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86화 〉286화 느낌이 와 (286/425)



〈 286화 〉286화 느낌이 와

새로운 한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

나, 누나, 영애, 수진에 희선, 한나, 가희, 하린, 다은, 다연까지  10명의 인원이 4대의 차에 나눠타고 집을 나섰다.

희선, 한나, 가희는 병원으로 출근하는 거고, 누나, 영애, 수진은 정기검진을 위해 희망 산부인과로 갔다가 누나와 영애는 회사로 돌아오고 수진과 하린은 버드윙엔터로 갈 것이다.
나도 누나들 정기검진에 갔다 다은, 다연을 데리고 수진, 하린과 함께 버드윙 엔터에 가서 웨이븐 준비 상황을 살펴본 뒤, 다은, 다연을 회사에 내려주고 일산으로 향할 예정이다.

다은, 다연을 데리고 가는 건 기회가 될 때마다 그녀들을 외출 시키려는 의도도 있지만, 버드윙 엔터에서 관리인으로 일하는 그녀들의 할아버지, 나만 보면 험한 소리가 나오는 노인네 안영일과 만나게 해주기 위해서다.

그 노인네 집이 회사에서 걸어서 5분 거리라 평소 다은, 다연이 자주 방문하지만, 최근 회사 앞에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많이 좋아졌던 다은, 다연의 대인기피증 증세가 다시 나타나는 바람에 지난 주에는 한 번도 영감님 집에 가지 못했다.

다은 다연이 노인네 집에 가진 못했어도 전화나 톡으로 매일 대화를 나누기는 했다.
하지만 아무리 미디어와 매체, 기술이 발달해도 노인네 마음은 애들을 직접 보고 싶고, 또 그러는 편이 더 안심되고, 반가울 테니 그를 생각해서라도 기회가 될 때마다 만나게 해준다.

사실, 애들이  간다 해도 노인네가 언제든지 우리 회사로 와서 애들 보면 좋을 텐데, 이상하게 노인네가 집에서 가까운데 우리 회사는 잘 안 오려고 한다.
그러니 우리가 가야지 뭐 별수 있나.


희망산부인과에 온 건 한 달 만이다.
안정기부터는 한 달에 한  혹은 두 번 정도만 검진을 받으면 되기 때문에, 임신 초기처럼 매주 올 필요가 없다.

한 달 만에 왔지만, 여기 사람들 4명  세 명이  여자다 보니 전혀 낯설거나 오랜만에  기분이 들지 않았다.

병원에 도착해 바로 검진을 받은  아니다.
매일 아침 직원들끼리 티타임 겸 수다 타임을 갖는다고 해 우리도 껴서 안락한 대기실에 모두 앉아 커피, 차 등을 마시는 시간을 가졌다.

“소리야, 나 어제 뒷보지 개통식 했다. 나랑 가연이랑 유진이랑 야외에서 밤바다 보면서 뒷보지 가득 정액 가득 받았어. 엄청 낭만적이지?”

“푸훅. 콜록콜록”

자리에 앉자마자 가희가 여기에 있는 여자 중 유일하게 내 여자가 아닌 임소리에게 자랑하는 것을 듣고, 나는 차를 마시다 사레가 들었다.

“어머, 재윤  괜찮아요?”

옆에 있는 수진이 깜짝 놀라며 백에서 손수건을 꺼내 내 입가를 닦아주었다.
나는 수진에게 감사를 표하고는 서둘러 가희에게 말했다.

“가..가희야...소리씨에게 그런 말은.”

“괜찮아요. 소리도 알 거 다 알아서 아침마다 우리 이런 얘기해요.  사장님 전용보지 되기 전에도 매일 언니들....아 여기 병원이지. 원장쌤하고 한나쌤이 사장님한테 보지 대준 이야기 들었어요.”

“희선아, 저, 정말 그랬어?”

“네.”

“......”

아무렇지도않다는 듯 평온하게 네 하고 답하고는 보리차를 마시는 희선을 보고는 말없이 임소리를 바라보며 눈빛으로나마 사과를 전했다.

미안해요. 임소리씨.
제 여자들이 하나같이 주책이라 많이 힘드시겠네요.

내 눈빛을 읽기라도 했는지 임소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익숙해요. 괜..괜찮아요.”

얼굴이 빨간 걸 보니 전혀 괜찮지 않은 것 같았지만, 본인이 괜찮다고 하니 넘어갔다.


