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7화 〉267화 왜 보자는 건데?
음방피디는 방송 날이 아닐 때는 예능국에, 방송날, 사녹이 있는 날에는 프로그램을 총 지휘하는 조정실에 있다.
지금처럼 리허설이 모두 끝나고 본방만을 남겨놓고 있을 때는 최종 확인을 위해 스튜디오 조정실에서 큐시트, 대본, 화면 등을 최종 점검하거나 쉬는 시간을 가진다.
”안녕하십니까, 리드레아 소속사 BICA ENT.의 신재윤이라고 힙니다. 오동준 피디님 뵈러 왔습니다.“
”안 계세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정실에서 기계를 만지며화면을 체크하던 스탶 한명이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무심하게 없다는 한마디만 해주자 나는 두말 않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조정실을 하고 나왔다.
누군지 몰라도 무시하지 않고 대답해 준 걸 보니 좋은 사람이 분명하다.
피디에게 간단히 얼굴도장만 찍으면 충분하기에 편한 마음으로 왔지만, 피디의 행방을 모르니 조금 곤란하게 됐다.
이럴 때는 조정실 앞에 피디가 올 때까지 서성이면서 기다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렇게 10여분 정도 나 이사님과 조정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누나에게서 톡이 왔다.
[누나: 혹시 조정실 앞에서 피디 기다리고 있다면, 조정실 말고 5층 예능국 앞에서 기다려.]
나는 깜짝 놀라며 누나가 어디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나 주위를 두리번 거리고는 서둘러 톡을 보냈다.
[나: 나 조정실 앞에서 피디 기다리는 거 어떻게 알았어?]
[누나: 그 방송국 있는 작가 리미가 너 조정실 앞에서 봤다고 5분 전에 로즈에 글 올렸어. 조정실 앞이라 쇼더뮤직 피디 기다리는 것으로 보이는데, 쇼더뮤직 피디는 5층 예능국에 있다고 안타까워하더라고.]
누나는 아니었지만, 나를 알아보고 조용히 지켜보는 눈과 귀가 있었다.
BICA ENT. 아이돌과 내(...) 여성 팬들의 비밀사이트 프림로즈의 회원, 자기들끼리 부르는 말로 리미가 있었다.
전에는 정소영이 리미라고 하더니 이번에는 작가다.
이 방송국, 아니 방송가에 리미들이 대체 얼마나 있는 걸까.
나 모르게 누가 나를 지켜본다는 게 이런 기분인가.
마냥 나쁜 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이번처럼 도움이 될 때도 있다는 걸 알아서인지, 오싹하면서도 우쭐대고 싶어지는 복잡한 기분이다.
[나: 고마워 누나. 그 작가 리미라는 분한테도 고맙다고 전해줘.]
누나에게 고맙다는 톡을 보낸 뒤, 프림로즈의 존재를 알려주지 않은 나 이사님에게는 리드레아 팬카페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고 설명한 뒤 속는 셈 치고 조정실이 아닌 예능국으로 가보자고 권유했다.
나 이사님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피디, 그다지 멀지도 않은 예능국에 갔다가 없으면 다시 오면 된다며 흔쾌히 내 말대로 하기로 했다.
우리가 막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예능국으로 가는 길에, 마침 예능국 사무실에서 나오는 피디와 마주쳤다.
얘기를 들어보니 방송 준비 들어가기 전에 식사하러 가는 길이었다 하니, 만약 우리가 조정실 앞에 계속 있었다면 최소 3, 40분은 더 기다렸을 거다.
인사를 마치고 리드레아 대기실로 돌아가는 길에 누나에게 톡을 보내 사정을 설명한 뒤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전해 달라 부탁했다.
프림로즈. 솔직히 말은 안했지만 여자들만 모아놓은 사이트라고 해서 누나가 이상한 짓을 하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도움이 된다니 마냥 의심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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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프림로즈의 자매님, 이번에 자매님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자매님의 마음에 보답을 드리니, 부디 마음에 들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프림로즈의 운영자에게서 온 쪽지를 확인한 현미나는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쪽지와 함께 온 첨부파일.
