬들의 응원과주접을 뒤로 하고 GX-KIDS의 마지막 선수가 드디어 활을 쏘았다.

“9점. 9점입니다. GX-KIDS 에이스 답게 고득점을 획득했습니다. 이제 NCODE는 9점을 쏘면 우승, 8점이면 동점입니다. 이전 3발에서 8점 10점 10점을 쐈던 제이텀 선수의 마지막 한발. 모두 함께 지켜보시죠.”

아무리 거리가 짧다고 해도 뭔 놈의 초보들 점수가 이리 높아.
점수만 보면 올림픽 결승인 줄 알겠어.
하여간 우리나라 사람들 누가 주몽의 후예들 아니랄까 봐, 쏘는  선수나 아마추어나 다들 대단해.

NCODE는 짐승돌 컨셉이라 모두 근육이 보기 좋게 잡혀 있다.
활시위를 당기는 제이텀의 탄탄한 팔 근육이 화면에 비치자 아까 GX-KIDS 팬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는 NCODE 팬들이 좋아 죽는다.

“하아. 저 팔로  안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귀엽기만 하던 막냉이가 3년 만에 남자 된  봐. 연생 때부터 물빨하길 정말 잘했어.”

어째 GX-KIDS팬들 보다 NCODE팬들 평균 연령이 조금 높은듯하다.
그래봤자 10대 후반과 20대 초반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만.

아, 저러면 안 되는데.

차라리 앞에 GX-KIDS처럼 긴장되면 활시위를 다시 놓았다가 당기는 게 나을 텐데 제이텀은 한참을 당긴 상태로 신중하게 조준을 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했지만, 내심 긴장을 많이  게 분명했다.

나참. 이게 뭐라고 긴장되냐.

진짜 아무 의미 없는 별것도아닌 대회인데 참가한 아이돌들이나 지켜보는 팬들, 그리고나까지 긴장된다.
장내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고요해지고, 한참을 조준하던 제이텀이 드디어 활시위를 놓았다.



“아아.. 7점. 제이텀 선수7점을 쐈습니다. 준결승부터 모두8점 이상의 고득점만 쐈던 제이텀 선수가 마지막에 7점을 쐈습니다. 이로써 금메달은 GX-KIDS가 차지했습니다.”

“GX-KIDS 금메달 축하드립니다. 지난대회 결승에서 아쉽게 은메달에 머물렀는데, 드디어 양궁 첫 금메달을 땄습니다. 은메달을 딴 NCODE 제이텀 선수 정말 잘해줬어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준결승에서 지난 대회 우승팀을 꺾고 NCODE가 결승에 올라온 것도 모두 제이텀 선수의 활약 덕분이었죠.”

“네. 멤버들이나 팬들이 모두 미안해하는 제이텀 선수에게 박수를 보내주네요.”

자책하는 제이텀을 객석에 있던 멤버들까지 달려나와 위로해주고, NCODE 팬들도 경기장이 떠나갈 정도로 제이텀을 연호한다.

너무 제이텀에게 관심이 집중되면 GX-KIDS 쪽에서 불편해  테니 MC들은 간단히 제이텀을 비추고는 재빠르게 GX-KIDS로 관심을 돌린다.

“금메달을 딴 GX-KIDS의 소감을 들어보겠습니다. 티나양. 인터뷰 준비 됐나요?”

오옷. 티나다
누나가 키웠던 애들이라고 NCODE 쪽만 보고 있었는데, 그 사이 우승팀 인터뷰를 위해 티나가 나와 있었다.
티나를 확인하고 제이는 어디 있나 찾아보니 NCODE쪽에 있었다.

티나가 이긴  인터뷰 하고 제이가 진  인터뷰하는 거구나.