검사를 마치고 모든 것이 순조로우며 이상 없다며 다음 검진은 한 달 후에 받으면  것 같다고 한 희선이 나를 보며 물었다.

“재윤 씨, 아들인지 딸인지 궁금하세요? 법적으로는 32주 이후에 알려드릴 수 있지만, 재윤 씨가 궁금하다면 알려드릴게요.

“아니. 엄마들이 알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는데, 내 귀에만 들어오지 않게 해줘.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으니 옛날 방식대로 태어나는  알고 싶어. 그러는 편이 왠지 더 재밌어.”

“정말요? 아들, 딸 다 좋다고 해도 아기용품 미리 준비하려면 아들인지 딸인지 알아두는 게 낫잖아요.”

“둘 다 준비하면 되지. 설마 셋 다 아들이거나  딸이겠어.”

내 말에 희선은 의미 모를 웃음을 짓고는 본래 나보다 먼저 물었어야 할 산모들에게 물었다.

”네. 알았어요. 언니들이랑 지연이 넌? 아들인지 딸인지 알려드릴까요?“

”난  알려줘도돼. 왠지  안 해도 알 것 같거든. 느낌이 와.“

”훗. 그래? 알았어. 언니들은요?“

희선과 누나는 둘이 마음이 통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쿨하게 한마디씨만 주고 받고 넘어갔고, 수진도 누나처럼 뭔가 알았다는 듯이 배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음.....재윤 씨가 태어나는 날 알고 싶다고 하니 나도 모르고 있을 래. 나도 뭔가 느낌이 오기도 하고.“

”나도 됐어.“

누나와 수진은 정말 느낌이 온 것 같았다.
그러나 영애는 아무리 봐도 자기만 자기 아이에 대해 모르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는 심정에 오기가 발동하여 같이 넘어간 기분이 든다.
설령 그렇다 해도 영애가 정 궁금하면 나중에 따로 희선이한테 물어보겠지 싶어 별말 하지 않았다.

아들이든, 딸이든 뭐가 중요하겠어.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히, 무사히 태어나면 됐지.

정기검진을 마치고 병원을 나오며 한나 희선 가희와 인사를 나누었다.

어제부터 인사하면서 박아주겠다고 했지만, 그게 밖에서도 말처럼 쉽겠나.
그러다 보니 전처럼 키스하며 저보다 더 열심히 만지고,  강하게 끌어안아 최선을 다해 자지를 그녀들의 몸에 비비고 문질렀다.

희선, 한나, 가희와 뜨거운 인사를 마치고, 아까 토크 시간도 그렇고 우리가 인사하는 걸 빤히  보고 있었던 탓에 얼굴이 빨개졌던 임소리와는 평범하게 인사를 나누고는 병원을 나왔다.



***********

”니놈은 여기 왜 온 거야. 어이쿠. 미년년들도 데리고 왔네.“

한창 연습 중인지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복도까지 울려 퍼지는 버드윙 엔터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바지를 걷어 올리고 부채를 부치고 있던 노인네가 나 다은, 다연을 보고는 그 답게 반갑다는 인사를 거칠게도했다.

”아저씨, 에이콘 틀면 되지 궁상맞게 뭐해요? 사무실 에어컨 지지난달에 새로 바꾼 거라 빵빵하게  돌아가잖아요.“

”이 새끼는 오랜만에 보자마자 잔소리네. 사무실에 나 하나 있는데 무슨 에어컨이야. 옛날에는 에어컨 없이도 잘만 살았어.“

”웨이븐 애들도 있고, 연 사장님이랑 하린이도 있잖아요.“

”없었잖아. 오면 틀려고 했어. 그리고 애새끼들 있는 연습실은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놔서 추울 정도야.“

노인네는 연사장과 하린이 우리 뒤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바로 앞에 놓여있던 리모컨을 들어 에어콘을 켰다.