누가, 어떻게 찍은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런닝머신을 뛰고 있는 신재윤을 옆에서 찍은 사진이고, 신재윤은 사진이 찍히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제법 오래 뛰었는지 이마와 팔에 땀이 맺혀 있고, 귀에 이어폰을꽂은 신재윤은 무심한 표정이었다.
‘아아....몸이 뜨거워. 빨리 집에 가고 싶어.’
처음보는 신재윤의 편안한 차림, 운동하는 모습에 현미나의 몸이 뜨거워진다.
현미나는 27살, 한창 때의 여성이다.
지금은 남자친구가 없지만 대학 시절 남자친구도 몇 번 사귀었고, 성에 대해서도 안다.
프림로즈에 가입한 이후 자위할 때면 항상 언제나 신재윤을 떠올리며 자위를 했다.
그러다보니 집에서는 신재윤의 사진만 보면 습관적으로 손이 가슴과 보지로 향했지만, 여기는 방송국이다.
미나의 손이 머뭇거리고 갈 곳을 잃어 방황하는 것처럼 배를 쓰다듬는다.
프림로즈에 작가라고 글을 올렸지만, 현미나는 실은 입사 3년차 S본부 보도국 문화부 기자다.
아무리 익명 사이트라고 하더라도 기자라고 밝힐 수 없어 방송가에서 일하는 여자 중 가장 많은 작가라고 한 것이다.
보도국 문화부 기자는 연예부 기자보다 취재 영역이 훨씬 넓다.
연예부는 연예계에 관련된 사항을 취재한다면, 문화부는 영화, 연극, 음악, 미술 등에 심지어 게임까지 문화 전반을 취재하며, 음악 한 분야만 봐도 클래식부터 인디까지 그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현미나는 문화부에서 뮤지컬 담당을 맡고 있지만, 올해 최고 히트곡인 ‘그날의 태엽’과 리드레아, 그리고 BICA ENT.에 관심이 가는 건 아무리 자기 담당이 아니라 해도 문화부 기자로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과거가 베일에 싸인, 아무런 경력도, 학력도, 흔적도 없는 이가 혜성처럼 등장해 한물 간 그룹인 레몬로즈를 리드레아로 재데뷔시켜 정상급 걸그룹으로 만들었다.
모든 연예부 기자들이 신재윤과 BICA ENT.에 대해 캐보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어느 지방의 초중고를 졸업한 것까지는 확인했지만, 20살 이후부터 BICA ENT.의 사장으로 연예계에 발을 들이기 전까지의 5, 6년 정도의 행방은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어떤 기자는 외국에 다녀왔나 해서 동료 사회부 기자들 인맥을 통해 신재윤의 입출국기록까지 뒤졌지만, 아무 기록도 없었다고 한다.
수상한 구석이 많지만, 그를 만나본 기자들은 하나같이 평범한 성격이며, 잘생긴 거 말고도 이상하게 호감이 가는 묘한 매력이 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만약 예의 바르고 평범한 청년의 모습이 전부 연기라면 천부적인 연기자거나 세상을 속이는 사기꾼일 거라며, 과거가 비밀이긴 하지만, 수상한 사람은 아니라고 했다.
현미나는 아무리 같은 기자라고 해도 법을 무시할 정도로 집착이 강한 모습에 질릴 정도인데, 그런 기자들이 신재윤에 대해 알아보는 걸 쉽게 포기하고, 수긍하는 것을 보고 오히려 흥미가 더욱 커졌다.
현미나는 자기 담당 분야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고, 그녀가 프림로즈에 가입했을 때는 신재윤에 대한 호기심은 사랑과 숭배로 변해있었다.
