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73화 〉273화 한심하지 않나 (273/425)



〈 273화 〉273화 한심하지 않나

신재윤을 만나고 돌아가는 이호철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그놈이 연수진이랑 붙어먹은 게 아니라고 했을 때 난 왜 실망했던 거지.’

오늘 그에게 사과한다 했지만, 반성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호철은 그가 연수진에게 했던 짓을 후회하지 않는다.
신재윤 때문에 그녀를 차지하지 못한 걸 떠올리면 지금도 화가 난다.

하지만 그는 써클엔터라는 유명한 기획사의 사장이었다.
박세욱을 시켜 BICA를 훼방 놓기 위한 계획을 짜라고 했을 때도, 당장은 방법이 없다는 말에 화를 삭이며 참았다.
그것이 써클엔터라는 거대 기획사의 사장으로서 올바른 판단이기 때문이다.

나중을 기약하며 BICA를 가만 놔둔 사이에 써클엔터보다 힘이 쎈 더문엔터와 밀접한 관계가 되어 점점 더 손을 댈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BICA에 대해 잊고 살던 중 연수진 사장의 임신 소식을 듣게 되었다.

버드윙 엔터는 그런 회사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을 정도로 작은 영세회사다.
웨이븐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연수진 사장은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은근히 유명하다.

유명 여배우에게도 손색없는 미모의 여자 사장님이니 한번  사람들이 잊을 리가 없는 것이다.
이호철도 연수진을 포기하긴 했지만, 가끔씩 버드윙 엔터와 웨이븐의 동향을 살피는 척하면서 연수진 사장을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녀가 임신한 것 같다는보고를 들었을 때는 어린놈의 새끼와 붙어먹었다는 생각에 화가 머리끝까지 솟았지만,  마음을 가라 앉혔다.

쌀이 익어 밥이 되고, 다른놈이 누군가가 맛있게 싹싹 밥톨 하나 남기지 않고 다 긁어 먹었으니 포기하는 게 맞았다.
그는 화를 삭이며 연수진을 잊기로 했다.

하지만, 연수진의  속에 있는 아이가 자기 아이가 될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써클엔터가 아이돌 메이킹에 참가하기로 한 건 다섯 번째 시즌을 맞이해 새로운 화제가 필요했던 NTV측의 강력한 요청이었다.

아무리 인기 프로라도 시즌 5 쯤 되면 사람들도 슬슬 질리기 시작한다.
장기 시즌 오디션들 보면 보통은 시즌 2, 3쯤 가장 인기가 많았다가 슬슬 가라앉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아예 종영하거나 중간에 다시 부활하는 패턴이다.

아이돌 메이킹도 시즌 2,3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으나 시즌 4 화제성이 조금 떨어졌다.
제작진은 화제성을 위해 유명 기획사인 써클엔터를 끌어들였다.

우승이 본전인 대형기회사는 이런 기획에 절대 참여할 리가 없으니 그들이 끌어들일  있는 최고의 회사인 써클엔터를 섭외했고, 결국 참가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나 있는 걸그룹이 망 수준인 써클엔터에게도 좋은 기회이니 서로의 필요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써클엔터는 사실 절대 우승할 생각이 없다.
왜냐햐면 우승팀은 활동 내내 NTV의 간섭을 받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이돌 런칭에 방송국이 지원을 해줬다는 이유로 수익도 나눠야 한다.

그런 써클엔터가 신재윤을 끌어들인 이유.

바로 NTV측의 은밀한 부탁 때문이었다.

올 초, BICA가 등장하고, 신재윤은 리드레아, 새별너울을 연달아 히트시켰다.
제작진으로서 BICA가 유명해질수록 방송에 끌어들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이번 시즌에 BICA의 참가는 힘들 것이라 냉정하게 판단했다.

이미 걸그룹만 2팀이 있는 BICA에서 또다시 걸그룹을 키울 리가 없기 때문이다.
설령,  걸그룹을 키운다 해도, BICA가 여건이 안되어 연습생 모집도 안 하고 있다는  방송계, 연예계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을 정도다.
이러니 BICA에 출연 제의를 하더라도 신재윤과 BICA가 아이돌 메이킹에 출연할 리가 없었다.