아직 여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창문도 없고 환풍기만 돌아가는 지하 사무실에서 부채만 부치고 있던 모습에 나만 답답한  아니었는지, 다연도 뾰족한 목소리로 노인네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우리가 살던 2층에만 에어컨 달고, 1층은 손님들이 덥다고 해도 에어컨 끝까지 안 달고 선풍기랑 얼음물만 주더니....제발 에어컨 좀 틀고 살아.“

”이년아, 이 나이에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는 신호야. 그러니 내가 그대로인  다행으로 알아.“

”겨우 에어컨 하나 가지고 죽는다는 소리가 왜 나왓!“

”나 좀 가만 냅두라는 말이지! 이걸 일일이 설명해줘야 하냣!“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면서 싸우는 것 같지만 이게 바로  조손들이 서로 정을 나누는 그들만의 방법이다.
방금 노인네가 말한 대로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고, 저 노인네가 우리에게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한다면, 오히려 그편이 훨씬 무서울 거다.

그러니 이 노인네는 변하지 말고 이 모습 이대로 살았으면 좋겠다.

”관리인님 안녕하세요.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디 갔어요?“

”아, 연사장 좋은 아침이야.  팀장은 연습실에서 있고, 준호랑 선주는 아침거리 사러 갔어. 다들 새벽부터 나와서 아침을 아직 못 먹었거든.“

컴백이 가까워질수록 우리가 그랬듯이 버드윙 엔터도 출퇴근 시간의 모호해지고, 정신없이 지내고 있다.
사람이 우리보다 적으니  그렇겠지.

그나마 거래 조건으로 써클엔터가 프로모션을 대신 맡아줬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수진이랑 하린이 마저도 여기서 숙식을 해결해야 했을 정도로, 정신없이 지내야 했을 거다.

”아저씨가 에어컨  트는 바람에 더워서 도망간 거 아니에요?“

”내가 너 같이 싸가지 밥 말아 먹은 놈인 줄 알아. 너처럼 싸가지 없는 놈한테만 똑같이 싸가지 없이 하는 거지,  잘 듣는 사람들한테는 신사야.“

틀린 말은 아닌 게, 노인네가 나와 다은, 다연이한테만 이러지 버드윙 엔터에서는 입만 거칠뿐, 전혀 꼰대답지 않아서 인기가 많다고 한다.
곧잘  팀장을 구박하긴 하지만, 둘이 친해서 그러는 거고, 웨이븐 멤버들도 노인네를 좋아하고 잘 따른다고 한다.
나 이사님하고도  여자관계에 대해 같이 뒷얘기도 하고, 내기도 하면서 잘 지내고,

그와 오랜만에 인사를 하고, 다은, 다연을 사무실에 남겨두고는 웨이븐 멤버들을 보기 위해 수진과 함께 연습실에 갔다.
우리가 들어오는 모습을 봤음에도 멤버를 관리하는 트레이너나 멤버들이나 연습을 멈추지 않는다.

이게 정상이다.
연습실에서는 특별한 용무가 있음을 밝히지 않은 이상 사장이 오든 회장이 오든 연습이 최우선이다.

나는 뒤편에서 연습을 지켜보던 박팀장과 조용히 인사를 나누고는 그의 옆에서 웨이븐이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을 보면서 마음 한구석의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여돌 노래는 대중들도 곧잘 듣고, 아이돌 팬들도 자기돌이든 아니든 신곡이 나오면  번씩은 들어본다.

그런데 보이그룹은 노래는 대중들은 물론 보이그룹 노래도 좋으니 제발 들어달라고 외치는 아이돌 팬들조차 자기 돌 노래만 듣지, 다른 남돌 노래는 안 듣는다.

남돌은 앨범 100만장을 팔아도, 팬들 화력으로 음원 차트 상위권에 오랫동안 머물러도, 10대들 사이에서나 유명하지, 20대도 모르는 노래들이 수두룩하다.
이러니 그 윗세대는 말할 것도 없지.

남돌이 30대 이상에게도 유명해지려면 해외에서 엄청나게 잘나가서 국뽕을 충전시켜줘야 한다.

요즘은 KPOP이 해외에서 잘나가다 보니 국뽕의 기준도 높아졌다.
예전에는 미국 빌보드 차트 진입만 해도 9시 뉴스에 나왔지만, 요즘은 빌보드 상위권 찍고, 미국 공중파 방송에 출연하고, 미국 현지 뉴스에서도 인기 있다는 말이 나와야 관심을 준다.

예능에서 대활약해 인지도를 높이는 방법이라도 있었지만, 요즘 예능에서 아이돌이 설 기회가 거의 사라진 터라 그러기도 쉽지 않다.
예능으로 뜬다는 아이돌 보면 이미 팬덤 탄탄하고 앨범 잘 파는 남돌들 중에서 회사가 힘을 써서 멤버 한두  나와서 얼굴도장 찍는 거다.