오늘도 리드레아 방송이 있다는 걸 알고는 음방 녹화가 있는 홀 근처를 서성이며 그를 기다리다가 그간의 사정을 알게 된 것이다.
‘못 참겠어. 차에 가서 하자.’
런닝머신을 뛰며 땀을 흘리는 신재윤처럼 땀나도록 격렬하게 자위를 하고 싶어진다.
그 어떤 야동, 그녀가 경험한 그 어떤 섹스도 그를 상상하면서 하는 자위의 쾌감을 따라오지 못한다.
그녀는 보지에서 새어 나오는 애액이 팬티를 적시는 것을 느끼며 서둘러 지하 주차장에 있는 자신의 차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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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레아가 7개월 만에 컴백한 첫 방송, 나도 인사를 해야 할 사람이 많지만, 반대로 리드레아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지난 1월 활동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리드레아에게 인사를 하기 위한후배들이 쉴 새 없이 대기실을 드나들었다.
정말 친한 사이라면 스스럼없이 서로의 대기실에 놀러다니지만, 얼굴만 아는 사이 혹은 잘 모르는 사이는 방송 전 메이크업과 의상등 방송 준비가 완전히 끝난 상태에서 인사를 한다.
그렇기에 방송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리드레아에게 인사를 하려는 후배들이 많아졌다.
서로 민망하게 다른 팀 때문에 문 앞에서 기다리는 일이 없도록 중간 매니저들이 미리 우리에게 인사 오겠다고 의사를 전달하고 우리가 시간이 된다면 오라고 하지만, 인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서자 아이돌 대신매니저들이 문 앞에서 줄을 서는 일이 벌어졌다.
이들을 상대한 건 최경식이었다.
나 이사님은 이제 직접 다른 회사 후배 매니저들을 상대할 군번이 아니었고, 나는 더더욱 아니었다.
저렇게 얼굴을 익혀가며 최경식도 개인평판과 인맥을 늘려가는 거고.
여러 팀들이 인사를 다녀가고 써클엔터의 보이그룹 SIEGE의 차례가 되었다.
SIEGE는 지금 써클엔터의 캐쉬카우이자 간판 그룹으로 아마 다음 주에 리드레아가 1위후보가 된다면 상대후보는 SIEGE가 될 것이다.
“선배.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SIEGE도 6년차라 짬박 먹을만큼 먹었고, 과거에 리드레아와 몇 번 얼굴을 봤는지, 잔뜩 긴장해서 일렬로 서 자기들 구호를 외치는 다른 그룹들과 달리 자리에 앉아 멤버들끼리 편히 대화를 나누었다.
“어머? 너희가 인사를 다 오고 웬일이야.”
티나가 농담을 건내 웃으면서 맞이하는 걸 보니 잘 아는 사이인가 보다.
아마 1월, 리드레아 첫 활동 때 그녀들이 잘 나가는 보이그룹과 지금처럼 친근한 모습을 보았다면 내 자격지심으로 질투하거나 불안해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남자라도 업계 동료와친하게 지내는 정도는 마음 놓고 바라볼 수 있다.
“에이. 티나 선배.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요.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우리가 인사도 안 다니는 싸가지 없는 후배인 줄 알겠네요. 저희 레몬로즈 시절에도 컴백 겹치면 꼬박꼬박 인사했잖아요.”
“우리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준석이 니가 아인이 좋아해서 아인이 얼굴 보려고그랬던 거잖아.”
”창피하게 옛날 얘기하지 마요. 저 그때 엄청 혼났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오늘도 오기전에 고실장님한테 아인 선배 쳐다보지도 말라도 경고 듣고 왔다고요.“
이것이 8년 차와 6년차라는 건가.
아무리 과거라 해도 연애감정을 품었던 일을 사장, 이사, 실장들이 잔뜩 있는데 스스럼 없이 말한다.