이번 시즌 BICA를 출연시키는  포기했던 제작진은 리드레아의 두 번째 컴백 쇼케이스 날 퍼진 신재윤의 기사를 보고는 신재윤을 꼭 출연시켜야겠다고 생각을 바꿨다.

신재윤이 젊고 잘생겼다는 건 방송가에서 이미 유명한 일이다.
 방송국마다 여성 직원, 스태프들 사이에 신재윤 팬클럽이 있다는 소문까지 있다.

그럼에도 신재윤에게 섭외가 없었던 것은 그를 만났던 이들이 하나 같이 신재윤의 성격을  때 방송에는 맞지 않을 것 같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또, 그가 언론에 노출되는 극도로 싫어하는 걸 볼 때, 방송에 맞지 않다는 평가가 강한 설득력을 얻어 기정사실처럼 취급되었다.

리드레아 컴백 날, 신재윤의 기사가 퍼진 이후 아이돌메이킹의 제작진은 리드레아와 함게 신재윤의이름이 검색어 순위에 오르자 그가 방송에 맞고 안 맞고는 나중 일이고 일단은 어떤 식으로든 출연시켜야겠다고 결심했다.

문제는 오디션 참가자를 제외한 모든 출연진과 그들의 역할이 확정된 상황이라 도저히 신재윤을 끼어 넣을 자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요즘 화제의 인물이라도 방송 초짜, 쌩초보에게 중요한 역할을 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어엿한 한 회사의 사장인 만큼 어느 정도의 대우도 해줘야 했다.

이를 두고 고민했던 제작진이 낸 아이디어가 써클엔터를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방송은커녕 아직 제작발표도 하기 전이지만, 이번 시즌의 주인공은 써클엔터로 결정되어 있다.
방송분량, 서사 모두 써클엔터 위주가 것이다.
물론, 다른 기획사들의 반발을 막기 위해 써클엔터는 준우승이나 3위정도로 마무리  예정이다.

대신 써클엔터는 자사 아이돌 데뷔에 들어가는 여러 가지 지원을 받고, 추후 써클엔터 신인그룹이 데뷔할 때 NTV측에서 여러모로 스케쥴에 도움을 주기로 밀약을 맺었다.

그래서 제작진은 써클엔터에게 은밀히 부탁했다.
써클엔터 사장의 명성과 권위를 이용해 신재윤을 어떻게든 녹화장으로만 끌고 온다면, 은근슬쩍 그를 방송에 노출시켜, 반강제적으로 집어넣겠다는 계획을 설명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이는 써클엔터 입장에서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부탁이다.
이미 써클엔터가 화제의 중심이 될 것이고 주인공이 된다는  결정되어 있는데, 다른 회사의 엄한 놈을 데려와 달라니 기분 나쁜 게 당연했다.

그러나 이호철은 기분 나빠하는 써클엔터 임원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이 제의를 받아들였다.

먼저, 자기가 좋아했던 여자를 뺏어간 신재윤이란 놈을 직접 보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고.  번째로는 신재윤이 언론 노출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건 워낙 유명하다 보니. 이 방송 출연이 그에게는 매우 불편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호철은 억지로 잊었던 복수심을 다시 떠올리며 그를 끌어들이기로 했다.
손해만   없으니 그를 어드바이저로 삼아 써클엔터에 이득을 가져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오늘 드디어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이호철의 속은 복잡했다.

분명히 신재윤을 만나면 분노하고 화를 낼 줄 알았다.
그렇기에 이호철은 오늘 홀로 프라이빗다이닝룸에서 신재윤을 기다리면서 끊임없이 치솟는 분노를 수없이 진정시켰다.

하지만 막상 그를 보니, 만나는 사람마다 그의 평이 좋은 이유를 실감했다.
한껏 적의를 일으키려고 해도 저쪽에서 먼저 굽히고 들어오니 혼자 화를 내는 자신이  좁을 인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신재윤 역시 유부남, 그것도 자신처럼 30년 동안 결혼생활을 한 것도 아닌, 갓 결혼한 신혼임에도 연수진을 보고 마음이 흔들렸다는 사실에 동질감까지 느꼈다.