이러니 아이돌 수명은 전보다 길어졌는데 신인은 날이 갈수록 뜨기가 힘들다.

그래서 요즘은 뜨는 신인 남돌을 보면 대형 소속 아니면, 오디션 프로에서 어느 정도 인기를 모으고 데뷔한 케이스가 대부분이다.

이러다 보니 웨이븐이  될 거라는 자신이 없다.
아이돌은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걸로는 부족하다.
끼가 있어야 하고 매력이 있어야 한다.

내가 남자니 걸그룹은 멤버들 보면 이쁘다, 귀엽다, 섹시하다 이런 느낌이라도 오는데, 보이그룹은 여자들이 좋아할지 어떨지 도저히 모르겠으니 답답하다.

웨이븐 멤버들, 수진과 하린은 물론 버드윙 엔터의 전 직원이 이번 활동에 큰 기대를 걸고 있던 터라 더 부담이 된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내세울 게 노래밖에 없으니 멤버 얼굴 알리는 건 일단 뒤로 미루고 최대한 노래를 밀겠다는 거다.
이미 프로모션을 맡은 써클엔터 쪽에도 음방 외에 방송출연은 없어도 좋으니 최대한 라디오에서 웨이븐 노래가 많이 나오도록 힘써달라고 부탁했다.

요즘 유행하는 SNS에서 먼저 뜬 다음에 역주행 하는 건 바이럴 업체를 끼고 해야 하고, 무엇보다 최근 몇 년간 이런 역주행곡들이 사재기 의혹이 있다 보니 여기에 잘못 발 들였다가는 리드레아, 새별너울까지 뒤집어 쓸 수 있다.
그래서 SNS와 너튭은 아주 기본적인 프로모션만 하지, 인플루언서, BJ등 인터넷 스타들을 섭외한 마케팅은 선택지에서 아예 제외했다.

라디오는 프로마다 10곡이 넘는 노래가 흘러나오기 때문에 써클엔터 파워 정도면 집어넣기 수월한 편이라 써클에터도 흔쾌히 수락했다.

웨이븐은 전형적인 EDM 댄스그룹이지만, 노래가 떠준다면 보컬 그룹으로 변신시키면 된다.
중요한 건 어떻게든 뜨기만 하면 된다.

”애들, 전보다 많이 늘었죠?“

”네. 많이 노력한 게 눈에 보이네요. 당장 무대서도 될 정도입니다.“

밖이다 보니 수진에게 존댓말로 답했다.
전에는 이렇게 상황에 따라 스위치가 딱딱 바뀌는 리드레아가 신기했는데, 하다보니 나도 이제는 잘 된다.

수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한창 연습에 매진하는 웨이븐을 바라보며 말했다.

”전에는 몰랐지만,지금 애들 하는  보니 이전에는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알았어요.“

연예계에 대해 잘 몰랐던 수진은 경영자로서 숫자만 가지고 기획사를 운영했고, 실무는 황실장을 믿고 맡겨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황 실장이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너무 오냐오냐  탓에 멤버들 분위기와 연습상태가 엉망이었고, 결국 웨이븐은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지 못했다.

그렇다고 웨이븐이  안된  황 실장을 탓하면 비겁한 거고, 경영자이자 최고 책임자인 수진의 잘못이지.
내 여자라고 감싸도 안 된다.
아프고 쓰라리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수진은 능력은 좋지만, 차갑고 냉정해 보이는 외모에 비해 사람이 물러.
어떤 면에서는 나와 비슷하지.
그녀와 나의 차이는 내 곁에는 누나,  이사님 같은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거고, 그녀는 없었다는 거다.

하지만, 이제는  팀장 같은 괜찮은 사람도 구했고, 영감님도 연예계와 음악은 잘 몰라도 수진과 하린을 존중하고 내부단속을 확실히 해줘서, 버드윙 엔터의 체계와 분위기가 많이 잡혔다.

뿌듯해 하는 얼굴로 멤버들을 지켜보는 수진을 보며, 나 또한 남자애들은 전혀 관심 없다는  태도를 잠시 접어두고, 이 애들이라면 이번에 잘 안되도,  번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며리드레아, 새별너울처럼 한번에 잘 되기를 바라는조급한 마음을 다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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