리드레아, SIEGE 연차쯤 되면 연애를 슬슬 풀어주는 시기이기도 하고, 각 회사의 대표 그룹들이다 보니 자신감이 넘치기도 하겠지.
그가 아인에게 지금은 아무 감정 없다는 걸 티나를 비롯해 모두가 알기 때문에 농담거리로 삼을 수 있기도 하고.
”아인이 좋아했던 과거가 창피해? 아인아 준석이가 너 좋아했던 일이 창피하데.“
”접수.“
”아아....아인 선배. 그런게 아니에요. 전혀 안창피해요....으윽. 내가 이래서 리드레아 선배한테 인사 오기 싫었어.“
”선배, 얘 지금 거짓말하는 거에요. 이 새끼 어제부터 오늘 선배들 만나면 무슨 말 할지 고민했어요.“
써클엔터 사장과는 수진 일로 껄끄러운 관계지만, 우리는 여자들과 나 이사님 빼고 밑에 직원들 아무도 써클엔터 일을 모르듯, 써클엔터도 사장과 몇 명 빼고는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았다.
동네방네 소문낼 일이 아니긴 하지.
애들만이 아니라 나 이사님도 SIEGE의 실장과 잘 아는지 대기실 앞 복도에서 저쪽 실장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자 여유롭게 손을 들어 인사를 나누고는 그에게 리드레아 팀장인 최경식을 비롯한 우리 매니저들을 인사시켰다.
나 이사님도 편히 대하는데 나는 혼자 불편한 마음에 대기실 구석, 윤정과 혜리를 앞에 세워놓고 그녀들 뒤에 앉아 숨어 있었다.
하지만 실장이란 사람이 사장을 찾는 바람에 나 이사님에게 불려 나왔다.
”사장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써클엔터 고문수 실장입니다.“
”안녕하세요. 실장님. BICA ENT. 신재윤입니다.“
초면이니 서로 통성명을 하고 명함을 주고 받았다.
나에게 받은 명함을 확인하고 품에 넣은 고 실장이 말했다.
”버드윙 엔터 웨이븐 일 들었습니다. 사장님이 맡으셨다고요. 저희랑 같이 일하다가 사장님들끼리 틀어지고, 중단되는 바람에 찝찝했는데, 사장님이 맡아주셨다고 해서 저희 회사 일도 아닌데 제가 다 안심했습니다.“
내가 웨이븐 프로듀서를 한다는 건 아무리 내가 비밀로 한다고 해도 이미 업계에 다 소문이 났다는 말을 들었으니, 고 실장에게도 어떻게 알았냐고 묻지 않았다.
써클엔터 사장의 흉계로 고의적으로 수진을 위기에 써클엔터는 웨이븐 컴백작업을 컴백일까지 받아놓은 상태에서 중단에서 멈추고 되돌려보냈었다.
써클엔터 사장이 수진을 노리고 고의로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걸 아무리 자기 직원들이라고 해도 섣불리 말하기 힘든 예민한 문제다 보니 사장들끼리 사이가 틀어져 공동작업이 중단되었다고 둘러댔나 보다.
하긴, 밑에 사람들도 다 보는 눈이 있는데 멀쩡히 일하다가 갑자기 중단하고 청구서와 함께 돌려보낸다면 이상하게 쳐다보는 게 뻔하지.
”제가 웨이븐을 맡긴 했지만, 보이그룹은 처음이라 걱정이 많아요. 실장님도 아시다시피 보이그룹과 걸그룹은 팬 성향을 비롯해 셀링 포인트가 다르잖아요. 제가 남자고 걸그룹 팬도 했었기에 걸그룹은 어찌어찌했는데 보이그룹은 잘 몰라서 자신이 없어요.“
”이번에도 리드레아 음원순위 엄청 잘 나오지 않습니까. 좀 전에 보니 벌서 8위더군요.보이그룹이나 걸그룹이나 좋은 노래. 이거면 충분하다는 거 사장님도 아실 텐데요.“
”그렇긴 하죠.“
”사장님 평소하던 대로만하시면 웨이브도 잘 될 겁니다. 웨이븐 잘 될 거 생각하면 버드윙 엔터가 부럽네요.“
나는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SIEGE가 대중성으로는 리드레아보다는 딸릴지 몰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보이그룹의 한계 때문이지, SIEGE는 일본 투어도 도는 그룹이라 버는 돈만 따지면 리드레아 두 배 이상 벌어들인다.