이호철은 무엇보다 놀란 것은 연수진의 아이가 신재윤의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함과 동시에 실망하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었다.

“신재윤 사장을 만나 본 소감은 어떠십니까?”

운전 중인 박세욱의 질문에 뒷좌석에 앉아 있던 이호철은 복잡한 생각을 잠시 접고 그에게 말했다.

“BICA 차리기 전에 어디서  했던 놈인지는 몰라도 젊은 놈이 애송이는 아니더군. 언뜻 보면 빈틈 투성이인데, 빈틈을 찔러보려고 하면 그 빈틈이 어느새 사라져 있어. 그놈 겉으론 잘생긴 얼굴이 아까울 정도로 허술하고 실없어 보이지만, 속으로는 계속 머리를 굴리는 놈이야. 절대 만만치가 않아.”

박세욱은 신재윤을 자신 이상으로 높이 평가하는 이호철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분명 말투는 거칠지만, 이호철의  속에 담긴 건 호감이었다.

‘믿을 수가 없군.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신재윤을 보자마자 죽일 것 같았던 사장님이 호감이라니.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사장님이 처음 본 사람한테  정도로 호감을 보인 적이 있었나.’

써클엔터가 연예인들과 사이가 원만하고 잡음 없이 깔끔한 이유.
그것은 이호철이 인간미가 부족하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소속 연예인들과의 선을 지키기 때문이다.

엄할 때는 엄하고, 잘해줄 때는 잘해준다.
적당히 풀어주고, 적당히 조인다.

이는 이호철 세대 사람들에게는 정 없어 보이지만,지금 세대에게는 좋은 상사, 이상적인 사장이다.
그렇기에 써클엔터 소속 연예인들은써클엔터와 이호철을 좋아했다.

이것은 전부 실은 이호철의 인간불신 때문이다.
사람을 처음부터 믿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다는 것이 이호철의 지론이다.
그렇기에 선을 정해 놓고 그 이상으로 다가가지도 않고, 오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이호철이 속을 내보이는 사람은 써클엔터에서는 오직 박세욱 한 명뿐이다.
써클엔터를 창업할 때부터 같이 일한 전무, 이사들에게도 이호철은 자신을 전부 내보이지 않는다.

이런 그가 철천지원수라고 여기던 신재윤과  한 번, 점심 식사  끼를 같이 했을 뿐인데 그에게 호감을 보이고 있으니 박세욱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놀란 모습을 이호철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시선을 앞으로 고정한 박세욱이 말했다.

“신재윤 사장....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대단한 사람인가 보군요.”

“날 물 먹여 놓고, 내가 손도 못 쓰는 놈이니 대단한 놈 맞지. 루프엔터 천종수 사장, 더문엔터 김정호 사장이 신재윤 그놈을 두고 어리다고 우습게 보지 말라고 하는 이유를 알겠어.”

루프엔터 천종수 사장, 더문엔터 김정호 사장, 써클엔터 이호철 사장.

루프엔터가 가장 오래됐고, 천종수 사장이 나이도 가장 많지만  모두 비슷한 나이고, 비슷한 시기에 회사를 만들었기에 지난 세월 동안 많이 얽히고 만난 사이다.
이러다 보니 이 세 명은 적도, 친구도 아니지만자주 만나고 연락하는 묘한 관계를 유지 중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셋은 모두 신재윤과 연이 있었다.

그래서 이호철은 오늘  자리에 나오기 전에 천종수 사장과 김정호 사장과 통화를 하면서 그에 대해 어느 정도 듣고 나왔었다.

“사장님. 계획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연수진을 놓치고, 또 연수진이 신재윤과 붙어먹었다는 걸 안 이호철의 원한은 깊었다.
그렇기에 아이돌 메이킹 제작진의 제의를 받아들이며, 애써 묻어두었던 복수심을 다시 끄집어냈다.
그래서 오늘 일부러 사과 쇼까지 하면서 그를 끌어들인 것이다.