“안녕하세요. 리드레아티나입니다. GX-KIDS 양궁  금메달 축하드려요.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티나가 인터뷰를 진행하는 걸 보니아까 결승전 마지막 한 발이 남았을 때보다 더 긴장된다.
 손을 모으고 티나가 실수하지 않기를 간절하게 기도하며 지켜는 동안, 어딘가에서 티나와 제이에 대해 떠드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티나 존나 이뻐. 실제로 보니 장난 아니네.”

“저기 제이 봐. 우리 반 남자애들이 제이라면 환장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어. 존나 건전하게 입었는데 이상하게 섹시해. 같은여자가 봐도 이런데 남자애들은 미치는 게 당연하지.”

“우리반 남자애들은 새별너울한테 미쳤던데. 거짓말 아니라 진짜로 저기 새별너울 팬석에 우리  남자애 둘 있어. 아까 밖에서 줄 섰을 때 봤는데, 나 알아볼까 봐 얼른 숨었잖아. 그나저나 리드레아 여팬 많다는데 나도 리드레아 겸덕 할까. 티나 진짜 끌리네. 말투랑 표정이 존예 존귀야.”

“난 제이.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서 있는데, 비율이 인간의 비율이 아니라서 그런지 계속 눈이 가고 언니라고 부르고 싶어져.”

반응 좋네.
컴백 앞두고 방송국에 열심히 아부해서 리포터로 내보낸 보람이 있구나.

티나와 제이가 이쁜  맞지만 사실 지금 이런 반응은 너무 과하다.
그녀들에게  정도 매력이 없다는 게 아니라, 여기에는 티나, 제이 말고도 대한민국에서 이쁘고 몸매 좋은 애들이  모여 있어, 그녀들 말고도 눈 둘 곳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티나와 제이가 유독 반응이 좋은 건, 첫 경기가 남자 양궁이라 계속해서 남자들만 보다가, 처음으로 시선이 집중된 여자 아이돌이 티나와 제이라  관심을 끄는 것이다.
또, 다른 여돌들은 모두 방송국에서 준비한 체육복 차림으로 외곽 사이드에조르르 모여 앉아 있는데, 리포터 역할인 티나와 제이는 역할에 걸맞게 꾸미고 경기장 한가운데에 나와 있으니 눈에 띄는 게 당연하다.

간절한 기도가 통했는지, 8년차 짬밥의 위엄인지 별 문제 없이 인터뷰가 모두 마무리 되었다. 워낙 녹화시간이 길다 보니 조금이라도 시간을 줄이기 위해 장내 정리와 진행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곧바로 여자 양궁이 시작되었다.

팽팽했던 남자양궁 결승과는 다른, 여자 양궁의 귀엽고 아기자기한 매력이 더해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켜봤다.
사람이 빽빽이 앉아 좁고 불편한 팬석과 달리, 내가 있는 곳은 구역 전체가 비어있어 다리를 펴고 싶으면 마음대로  수 있기에 불편한 점도 없이 재밌게 관전했다.

실수했을 때 부끄러워하는 모습이나 고득점을 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다 보니 오랜만에 군대 시절 여돌에 빠졌던 시기로 돌아가 헤에에 하고 지켜보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무대에서의 모습도 좋지만, 지금처럼 무대 밖에서도 자신의 매력을 흠씬 발휘하니 쟤네들이 인기 아이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한 무대화장과 무대의상으로 꾸민 MV와 음방만 보다가, 일상적이고 편안한 모습을 보니 또 다른 매력이 보이네.
우리 애들 말고도 이쁘고 잘난 애들이 많구나.
역시 세상은 넓어.

 이사님이 가기 싫어하는 나를 여기 보낸 이유가, 다른 기획사 사람들과 친해지라는 건 덤이었고 진짜는 지금처럼 음방과는 다른 방송과 다른 아이돌들의 다양한 모습을 경험해 보라는 의미였음을 깨달았다.

방송 경험이 적은 나에게 오늘 아체대는 좋은 경험이야.
내 눈에는내 새끼들이 최고라는 건 변함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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