이런 그룹의 실장이니 까놓고 말하면 버드윙 엔터는 물론 우리 회사도 부러워 할 이유가 없다.
”하하. 써클엔터의 기둥인 SIEGE의 실장님이 아직 나오지도 않은 웨이븐 때문에 버드윙이 부러우시다뇨. 저 부담 팍팍 주려고 그러시는 거죠?“
”어이쿠 아닙니다. 아니에요. 사장님이 오해하신 거예요. SIEGE만 보면 괜찮지만, 저희 써클엔터 다른 애들은 영 신통치가 않아서 저도 그렇고, 저희 사장님도 고민이 많으십니다.“
4대 대형기획사 다음, 중견기획사 중 1위라는 써클엔터는 지금 SIEGE도 문제없이 잘나가고 있고, SEIGE의 후배 보이그룹인 TX-BOYS도 순조롭게 성장하고 있으며 아이돌 외에 배우, 예능인 라인업도 괜찮은 편이다.
그래서 다른 중견기획사들 루프엔터, TQ엔터 같은 침체기 없이 앞으로도 문제없을 거라는 평을 받고 있고, 내가 써클엔터 사장한테 감정이 좋고 안 좋고를 떠나 그의 능력이 좋다는 건 인정하고 있다.
“TX-BOYS 잘나가잖아요. 웨이븐이 TX-BOYS 만큼만 되면 저 방송국 옥상 올라가서 만세삼창 할 거에요.”
“이런 말 하기 창피하지만 저희 걸그룹이 너무 약해서.....”
과거에는 잘 나갔던 걸그룹도 있었지만, 지금은 하나 있는 써클엔터 걸그룹은 뜨기는 커녕 써클엔터 걸그룹이라는 초반 화제성도 다 식어 버려,4년차인 지금은 컴백해도 별다른 관심도 못받는 상태다.
아무리 그래도 피지엔터 같은데는 보이그룹 하나 띄었다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장이 되었다는데, 써클엔터쯤 되니까 보이그룹 두 개가 잘나가도 불만족스러워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써클엔터는 우리나라 5위급 아이돌 기획사로, 4대 대형기획사 다음에 위치한다.
몇 년 전까지는 더문엔터와 대형기획사들 다음, 중견 기획사 중 1위를 다투었지만, 더문엔터의 싸이클론, 세이걸즈가 연달아 성공하고 더문엔터는 대형기획사 대열에 합류했다.
이러니 써클엔터 사장도 자기 회사를 대형으로 키우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것이다.
까놓고 말해 보이그룹 하나만 대박나면 대형 안 부럽다지만, 사장으로서는 걸그룹에 약한 회사라는 이미지는 지우고 싶을 것이다.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겠고.
내가 이런 저간의 사정을 모두 이해한다 해도 초면인 나한테 할말은 아니지만, 이쪽 업계 사람들이 서로 두루두루 친한 것 같으면서도, 자기 연예인 활동에 따라 매니저들끼리 얼굴 보기가 엄청 힘든지라, 한번 만났을 때 얼마나 친해지느냐가 매니저의 능력이고, 그러다 보니 말이 많아지기도 한다.
“써클엔터 여연습생들 좋다는 말이 제 귀에도 들려올 정도로 애들 괜찮은거 다 알아요. 그러니 다음 걸그룹은 잘 될 겁니다. 다른 회사도 아니고 써클엔터가 하는 일이니까요.”