이호철은 아이돌 메이킹 촬영을 하면서 신재윤에게 여자를 붙이고, 스캔들을 터트려 그의 도덕성과 BICA에게 심각한 타격을 줄 계획이었다.
신재윤이  결혼한 신혼이고, 부인이 임신 중이라고 하니, 계획이 성공만 한다면 신재윤을 완전히 매장시킬 수도 있다.
이미 신재윤에게 꼬리칠 여자, 기사를 터트릴 기자,시나리오등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박세욱은 이호철에 그에게 호감을 보이는 것을 보고는 조심스레 계획에 대해 물은 것이다.

무심한 얼굴로 창가 밖을 바라보던 이호철은 손을 들어 내저으며 말했다.

“됐어. 전부 없던 일로 해. 연 사장 아이 그놈 자식이 아니라는데, 우리가 괜히 복수니 뭐니 하면서 멀쩡한 가정을 망가뜨릴 수는 없지.”

“네? 연 사장이 신재윤이랑  맞은  아니랍니까?”

지금까지 애써 냉정을 유지하던 박세욱이 자제를 잃고 고개를 돌려 이호철을 바라보았다.

예전 BICA와 신재윤에게 복수하려던 이호철을 말렸던 박세욱이 이번에는 이호철을 말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가담한 이유.
바로 연수진의 임신 때문이었다.

박세욱도 이호철만큼은 아니었지만, 연수진에 대해 어느 정도 호감이 있었다.
다만 박세욱은 연수진에 대한 호감보다 부인과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컸기에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연수진의 임신을 알게 되고, 신재윤이 자기가 모시는 이호철을  먹였을 뿐만 아니라, 10살 이상 많은 연수진과 눈이 맞고 임신까지 시켰다는 사실에 박세욱도 분노했다.

신재윤은 얼마 전에 결혼한 신혼, 다시 말해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가 있는데 연수진과 바람폈다는 거니, 신재윤보다 어른으로서, 그리고 이호철을 모시는 부하직원으로서 그에게 세상이 얼마나무서운지를 알려줘야겠다며 이호철을 도운 것이다.

연수진 근처에 신재윤 말고 다른 남자가 없으니 철석같이 신재윤의 아이라고 믿었던 박세욱은 연수진 배 속에 있는 아이가 신재윤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에 깜짝 놀란 것이다.

“연 사장이 더 나이 먹기 존에 가족이 하나라도 더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기증받아서 임신했다더군. 나도 듣고 놀랐어.”

박세욱의 귓가에 담담하게 말하는 이호철의 목소리가 쓸쓸해 보였다.
박세욱은 아무 말도 않고 앞만 바라보며 운전에 집중하는 척을 했다.

왜 연수진이 내일모레 40인 나이에 정자은행에서정자를 기증받아 임신을 했는지, 이호철, 박세욱 모두 말은  했지만, 그 이유를 짐작할  있었기 때문이다.

이호철에 그녀에게 한 짓 때문. 이라고 두 사람은 생각했다.

‘신재윤 그놈이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이래서 사장님이 복수심이 사그라드신 거군. 이제 알겠어.’

박세욱은 잠시 냉정을 잃었던 자신을 다잡고 그에게 말했다.

“신재윤 사장에 대해 준비했던 것은 전부 취소하고, 아이돌 메이킹에 집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이왕 신재윤을 끌어들였으니 그놈 능력을최대한 짜내 우리에게 이득이 되도록 해야지.”

“알겠습니다. 구체적인 계획을 강구해보겠습니다.”

“그래.”

이호철은 차창 밖을 바라보며 손을 들어 턱을 괴며 짧게 답하고는 이내 허탈하게 웃으몀 말했다.

“허..거참, 박 실장. 가만 보면 신재윤 그놈도 참 한심하지 않나.  사장 같은 여자가 정자은행에서 얼굴도 모르는 놈 정자를 받아 임신한다는데, 그걸 가만히 지켜보고 말야. 그놈 얼굴이 아까워. 얼굴이. 내가 그놈 나이, 그놈 얼굴이었다면, 따귀를 맞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아빠가 돼주겠다는 말이라도 한번 해봤을 텐데 말이야.”