아무리 내가 사장이고 상대가 실장이라도 아부를 해야 할 때는 해야 한다.
다 빈말인 것도 아닌 게, 써클엔터는 그만한 저력이 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신재윤 사장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안심이 되는군요.”
이렇게 겉으로는 서로 아쉬운 소리를 하면서 실제로는 칭찬으로 대화가 끝나가던 중 고 실장이 주변의 눈치를 보고는 한 걸음 나에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 사장님께서 사장님을 한번 뵙고 싶어 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써클엔터 사장님 초대라니 영광으로 생각하지만, 아무런 인연이 없던 저를 만나고 싶어 하신다니 조금 의아하긴 하네요.”
돌려돌려 한마디로 “왜 보자는 건데?”라고 묻자, 고 실장이 조금은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솔직하게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원래 그런 말씀이 없으셨는데, 저희 사장님이 사장님 방송국에 오셨다는 걸 어디서 들으셨는지, 30분 전에 저한테 직접 전화를 하셔서 사장님이 방송국에 있을 테니 가서 만나고 싶다고 전해달라 했습니다. 사장님이 저한테 지시할 때는 대부분 이사님 통해서 하는데, 사장님이 직접 전화하는 건 매우 드문 일입니다.”
뭐지? 다른 회사들처럼 나에게 프로듀싱 부탁하려는 건가?
아니야. 써클엔터도 잘나가는 회사야
이건 아닐 거야.
더문엔터는 워낙 상황이 급했고, 누나가 자기들 식구였으니 돌아와달라고 사정했던 거지, 원래 다른 대형기회사나 써클엔터, 루프엔터같은 유명 기획사가 되면 자존심과 위상을 생각해 자기보다 작은 회사들 한테 잘 부탁하지 않는다.
루프엔터만 봐도 몇 년간 침체기를 겪으면서도 남의 손 빌리지 않고 기어이 자기들 손으로 플로리아를 키웠다.
정 남의 손이 필요하면 부탁, 청탁이 아니라 K2미디어처럼 돈으로 사거나 협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만들지.
“저, 그게 저희 사장님이 조금 성격이 급하셔서 그런데.....”
대답을 기다리는 시간이 없다고 하는 고 실장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제 막 리드레아가 컴백해서 많이 바쁘지만, 써클엔터 사장님이 저를 보고 싶으시다니 없는 시간이라도 만들어야죠.
부른다고 바로 달려가는 똥개가 되는 건 사절이기에 컴백해서 바쁜 거 뻔히 알면서도 부르는 써클엔터 사장을 슬쩍 까면서 알겠다고 하자, 고 실장도 이를 알아듣고 미안해하면서도 기뻐했다.
그래 뭐. 이 사람이 뭔 잘못이겠어.
곤란한 부탁을 대신시키는 사장 잘못이지.
고 실장과 SIEGE가 용무와 인사를 마치고 떠나고 나는 급히 나 이사님을 대기실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방금 고 실장 얘기 다 들으셨죠?“
”그래.“
”써클엔터 사장이 절 왜 보자는 것 같아요?“
”모르겠어. 하지만 써클엔터 사장이 직접 움직인다니 가벼운 일은 아닐 거야. 저번에 루프엔터 천 사장은 우리한테 받은 게 있으니 답례 차원에서 직접 나왔지만, 원래 그런 양반들은 방송국 국장급이나 스타 피디, 메이저 언론사 편집장들 만날 때나 직접 움직이지, 우리 같은 작은 회사랑 미팅하는 사람들이 아니거든.“
”설마 써클엔터 사장이 수진이한테 아직도 미련 있는 건 아니겠죠?“
”그건 아무도 모르지. 뭐가 됐든 준비 단단히 해야겠어.“
리드레아 음원순위 좋고, 음반도 잘 팔리고, 심지어 기대도 안 했던 해외 반응도 오는 이 상황에 갑작스런 써클엔터의 난입으로 고민거리가 생겨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