이호철 일로 신재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박세욱이지만,  점에 대해서는 공감했다.

사진으로는   봤지만, 실제로 오늘 처음 본 신재윤은 건방진 철없는 애송이가 아닌, 예의바르고 건실하고 잘생긴 청년이었다.
신재윤이 미혼이고, 박세욱에게 시집 안 간 여동생나 사촌이 있다면 소개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혹시 압니까. 정말 따귀를 맞았는데 창피해서 말 못 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따귀 한방에 포기한 신재윤이 진짜 한심한 놈이라는 거지. 말을 꺼냈으면 어떻게든 성공을 시켰어야지. 젊은 놈이, 나이 50이 넘은 나보다 근성이 없다는 거잖아.”

맞장구를 쳤던 박세욱은 이호철이 좋아하기는커녕 오히려 허탈해하는 듯한 목소리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사장님이 오늘따라 유독 이상하시군. 신재윤과  사장이 아무 사이가 아니라는  아쉬워하시는 것 같은 기분이......아니야. 내가 뭔가 착각했을 거야. 설마 그럴 리가 없잖아.’

박세욱 이상한 기분을 느꼈지만, 차마 물을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 가득한 의문을 혼자 품은  써클엔터를 향해 가던 박세욱은 갑자기 뒤에서 들려 온 이호철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이거였군! 이제야 내 마음을 알았어.”

“네?”

“아까  사장 아이가 그놈 자식이 아니란 소리를 처음 들었을  난 안도한  아니라 실망했어. 이상하지 않은가. 분명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반대로 실망을 했다는 게, 그래서 나도 혼란스러웠지. 그런데 이제야 알겠어. 나도 모르게 연 사장이 혼자 애 둘 키우면서 사는 것보다 불륜이라도 신재윤과 눈이 맞아 그놈 그늘 아래서 사는  덜 고생할 거라 생각했던 거야.”

박세욱만 이상하게 여겼던 것이 아니라 이호철 자신도 혼란스러웠다는 걸 알게  그는, 모시는 상사의 진정한 마음이 느꼈다.

‘사장님, 연 사장을 진심으로 사랑하셨구나.’

이호철의 사랑은 분명 잘못된 사랑이다.
사랑이라고 모든 걸 용서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60 가까운 나이에 이룰  없는 사랑의 열병을 앓은 이호철이 박세욱은 안쓰러웠다.

가슴이 답답할 때는 술과 여자로 푸는 게 최고다.
이것이 세상에 찌들대로 찌든 그들의 해결 방법이다.

“사장님,  마담한테 오늘 밤에 간다고 전화할까요? 안 그래도 엊그제 괜찮은 애 새로 들어왔다고 연락 왔었습니다.”

“지들이 괜찮아 봤자지. 내 눈에 차겠어?”

연예계에서 일하면 이게 문제다.
미녀들이 길거리 돌맹이처럼 흔하니 쓸데없이 눈만 높아진다.
이래서 농담으로 신입 매니저나 사원이 들어오면 눈 높아져서 평생 총각으로 살기 전에 빨리 여자친구 만들고, 빨리 결혼하라고 한다.

“정 마담이 이번에는 확실하다고 자신했습니다. 배우 지망생이었던 애랍니다.”

“뭐, 믿을 수는없지만, 어쩌겠나. 정마담네가 그나마 물이 괜찮고 다른데 마음에 드는 데도 없으니 그리고 가야지. 회사 가봤자 일이 손에 잡힐 것 같지도 않으니 바로 가세.”

“네.”

박세욱은 조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써클엔터에서 정마담의 룸살롱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호철은 혼자만 노는 쪼잔한 상사가 아니다.
이호철이 룸을 가면 박세욱도 놀 수 있다.

인간불신 이호철답게, 그는 단골 룸에 가도 항상 파트너를 바꾸지만, 박세욱은 자기 취향에 딱 맞는 여자가 있어 정마담 가게에 가면 항상 그녀를 파트너로 삼는다.

대낮부터 질펀하게 놀 생각에 흥분한 박세욱의 아랫도리가 뻐근해지고, 자기도 모르게 액셀을 밟는 발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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